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아마미야 가린 지음, 김미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자리의 ‘질’은 매년 떨어져 가고 있는데,. ‘고용 대박’ 이라고요..?   

2011년은 유독 국민들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망언이 많은 해로 기억될 거 같다. 이런 걸요즘에는 ‘개드립’이라고 부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헛소리',  좀 심하게 말하자면 ‘개소리’라는 것이다.  2011년도 이제 한 달 남짓도 안 남은 시점에서 이번에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님께서 참으로 ‘대박’스러운 ‘개드립’을 남기셨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 동향’을 놓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두고 “신세대 용어를 빌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고용 대박’”이며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도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 발언 이후로 여. 야당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박 장관의 발언을 보고 이 정부 각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이런 인식 밖에 없다면 당의 앞길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박 장관의 발언만 본다면 분명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평가이다. 고용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실업률이 줄었다는 점은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본 통계청의 10월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모두 2467만 3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만 1000명 늘었다. 분명 수치상으로는 좋다.    

 

 

출처: 조선일보

 

 

하지만 통계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게 된다면 일자리의 ‘양’은 늘었을 뿐, ‘질’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핵심 활동 계층인 20, 30대의 일자리는 같거나 줄어들고 50, 60대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현상만 봐서 이것이 과연 ‘고용 대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우리나라와 다른 OECD 국가들은 통계수집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취업애로계층을 조사하면 20% 가까운 실업률이 나오기도 한다“ 면서 ”이 내용만 가지고 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599만 5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일자리 수가 느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찬영 연구원은 "고용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젊은이들이 취업 의사를 계속 잃어가는 현상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윤상하 책임연구원은 “좋은 일자리에 안착하고 싶어하는 청년층에는 이번 고용동향 통계가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에는 현재 고용 통계는 우리나라 고용의 질이 점차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 대박’ 이 아니라 ‘실업 대박’이라는 심각한 문제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들어 낸 프레카리아트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성'이란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서 '신자유주의화 세계 아래서 불안한 사람들' 을 뜻한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의 시간제 노동자나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직업을 찾지 못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단순히 그들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사회계층으로의 의미로서 프레카리아트라 부르지는 않는다. 이 말에는 새로운 변혁의 주체로서 구상되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처음 쓰여 유럽에 번진 말이 일본으로 들어온 것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유럽과 라틴의 신좌파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개념이다. 의미 맥락상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하다. 일본에는 '자유(free)'와 '아르바이트(arbeiter)'의 합성어로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프리터 족(族)’ 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0대 프리터 족의 증가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번영을 누려왔던 부동산 버블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고용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프리터 족들 역시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게 되었다. 경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경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대 프리터 족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을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작가이자 반(反)빈곤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마미야 가린이다. 그녀는 프리터들의 생존권을 위한 노조활동 참여를 조성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무직, 실업자와 함께 노동절 행사를 치르는 등 ‘프레카리아트’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일본 프레카리아트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담아 낸 것이 바로 국내에 번역된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프레카리아트’라는 단어 자체만 생소할 뿐이지 그 의미를 따져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88만원 세대’ , ‘비정규직 노동자’ , ‘워킹푸어’ 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포 작가답게 젋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서 프레카리아트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높이 살 만하지만, 일본 사회의 구조에 생경한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일본에는 '오오마에'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일본에서만 국한되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프레카리아트, 즉 일본의 프리터 족들이 처한 현실이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프리터들이 일을 하면서 벌 수 있는 평균적 최저 임금은 시급 673엔 수준이다. 임금 가격을 원화로 환산을 해보면(2011년 7월 기준, 1엔은 약 13원) 대략 8740원 정도이다. 이런 수준의 시급을 받으면서 프리터들은 그 수입을 통해서 월세, 식비 등 전체적으로 생활비에 쓰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낮은 임급은 시급 610엔, 원화로는 7930원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위원회가 책정한 내년 최저임금 4580원과 비교하면 높은 가격이지만 단순히 금액만 조금 높다고 해서 생활하는 데 보장할 수 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성급하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서 집세는 연일 고공행진이며 낮은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비정규직 시급보다 조금 더 많은 8000원 정도 번다고 해서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 먹고 잘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당일 해고, 임금 체불 등의 불평등한 대우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지만 건강만 더 악화될 뿐 시중에 들어오는 임금은 쥐꼬리만 하다.

일본 내에 분포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실태를 파악해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파견 노동자 역시 많은 편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유연한 조직의 기업 경영 바람이 불고 온 노동 법제의 규제 완화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다.    

 

 

 

2007년에 일본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파견의 품격>의 주인공 오오마에  

 

   
  우리나라에서는 '만능사원 오오마에' 라는 제목으로 모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여주인공 오오마에는 어떠한 일에도 자신이 맡은 임무를 똑부러지게 수행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능력과 자신감이 충만한 파견 근로자이다.  드마라 속 오오마에는 정규직 근로자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파견 근조자로서 자신의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나가고 있지만 드라마 밖에서의 파견 근로자의 현실은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환경 속에서 적은 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야만 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  
   

 

일명 노동자 파견법은 1986년에 처음 시행되었을 때만 해도 비서, 번역, 통역, 등 전문성 높은 직종에 한해 노동자 파견을 인정했지만 2001년에 고이즈미 정권 이후부터는 모든 전 직종으로 노동자 파견이 합법화되었으며 하나의 직종에만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다양한 직종을 전전해야만 하는 파견 노동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일본의 파견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다름없다. 회사나 공장 내에서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만 헐값으로 고용되어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렇듯, 아무리 일해도 저임금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기에는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그만큼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와도 커져만 가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자리 부족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면 해결하기가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 비정규직에 대해 "노력을 안 하고 의욕이 없다" 고 치부하는 인식이 있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젊은이들은 '자기 책임론' 에 빠지게 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임금을 받지 못한 상황을 자신의 부족한 능력 탓으로 돌리게 된다.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비관하게 되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이르게 된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의 현실을 단순하게 바라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청년층들이 이전 세대와 다르게 부족한 점은 없다.  다만 기성 세대들처럼 어디라도 마음 먹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기는 악화되면 될수록 일한만큼 받게 되는 노동의 대가도 점점 줄어드는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고용의 이중고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안정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진 채 하루하루를 불안한 나날로 살아가고 있다.   

 ***

아마미야 카린은 이런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고 한다. ‘프리터전반노동조합’ 등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드는 운동은 그런 분노와 반격의 시작이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아마미야 카린뿐만 아니라 열악한 고용 현실에 분노를 느끼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 운동가들과 함께 노조를 조직하여 노동생존운동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은이가 펼쳐 보이는 일본 사회의 현실은 우리 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비정규직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책들에 소개된 일본 비정규직자들의 적극적 분노를 표출하는 사회적 운동의 모습들이 너무나 강렬한 탓일까?    

젊은 그들의 분노가 부러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분노에만 그치고 있다다는 점에서 괜시리 염려스럽게 느껴진다.   극소수의 비정규직자들의 분노만으로는 우리나라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만 하게 된다면 우리 세대 역시 불안정한 생활을 살아야하는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자본주의 앞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는 시대를 지나서 신자유주의 앞에서 '프레카리아트' 가 단결해야 할 시대가 도래된거 같다. 

  

 

 

* 인용 관련 기사

[1년간 일자리 '양'만 늘고 '질'은 나빠졌다]  조선일보  2011년 11월 10일  

[박재완은 “고용 대박”이라는데 … 주변엔 왜 한숨소리만]  중앙일보  2011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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