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조직 축소로 직원들 고생… 많이 힘들었다
ㆍ대통령 업무보고 한번도 못해… 정말 불통”

30일 전격 사퇴를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은 “오늘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에 사표를 전달했는데 청와대와 정부에서 아무 연락이 없다. 이 정부는 이념을 떠나서 기본적인 예의나 에티켓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을 이날 밤 서울 방배동 자택 앞에서 만나 횟집으로 옮겨 대화를 나눴다. 안 위원장은 1987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임용된 뒤 2002년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법과 문학사이>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 등이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표를 낸 뒤 하루종일 어디 있었나.

“인권위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사무실을 나왔다. 오후에는 혼자서 휴대폰을 꺼 놓고 이곳저곳 산책하면서 돌아다녔다. 저녁 때 친한 친구들을 만나 소주 한 잔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직 임기가 4개월 남았는데.

“온갖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식물위원장 4개월을 해서 뭐하나.”

-사퇴 발표를 인권위 내에서는 잘 몰랐다는데.

“3월에 인권위 강제 축소가 됐을 때 사표를 내려고 했다. 사퇴 성명서까지 영어로 써 놓고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사무총장이 조직 안정을 위해서 지금 물러나면 안된다고 극구 말려서 물러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퇴하는 것이 옳았던 것 같다.”

-지금을 사퇴 시기로 택한 이유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내가 물러나고 차기 위원장이 8월3일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회의에 참석해 국제사회에 선을 보인 뒤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회장국이 되기를 바란다.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납득할 만한 인물을 차기 위원장으로 뽑으면 회장 선출을 도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돕는 게 어렵지 않겠나.”

-ICC 회장국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국정원·검찰은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 선진국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ICC 회장국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할 때 이런 부분을 전하고 싶었는데 업무보고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 정부가 경제를 중요시하는데 인권은 수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이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인권위 축소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3월31일 인권위 축소 직제 개정령과 관련해서 국무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원래 국가인권기구 총회에서 사회를 보기로 했는데 결국 못갔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인권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내가 8월3일 회의에 무슨 낯짝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위원장으로 조직과 인력이 축소된데 대해 힘들었나.

“강제 축소 이후에 인간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힘든 이유는 이게 한 개인과 인간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20% 조직 축소를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자리가 줄어들면서 아픔을 많이 당하고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으로서 마음이 아팠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와 갈등이 많았던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아닌가.

“이 정부는 정치력이 전혀 없다. 정부 내에 그나마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세력과 강경파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강경파만 득세한 것 같다. 이 정부와는 정말 소통이 안된다. 이전 정부 때도 독립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불편한 관계에 있었지만 이번 정부는 훨씬 심하다. 청와대와 연락 한번 하는데 10일 정도 걸리더라.”

-다시 학교로 돌아가나.

“교수 정년이 아직 4년 남았다. 인권위 위원장으로 있을 때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다. 40세에 서울대 교수가 되면서부터 사회적 발언을 했었는데 기회가 되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나 목소리를 내고 싶다.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과 놀아주고, 등산도 다니고 싶다.”

<강병한·정환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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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 만화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중.

몇 번을 곱씹어도 멋진 대사다. 이 뜨거운 이야기를 들려준 이를 만나게 됐다. 만화가 최규석(33).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등으로 알려진 그는 독창적인 묘사와 우울함 속에서도 재미와 웃음을 잃지 않는 스토리 전개로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다룬 만화로 찾아왔다. 1987년 당시 그는 초등학생이었다. 겪어보지 못하고 기억에 없는 일들을 그려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그 세월을 치러낸 이들로부터도 생생한 묘사가 놀랍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최규석 작가 본인은 "MB 정부 덕인 것 같다"며 웃으며 손사래를 치지만 분명 그가 담아낸 그림 속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공감이 살아 숨쉰다. 때문에 평범했지만 조금씩 삶과 그 안에서 민주주의를 깨달아 가는 주인공 영호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지난 23일, 그가 진정 화폭에 담아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잘 나가는 건 이명박 정권 덕"

 

- 작품의 반응이 어떤가?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선 제일 잘 나가는 것 같다.(웃음) 책을 안 읽는 세태를 감안하더라도 출판사 측 얘기로는 제법 팔리는 편이라고 한다. 주변에서도 좋아해 주시고…. 한편 이명박 정권 덕인 것 같기도 하다. 정권 내내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웃음)"

- 책을 그리게 된 계기를 말해 달라. 1987년 당시 초등학생이어서 6월 항쟁에 대한 기억이 전무할 텐데, 어떻게 보완했는지.

"<6월 민주항쟁 계승사업회>로부터 청소년용 교육 자료로 제의를 받았던 작품이다. 당시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렸고 고향이 보수적인 곳(경남 창원)이라 더욱 그렇다. 표현에 있어 세부사항을 알 수가 없어 힘들었다. 이를테면 회의할 때 식당 분위기, 거리 풍경 같은 것인데, 수기집을 봐도 알 수가 없으니 곤란했다. 책을 읽고 인터뷰를 많이 했다. 또 이념과 관계없는 1980년대 영화를 많이 보기도 했다."

- '데모하는 것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던 주인공이 차츰 변해가는 과정은, 흡사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닌지.

"한편 그렇기도 하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그려내려 애썼다. 원래는 좀 더 복잡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담으려 했지만 실제 인터뷰를 해보니 다르더라. 모든 것이 검열되고 제한적인 시대에서 광주의 진실을 알린 사진 몇 장만 봐도, 천지가 뒤집어지지 않았겠는가."

"청소년들 똑똑하다, 진보가 모두 옳다고는..."

- 기본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는데, 실제 그들의 반응은 어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는지.

"좋아한다. 다행히 의도가 통한 것 같다. 이전의 작품은 문화를 적극 향유하는 이들이 찾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따라오게 하고 싶었다. <100℃>의 경우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이야기라 딱히 내 의도를 넣지 않아도 이야기가 통한다. 당시 그들이 느꼈던 감정만 전해줘도 성공이라 생각했다."

- 제목에도 나오지만 '사람도 100℃가 되면 끓는다'는 대사가 감동적이다. 인터뷰를 통해 체득했는지, 아니면 작가적 상상력인지?

"내가 생각해냈다.(웃음) 제안을 받고 한동안 생각을 해봤다. 책에선 6월항쟁이 시작되는 장면이 마지막이다. 그것이 끓는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항쟁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떠올릴 만한 비유라고 믿는다."

- 때로는 진보에 대한 일침도 등장하는 등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뭐랄까…. '열 사람의 한 걸음'을 표현하려 했다. 일을 꾸려 나가고 앞에서 이끄는 이들의 노고야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때로는 동원되는 이들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부분이 안 들어가고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그려내면, 요즘 똑똑한 학생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가 없다.(웃음) 의견이 달라도 서로 치고받으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 이전 작품들도 그렇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는데.

"사회적 약자보다는, '담론의 약자'라고 해야 할지.(웃음) 전면으로 부상되지 않는 사람들이랄까. 큰 이야기를 하려면 진행 전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야기하기 편하게 사회를 자르고 거기서 시작하면, 한참 가버리고 난 후에는 뒤에 빠져있는 부분을 끼워 넣을 방법이 없다. 그런 쪽의 감수성은 있는 것 같다."

'돈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야기 다뤄볼 참

- 앞으로도 정치 상황이나 시대를 풍자하는 만화는 계속 그릴 것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있지만 문화계 전반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사실은 그런 것들이 좋은 소재다. 그런데 실제 그려내지를 않는다. 캐릭터를 잡아도 노동운동하는 이들은 등장을 안 한다. 미국의 <프렌즈>란 트렌디 드라마를 보면 파업상황에 동참을 할 것인지 그냥 일을 할 것인지 갈등하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상상조차도 안 한다. 갑갑하다. 작가들 스스로 정치적 이야기는 재미가 아니라, 책임감 때문에 시작한다."

- 가깝게 잡혀 있는 계획을 들려 달라.

"일단 몇 년간 손을 제대로 못 댄 단편들이 있다. 현재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미술지도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돈도 재능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사회가 그러니까… 강하게 부정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꼭 그릴 생각이다. 또 비정규직에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싶다. 어쨌든 재미있게 그릴 생각이다.(웃음)"

출처 : "내 책 잘 나가는 건 이명박 정권 덕"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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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터 집회에 참석하다 보면, 항상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어 다니는 독립 미디어꾼들을 볼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팀은 역시 칼라TV팀.... 어디서든 몸을 사리지 않고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힘쓰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항상, 거기, ‘칼라TV’가 있었다. 촛불집회의 한가운데에도, 기륭전자 투쟁 현장에도, 용산 철거민의 망루가 불에 탈 때에도, 덕수궁 대한문 앞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경찰 발길에 무너질 때에도 칼라TV는 현장을 보고 있었다. 2009년 한국의 역사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그들에게 독립영화인의 축제 ‘인디포럼2009’에서 상 하나를 안겨줬다. 올해의 얼굴상. “매해 독립영화 정신을 가장 밀도 높게 구현한 이에게 주는” 상이다.

인디포럼 측은 “칼라TV야말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라는 격동의 현장에서 비디오 액티비즘으로 출발했던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최근 규모 확장에만 몰두해 있던 독립영화 진영을 각성시켰다”라는 점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영화인들에게 상을 받은 칼라TV 팀원 이명선 리포터(가운데)와 박성훈(왼쪽)·조대희(오른쪽)·권기현 프로듀서는 “어깨가 무겁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상 때문에 앞으로 더 밤새고, 더 ‘뺑이쳐야’ 할 것 같다.”

현장은 항상 고되었다. 전경 방패에 손이 찍히고 날아오는 돌멩이와 소화기에 맞으면서 생중계 방송을 내보내왔다. 눈물과 절규가 있는 곳에만 찾아가는 칼라TV, 마음이 늘 축축 처지지 않을까. 이명선 리포터는 고개를 저었다.

“눈물의 현장에서도 항상 웃음이 존재해요. 노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나고 눈물의 행렬이 서울역 앞을 지나간 후, 어느샌가 사람들이 노란색 종로구 쓰레기봉투를 가져와서 쓰레기를 줍더라고요. 현장에서 항상 희망을 발견해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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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총대 메고 들어갈 테니 모든 책임을 넘기세요."

"내가 잘못되면 사식 넣어줄 거죠? 난, ○○씨 믿고 들어갈게."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 cafe.daum.net/stopcjd) 사무실.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성균 언소주 대표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그 후

 

지난 8일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선포한 후 해당 신문들이 언소주를 공격하는 보도들을 내보내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각지의 회원들이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를 해오는 것이다.

 

그는 애써 농담으로 받아넘겼지만, 검찰이 결국 자신의 목을 조일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 듯했다. 작년 12월 27일 언소주 2기 대표에 선출된 후부터 어느 정도 각오했던 것이지만 너무 빠른 템포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원래는 카페개설 1주년이 되는 5월 31일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2주 정도 연기된 것이다. 그런데 월요일(8일) 기자회견한 지 3시간 만에 광동제약의 전화가 오고, 검찰이 회사 임원을 또 소환조사하고... 우리로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 검찰이 조사받으러 오라고 하면 갈 것인가?

"모르겠다. 좀 더 버티다가 체포영장 나오면 (억지로) 가게 될 수도 있고..."  

 

"사무실 압수수색, 언제 당할지 모른다"

 

삼성의 핵심계열사 5곳(삼성전자·삼성증권·삼성화재·삼성생명·에버랜드)을 2차 불매운동 대상으로 선포한 것도 검찰이 언제 언소주 사무실에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작년 언소주 1기 운영진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나설 때만 해도 우리는 사무실도 없었다. 그러자 검찰은 카페 개설자의 집과 개인사무실을 뒤졌고, 운영진들을 있는 대로 엮어서 24명을 기소했다. 2기 운영진은 나와 총무팀장 2명으로 상근자를 최소화했다. 검찰의 사무실 압수 수색도 언제든지 가능하리라고 본다."

 

김 대표는 "조중동에 광고 내는 중소기업들의 처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들은 혹시라도 조중동에 광고를 안 낼 경우 (기사로) 보복 당할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하더라"며 "어차피 불매대상 기업들과 적대적인 마찰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삼성처럼 강한 상대와 맞붙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언소주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그는 단체의 앞날을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1주일 동안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단식농성까지 했다.

 

"1심 선고를 한 서울중앙지법 이림 부장판사도 '독자가 광고주들에게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지 말도록 하기 위해 광고주 리스트를 보고 설득활동을 벌이는 것은 광고게재 여부의 결정을 광고주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한 허용된다'고 말했다. 그러한 판결에 승복할 수 없어도 판사가 정한 범위 내에서 소비자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했다."

 

- 조중동 불매 운동은 그렇다 치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광고를 싣자 불매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결정에는 논란이 많다.

"조중동의 왜곡보도를 견제하는 것만큼이나 진보언론을 살려야 한다는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명확한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매운동 1호였던) 광동제약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 그렇게 되어 버렸다. '명분과 정당성을 가지려면 조중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11일자 <한겨레> 사설도 봤다.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앞으로는 조중동 불매로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검찰은 물론 법원도 믿을 곳 못 되더라" 


언소주 1기 운영진들은 오는 26일 항소심 첫 재판을 받게 된다. 1심에서 무더기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검찰 수사와 항소심도 상호 영향을 줄 터인데, 김 대표는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도 믿을 곳이 못 되더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검찰의 경우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이 '조중동 광고 불매' 사건 때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됐다고 '양심선언'을 했고, 법원 내부에서도 신영철 대법관이 (판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런 법원을 어떻게 믿겠냐"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도 11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조중동 불매운동 사건은 당시 무작위 배당의 원칙을 깨고 신영철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이 친히 이림 판사에게 배당하였다"고 적은 바 있다.

 

"이림 판사가 1심 선고공판에 20분 늦게 들어와서는 판결문을 낭독하기 전에 '재판부 사정으로 늦게 왔다'고 해명했는데, 단독판사가 상의할 재판부가 어디 있나? 당일 재판도 고개 한 번 들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주르르 읽고는 나가버리더라. 판사도 스스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닐까?"

 

김 대표는 "지난 3월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는데, 검찰은 나를 상대로 고발인 조사 한 번 하고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며 "고소고발이 들어오지도 않은 광동제약 불매 운동 건은 재빨리 수사하면서..."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출처 : "언제 압수수색 들어올지 몰라 '삼성' 지목
 신영철 영향력 행사하는 법원 믿을 수 없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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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11일 0시를 기점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 상황실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화물연대는 막판 교섭이 결렬되자 10일 밤 11시 30분 긴급회의를 소집해 각 지부에 파업 돌입과 계획을 전달했다.


김달식 화물연대 본부장의 낯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참세상은 11일 0시 30분께 김달식 본부장과 간략한 인터뷰를 했다.
 

대한통운이 결국 '화물연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교섭의 실질 내용에는 조건을 고려하면서 협상하겠지만, 화물연대 인정하는 문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화물노동자는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 화물노동자에겐 '화물연대'라는 조직밖에 없다.


화물노동자들이 대한통운과 같은 자본가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맺는 것도 제도가 뒷받침 되어있어서가 아니라 '화물연대'라는 조직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 박종태 열사의 요구가 뭐였나. '대화하자'였다. 택배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고서도 대화를 기피하고 투쟁을 하다 하다 안돼서 '대화하라'는 요구를 걸고 자결했다.


박종태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대한통운은 대화를 안했다. 늘 하는 이야기는 "'화물연대는 교섭권이 없다', '화물연대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라는 거였다. 그런데 화물연대가 지난 5월 16일 파업 총투표하고 파업을 선언하니까 그제야 대화하자고 요청이 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한 달이나 지나서야 교섭이 시작됐다.
화물연대라는 조직을 합의서에 명시하지 않으면 복직된 택배노동자들 언제 잘릴지 모른다. 법적인 근거도 없고 화물연대 조직이 합의서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으니까 사측은 어떻게든 합의서를 엎을 수 있다. 이번을 기회로 대한통운은 화물연대와 이전에 맺었던 단체협약도 부정하려 들게다.


대한통운이 화물연대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서까지 체결하다가 이제 와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정부의 비호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와 '표준운임제 등 운송제도 개선'을 합의했다. 표준운임제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제도다. 이것 때문에 자본의 거센 반발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부가 이 기회로 화물연대를 깨고 그 합의마저 깨겠다는 의도다.


국토부에서 엄정 대처하겠다고 나섰는데


집단운송거부할 경우 업무개시 명령권을 발동하겠다고 하더라. 우리가 국토부에 종속되어 있는 게 아닌데. 정부말대로 우리가 개인사업자라면 자기가 일손을 놓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인정 안하다가 파업만 한다하면 법적으로 대처하겠다고 한다. 법도 없고, 원칙도 없다.


파업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파업을 안 하려고 엄청 노력했다. 운송료 삭감, 물량감소, 그에 따른 운수자본의 횡포는 심해지는 가운데서도 참아왔다. 장기적 경기침체는 화물노동자가 더 잘 인식한다. 그런 조건 감안해서 어떻게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현장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지도부는 현장을 일일이 돌면서 설득했다. 그 한가운데 대한통운의 운송료 일방 삭감과 해고, 그리고 고 박종태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화물노동자의 삶은벼랑으로 내몰렸고 대화의 여지는 정부와 대한통운에 막혀버렸다. 어렵지만 파업을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획은


우선 운송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하게 될 거다. 이번에는 적극적이진 않을 지라도 비조합원들의 운송을 멈추는 선에서 참여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화물연대는 이제까지 조합원만을 위해 투쟁한 적이 없다. 늘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했다. 화물노동자에게 있어 화물연대는 생존권이다.


화물연대가 운송거부에 들어가면 자본과 정부, 보수언론은 물류대란 운운하면서 화물연대를 공격할 것이다. 경찰들은 업무방해 등을 빌미로 탄압을 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투쟁의 강도는 점점 세질 수밖에 없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것처럼 물류를 멈추는 데서 끝나진 않을 것, 강도 높은 투쟁을 구사할 것이다. 그 이상은 말해줄 수가 없다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한마디


맨날 미안하다. 화물연대를 건설해놓고 마음편히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심정이다. 하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경제위기 속에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파업을 결단할 수밖에 없는 지도부의 판단을 이해하고 같이 해줄 것이라 믿는다.


화물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워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도부도 살신성인의 각오로 파업을 승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한통운은 반드시 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깰 거다. 정부는 더이상 화물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안일한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 정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운송시장 발전은 절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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