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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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는 ‘이성’이라는 지적 능력으로 가장 찬란한 세계를 가꾸어 왔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성은 자연에 대한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하게 된다. 자연에 대한 개발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만 같았던 과학기술 문명. 그러나 이에 대한 위기의 파열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서구의 지성계에서 울렸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성은 문명과 인간의 야만이 결합한 파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성의 위기는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과학기술 문명이 초래한 위험은 이제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 위협이 되었다. 현재 인류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 의한 기상이변, 세계 경제를 장기 침체의 그늘로 몰아넣는 불평등, 종교 및 민족 간의 갈등에 의한 테러 등의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문명에서 시작됐다. 이를 다시 과학과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이 물음에 대해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한다. 그는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인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왔으며 앞으로도 도덕이 진보한 세계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윤리학자들은 과학기술 문명의 위기를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인류는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기보다는 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도, 살인, 강간 등 수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일부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는 민주주의 문제, 종교 분쟁, 테러 등 복잡한 현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분명 인류는 도덕이 퇴보하고 있는 시대를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셔머는 과학과 이성이 도덕 진보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덕의 궤적》(바다출판사, 2018)이라는 책에서 자신을 ‘낙관주의자’라고 칭했다[주1]. 그의 지나친 낙관에 경계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셔머는 이성적 논증과 경험적 증거가 동원된 정당한 근거를 대면서 과학과 이성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 감정을 갖고 태어나는 ‘감응적 존재(sentient being)이다. 감응적 존재는 감정, 지각, 감각, 반응, 의식이 있어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감응적 존재는 ‘더 좋은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진보적인 삶’을 지향한다. 따라서 도덕의 진보는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이 달린 문제이다. 셔머는 “도덕의 궤적은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라는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과 이성이 도덕의 궤적을 점진적으로 구부러지게 만든 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전근대 사회를 지배했던 종교적 초자연주의, 미신, 마술에 대한 믿음이 약화하였다. 이 시기부터 ‘도덕의 진보’가 전개됐다. 대부분 사람, 특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교의 등장으로 도덕이 진보되었다고 생각한다. 셔머는 이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종교가 일으킨 도덕적 실수, 즉 도덕적 퇴보의 사례들을 열거한다.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노예제도, 그리고 동성애 혐오. 종교는 오늘날까지도 과거에 일으켰던 도덕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있는 날에 모여 반동성애 집회를 연다. 바티칸시국은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이다.

 

이 책에서 셔머가 강조하는 과학은 ‘기술 중심의 과학’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과학에 기반을 둔 도덕’이기도 하다[주2]. 도덕과학은 과학적 방법론(경험적 조사와 합리적 분석)을 활용하면서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진다. 그래서 도덕과학은 경험과학이다. 민주주의의 부상, 여권 및 성소수자 권리 신장, 동물권 옹호 등은 ‘도덕적 진보의 증거’이며 이러한 성취의 힘은 과학과 이성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도덕적 진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셔머는 종교가 인류의 전반적인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셔머는 ‘프로토피아(protopia)를 추구한다. 프로토피아는 단순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 즉 도덕이 꾸준히 진보하는 세계이다. 마틴 루서 킹이 말했던 대로 결국 도덕의 궤적은 정의로 향해 구부러지게 되어 있다. 셔머는 한발 더 나아가 ‘민족국가’와 ‘국경’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며 분권화된 수평적 위계의 도시국가가 등장하리라 전망한다. 저자의 전망이 실현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종교의 도덕적 퇴보를 비판하기 위해 기독교와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저자의 해석은 꼼꼼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종교학자들의 반론이 예상되는 대목이 보이는데, 저자는 성경이 ‘문학을 통틀어 가장 부도덕한 작품’이라고 말한다[주3]. 그리고 여성 억압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기독교를 가루가 되도록 깐다. 사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도덕과학에 대한 저자의 낙관적인 믿음이다. 과연 과학은 도덕의 진보를 위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글쎄, 과학의 역사를 돌아오면 윤리를 배신한 사례가 있었다. 우생학과 731부대의 생체 실험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감응적 존재’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차별과 살육을 정당화한 사례이다. '퇴보한 과학'의 어두운 면도 조명해야 한다. 정형화된 성과 평가에 눈이 멀어 실험을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도덕과학 정착은 머나먼 환상처럼 여겨진다.

 

 

 

 

※ Trivia

 

471쪽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대표작 《군중 심리(La Psychologie des foules)》를 ‘군중’으로 소개되었다. 원서명에 있는 ‘Psychologie(심리, 심리학)’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주1] 마이클 셔머, 김명주 옮김, 《도덕의 궤적》, 바다출판사, 2018, pp. 581.

 

[주2] 같은 책, pp. 25, pp. 270~271.

 

[주3] 같은 책, pp. 25, p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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