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장미 - 권리를 위한 지독한 싸움
오도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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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왜.....” 
 
최근 인터넷에서 한 어린이가 쓴 짤막한 시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 연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한 어느 연예인이 초등학생들이 직접 쓴 동시들을 낭독하게 되면서 그 중에 이 시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가 낭독된 이후, 남성 연예인들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웃었지만 그들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웃음이 사라지자 그들의 얼굴에는 씁쓸함의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아빠'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린이가 말한 이 시 속의 '아빠'도 될 수 있기에.....   

이 시가 TV에 공개되자마자 삽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 방송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들도 올라오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의 제목을 보게 되면 한 편의 어설픈 삼류 멜로 드라마 속 대사를 상기시킨다.  '이 기사 읽어보세요.'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 제목에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구들을 연발하고 있다.     

 

  '초등학생의 시가 대한민국의 아버지를 울리다.'   

  '초등 2년생의 시에 눈물젖은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짧은 시에 담긴 우리네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기사의 출처와 작성한 기자가 각기 다른데도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감성적인 문구를 타이틀로 내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사문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하나같다.  

'가정을 위해서 밤까지 일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  

'일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준 적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주말에 쉬는 날이면 평일 직장 생활 때문에 피곤해서 아이들과 제대로 논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어느 기사의 마지막 글에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지어서 우울한 기사문의 반전을 꾀하려는 기자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번 초등학생이 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씁쓸한 웃음만 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직장 없는 아버지들은 이 시를 보자마자 쓴웃음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에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일을 하지 못해서 슬픈 비정규직 근로자 부모님들  

이 시를 쓴 초등학생은 일 나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놀아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 집에서 놀아주는 어머니를 비교하여 집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쓴 시의 아버지는 일을 하고 있는 '근로자'이며 '노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아버지들이 다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직장을 되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벌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노동자)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오늘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투쟁중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사연은 다양한다. 적은 보수이지만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직장을 가진 근로자였다가 한순간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어버렸는데, 대부분 회사가 갑작스럽게 파산을 맞게 되면서 직장을 잃어버렸다거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고생해서 일하다가 결국에는 보수나 재정적 가치는 한 푼도 받지도 못한 채 퇴직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라는 속담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생한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얻는 보람조차도 느끼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아버지들만 있는 것인가?  아이들을 예뻐해 주는 어머니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맡았다거나, 대학교 내 청소 용역, 학습지 교사 등 직업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죽어라 일만 하다가 얻은 것이 신체를 망가뜨린 '병' 그리고 이제는 일을 할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꼬리표를 다면서 생긴 '마음의 상처'였다.  

특히 부부중에 자식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쏟은 사람이 어머니다. 제 자식 좋은 교육 받게 해서 좋은 대학 보내주고 싶은 마음은 자식을 향한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된 애정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하루하루 24시간 공장 밖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피켓을 든 채 울부짖는 비정규직 근로자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무능력함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마음도 병이 든 채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아버지를 두 번 죽이게 만든 초등학생의 시 
  

  대기업이 건설하는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보세요.
  이곳에 살면 삶이 참 안락하고 행복할 것 같잖아요.
  하지만 이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에 시달려요.    

  - 『밥과 장미』 [어느 아파트 건설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 오도엽, 삶이 보이는 창, p 142 -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처럼 잘못될 대로 잘못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는 아버지들의 삶과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50%의 아버지들은 늦은 시간동안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게 되면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집에서만 여유롭게 일에 대한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는 집에 오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의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행복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머지 50%의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은 오히려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니, 자신들도 정규직 근로자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할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무능력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마음 한 구석에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돈을 벌오기는커녕 하루종일 노조투쟁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식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학교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써놓은 공간에 당당히 '비정규직'이라고 쓰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러고 사는지, 그리고 왜 있는지 조소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저 초등학생의 시 한 편 가지고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일 할 권리조차 얻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에게는 자신의 무력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잔인한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햇새벽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절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 일부 - 
  

지금도 박노해 시인의 시 내용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절망적인 삶의 벽인 노동 현실을 분노하면서도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부질없는 몸부림만 하다가 하루가 저물 즈음에는 소주로 분노를 달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슬픔을 이겨야 하겠다는 깡다구와 오기가 서려 있다. 그런 독한 정신이 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을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근로자답게, 아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시작되는 햇새벽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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