렛미인 한정판 (디지팩)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 플래니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난 이 영화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를 본다. 소외 되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들의 끈끈함을 본다. 피에 대한 욕구가 아무리 끓어 오를 지라도, 뱀파이어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아무리 클지라도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보호하고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음으로 ...  

뱀파이어란 존재는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  생명을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을 이루는 존재이며 생명을 취함으로 인해 무한한 능력을 보유하는 존재이다. . 예전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에서 드라쿨라 백작이 전률하면서 외치면 소리가 바로  "피는 생명이다." 였다. 그러나 생명을 나눠줄 존재에게 기생해야 하는 것이 뱀파이어다.   

렛미인에서 나오는 뱀파이어는 12살인 채로 몇년이나 살아온지 모르는 소녀 이엘리, 뱀파이어다운 냉정함과 차가움, 잔인함을 가진 존재다. 그리고 그녀와 친해지는 오스칼...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항상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소년이다. 더구나 오스칼은 부모가 이혼한 상태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이 만남은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상대를 만난것이고 상대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려는 존재로서의 만남이었다. 오스칼은 이엘리를 통해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이엘리는 오스칼를 통해 최상위 포식자로서 느껴야 하는 고독을 해소한다. 그들에게 외로움을 덜어내고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은 상대방의 이질성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 고독이었던 것이다.    

동족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고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엘리를 구해주는 오스칼과 오스칼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주기 싫고 정체가 밝혀질 것이 두려워 떠나는 이엘리, 이별을 고하면서도 오스칼이 위기에 처해 있을때 나타나 오스칼를 구해주는 이앨리... 그러나 문제에 직면한 상대방을 도와주는 해결방식은 언제나 죽음과 피가 연루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기묘하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순간처럼 순수함도 있지만, 상대방의 잔인함과 나약함에도 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순간 존재로서 인정하는 것 자체가 사랑이 되어버리는 기묘한 순간이 된다. 이질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나서 서로가 같이 섞여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 이어지는 기묘한 사랑...그리고 이별 후에는 그들의 사랑이 단순한 연대에 따른 사랑인지 남녀간의 사랑인지 모호해진다.  

이들의 관계는 담담하다. 죽음과 피가 연루되지 않는다면, 그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느끼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연대와 사랑은 결국 피와 죽음이 보이는 순간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대비되는 면이 있다. '박쥐'의 뱀파이어는 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생존방식에 따른 갈등의 축이 '렛미인'에서는 그냥 조건으로 긍정된다. 천진난만함으로 인해 차갑게 느껴진다고 할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뱀파이어란 존재를 통한 인간적 고뇌를 그린 영화를 오랫만에 두 편을 봤다. 사람들은 왜 뱀파이어에 그리 매혹되는 것일까? 생명? 피? 권력? 극한에 대한 상상? 싸구려 뱀파이어보다 역시 고뇌하는 뱀파이어가 던져주는 건 많다. 상상하지 못해서 그렇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포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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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례기간 동안 퇴근 후 짬짬히 사람들을 관찰아닌 관찰을 해 온 나로서는 숫자에 대한 헛된 기대를 하지 못하게 한다. 작년의 촛불이 백만을 이르렀어도 그 힘이 그대로 이어져 오진 못하고 결국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지 못한 기억이 패배의식으로 남아있는지 명확한 목적에 기반하지 않은 다수의 군중은 그때의 화려함으로 기억될 진 몰라도 승리하지 못하면 그냥 흩어지는 양떼일 뿐이다.  

오늘 20만 이상 사람들이 모이고 떠나는 이를 추모햇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추모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가련하고 불쌍해서? 참여정부의 과는 차지하고라도 공에 대한 계승만 생각하더라도 모인 사람들이 그냥 흩어질 순 없는 문제다. 추모기간에 북한의 핵실험과 대한민국의 PSI 전면가입이 이루어지고 한반도는 여느때보다 전쟁의 기운이 높아져갔다. 그러나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 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을 위해 노력했음을 인정한다면, 노무현을 보내면서 남북긴장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추모는 그 사람을 그리워 하고 그 사람이 뜻한 바를 계승하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그것 뿐인가? 언론법 개악은 어떤가? 6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숫자로 언론관계법을 개악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무현이 왜 죽어야 했는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어떤식으로 그 개혁성을 좌초당하고 보수주의자들의 먹이감이 되어야 했는가? 물론 열린우리당의 근본적 정체성에 문제가 있지만, 보수언론의 그 끈질기고 파렴치한 왜곡과 날조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 아닌가? 그럼에도 노무현을 보내면서 언론법 개혁에 대한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이 불쌍하다고만 했지 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노동자들은 이미 대화의 상대에서 배제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어, 싸우기 싫어도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힘을 축적하고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벼랑끝에 몰려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철거민들도 노동자들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다는 노무현을 보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많이 추모하니까 덩달아 추모하는...사람들...어린아이 손을 잡고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냐며 축제 나들이 오듯 추모하는 사람들...나는 이 사람들 속에서 변화의 힘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조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가지고 길게 보지 못하고 하는 푸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희망을 보기엔 앞의 장애물은 너무 높아 보이고 역량은 터무니없이 약해 보인다.  

이제 5월을 넘어 6월이다. 6월에 나는 희망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조그만 싸움이라도 승리의 단 맛을 한 번 맛보았으면 한다. 제발 이 추모의 열기가 한 점 불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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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사에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후에 어떤 정치인도 노무현 대통령 만한 진정성을 지니기는 힘들 것이다. 단, 현재의 정치제도를 더욱 민주적으로 개선한다면 혹 가능할 지 모르겠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이 정착되고 전체 국민들이 정말 공화국적인 가치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제2 제3의 노무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정치구도 속에서 노무현이란 사람은 기적에 가깝다. 출신부터 대통령 당선까지...죽은 뒤 그의 삶의 궤적에서 나타나는 드라마같은 상황들은 어떠 소설보다 압도적이고 비극적이다.  

몇일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온전히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사건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고, 4월부터 삶이라는 것, 사람에 대한 관계...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노무현 대톨령의 죽음은 내 흔들리는 생활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 계기가 되었고 온전히 그 사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노무현이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 중에 너 역시 자유롭지 않다고..."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들로 논쟁하던 그 친구의 말에 아연해졌다. 그리고 빈소의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했다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노무현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많음을 느꼈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때문일까? 난 노사모도 아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너무 기뻐했고, 탄핵정국에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갔으며,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왔을땐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이라크 파병에서 시작된 참여정부의 정책에서, 마지막 FTA에 이르러선 거의 업적에 미친놈 취급을 했던게 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공은 잘 보지 않았고 그의 정책 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실망했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조중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며, 미국과 좀더 대등하게 맞서기를 바랐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견제 당했고, 보수언론에 의해 터무니없이 왜곡 당했으며, 진보세력에게도 난타 당했다.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아직도 난 그가 원망스럽다. 우리나라 정치제도 에서 대통령만한 권력이 어디있는가? 충분히 의지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세종의 통치가 가능하도록 한 태종처럼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길 바랬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적들이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랬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평등해지는 나라를 건설하길 바랬다. 하지만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가고 탈권위적 조치들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고 시장의 권력은 이제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탈권위주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감을 더 느끼지만 그만큼 그가 원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정권이양 후 터진 그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보다, 철저한 무관심과 냉소로 대응했다. 조중동은 쓰레기라고 하면서도 조중동의 선전에 긍정하고, 이 정권의 야비함을 알면서도 공격받는 노무현에게 잘못한게 있은 떳떳하게 대응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지금도 난 죽지않고 끝까지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기대치가 높은 것이었던가? 어쩌면 난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에 슈퍼맨을 덧씌우고 있었나 보다. 그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임을,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하고, 눈물 흘리고, 나약한 면이 있는 하나의 인간임을 난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는 초강력 로봇이 아니었음을 난 왜 지금에야 깨닫게 되는 것인지.... 

지금은 그저 이런저런 생각만 하게 된다.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해 마음이 쓰리다. 그저 빈소에서 자원봉사로  미안함을 달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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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05-29 16:14   좋아요 0 | URL
사실 아프님을 밴치마킹한건데...ㅎㅎ 아프님 팬이에요...

가시장미 2009-05-29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못 할 것 같고, 빈소에서 자원봉사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미안한 마음에 잠도 잘 오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를 애도하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한 것 같습니다. 연민과 동조 그리고 방조했다고 생각되는 자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렇게 떠너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원망..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슬픔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역시 그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 하고 있으며 하루하루 답답하고 참담한 기분으로 넋놓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슬퍼하고 함께 깨닫고 함께 애도하고.. 혼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외롭고 외로운 시간을 보낸 분일텐데 떠나시는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정말 다행스럽네요.

머큐리님.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종종 뵈어요..

머큐리 2009-05-29 15:22   좋아요 0 | URL
예.. 가시장미님 종종 뵙지요...앞으로도 좋은 말씀 많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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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5-3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가 정말 절묘합니다.재치 넘치면서도 날카롭군요.
 

ㆍ프랑스 좌파 경제학자

세계 경제가 위기다. 과연 이 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향후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제라르 뒤메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주임(66)은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끝났고 앞으로 새로운 사회질서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뒤메닐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적 분석틀에 기반을 둔 현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얻고 있는 경제학자다. 특히 국내에 소개된 <자본의 반격>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상 도미니크 레비 공저)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혁명’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지난 25일 방한한 뒤메닐은 29일 ‘대안세계화운동 이념과 전략의 국제비교’ 국제학술대회에서 ‘21세기 초의 위기와 계급대립’을 주제로 발표하는 등 한국 지성계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소개할 예정이다. 26일 그를 만나 현 경제 위기의 성격과 원인, 향후 전망 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신자유주의의 위기다. 신자유주의는 ‘계급적 현상’이다. 가장 부유한 계층의 소득 회복을 목표로 1980년대부터 진행됐다. 신자유주의에는 금융화와 세계화라는 측면도 존재하는데 금융의 탈규제화와 폭발을 이끌면서 이번 위기에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위기가 금융 위기로 온 이유다.”

-위기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 100여년 사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4번 있었다. 1990년대, 1929년, 1970년대, 그리고 지금이다. 5~10년마다 반복되는 순환적 위기와는 다른 것은 자본주의를 ‘사회적 질서’라고 말하는 여러 단계로 분리하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 우리는 첫번째 헤게모니인 케인스주의적 해법을 목도한다. 7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두번째 헤게모니로 소득, 부, 권력을 창출했지만 지금 결국 실패했다. 이것이 내가 자본주의 역사를 보는 방식이다.”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계기를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에서 찾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부동산 거품은 현 위기의 한 측면이지 원인이 아니다.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부동산 거품 형성은 물론 붕괴의 조건을 창출했다. 앞서 말했듯 이번 위기의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가 부유층에서 높은 수익을 추구한 데 따른 금융 메커니즘의 자유화·탈규제화·세계화다. 두번째가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다. 미국 경제 성장은 적자 축적 때문이었다. 소비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계 빚이 늘어났다. 이처럼 내·외적으로 빚이 증가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현상이다. 이걸 보면 왜 위기가 미국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금융화가 가장 발달했고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한 미국과 유럽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금융위기에 대한 금융적 처방은 효과가 없다. 핵심은 생산량 저하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다. 유럽은 미국 정부보다 행동이 늦다. 반면 오바마 정부는 대공황의 기억이 강해서 생산량 저하를 멈추기 위해서는 뭐든 할 것이다.”

-이번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위기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뀔 것으로 보는가.

“단기적 전망은 어렵다. 경기 침체는 멈출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의 불균형을 고쳐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렵다. 문제는 미국 경제가 금융 및 비금융 다국적 기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시정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제한하고 자본이동을 규제한다면 이는 다국적 기업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다. 이게 모순이다.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중단하지 않으면 세계 지배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에 급속하게 자신을 바꿀 것이다. 미국 내 내셔널리즘이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룰을 바꾸도록 압박할 것이다. 관건은 속도다. 명백한 것은 우리가 다극체제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유지되겠지만 그것이 어느 수준이 될 것인가이다.”

-자본주의는 70년대 말 ‘신자유주의 혁명’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밝혔다. 지금의 위기도 자본주의에 대한 약간의 수정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

미국 경제만 보면 신자유주의는 이미 끝났다. 앞서 말했듯이 4번의 구조적 위기 뒤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생겼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질서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자본주의신당(NPA) 지도자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인기가 치솟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재 프랑스 좌파는 대안이 없다. 그러다 보니 공산당 내 소그룹이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고 브장스노라는 말 잘하고 매력적인 젊은 남자를 찾았다. 이들은 공산주의의 이름을 버리고 ‘반자본주의’를 내걸었다. NPA는 새로운 형태의 반대세력이지만 그들이 프랑스 사회를 변화시킬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향후 연구 활동이나 출간 계획은.

“이번 위기에 대해 서술한 <신자유주의 위기>라는 책이 10월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나올 예정이다.”

<글 김진우·사진 강윤중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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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2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메닐의 책이 더욱더 많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