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한시 선집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1
강혜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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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아리아 '여자의 마음'에 나오는 노랫말 중 일부다. 노래만 들어서는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몰라주는 변덕스런 여자를 향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담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류의 탄식과 애원으로 들린다.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의 꼽추 어릿광대이다. 공작은 난봉꾼, 호색한이고 리골레토는 그 일에 충실한 조력자이지만 자신의 딸 질다가 혹여 그런 몹쓸 꼴을 당할까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신분을 숨긴 공작은 이미 질다를 만나 그녀의 사랑을 얻었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리골레토는 청부업자에게 공작 살해를 요청한다. 공작을 유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청부업자의 요염한 여동생이 등장하고 공작은 그녀를 꼬드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때 바로 이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나온다. 리골레토는 질다의 마음을 단념시키기 위해 공작의 실체를 알리려 그곳에 질다를 데려간다. 숨어서 자신에게 한 공작의 모든 말과 행동이 거짓이었음을 고통스럽게 확인하고도 질다는 공작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딸을 구하고 그 복수를 하려던 리골레토는 죽어 가는 딸을 부둥켜안고 저주하며 울부짖는다.

 

변덕스런 게 여자의 마음이라 알 수 없다는 공작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질다가 숨어 가슴 치며 듣는 아리아가 바로 그 '여자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원작을 보게 된다면 질다의 마음만이 변하기 쉬운 갈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아리아를 부르는 만토바 공작이 극악무도한 플레이보이라는 함정이 있다는 점. 부질없이 흔들리는 쪽은 남성인데도, 도리어 여성을 향해 변덕스럽다며 비난하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는 쉽게 마음이 변하는 여성들을 조롱하는 관용어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대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문 닫기 아쉽기만 하네

 

 

 

 

 

신윤복  「연당여인(蓮塘女人, 연못가의 여인)」 18세기

 

 

 

누군가, 아니 일부 남자들 중에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이 말을 여자를 가리키는 공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자의 마음' 역시 갈대인 모양이다. 그리고 여자의 마음은 갈대만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만을 바라볼 줄 아는 '해바라기'도 있다.『여성 한시 선집』에 수록된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쓴 시를 읽으면 남성 독자들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리움과 만남이 다만 꿈에 기대니

내 임 찾아갈 때 임은 날 찾아왔나봐.

바라거니, 언젠가 다른 날 밤 꿈에는

같은 때 같이 길 떠나 도중에 만나기를.

 

- 황진이 《상사몽(相思夢)》(p 15) -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그 꿈이라도 꾸게 된다고는 하지만,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은 꿈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당대 사내들을 환장시킨 천하의 황진이(?~?)도 예외가 아니다. 왜 사내들이 그녀의 앞에만 서면 끙끙 앓았는가. 육체적인 사랑은 흔쾌히 동의해도 결코 마음을 내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황진이는 눈먼 기생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매몰차게 버렸다.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난 황진이는 가슴 깊이 남자에 대한 불신과 냉담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은 제 모습을 아무리 숨겨도 은은한 향기가 드러내는 법. 황진이도 천상 '여자'였다. 그녀 또한 상사병을 견뎌내기가 힘들었으리라. 자신 스스로 억압한 욕망은 꿈의 의식으로 발현된다고 프로이트가 말했던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임을 꿈 속에서조차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꿈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는 마음을 읊조리고 있다. 비록 임과 이별하게 되어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꿈 속에서라도 임의 곁에 있고 싶은 것이다.

 

 

기약하고 어찌 이리 돌아오지 않나요?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가지 위 까치 소리에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봅니다.

 

- 이옥봉 《규원(閨怨)》(p 28) -

 

 

이옥봉(?~?)은 허난설헌(1563~1589)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으로 조명받고 있다. 허난설헌의 기구한 운명 못지 않게 이옥봉의 삶 또한 그리 순탄하지가 않다. 옥봉은 서녀 출신이었다. 출신의 한계 때문에 자신의 결혼 생활이 첩살이 밖에 못함을 비관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을 포기한 채 서울로 상경하여 본격적으로 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작문 실력은 허난설헌의 동생 허균마저도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 뛰어났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김없이 사랑의 콩깍지 귀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옥봉이 사랑했던 사람은 조원(1544~1595)이라는 문신이었다. 옥봉은 그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의 첩이 되기를 간청한 후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두 번 다시 시를 짓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첩살이는 시작되었고 10년 채 안 된 어느 날 그녀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그 내용인즉, 조원 집안의 산지기가 소도둑으로 몰려 꼼짝없이 죽을 지경에 처하자 산지기의 아내가 이옥봉에게 찾아와 눈물로 하소연하며 조원과 각별한 사이였던 파주목사에게 살려줄 것을 부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산지기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분명 소도둑을 빙자해서 아전들이 돈을 갈취하려는 수작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되었다. 옥봉은 곧장 파주목사에게 자신의 장기인 시를 한 수 적어 보내 산지기는 이내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조원은 맹세를 깼다는 이유로 옥봉을 쫓아내고야 말았다. 옥봉을 쫓아낸 조원의 분노 속에는 그녀의 재주가 자신보다 뛰어난 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생긴 일종의 질투심도 있었다.

 

옥봉은 남편을 향한 구애와 특출한 재능, 둘 다 외면받은 불행한 여자다. 그러나 재회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여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 반 설레임 반에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한다. 임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에 대한 염원의 심정으로. 그러나 옥봉을 더욱 처량하게 만드는 부질없는 일. 처량한 신세와 나날이 깊어져만 가는 고독을 견뎌내기에는 홀몸이 된 옥봉이 견뎌내기에는 힘들었던가 보다. 제목처럼 규방에서 혼자 원망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급기야 자신이 쓴 시를 온몸에 칭칭 감고서는 바다에 뛰어들어 꽃 같은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소도둑으로 내몰린 산지기를 구하기 위해 시를 한 수 썼건만, 남편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고 바다에 몸을 던져야 했던 그녀의 삶이 애처롭기만 하다.

 

 

봄바람만 공연히 불어오는데

밝은 달은 이미 황혼인 것을.

그대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문 닫기 아쉽기만 하네.

 

 

- 복아 《별주수남미로(別主倅南眉老, 사또 남미로와 헤어지며)》 (p 24)

 

 

기생 신분의 여인들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기생들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대부 사회의 특성상 황진이의 명성 버금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기생의 존재는 웃음을 파는 노류장화(路柳墙花)에 불과했다. 황진이도 그러했듯이 글솜씨가 출중한 기생들이 사랑의 원초적인 욕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詩)였다. 우리에게 생소한, 복아라는 이름의 기생이 쓴 시는 떠나 보내야만 했던 남미로라는 사또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문 닫기가 아쉬워하는 마음 뒤에는 슬픈 사랑의 결말이라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진 복아의 외사랑이 더 애달프게 느껴진다. 과연 사또 남미로는 복아를 진정 사랑하고 있었을까?  저 멀리 복아는 홀로 쓸쓸히 이별의 쓸쓸함을 삼키고 있을 때, 남미로는 또 다른 기생들과 어울려 달콤한 술을 삼키고 있지 않았을까..   

 

 

 

 세 명의 자식을 떠나보내야만하는 부모의 피눈물

 

닿을 수 없는 거리는 그리움을 낳고, 메울 수 없는 거리는 외로움을 낳는다. 바라는 보아도 품을 수 없는 것들은 사무침으로 다가온다. 가까이 있다가 멀어지면 그 거리만큼 눈물이 흐른다. 이별의 강은 그래서 마르지 않는다. 이별 중에서도 가장 비통한 것은 생전에 자식을 잃는 것이다. 허난설헌의 《곡자(哭子)》는 창자를 끊는다.

 

 

지난해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

두 무덤 한 쌍이 마주 보며 솟았네.

쏴쏴 바람은 백양나무에 불고

도깨비불은 무덤에서 반짝인다.

지전을 살라 너의 혼을 부르고

술을 따라 너희 무덤에 붓는다.

나는 아네, 너희 형제의 혼이

밤마다 서로 만나 놀고 있을 줄.

배 속에 아이가 있다만

어찌 자라기를 바라랴?

부질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운다.

 

 

- 허난설헌 《곡자(哭子)》(p 72) -

 

 

 

허난설헌은 명문가 집안의 딸로서 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불우했다. 남편 김성립은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세 아이를 모두 잃은 것이다. 스물일곱에 생을 마감한 그는 생전에 앞의 글 《곡자》라는 시를 통해 자식 잃은 어미의 비통한 심정을 읊었다. 시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픔을 절절히 담고 있다. 세상 누구라도 자식 잃은 비통함은 같겠지만 유일한 희망인 뱃속에 있는 세 번째 아이마저 잃어야했던 그녀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고 난 뒤에《곡자》를 읊조리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부질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운다.'라는 대목에서 그녀의 통곡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통곡이 된다. 자식 잃은 부모의 비통함은 시대를 초월해 같다.
 

 

 

 케케묵은, 그러나 너무나도 슬픈...

 

조선시대 여성들이 쓴 시 속에 드러난 공통적인 감정들, 특히 연분을 맺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들이 유교 사회가 여자들에게 강조했던 '삼종칠거(三從七去)'와의 관계성과 밀접한 의식의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데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부녀자가 시작(詩作)을 한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 통념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날에는 심적 고민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 여성들이 힘든 시집살이가 기다리고 있는 '시월드'와 규방 속에 갇혀 억압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풀 수 있는 건 문방사우(文房四友)뿐이었다. 양반 집안이 아닌 이상 평생 문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이름마저 없는 조선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글로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린 소수의 여성들은 정말 축복을 받은 셈이다.『여성 한시 선집』에 수록된 글들은 그저 케케묵은 내용들이 아니다. 사대부 사회로부터 받은 사회적 소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아야만했던 마음의 상처와 눈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슬픈 문장들이다. 여성을 '갈대'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이 여성을 무시하면서 '갈대'처럼 행동하는 남성중심적 사고야말로 케케묵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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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9-2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21세기인 현재 한글강좌에 등록한 이들은 모두 60세 이상의 여자들입니다.집에서 학교를 안 보낸 탓이죠.8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의 대학진학률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cyrus 2012-09-27 23:2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해도 문자를 쓸 줄 아는 여성들이 극소수인줄 알았습니다. 유명한 여성
문인들이 황진이, 허난설헌, 이옥봉 등이 잘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선집을 보면서 기생에서
사대부 부인까지 생각보다 꽤 많은 여성들이 한시를 썼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