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의 노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4
프랑수아 비용 지음, 김준현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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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첨언합니다 (2017년 2월 10일 작성)

 

제가 2월 7일, 그리고 오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유언의 노래》 13연 8행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습니다. 오늘 오전에 ***님(의 댓글이 ‘비밀’로 되어 있어서 실제 닉네임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께서 제 의견에 대한 이견을 내놓았습니다. ***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참고했던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원문은 1860년대에 나온 것이고, 그 후로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반영된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유언시》의 송면 교수와 《유언의 노래》의 김준현 교수는 새롭게 정리된 원본 시집을 참고해서 번역했을 겁니다. ***님이 2012년에 나온 불영 대역본 시집의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두 권의 번역본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는 과거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옮겼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을 가지고 두 권의 번역본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한 의견이 잘못되었음을 밝힙니다. 잘못 전달될 소지가 있는 내용은 '취소선'으로 그었습니다. 좋은 의견을 주신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의 《유언시》(문학과지성사, 1980년)와 《유언의 노래》를 같이 읽었다. 전자의 책은 3,000행이 넘는 비용의 시를 모두 번역한 전집 형태의 완역본이고, 후자의 책은 선집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두 책의 출간 연도의 차이가 무려 36년이나 된다. 그만큼 번역 어투에도 크게 차이가 난다. 당연히 《유언의 노래》가 읽기 편하다. 《유언시》는 한문이 조금 섞여 있고, 이제는 촌스러운 티가 나는 80년대 외래어 표기법의 흔적이 있다.

 

무모하게 프랑스어 원전 텍스트까지 참고했다. 텍스트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에 있는 <Oeuvres complètes de François Villon>(프랑수아 비용 전집)이다.

 

※ 링크 : http://www.gutenberg.org/files/12246/12246-h/12246-h.htm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외국어 공부에 담 쌓은 지 오래 되었다. 당연히 프랑스어 기초조차 배운 적이 없다. 그래도 원문을 참고하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만 가지고 번역이 좋다 나쁘다고 비교 · 평가하는 건 번역에서 중요한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문이 최대한 원문과 가깝도록 옮긴 건지 따지려면 비용의 시에 관심이 많은 불문학 전공자가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번역자가 문장을 어떻게 이해했고 해석했는지 알고 싶어서 원문을 참고했다.

 

삼중(三重)의 독서를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원문을 참고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두 번역본에 공통된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원문과 이를 번역한 문장들을 소개해본다.

 

 

 

* 《유언시》 53쪽

 

그리고 메트르 로베르 발리에게는

산인지 계곡인지 알 수 없는

고등법원의 말단 서기이기에

목로주점 ‘장화’에 맡겨 둔

나의 긴 바지를 남겨 준다.

우선 그에게 내어 주기 바라거니와

그의 애인 쟌 드 밀리에르에게 입힌다면

여간 잘 어울릴 것이 아니로다.

 

* 《유언의 노래》 16쪽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또 로베르 발레,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고등법원의 불쌍한 서기에게

내 주된 유증물을 정하노니,

선술집 ‘장딴지’에 담보물로 잡힌

짧은 반바지를,

그의 연인인 잔 드 밀리에르에게

매우 걸맞은 머리쓰개가 되도록

그에게 즉시 주기 바란다.

 

 

원문에는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고어(古語)가 많다. 우리말로 번역된 두 개의 문장을 비교해보면 문맥상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지만, 이를 분석하는 일은 불문학 전공자가 하는 게 맞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두 번역본은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8행시 구절 전체를 ‘13연(XIII) 97~104행’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 8행시 구절은 ‘13연’이 아니라 ‘14연(XIV) 105~112행’이다. 《유언시》를 번역한 故 송면 교수가 13연으로 알려진 8행시를 실수로 빠뜨리고, 14연의 8행시를 13연으로 착각한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송 교수가 번역하기 위해 참고한 저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고 해도, 번역자의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 어렵다. 원래 13연의 8행시가 누락되니까 15연의 8행시가 엉뚱하게 ‘14연’으로 표기되어 있고, 뒤에 나오게 될 구절의 연 표시마저 다 틀렸다. 19연의 8행시는 ‘18연’으로 되어 있고, 송 교수는 19연에 원문을 알 수 없는 8행시 구절을 옮겼다. 프랑스어를 잘 몰라서 아직까지 《유언시》의 19연으로 소개된 8행시 구절의 원문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하나, 야경대장(夜警隊長)에게는

투구를 주기로 정해 두고

가게의 대를 어루만지며 야경을 도는

사보(徙步)의 야경 대원들에게는

훔친 멋있는 물건

피에르 오 레 가(街)의 초롱을 남겨 준다.

그리하여 만약 그들이 나를 샤틀레 감옥으로 연행하면

나는 세 개의 백합 무늬의 방을 차지하리로다.

 

(《유언시》 56쪽, 번역자 송면 교수가 ‘19연’으로 잘못 소개한 8행시)

 

 

《유언의 노래》의 번역자 김준현 교수는 비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불문학과 부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30여 년 전에 송 교수의 실수를 재현했다. 김 교수도 《유언시》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비용의 시를 번역했을 때 《유언시》를 참고했을 수도 있다. 송 교수의 번역본을 참고했든 안 했든 간에 13연의 8행시가 빠뜨린 채, 14연의 8행시를 13연으로 소개한 것은 중대한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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