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사에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후에 어떤 정치인도 노무현 대통령 만한 진정성을 지니기는 힘들 것이다. 단, 현재의 정치제도를 더욱 민주적으로 개선한다면 혹 가능할 지 모르겠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이 정착되고 전체 국민들이 정말 공화국적인 가치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제2 제3의 노무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정치구도 속에서 노무현이란 사람은 기적에 가깝다. 출신부터 대통령 당선까지...죽은 뒤 그의 삶의 궤적에서 나타나는 드라마같은 상황들은 어떠 소설보다 압도적이고 비극적이다.  

몇일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온전히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사건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고, 4월부터 삶이라는 것, 사람에 대한 관계...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노무현 대톨령의 죽음은 내 흔들리는 생활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 계기가 되었고 온전히 그 사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노무현이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 중에 너 역시 자유롭지 않다고..."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들로 논쟁하던 그 친구의 말에 아연해졌다. 그리고 빈소의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했다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노무현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많음을 느꼈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때문일까? 난 노사모도 아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너무 기뻐했고, 탄핵정국에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갔으며,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왔을땐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이라크 파병에서 시작된 참여정부의 정책에서, 마지막 FTA에 이르러선 거의 업적에 미친놈 취급을 했던게 나였기 때문이다. 그의 공은 잘 보지 않았고 그의 정책 중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실망했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조중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며, 미국과 좀더 대등하게 맞서기를 바랐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견제 당했고, 보수언론에 의해 터무니없이 왜곡 당했으며, 진보세력에게도 난타 당했다.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아직도 난 그가 원망스럽다. 우리나라 정치제도 에서 대통령만한 권력이 어디있는가? 충분히 의지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세종의 통치가 가능하도록 한 태종처럼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길 바랬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적들이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랬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평등해지는 나라를 건설하길 바랬다. 하지만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가고 탈권위적 조치들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고 시장의 권력은 이제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탈권위주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감을 더 느끼지만 그만큼 그가 원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정권이양 후 터진 그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보다, 철저한 무관심과 냉소로 대응했다. 조중동은 쓰레기라고 하면서도 조중동의 선전에 긍정하고, 이 정권의 야비함을 알면서도 공격받는 노무현에게 잘못한게 있은 떳떳하게 대응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지금도 난 죽지않고 끝까지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기대치가 높은 것이었던가? 어쩌면 난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에 슈퍼맨을 덧씌우고 있었나 보다. 그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임을,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하고, 눈물 흘리고, 나약한 면이 있는 하나의 인간임을 난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는 초강력 로봇이 아니었음을 난 왜 지금에야 깨닫게 되는 것인지.... 

지금은 그저 이런저런 생각만 하게 된다.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해 마음이 쓰리다. 그저 빈소에서 자원봉사로  미안함을 달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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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05-29 16:14   좋아요 0 | URL
사실 아프님을 밴치마킹한건데...ㅎㅎ 아프님 팬이에요...

가시장미 2009-05-29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못 할 것 같고, 빈소에서 자원봉사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미안한 마음에 잠도 잘 오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를 애도하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한 것 같습니다. 연민과 동조 그리고 방조했다고 생각되는 자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렇게 떠너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원망..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슬픔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역시 그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 하고 있으며 하루하루 답답하고 참담한 기분으로 넋놓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슬퍼하고 함께 깨닫고 함께 애도하고.. 혼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외롭고 외로운 시간을 보낸 분일텐데 떠나시는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정말 다행스럽네요.

머큐리님.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종종 뵈어요..

머큐리 2009-05-29 15:22   좋아요 0 | URL
예.. 가시장미님 종종 뵙지요...앞으로도 좋은 말씀 많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