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기간 동안 퇴근 후 짬짬히 사람들을 관찰아닌 관찰을 해 온 나로서는 숫자에 대한 헛된 기대를 하지 못하게 한다. 작년의 촛불이 백만을 이르렀어도 그 힘이 그대로 이어져 오진 못하고 결국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지 못한 기억이 패배의식으로 남아있는지 명확한 목적에 기반하지 않은 다수의 군중은 그때의 화려함으로 기억될 진 몰라도 승리하지 못하면 그냥 흩어지는 양떼일 뿐이다.  

오늘 20만 이상 사람들이 모이고 떠나는 이를 추모햇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추모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가련하고 불쌍해서? 참여정부의 과는 차지하고라도 공에 대한 계승만 생각하더라도 모인 사람들이 그냥 흩어질 순 없는 문제다. 추모기간에 북한의 핵실험과 대한민국의 PSI 전면가입이 이루어지고 한반도는 여느때보다 전쟁의 기운이 높아져갔다. 그러나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 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을 위해 노력했음을 인정한다면, 노무현을 보내면서 남북긴장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추모는 그 사람을 그리워 하고 그 사람이 뜻한 바를 계승하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그것 뿐인가? 언론법 개악은 어떤가? 6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숫자로 언론관계법을 개악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무현이 왜 죽어야 했는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어떤식으로 그 개혁성을 좌초당하고 보수주의자들의 먹이감이 되어야 했는가? 물론 열린우리당의 근본적 정체성에 문제가 있지만, 보수언론의 그 끈질기고 파렴치한 왜곡과 날조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 아닌가? 그럼에도 노무현을 보내면서 언론법 개혁에 대한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이 불쌍하다고만 했지 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노동자들은 이미 대화의 상대에서 배제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어, 싸우기 싫어도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힘을 축적하고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벼랑끝에 몰려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철거민들도 노동자들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다는 노무현을 보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많이 추모하니까 덩달아 추모하는...사람들...어린아이 손을 잡고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냐며 축제 나들이 오듯 추모하는 사람들...나는 이 사람들 속에서 변화의 힘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조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가지고 길게 보지 못하고 하는 푸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희망을 보기엔 앞의 장애물은 너무 높아 보이고 역량은 터무니없이 약해 보인다.  

이제 5월을 넘어 6월이다. 6월에 나는 희망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조그만 싸움이라도 승리의 단 맛을 한 번 맛보았으면 한다. 제발 이 추모의 열기가 한 점 불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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