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는 글을 잘 쓰시는 분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들중 누구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알라딘 서재로 들어가 최신 서재글로 올려진 글들을 모조리 다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글을 잘 써내시는 분들이 존재한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즐겨찾기서재로 추가하면서 어휴, 뭐하다가 이제야 이분을 알아본거야,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예전부터 가끔 들러 글이 좋다고 감탄하던 서재였는데 즐찾등록이 안되어 있는게 아닌가! 맙소사. 나는 부랴부랴 넷북을 키고 그 분을 즐찾 추가했다. 아, 두근두근해....

 

기다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의 신작이 나왔고, 그걸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하는 날 보면서 아, 나는 이 작가의 글을 기다렸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랑스런 별장지기』는 별다를 거 없는 뻔한 로맨스였다. 격정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듯 했으나 딱히 인상적이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로맨스 소설' 쯤이었는데, 그 후에 나온 그녀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달랐다. 작가는 더 성숙해진 듯 보였고,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를 이제서야 찾아냈다는 느낌을 줬다. 현실속에 살아있는 생생한 인물들과 에피소드로 푹 빨려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이건 피디가 있을 것 같았고 공진솔이 있을 것 같았다. 인사동의 찻집도 거기 그대로 있을것 같았고 애리는 긴 치마를 나풀거리며 차를 내어줄 것 같았다. 게다가 공진솔, 이 여자. 그 힘들다는 사랑 고백도 해내고 또 가슴 아파하다가 뒤로 물러서고 도망치는 것이, 나랑 크게 다를 바도 없잖은가!

 

 

 

 

 

 

 

 

작가는 이번 작품 『잠옷을 입으렴』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소설이 비단 로맨스라는 장르 뿐만은 아님을 드러냈다. 아주 잘. 게다가 꽤 편안해 보인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심했을지 몰라도, 또 쓰는 내내 머리를 쥐어 뜯었을지는 몰라도, 일단 이 작품은 아주 편안하게 읽힌다. 게다가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작품에 전반적으로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다니, 이것은 이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을 그 전 작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좋아하지는 못할 것 같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글은 잘 썼다고 느껴지지만, 캐릭터가 마음에 안드는거다.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 '고둘녕'이 참 못마땅하다. 하아- 중간즈음부터 마음에 안들기 시작하더니 그 뒤로는 뭘 해도 별로 좋아지지가 않는거다. 내가 뭐 딱히 좋아할 필요가 없긴하지만,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없고 주변인물들 중에도 마음에 드는 인물 하나 없다보니 이 소설은 내게 힘을 잃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들어서, 나는 회사동료에게도 빌려줄 생각인데, 내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들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질 않았다. 내 책장에 꽂힐 이도우의 책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단 한 권이면 될 것 같다.

 

 

물론 이 책의 곳곳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다.

 

"스물여섯 살 때였어요. 마을에 그 아가씨 집이 있었는데 한겨울엔 얼마나 추운지 모든 게 얼어붙어요. 그해 겨울엔 유난히 더 추워서 말을 하면 입에서 말이 나오자마자 얼어붙었죠. 얼음알갱이처럼."

"‥‥‥말이 얼었다고요?"

"네, 너무 추우니까요."

나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다 쌀쌀하게 말했다.

"장난치는 거군요."

산호는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안 믿네요. 그럼 얘기하지 마요?"

"계속해 봐요."

"마을 사람들은 겨울 동안엔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다 얼어붙어서 허공에 떠도니까. 봄이 오면 비로소 말이 녹아 뒤늦게 들려오죠."

그의 목소리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나직해졌다.

"한동안 고향에 다녀왔더니 아가씨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어요. 산 아래 사는 부유하고 나이 많은 남자였죠. 결혼하던 날 집을 떠나면서 내게 전해달라며 무슨 말을 했대요. 내가 갔을 땐 한 발 늦어서 난 가족들한테서 그 얼음알갱이만 받아들고 왔어요."

나는 아마도 그 다음 이야기를 안다.

"봄이 되니까 말이 녹았어요. 내 귀에 메아리처럼 쟁쟁히 울렸어요. 슬프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무슨 말이었는데요."

"‥비밀."

"하지만 난 알 것 같네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렇죠?"

그가 소리 없이 웃었다.

"맞아요." (pp.94-96)

 

 

이 이야기는 책 속에서 둘녕의 삼촌이 둘녕에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둘녕이와 이웃에 사는 남자인 산호가 이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듯 해준다. 이 이야기가 원래 있었는데 책 속에 들어간건지 혹은 작가의 순수한 상상에서 나온건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추워 말들이 얼어붙어버린다니,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얼음알갱이들이 녹는 순간 그 말이 전해지다니. 맙소사. 얼어붙어 버린 모든 말들이 녹게 되어 상대에게 전해질때는 그것이 어떤 말이든 그 타이밍이 맞질 않아 가슴이 아플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혹은 미워한다는 말도 상대에게 '녹아서' 전해졌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내 삶이 있고 내 미래가 있는데 언제고 얼음알갱이들이 녹아버리기만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잖아. 너무 늦게 전해지는 말들은 그저 너무 늦었을 뿐, 그 뿐이 아닌가. 어제인 토요일 오후, 잠시 외출을 했었는데 3월 24일이라는 시간과는 동떨어진 느낌으로, 오, 눈이 왔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눈발이 날렸다. 나는 손이 시려웠다. 이거봐, 한 겨울 뿐만 아니라 시간상 봄인 계절에도 눈이 오고 바람이 불 만큼 추운데, 얼어버린 말들이 채 녹기도 전에 더 단단히 얼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왜 추울때 굳이 그 말을 하는거야. 너무 늦어, 상황은 돌이킬 수 없어진다고. 상대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얼어버리기 전에, 그 전에 해야한다고!

 

 

 

엊그제였나, 새벽까지 여동생과 잠을 자지 않고 수다를 떨면서 텔레비젼을 봤다. 우리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봤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봤고, 『야성녀 아이비2』(응?)를 봤다. 사랑과 전쟁의 소제목은 '마녀사냥' 이었는데, 한 여자가 '부족한 것 없이 예쁘고 능력이 있어서' 마녀로 몰리는 과정을 보여줬다. 여자는 자신보다 먼저 입사한 사람보다 더 빠른 진급을 할 정도로 능력이 있고,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다. 다른 부하직원들로부터 롤모델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같은 부서의 부장의 내연녀라는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받게 되고, 그 일은 소문이 되어 회사내에 떠돌아 회사내에서는 그녀 보기를 벌레보듯 한다. 그전까지는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는데. 이에 그녀는 자신은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게 회사에 출근하기로 마음먹고 그 시선들을 참아내며 화장실에서 울고,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회사를 그만두기를 권한다. 여자에겐 이 점이 아마도 가장 못마땅했으리라. 누구보다 자신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남편이, 네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니 그런 오해를 받는것 아니냐, 는 말을 하는것. 게다가 니가 너무 잘나서 내 앞에서 나를 가로막는다, 라고 말한다. 아, 내가 여자였다면 이런 남편은 발로 뻥 까버리고 싶었을것 같다. 너 미친거 아니야? 왜 사람들에게 내 아내는 잘못한게 없는데 괜한 오해를 당한거라고 해명하지는 못할망정 네 행실이 잘못됐으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아내를 비난하는거지? 누구보다 아내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남편이? 그리고 그녀는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모두가 나를 비난할때(그것도 잘못된 소문으로!), 같이 나를 비난하는 그런 남자와, 대체 왜 결혼한걸까? 결혼해서 살면서 이런일이 있기전까지, 그 남자는 최상의 남편이었던걸까? 아마 자신이 가장 허탈한게 그부분 아닐까? 내가 사랑한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고 한 남자가 이런 상황에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아, 난 견딜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어요? 다 잊고 행복한지, 아직도 못 잊고 괴로운지 그게 알고 싶어서? 그런데 보다시피 잘 살아요. 일도 하고, 집도 있고, 가게도 있고."

"하지만 친구도 없고, 외로워 보이고, 밤이면 몽유병으로 돌아다니죠." (p.305)

 

책 속에서 둘녕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산호는 둘녕의 연인이 아니다.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가 사람에게 '연인'이라면, 그러나 그 연인에게서 언제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가장 잘 보아주는건 때로는 뜻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게 반드시 연인이 아니어도 이 지구상에 나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미 그런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찌 축복이 아닐 수 있을까. 포지션을 정하고 나면 거기에 맞는 많은 의무들을 정해버리게 된다. 넌 남편이니까, 아내이니까, 연인이니까, 내게 꼭 그래야만 해, 라고. 그래서 당연히 기대하는 것들을 상대가 내게 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상처는 너무나 크다. 그러나 그 포지션이 때로는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이렇다 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누군가가 있지, 하는 굳건한 심지 같은것. 

 

 

"가끔 생각해봤는데 그러니까 난, 이 읍에서만난 여자아이들 가운데 ‥‥‥비교적 널, 편애하는 것 같아." (p.381)

 

 

누군가가 어떠한 포지션으로 내 옆에 존재하든 , 나는 내가 비교적 편애하는 사람들이 날 편애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가 편애하는 사람이 몇 되질 않으니, 아마도 나를 편애하는 사람들도 몇 되지 않을것이다. 물론, 내가 편애한다고 그 사람도 나를 편애하리란 보장도 없다. 그들과 나사이에는 엇갈림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를 특별히 편애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내 말들이 얼어붙어 버리기 전에 그들에게 편애한다고 말해야겠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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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3-2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을 일요일에 만나다니, 좋네요 좋아~ :)
주말에 글 올리시는 건 되게 오랜만인 것 같은데 제 착각인가요?
(글은 안 읽고 덧글부터 쓰고 있네요. 어서 읽겠습니다!)

다락방 2012-03-26 18:01   좋아요 0 | URL
나는 수다쟁이님을 평일에 만나도 좋아요! 평일이든 주말이든 그게 언제든. 훗.
그러니 자주 와요!(내가 자주 오라는 말 좀 하지 않게 해주시오.)

이진 2012-03-25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얼마전에 이도우의 <사서함...>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버렸는데 아쉽게 되어버렸군요.
이도우가 나오자마자 난리(?)의 파티를 벌이시는 알라디너 분들을 보며 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기에!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다락방님의 글을 읽고서 아하, 하고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요새 책이 읽히질 않아요. 이틀전까지 <화차>를 너무 흥미롭게 읽어서 그런지
일본 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한국문학조차도 손에 잡히질 않아요. 그래서 고민중이에요.
<모방범>을 읽을까, <원더보이>를 읽을까.
그래도 <원더보이>를 읽고싶은 마음이 조금 더 강한데... 이제 야자시간을 <원더보이>로 버텨야겠군요. ㅎㅎ

다락방 2012-03-26 18:04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의 감성이라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한 남자사람은 조연인 애리에게 감정이입을 했다고 하던데, 소이진님은 공진솔에게 이입하실지 이건에게 이입하실지, 그것도 아니면 또다른 조연에게 이입하실지도 궁금하구요.

[화차] 재미있죠! 그런데 저는 [화차] 보다는 [모방범]을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라서(저한테는요), [마술은 속삭인다]같은 책은 저는 의미를 찾을수가 없더라구요. 김연수의 책은 저는 몇 권 읽고 더는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해요. 저한테는 김연수의 문장이 너무 아름답기만 해서 '아름다운 문장을 위한 아름다움'이란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거든요.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때때로 문장이 아름다워서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더라구요. 하핫 ;;

오늘 야자시간은 [원더보이] 입니까?

프레이야 2012-03-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 편애해 주세요ㅎㅎ(이건 뭐 강요? ㅎㅎ)

다락방 2012-03-26 18:01   좋아요 0 | URL
우리 서로서로 편애하도록 해요, 프레이야님! ㅎㅎㅎㅎㅎ

2012-03-26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2-03-2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로 발견한 그 분은 누구세요? 저도 즐겨찾기 해서 그분의 글을 함께 읽고 싶어요.

2012-03-2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8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9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2-03-2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다락방님을 편애하고 있습니다. ^^
그나저나, 저도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야성녀 아이비 약간 보다가 잠들었었는데 ^^

다락방 2012-03-28 13:55   좋아요 0 | URL
저도 문나잇님을 편애하고 있습니다! ㅎㅎ

아니, 우리의 문나잇님도 야성녀 아이비를 보셨단 말입니까? 전 끝까지 못봐서 다음날 되게 궁금하더라구요. 결국 그녀와 교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지요. 교수의 짝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나게 되는걸까...하는 ㅋㅋㅋㅋㅋ

기억의집 2012-03-2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분들이 사서함~ 이 책 읽으라고 많이 권하시더라구요. 서점에서 잠깐 읽어봤는데 역시 제 스탈은 아니라서 접었어요^^ 로맨스 스탈은 아무리 멋진 고전이라도 No 더라구요.

살면서 젤 싫은말이 남편은 남의편이라는 말인데,위에서 언급한 능력있는 여자의 남편이 저런다면 같이 살 이유가 있을까 싶어요. 그렇다고 남의 부부 이혼하라고 할 수도 없고..(비록 이야기일지라도)

다락방 2012-03-28 13:58   좋아요 0 | URL
사서함은 기억의집님이 흥미를 가지실만한 책이 전혀, 전혀, 저어어언혀 아닌 것 같아요. ㅎㅎ 제 남동생도 다섯장인가 읽다가 안 읽겠다며 저한테 다시 반납 ㅎㅎㅎㅎㅎ 그 책은 정말이지 말랑말랑한 이야기라서 ㅎㅎㅎㅎㅎ

이혼도 결혼도 결코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분명 무언가 서로가 양보하는 부분이 있었을테고 또 사랑한다는 감정이 충만했으니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일텐데, 저런 일에 저런 태도를 보인다면 대체 내가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회의가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도 이혼도 정말 쉬운일은 아닌 것 같아요.

버벌 2012-03-30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저도 그분 블로그가 어디인지 궁금해요. 전 주로 다락방님 블로그에서 글 잘쓰시는 분들을 알아가거든요. 어쩔땐 와 좋다 하고 글 읽고 즐찾 하니 댓글에 락방님 아디가 보이기도 하고, 그걸 보면 역시나 ㅎㅎㅎㅎㅎㅎ

2012-03-3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헤스티아 2012-09-2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잠옷을 입으렴 보고 리뷰쓰려고 클릭해서 다른사람 글 읽어보다가 페이퍼 발견했어요.
날짜 찾아서 글도 찾아서 댓글 쓰네요 ㅎㅎ
저는 사서함~ 책 읽고 바로 이 책을 읽은게 아니라서 두 책을 따로 놓고 봐서인지.. 그 책도 좋았고
이 책도 좋았어요. 만약 바로 읽었으면 너무 이 책이 어두워서 덮었을지도...
소설인데도 무려 1주일을 조금씩 조금씩 읽었네요. 이런 책 처음이예요 ㅎㅎ
읽고 덮고 생각하고 읽고 덮고 생각하고 그랬어요.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이번주가 추석이네용 추석 잘 보내세요~이 댓글이 달린지 모르실수도 있겠네요 오래전 페이퍼라서~

다락방 2012-09-26 14:11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이 달린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헤스티아님. ㅎㅎㅎ 댓글브리핑에 뜨는걸요. ㅎㅎ

저는 이 소설이 잔잔하고 여운도 주는 소설이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란걸 알겠는데요, 도무지 둘녕이가 마음에 들질 않아서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영 소설이 시들시들하더라구요. 책 내용의 문제라기 보다는 캐릭터의 어긋남, 이라고 해야할까요.

헤스티아님도 두 아이들 데리고 추석 잘 쇠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구요!
 















'제프 린제이' 의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연쇄살인범을 연쇄 살인하는' 덱스터! 그는 자신의 살인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데, 그의 양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그렇다면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즉, 다른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계속해서 빼앗는 사람을 처벌하는게 어떻겠느냐고 한 것. 그래서 덱스터는 그렇게 한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경찰에서 혈흔분석가로 일하는 그는, 연쇄살인범을 찾아 죽인다. 그가 이 책에서 죽인 남자들로 말하자면 어린이를 추행하고 살인하는 신부, 소녀들을 죽여서 매장한 학교 관리인 등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계속해서 빼앗는다는 건 결코 '착한 일' 혹은 '바람직한 일'은 될 수 없을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로 말하자면, 덱스터가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 될 것 같다. 그가 하는 일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가 하는 일에 눈 감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지지하게 되고야 마니까. 누군가는 그런식의 응징을 해줘야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기도 하니까. 나는 피켓을 들고 덱스터 지지라고 광장에 나가 시위를 하지는 않겠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채로 '잡히지 마'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캐릭터이고 응원해주고 싶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큼 재미있거나 하지는 않다. 어릴적의 트라우마로 생긴 살인 본능, 그것으로 인해 연쇄살인범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 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 뭐랄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니까 툭하면 이런식이다. 왜그러냐고 물으면 이유는 없지만 나는 그냥 안다, 이런 식. 본능적으로 그런 피가 흐른다면 글쎄, 그럴 수 있기도 하려나 싶으면서 그래도 자꾸만 본능을 갖다 들이대는 건 무책임한 소설 진행이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흥미로운 캐릭터이니만큼 더 촘촘하고 빈틈없게 쓰여졌다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내내 남는다. 덱스터는 마음에 드는데 책은 별로야, 라니. 좀 아깝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책을 읽다가 잠을 잤는데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철철. 새빨간 피가 손에서도 뚝뚝 떨어졌다. 맙소사. 잠들기 전에는 피 튀기는 소설을 읽지 말아야겠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라니! 망설일 필요가 없지. 아주 얇은 분량이다. 두 편의 글이 실려있는데 한 편은 추리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챈들러의 에세이고 다른 한 편은 짧은 추리소설이다. 


역시나 챈들러답게 에세이도 아주 속시원히 썼다. 만약 챈들러가 쓰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는 딱히 흥미있는 내용은 아니었는데, 챈들러라니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게다가 역시, 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건, 그가 생각하는 주인공 탐정의 캐릭터가 지독하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아, 필립 말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구나!


예술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는 구원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순수한 비극일 수도 있고, 동정과 아이러니일 수도 있고, 강한 남자의 거친 웃음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비열한 거리에서 홀로 고고하게 비열하지도 때묻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남자는 떠나야 한다. 리얼리즘 속의 탐정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히어로이다. 그는 모든 것이다. 그는 완전한 남자여야 하고, 평균적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평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그는 진정한 남자다. 그것은 몸에 배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고, 필연적이지만 남들 앞에서 스스로 떠벌리지는 않는다.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는 최고의 남자여야 하며 다른 세상에서도 잘 통하는 남자다. 그의 사생활에 필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그는 내시도 아니며 호색가도 아니다. 조직 보스의 여자를 유혹할 수는 있지만 처녀를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면에서 진정한 남자라면 다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비교적 가난한 축에 드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탐정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개성은 그의 직업에 필수적이다. 그는 다른 이의 돈을 부정하게 갈취하지 않을 것이고, 정당하고 계획된 복수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 사람들과 비슷한 언어로 말할 것이다-거친 재치, 그로테스크에 대한 감각, 위선에 대한 혐오, 비열함에 대한 경멸을 표할 것이다. (pp.34-35)



아. 짱멋져. 챈들러가 묘사하는 이 남자는 리얼리즘 속의 탐정으로서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어느 소설에서의 캐릭터로도 매력적이며 훌륭하다. 내가 바라는 남자는 이런 남자다!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올 것 같다. 이 책의 에세이 「심플 아트 오브 머더」는 바로 위의 내용을 담고 있고, 바로 뒤에 실린 소설은 「스페니시 블러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엔 좀 실망했다. 물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지키고자 했던것을 자신도 지켜주고자 했던 남자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마 다른 선택은 없었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한들,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저질렀다고 누명을 씌운건 좀 찝찝하다. 그는 '어차피 그들은 그사람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고 합리화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죄를 짊어진 채 죽게 놔두는 건 비열하지 않나? 어차피 지킬 수 있는게 단 한 쪽 뿐이었다면, 둘 다 지킬 수 없는거였다면, 나라도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 읽고나니 흐음, 찜찜해,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자니 또 꿈을 꿨는데(나는 꿈의 여신!), 꿈에서 나는 회사동료 e 양과 함께 마카오에 갔다. 포르투갈 음식점을 찾아 프란세시냐를 시켜 먹었는데, 뭔가 짝퉁스러워서 저녁엔 다른 식당으로 가서 먹어보자는 말을 e 양과 나누며 식당을 나서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e 양이 납치된거다! 오!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고 기웃거리다가 잠을 깼다...월요일을 나는 그런 상태로 맞고야 말았다.



이틀내내 무서운 꿈을 꾸고나니 앞으로는 자기전에 절대로 무서운 책을 읽지말자는 결심을 하게됐다. 다음부터는 자기전에 예쁘고 밝고 아름답고 야한 책만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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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3-1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덱스터 드라마는 최고 ㅋㅋㅋㅋ 강추까지는 몰겠지만 전 하루만에 시즌 1 끝낸듯해여 ㅎㅎ

다락방 2012-03-19 15:37   좋아요 0 | URL
2년전인가 3년전에 apouge 님이 쓴 페이퍼 있더라구요. 책보다 드라마가 더 나은 케이스라고 쓰셨더라구요. 이 작품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훨씬 좋은가봐요. 전 그래봤자 안보겠지만 -0-

프레이야 2012-03-1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한 책을 읽고 자겠다는 신중한 다락방님!!! ㅎㅎ

다락방 2012-03-19 15:37   좋아요 0 | URL
제 꿈은 소중하니깐요! ㅎㅎ

새초롬너구리 2012-03-1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한 종편프로그램에서 꿈에 관한 실험을 했는데요. 잔인한 것을 보고 잔 그룹과 뽀사한 것을 보고 잔 그룹. 근데 결과는...두 그룹 모두 유의적인 사실은 없고, 대신 카메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커 관련된 꿈을 꾸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자기전 본 것보다는 뭔가 강력한 자극을 받으면 되실 거 같아요 (무서운 책을 읽고싶은 경우엔). 예를 들면...(어, 댓글엔 사진붙이기 못하나요?) 이런..아주 강렬한 자극을 선사해드릴라고 했는데...=3=3=3


다락방 2012-03-19 15:38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 댓글과 비슷한 내용을 신문에서 읽은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네요. 유혈이 낭자한 책을 읽고 자더라도 더 강한 자극앞에 모두 무용지물이다, 이런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잔인하고 무서운 책을 읽되, 잠들기 전에는 제 나름대로 샤라랑한 상상을 해야겠네요. 샤라랑한 꿈을 위해서는. ㅎㅎㅎㅎㅎ

카스피 2012-03-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덱스터를 책과 미드로 봤는데 잘 매치가 안되는 편이라 그냥 미드만 봅니다.아마 미국에선 4권이상 출간되었을 텐데 국내에는 4권만 번역된것 같더군요^^

다락방 2012-03-22 18:24   좋아요 0 | URL
앗 지금 검색해보니 네 권이나 번역되어 있군요. 저는 두 권만 번역된 줄 알았어요. 두번째 권 가지고 있으니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2012-03-21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3-22 18:24   좋아요 0 | URL
본인이 그렇게 될지 몰랐습니까? ㅎㅎ

blanca 2012-03-2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이 기분이 너무 이해되는 게 요새 <모방범> 읽고 현장21 실종 여인에 대한 방송 보고 밤에 또 읽고 그러니 무서워서 죽겠어요--;; 오죽하면 2권 안 읽고 처분해야 하는 생각까지.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자기 전엔 정말 너무너무 행복해지는 그런 책을 이제 읽어야겠다고(그런 책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요) 결심했어요. 덱스터라는 캐릭터는 지금 제가 읽는 책에 꼭 필요한 캐릭터네요. 그런데 이런 류의 책의 주인공들이 다들 본능, 직감이 너무 강렬해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락방 2012-03-22 18:27   좋아요 0 | URL
본능이라서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본능이라서 정말 그런지 의심이 되기도 해요. 그건 니 본능이 의심스러워, 가 아니라 정말 본능만으로 그 모든게 가능해? 하는것 말이죠. [모방범]은 저도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죠. 회사의 y 씨에게 1권 빌려주고 휴가갔더니 휴가 끝나자마자 저 돌아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렸다고 하더라구요. 하하. 제가 아니라 제가 빌려줄 모방범 2,3 권을...orz

저는요 블랑카님, 요즘엔 조카랑 놀다 자요. 책은 안읽고. 하핫

비로그인 2012-03-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의 여신 다락방님, 저는 어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꿈을 꿨답니다.
하루종일 심심하고 또 답답했는데 그런 꿈을 꾸니까 좀 신기했어요.
노란 별 하얀 별~ 하얀 별은 아파트창에 비치는 형광등빛~ 가짜 별~
꿈속에서 시를 구상한 거 같기도 하고 ㅎㅎ

덱스터 얘기하니까 저도 요즘 보고있는 미드가 떠오르네요.
<원스 어폰 어 타임>이라고, 스토리브룩 마을 사람들이 사실은
동화 속의 주인공들이었는데 그 사실을 잊은 채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녀도 있답니다, 시장이에요 마녀가!

전 오늘 너무 늦게 자서 꿈도 안 꿀 것 같네요. 그럼 좋은 주말 보내세요 :)

다락방 2012-03-25 23:16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은 좋은 주말 보냈나요? 전 미친듯이 먹고 자고 하면서 주말다운 주말을 보냈어요. 이제 또월요일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오네요 ㅜㅜ
꿈은 정말 안꿨어요? 나는 오늘 꿈꾸고 싶어요. 기억나는 아름다운 꿈을 꿨으면 좋겠어요. 히히. 인피니트가 나와도 쫌 좋을것 같고 ..... 훗..
잘자요, 수다쟁이님!

기억의집 2012-03-2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올린 날에 읽었는데, 그 때 덧글 안 달길 잘 했어요. 제가 그랬잖아요. 사서 읽기엔 좀 2% 부족하다고.

요즘 자기 전에 흑백 읽었는데 완전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자다가 깨서 화장실에도 못 가겠다는. 밤의 어둠이 그렇게 섬뜩하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는데, 흑백 읽고 어둠이 무서워요. 정말 잠잘 땐 행복한 책을 읽던가 해야겠어요.

다락방 2012-03-28 13:59   좋아요 0 | URL
아, 흑백은 어둠에 관한 내용인가요? 그래서 흑백인건가요? 전 일전에 [오멘] 읽다가도 무서워서 미칠뻔했고, 스티븐 킹 단편집 읽으면서는 무서워서 내내 심장이 뛰었어요. 아휴..

덱스터는 소설이 너무 뭐라고 해야하나 .. 참..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툭하면 본능적으로 안다, 이래버리니 뭐 어쩌라는 건가 싶어요. 빨리 읽히기도 하고, 심정적으로 덱스터에게 동의는 하는데, 책은 좀 아쉽더라구요.
 
인피니트 - 정규 1집 스페셜 리패키지 Paradise
인피니트 (Infinite) 노래 / 울림 엔터테인먼트(Woollim)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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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중고샵에 팔 책이 없어서 시디를 팔기 시작했다. 아, 시디를 사주는 중고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체 예전에 내가 듣던, 그러나 더이상 듣지 않게 된 시디를 팔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가진 여덟장의 '신화'의 시디를 팔지는 못했다. 아니, 팔지 않았다. 더이상 듣지 않을게 거의 확실하지만, 그 시디를 파는 것은 어쩐지 아쉬워서. 그들의 음악이 아쉬운게 아니라, 그 음악을 듣던 내 젊은 날의 추억을 팔아버리는 것 같아서. 언제고 쉰 살이 됐을때 시디진열장을 둘러보다가, 아, 내가 이십대에 이 음악들과 더불어 살았는데, 이때는 이 음악이 내게 큰 힘이었어, 하게 될 것 같았으며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노래방에 가서 그 어린날, 얼마나 [해결사]를 불러댔던가! 내 주변의 모두가 H.O.T 에 열광하고 있을 때, 나는 늘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신화의 노래를 따라불렀던 것이다. 시디를 사는 일은 그래서 단순히 그 음악을 사는게 아니라 그 음악을 듣던 한 시절을 보관하는 일인 것이다.

 

신화가 마지막이었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아이돌의 시디를 사지 않게 되었다. 내 삶의 백뮤직에 아이돌은 없었다. 굳이 아이돌이 껴들 일도 없었다. 세상에 음악은 넘치듯 많았고, 그 안에는 내가 들으며 좋아할 만한 음악이 당연히 무수히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요즘의 내게 인피니트의 음악은 힘이었고 위로였다. 나는 '검정치마' 에게서도 '노 리플라이'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그냥 내 마음대로 닥치는대로 비교) 인피니트로부터 받았다. 오! 어젯밤엔 술취해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인피니트의 영상을 찾아 보고 들으며, 아, 스마트폰의 최대 장점은 인피니트의 영상을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고 기계의 발달에 건배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니 망설이던 인피니트의 시디를 사는일이 내게는 필요했다. 더이상은 뒤로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근두근, 아이돌의 시디를 주문해놓고 나는 설레였다. 그런데, 배송되어 온 박스가 크다. 으응? 왜 시디하나 책 한 권을 샀을 뿐인데 이렇게 넓적한 박스에 오지? 그리고 상자를 풀자 거기에선 보통의 시디보다 큰 박스가 나왔다. 오, 이게 뭐야! 그 박스를 풀었더니 시디 케이스 대신 얇은 책자가 한 권 나온다.

 

 

 

 

 

(크기 비교를 위해 실예 네가드의 시디를 얹어 보았다.) 보통의 시디케이스보다 훌쩍 큰 저 책자는 대체 무엇인가, 화보집인가 가사집인가, 시디는 대체 어디에 들어있는가, 하고 열어보니, 맨 뒷장의 책날개에 시디가 꽂혀있다. 케이스도 없이! 케이스도 없이!!!

 

 

 

 

보이는가. 오른쪽에 저 '꽂혀있는' 시디가! 아...얘네들이 장난하나. 시디를 이렇게 종이 사이에 끼워주면 나더러 보관을 어떻게 하란말이야! 나는 화가났다. 예쁜 일흔 살의 할머니가 되어서 시디진열장 앞에 서서 시디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중에 하나를 빼어들고, 아, 나의 삼십 대 중반, 그 우울의 끝에 있을 때 그 때 이 아이들의 시디가 내게는 위로였지, 그땐 그랬어, 라고 되뇌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커가지고는 다른 시디들과 함께 꽂을수가 없잖아! 대체 종이에 꽂힌 이 시디를 어떻게 보관하란 말이야! 아..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책자를 넘겨보니 이것은 가사집인 동시에 화보집이다.

 

 

 

 

 

 

 

 

 

내가 이들의 영상을 즐겨본다한들, 이들의 사진을 넘겨보고 싶은 마음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 아...화나...게다가 박스 안에는 접혀진 종이도 한 장 들어있다. 나는 이건 무엇? 하고 펼쳐보았다. 거기서는 대빵 큰 포스터가 나왔다.

 

 

 

왼쪽 아래에 실예 네가드의 시디 케이스와 이들의 화보집이 보이는가. 포스터는 이렇듯 크다. 나는 대부분의 시디에 딸려오는 포스터를 심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포스터를 방에다 붙여놓고 좋아하고 만족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게 오면 그 포스터들은 재활용으로 분리수거 될 뿐, 종이 낭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시디구매 이벤트로 포스터를 주는 것은 제발 선택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만족이고 행복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나는 아니란 말이다, 쫌! 아니나 다를까, 이 큰 종이는 재활용으로 분리수거 되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별 두개짜리 리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엊그제 읽은 육아서에서 그랬잖은가. 한 시간만 하루만 참아보라고. 나는 충실하게 나의 화를 다스렸고, 그들의 시디를 내 방 안의 미니 컴포넌트에 넣어 재생시켰다.

 

오오, 신났다. 역시 좋았다. 내꺼하자 도 좋고 패러다이스는 보석같다. 패러다이스는 힘이 넘친다. 물론 너 힘든거 보기 싫으니 이젠 그만 내꺼하자 라고 하는 그들의 가사는 유치하기 짝이없지만 그래도 일곱명의 남자들의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들으니 설거지 하는데 덜 짜증난다. 거실과 부엌을 걸레질하면서 듣는 패러다이스는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한다. 아, 좋아. 니가 있어야만 여기가 패러다이스~ 하는데 진짜 미치게 좋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나 혼자만 있는 집에서 이들의 시디를 크게 틀어놓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퍽 만족스럽다. 그 두곡 말고도 그들의 노래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뜻 모를 노래들이 아니다. 유치하지만 최소한 알아들을 수는 있다. 심지어 패러다이스의 가사에는 깊게 감명받기도 하니까. 오후에 sbs 인기가요를 보는데 다른 아이돌들의 가사를 하나도 알아먹을수가 없는거다. 영어 가사만 계속해서 반복해서 읊어대니 그들이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는거다. 그러나 인피니트의 노래는 알아들을 수가 있더란 말이지. 게다가 히든트랙은 예상외로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든다. 그들의 중얼거림은 오글거려서 으윽, 이러지마, 소녀팬들은 이런걸 좋아하는거니, 싶었지만 오, 그런데 중얼거림 뒤로 나오는 노래는 괜찮네? 상큼해. 너희들, 노래도 쫌 하는구나!

 

 

그래서 이 시디의 별점은 다시 상승한다. 시디는 역시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하니까. 이 시디의 음악들은 누가 뭐라해도 나에게는 지금 힘이고 위로니까. 그리고 가만히 다시 살펴보니 이 시디는 내가 살 때도 분명히 옆에 표시되어 있었다. special repackage 라고. 그러니까 이건, 이런 사이즈로, 이런 화보로 이 시디를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을 타켓으로 만든 시디렸다. 그들이 이 앨범을 만들 때 삼십 대 중반의 어느 이름 모를 한 여성을 타겟으로 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니 내 불만은 이들의 시디가 아니라 이 사회로 향해야.....는 아니고...........아, 내 불만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하나. 어쨌든 내가 그들-인피니트와, 인피니트의 앨범을 제작하는 모든 관계자들-의 타겟이 아니었음은 분명할테지. 그러니 이런걸로 시디의 점수를 깎는 일은 하지 않는쪽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새로이 별을 준다. 뭐, 별이 크게 소중한 것 같진 않지만. 

 

케이스는 영 마음에 들질 않지만(화보도 필요없고!), 이들의 시디를 중고샵에 팔지는 않겠다. 먼훗날 돌이켜보면 지금의 이 시디에 대한 감상도 웃으며 떠올리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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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1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다락방님을 볼때마다 양미경이 주연을 맡았던 '주부 김광자의 제 3활동'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양미경이 주부로 나오는데 딸은 사춘기라 자신에게 늘 까칠하고, 남편도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여느 주부처럼 외롭게 살아가다가 한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서는 힘을 얻게 되었어요! 이분도 아이돌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들으며 삶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풀고, 다락방님도 그렇겠지요!

비로그인 2012-03-18 21:49   좋아요 0 | URL
오.. 그런 드라마가 있었나요? 찾아보고 싶은 충동이!!

이진 2012-03-19 06:24   좋아요 0 | URL
아마 특집극으로 꾸며진 1부작 일거랍니다!! 찾아서 보세요. 가슴 따뜻해지는 내용이랍니다...

다락방 2012-03-19 15:3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는 아이돌을 좋아하기도 해요. 인피니트 일곱명이 양복입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거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면서................................. 이런 아이돌은 여태껏 없었다! 하는 마음이 되어가지고 가슴에 봄이 찾아와요. ㅎㅎㅎㅎㅎ

LAYLA 2012-03-18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년에 주황겅쥬☆ 셨어요?ㅋㅋㅋㅋ

다락방 2012-03-19 15:31   좋아요 0 | URL
저 주황겅쥬 검색해봤어요. ㅋㅋㅋㅋㅋ 아뇨, 라일라님, 저는 팬클럽과는 거리가 먼 여자사람. ㅋㅋㅋㅋㅋ 아 검색해보고 완전 빵터졌네요! ㅎㅎㅎㅎ

dreamout 2012-03-1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가리키는 바가 아주 의미심장하군요. ㅋㅋ

다락방 2012-03-19 15:31   좋아요 0 | URL
저는 타겟이 되고 싶은걸까요? ( '')

2012-03-19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2-03-2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사셨군요~ 우우`~ 사셨군요~~~ ㅋㅋ 갖고싶어. ㅠㅠ

다락방 2012-03-22 14:45   좋아요 0 | URL
저는 인피니트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 ㅎㅎㅎㅎㅎ

2012-03-28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8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욕 이야기 - 고담 핸드북
소피 칼.폴 오스터 지음, 심은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본문보다 옮긴이의 말이 더 많은 말을 하는구나. 나로서는 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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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3-1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 이번에는 별로였나봐요? (저는 좋았던 적도 딱히 없지만!)
책을 읽고 나면 꼭 뒤의 해설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요.
짧은 옮긴이의 말이면 몰라도...

다락방 2012-03-18 18:51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저도 폴 오스터가 딱히 좋았던 적은 없어요. [빵굽는 타자기]도 간신히 읽었고 [브룩클린 풍경] 인가..제목이 잘 기억안나는데 그것도 별로. 그러니 폴 오스터 한테는 기대할게 별로 없긴 했어요. 저는 가급적 옮긴이의 말이나 해설을 읽는 편인데 엄청나게 재미 없으면 패쓰하기도 해요. ㅎㅎ

moonnight 2012-03-16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옮긴이의 말이 없는 책을 최고로 치긴 하지만-_-; 이 책은 옮긴이의 말이 중요했군요. 다시 말하면 본문이 너무 별로였던 거겠지요. ;; 저는 폴 오스터 책을 왜 그런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요!!!! 좋다는 말에 사놓긴 했는데 쌓아놓은 책을 보면 한숨만 나와요. 왜 그렇게 손이 안 가는지. 첫 페이지 읽다가 던져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울먹울먹 ㅠ_ㅠ)

다락방 2012-03-18 18:52   좋아요 0 | URL
본문이 되게 멍청해요. 그러니까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하는거야, 랄까. 저도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끝까지 읽느라 엄청나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문나잇님. 그 뒤로 폴 오스터의 책은 더이상 읽질 않아요. 이 책은 몇년전에 보고 이번에 중고샵에 팔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보게됐는데 참..사람들...이상한걸로 책 낸다 싶더라구요. -_-

문나잇님, 손이 안가면 읽지 말아요. 폴 오스터 안읽어도 진짜 괜찮아요, 문나잇님! 저도 폴 오스터 안 읽는데 완전 괜찮은 여자사람이잖아요! ㅎㅎㅎㅎㅎ

네꼬 2012-03-1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나도 이 책은 싫었는데 (다른 번역본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오아.. 난 나만 그런 줄 알았지!

다락방 2012-03-18 18:53   좋아요 0 | URL
심지어 다른 번역본으로 존재하기도 해요? 이 책 멍청해요 -_- 공중전화 앞의 사람들이 좋아서 그나마 별 두개 준거임.

버벌 2012-03-19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폴 오스터. 몇년전 그에게 빠져있을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의 거의 모든책을 가져보리라 구입을 했었는데. 책이 좋았다고는 말 못....... 그때는 좋았어요. 지금은 더이상 폴 오스터의 책은 구입하지 않지만. 가지고 있는 책은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달의궁전" 은 좋았는데 그래도.

다락방 2012-03-19 15:35   좋아요 0 | URL
저는 다행스럽게도(?) 폴 오스터에게 빠진 적이 없어요. 뭐, 빠질만큼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건 아니지만, 두 권이나 읽었는데 안빠졌으니 더 읽을 생각이 없기도 하구요. 하핫.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의 '트윗 육아'
서천석 지음 / BBbooks(서울문화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많은 부모들이 육아서적을 고를때는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혹은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하는 마음.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지만,  한 번쯤 육아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조카에게 좋은 이모가 되고 싶은 바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문서나 교양서의 역할을 기대한 것이 더 크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으로 남을것인가 하는 의문을 책을 펼쳐보기 전에 가졌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다. 끝까지 읽었고, 잘 읽었으며, 나쁘지 않은 책으로 남을 것이다, 하는. 


뻔하고 착한 책이면 어쩌나 했는데, 이 책은 뻔하고 착하지만 가끔 기대 이상의 생각들을 보여준다. 이 책이 내내 강조하는 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된다는 가르침 보다는, 부모 자신이 일단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아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시종일관 옆에서 지켜볼 것이고, 그런 나와 함께 살면 아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것이고, 저절로 나는 좋은 부모가 되어 있을거라는 것. '부모'로서 잘하기 이전에 하나의 괜찮은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맞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육아서에서는 어떤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이런 얘기를 해주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아이 키우기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건 인생 그 자체지요. 아이는 가장 솔직한 내 모습을 봅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내 날것의 모습이 다 드러나지요. 이것이 뼈아픕니다. 숨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워 육아가 어려운 겁니다. (p.37)

사실 몇 장 넘기지도 않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절반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데서 옵니다. 걱정에 에너지를 모두 써서 아이와의 소중한 현재를 즐기지 못합니다. (p.11)

지극히 당연한 얘기고 모르는 바도 아니었지만, 새삼 위로가 됐다. 이런 고민이 대부분의 많은 어른들에게 찾아오는 고민이구나, 이런 불안을 다른 사람들도 갖고 있어, 하는데서 오는 위로. 그런데도 아이를 낳고 또 기른다니, 부모란 얼마나 대단한가. 

아이는 자기가 왜 짜증이 나는지 모릅니다. 부모는 "왜 짜증을 내는데?"라고 묻지요. 아이는 모르는데 자꾸 물으니 더 짜증을 냅니다. 이때 한 대 때리면 밖으로 내는 짜증은 멈추죠. 대신 아이는 이제 자기 내면을 찔러 상처를 냅니다. 부드럽게 넘기세요.(p.39)

'부드럽게 넘기세요'가 좋은 대응인줄은 알겠으나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걸 모두가 알고있지 않은가. 그래서 '부드럽게 넘기세요'를 보는데 좀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뭐야, 이걸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잖아, 했기 때문에. 이 책은 과연 얼마나 실용적일 수 있을것인가. 그런데 나는 이 단락을 읽으면서 갑자기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나 역시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이유 없는 짜증을 부리곤 했는데, 그 때 나를 보는 우리 엄마는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을까, 하고. 바깥에 나갔다 들어와서는 엄마에게 틱틱거리고 짜증이나 내고 있으니, 엄마는 영문을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왜그러냐 물으면 딸이란 게 고작 하는거라곤 이유를 말해주기 보다는 더 큰 신경질이니. 짜증에 휩싸인 딸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는 그 숱한 세월들을 어떻게 버티고 견뎠을까. 우리 엄마는 육아서를 읽지도 않았는데. 트윗을 하지도 않았는데. 문화센터에 다니지도 않았는데.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이라든가, 아이와 잘 대화하는 법이라든가 하는등의 교육을 받은것도 아닌데, 우리 엄마는 나를 또 내 동생들을 여기까지 어떻게 키워온걸까. 엄마의 속에는 몇개의 상처가 곪아있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좋은 부모가 된다거나,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은 널리고 널렸는데 왜 좋은 자식이 되는 방법에 대한 책은 없는걸까, 하는. 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책을 읽고 자식들은 부모를 위해 책을 읽지 않을까.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부모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사실에 대해 일깨워준다. 

'너는 특별하단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이 멋진 문장에 단어 하나를 추가하세요.
'너는 '나에겐' 특별하단다.'
여섯 살이면 아이에게도 가족을 벗어난 사회가 생깁니다. 사회 속에서 살기 위해선 현실을 알아야 하죠. 특별한 대우를 받기 원하는 '나 잘난' 아이는 환영받지 못하니까요. 이제 겸손도 배울 때입니다. (p.13)

이 책은 육아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서나 심리서적에 가까운 듯하다. 책장에 꽂아두고 간혹 꺼내어 보면 짧은 글들 만으로 조용히 생각을 해보거나 반성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니까. 그러나 이 책의 모든 말들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좋고 옳은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아이에게 올바르게 적용될만한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때로 이 책은 단순히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러니까 어른들을 위해서도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참는 힘은 중요합니다. 1분을 참으면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1시간을 참으면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참으면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조절은 우리에게 시간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이게 지혜를 줍니다. (p.224)


물론 참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있는 바지만,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바로 흥분을 하고 반응하는 것과 시간을 좀 둔 다음에 반응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다. 후회는 항상 '바로 흥분하고 반응했을 때' 찾아왔다. 화가 나고 가슴이 뛰고 신경질이 났을때, 그때는 내가 너무 그 문제에 깊숙하게 빠져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 문제에서 빠져나와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의 나의 대응은 조금 더 현명할 수 있었다. 



 

 

비교는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부모가 비교 안 해도 아이 스스로 합니다. (p.46)

 

 

그렇다. 비교는 누가 나를 향해 하고 있지 않아도 나 스스로 하고 있다. 이미 충분히 스스로 열등감을 혹은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그것을 거들어줄 필요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너무나도 당연한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한채로 지내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는 건, 그래서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너 또 잊고 있었지, 잊지마, 하는 뜻에서.


 

나는 이 책을 내 여동생에게 건넬것이다. '이 책은 니가 아이를 키우는데 좋은 지침이 될거야' 의 의미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다가 지치고 힘들때 이 책을 꺼내어보면 때로는 도움이 될거야'라는 의미로.

 

별을 셋을 줄까 넷을 줄까 한참을 망설였다. 착하고 뻔해서 별 셋 이었다가, 그래도 그보다 더 나아가니까 넷이었다가, 저자의 유머감각이 영 나한테 통하지를 않고 그렇다고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통할 것 같지는 않아서 다시 셋이었다가, 이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것이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넷으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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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8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3-1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부모가 되도록 이끄는 책이란,
어른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잊었기 때문에
스스로 되돌아보려고 고른다고 느껴요.

아이들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오롯이 선 사람이었으니
굳이 '좋은 아이'가 될 까닭이 없어요.

어른이 된 사람은 똑같이 아이였던 때가 있지만,
'오롯이 서던 한 사람'인 줄을 잊었기에
'좋은 부모'라는 틀을 새로 세워서 자꾸 좇아가는 셈이에요.

다락방 2012-03-18 18:59   좋아요 0 | URL
된장님 말씀처럼 저자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아니었으니 완벽하고 좋은 아이이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죠. 아이가 잘 자라도록 부모는 도와야 한다고. 된장님의 댓글을 읽노라니, 된장님은 이 육아서에서 말하는 바를 이미 실천하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moonnight 2012-03-1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그 자체로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현재를 즐길 수 있는 것.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예전에 빌 브라이슨 책에서, 작가가 글을 바쁘게 쓰고 있는데 일곱살인가 여섯살인가 하는 막내아들이 다가와서 함께 캐치볼을 하자고 했을 때,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하자. 고 말하려다가 이 아이의 일곱살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마음이 괜스레 찡해지더라고요. 맞아요. 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끔은 잊게 되어요. ㅠ_ㅠ)

이모로서 타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리뷰예요.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12-03-18 19:01   좋아요 0 | URL
갑자기 빌 브라이슨의 책을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나잇님. 저는 빌 브라이슨의 책은 두 권 밖에 읽어보질 않아서 앞으로 읽어볼 그의 책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호주 여행기였나, 그것도 장바구니에 내내 들어있는데 결제는 안하고 있네요. ㅎㅎㅎㅎ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상처없이 트라우마 없이 자랐으면 좋겠어요. 사랑과 기쁨과 행복만 느끼면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자라되,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문나잇님, 우리 좋은 이모, 고모가 되어요! 흑흑

2012-03-17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8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7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8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3-1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아서를 읽어보면 그게 아이 키우는 책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다락방 2012-03-18 19:04   좋아요 0 | URL
다른 육아서를 읽어도 그런 느낌이 드는가보군요, 나인님. 저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아니지만,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