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문예 세계 시 선집
칼릴 지브란 지음, 강은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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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4월 10일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이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48세였다. 사인은 간경화와 결핵 초기 증세,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술로 외로움과 육체의 고통을 달래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는 레바논 태생이다. 『예언자』에는 그 영향이 짙다. 12살 때 가족과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 갔던 지브란은 이후 귀국과 미국행을 반복하며 아랍과 서구, 이슬람과 기독교, 조국의 고대 예언자의 세계와 현대 물질문명의 이질성을 넘나드는 체험을 한다. 25살 때는 파리로 가 2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며 로댕을 만났다. 그의 유해가 레바논으로 돌아갔을 때, 베이루트 항에는 개항 이래 최대의 인파가 그들의 나라가 낳은 천재를 조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미묘한 갈등 속에서 공존하는 땅 레바논에서 자란 난 지브란은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로 불리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가 반세기를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메시지는 아직도 독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니체를 투사하는 분신은 차라투스트라이고, 알무스타파는 지브란의 분신이다. 파리의 그림 유학생 지브란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에게 흠뻑 빠져 들었다. 그의 열정에 넘친 해박한 논리는 니체를 정신적 스승으로 만들었다.

 

『예언자』는 배가 출범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는 잔잔한 포구와 항을 거치면서 사랑, 결혼, 아이들과 같은 가족을 대명제로 삼으며 쓰린 가슴을 치유하며 바다로 항해한다. 알무스타파와 알미트라라는 두 명의 남녀 예언자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사랑, 결혼, 슬픔, 기쁨 등 삶의 진리를 들려준다.

 

알무스타파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사는 도시 올펄레즈를 떠나리라 결심한다. 마을사람들은 현자(賢者)를 잃지 않으려 막아서지만, 여자 예언가 알미트라의 생각은 다르다. ‘머무름은 굳어버려서 틀 속에 갇히는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그에게 매달리는 대신, 알미트라는 가르침을 청한다. 알무스타파가 깨달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다음, 일상에서의 선행, 인간의 일차적 욕구, 소통과 단절, 책무에 대한 탐사를 계속한다. 희로애락과 거주 공간을 얘기하다 보면 소시민들의 생존철학이 등장하고 일탈로 인한 죄와 벌, 선과 악, 이성과 열정은 가치를 다루는 근간이 된다.

 

지브란이 고통을 수반한 법을 사유하다 보면 자유와 자각, 교육은 필수품이 되고, 어느 순간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대화의 중요성, 잊기 쉬운 우정의 소중함, 시간의 순간성과 영속성, 미추(美醜)의 이분법 등을 관념이 아닌 평상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은 것에 일상의 소중함과 가까운 가족과 친지와 같은 인물에서부터 먼 곳의 친구까지의 속정 깊은 마음까지를 두루 관통한 지브란의 항해는 기도, 종교, 죽음이란 커다란 획을 그으면서 마무리된다.

 

‘알무스타파, 선택받은 자이며 가장 사랑받는 자’로 시작된 글은 ‘잠깐, 바람 위에 일순의 휴식이 오면,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로 끝나지만 지브란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믿음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용수철처럼 반동하는 인간이 아닌 따스한 정이 모래밭에 쌓이는 낭만적 판타지를 꿈꿔왔던 그는 물에 비친 바람의 섭리를 다 깨우친 것 같다. 영원의 전사 지브란이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명왕성을 기호로 하여 말하는 악기 인간을 다루는 『예언자』는 예술품이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 책은 종교적 메시지와 예언자적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또 삶의 안내자와의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통찰의 답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종교들이 한 곳에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도교적으로, 때로는 불교적으로, 때로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만나게 된다. ‘베풂’에 대해 쓴 글에 이런 표현이 있다.

 

“모자랄까 두려워함이란 무엇인가? 두려워함, 그것이 이미 모자람일 뿐. (중략) 그런데 지금 그대들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 가진 것이란 모두 언젠가는 주어야 하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 주라, 베풂의 때가 그대들 뒷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것이 되게 하라.” (27~29쪽)

 

예언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을 오르고 먼 곳을 헤매고 다녔단다. 그렇게 일상에서 멀리, 높게 떨어져 있지 않으면 진리는 찾아내기 어렵다. 팍팍한 일상에 휘둘리다 보면 정말 무엇이 소중한지 알기 어렵다. 『예언자』는 우리를 생활에서 떼어내 멀리, 높게 떨어진 위치로 이끈다. 『예언자』는 100쪽을 조금 넘을 정도로 작은 분량이다. 그러나 산문시로 된 이 책은 급한 마음으로는 좀처럼 읽기 힘들다. 진리는 여유와 침착함을 갖춘 이에게만 다가간다. 『예언자』의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그런 담담함을 먼저 익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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