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조직 축소로 직원들 고생… 많이 힘들었다
ㆍ대통령 업무보고 한번도 못해… 정말 불통”

30일 전격 사퇴를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은 “오늘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에 사표를 전달했는데 청와대와 정부에서 아무 연락이 없다. 이 정부는 이념을 떠나서 기본적인 예의나 에티켓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을 이날 밤 서울 방배동 자택 앞에서 만나 횟집으로 옮겨 대화를 나눴다. 안 위원장은 1987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임용된 뒤 2002년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법과 문학사이>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 등이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표를 낸 뒤 하루종일 어디 있었나.

“인권위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사무실을 나왔다. 오후에는 혼자서 휴대폰을 꺼 놓고 이곳저곳 산책하면서 돌아다녔다. 저녁 때 친한 친구들을 만나 소주 한 잔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직 임기가 4개월 남았는데.

“온갖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식물위원장 4개월을 해서 뭐하나.”

-사퇴 발표를 인권위 내에서는 잘 몰랐다는데.

“3월에 인권위 강제 축소가 됐을 때 사표를 내려고 했다. 사퇴 성명서까지 영어로 써 놓고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사무총장이 조직 안정을 위해서 지금 물러나면 안된다고 극구 말려서 물러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퇴하는 것이 옳았던 것 같다.”

-지금을 사퇴 시기로 택한 이유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내가 물러나고 차기 위원장이 8월3일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회의에 참석해 국제사회에 선을 보인 뒤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회장국이 되기를 바란다.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납득할 만한 인물을 차기 위원장으로 뽑으면 회장 선출을 도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돕는 게 어렵지 않겠나.”

-ICC 회장국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국정원·검찰은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 선진국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ICC 회장국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할 때 이런 부분을 전하고 싶었는데 업무보고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 정부가 경제를 중요시하는데 인권은 수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이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인권위 축소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3월31일 인권위 축소 직제 개정령과 관련해서 국무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원래 국가인권기구 총회에서 사회를 보기로 했는데 결국 못갔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인권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내가 8월3일 회의에 무슨 낯짝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위원장으로 조직과 인력이 축소된데 대해 힘들었나.

“강제 축소 이후에 인간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힘든 이유는 이게 한 개인과 인간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20% 조직 축소를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자리가 줄어들면서 아픔을 많이 당하고 그것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으로서 마음이 아팠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와 갈등이 많았던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아닌가.

“이 정부는 정치력이 전혀 없다. 정부 내에 그나마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세력과 강경파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강경파만 득세한 것 같다. 이 정부와는 정말 소통이 안된다. 이전 정부 때도 독립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불편한 관계에 있었지만 이번 정부는 훨씬 심하다. 청와대와 연락 한번 하는데 10일 정도 걸리더라.”

-다시 학교로 돌아가나.

“교수 정년이 아직 4년 남았다. 인권위 위원장으로 있을 때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다. 40세에 서울대 교수가 되면서부터 사회적 발언을 했었는데 기회가 되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나 목소리를 내고 싶다. 당분간은 집에서 쉬면서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과 놀아주고, 등산도 다니고 싶다.”

<강병한·정환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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