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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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이렇듯 경쾌하고 다정하게 전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좀더 무겁게 해주는 걸 선호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줘야 세상이 균형을 이루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곳에서 낡은 나사에 매달려 있던 것들이 결국에는 내려앉는 그런 소리였다.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도 있을 듯한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p.247)




경쾌하다고, 다정하다고, 가볍다고 말해놓고서는 인용문은 이런 것만 가져왔네 ㅠㅠ




조금만 더 있어, 말하고 싶었지만 은영은 칙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은영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는데 잘되지 않았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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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8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상실감이 너무도 혹독해 그 고통에 허리를 부여잡을 때가 있다. 때로는 마치 해돋이나 창문 색깔처럼 상실감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상이 물려준 세상이 갑자기 끝장났을 때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종말과 맞서야 했다. 내게도 상징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세탁이었다. 리넨 천을 빠노라면 어딘가 차분하고 일상적인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행군 중에는 당연히 깨끗한 리넨을 볼 수가 없었다. 방식이 색다르긴 해도 줄푸가에게는 그 대상이 옛날 차였을 뿐이다. (p.142)


















e 의 고양이가 죽었다. e 는 어제 장례를 치러주었노라 내게 말했다. 많이 아팠고 병원에서는 오늘 밤이 고비다, 라고 했는데 새벽에 별이 되었다고 했다. e는 고양이 두 마리와 오래 함께 지냈고, 그 중에 한 마리가 어제 작별을 고한거다. 나는 그 마음이 어떨지, 그 상실의 고통에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몰라 토닥토닥만 해주다가 물끄러미, 내 책상위의 꽃을 보았다. 지난주부터 책상위에 꽃을 두기 시작했는데, 이걸 들여다보는 게 좋더라. 내가 꽃을 사고 싶었던것처럼, 예쁜 꽃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처럼, 어쩌면 e 에게도 꽃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e 양에게 꽃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며칠전 읽은 먼 북쪽의 저 문구를 메세지로 넣었다. 



누군가를 향한 상실감이 너무도 혹독해 그 고통에 허리를 부여잡을 때가 있다.



는 문장이 책을 읽다가 콱 박혔더랬다. e 에게도 분명 지금 상실감이 너무 혹독하게 느껴지리라. 고양이와 작별한 친구에게 위로의 꽃을 보내고 싶다 했더니, 이렇게 고요하고 우아한 꽃바구니를 하이드님이 만들어주셨다. 






저기 메모에 꽂힌 나비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고양이 두 마리중 혼자 남게된 고양이의 이름이 '나비'인데, 어떻게 저렇게 나비가 저 메모를 전할까. 마치 살아있는 e의 고양이 나비가 제 집사를 위로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마음이 담기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나비 찝게라니 말이다.





꽃바구니를 받고 e 는 눈물이 또 난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고양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는 길, 이 고양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는 게 고양이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오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 자신에게 정말 위로가 됐다고 했다. e 양은 내게 말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보냈을텐데,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면서 달라졌다고. 



차장님은 슬픔도 기쁨도 솔직하게 다 말씀해주시는데 그거 보면서 저도 배웠어요, 차장님이 제게 그런 말씀들을 해주실 때 저 좋았거든요, 아직 멀었지만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다정한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요즘에는 이렇게 다정한 말을 들으면 참을 수가 없어진다. 그냥 바로 눈물이 난다. 이것도 노화의 한 증상인가? 피부가 거칠어지고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지고 생리양이 줄어드는 것만이 노화의 증상인줄 알았는데, 눈물이 많아지기도 하는건가 보다. 이게 다 내가 늙어가기 때문인가보다. 다정한 말에 눈물이라니.



나는 이렇게 매일 늙어가고 있지만, 잘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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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6-04-0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사람 다락방님.

다락방 2016-04-08 08:1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ㅠㅠ

꽃핑키 2016-04-0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ㅠ 폭풍공감해요 다락방님ㅠ 저도 늙어서 그런지 툭하면 눈물바람ㅠㅠ 어쩔땐 부끄러워 숨어서 울게돼요ㅋㅋ
아. 따뜻한 페이퍼 넘 좋아요♡
꽃사진 딱 봤을때부터 누구 솜씨인지! 한눈에 알아봤어요! 저런 꽃과 메시지라묜, 아무리 커다란 슬픔도 거침없이 꿋꿋하게 잘 헤쳐나갈 힘 생길거 같아요♡

다락방 2016-04-08 08:20   좋아요 0 | URL
흑흑 꽃핑키님. 꽃핑키님도 눈물이 많아요? 전 예전에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왜이렇게 되어버린건지... ㅠㅠ 이제는 서러운 말이 아니라 다정한 말에도 울어요. 확실히 비정상인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어려움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또 저마다의 상실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고 애정을 주면서 버텨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핑키님, 숨어서 울지 말고 드러내서 울어요, 그리고 손 잡아달라고, 위로해달라고 말해요. 덜 아플 수 있게요.

아무개 2016-04-0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래서 형씨를 애정해 마지않소!

다락방 2016-04-08 08:20   좋아요 0 | URL
그 애정 변치 마시오. ㅠㅠ

보슬비 2016-04-0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정한말, 다정한눈빛.다정한몸짓에 눈물이 나고 위로를 얻어요.

다락방 2016-04-08 10:08   좋아요 0 | URL
어제는 문득 다정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의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노력해야 겨우 다정해질 수가 있어요. 다정하다는 게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만큼, 다정한 말과 몸짓에 위로를 얻고 또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레와 2016-04-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내 친구인게 참 고맙소..


다락방 2016-04-08 11:49   좋아요 0 | URL
무슨소리. 나의 기쁨이오!
 
















영화 『루시아』에서 여자는 남자와 이별을 한 후에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간다. 그녀는 '빠에야'를 달라고 식당 직원에게 말하는데, 직원은 그녀에게 '빠에야는 2인부터 주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애인하고 헤어진 것도 서러운데 먹고 싶은 건 둘이 와야 먹을 수 있다니. 너무해. 그녀는 운다. 빠에야를 먹을 수 없어 운다. 애인하고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그가 과거의 여자를 잊지 못했다는 걸 그녀가 몰랐다면, 그녀와 그가 여전히 다정한 애인이라면, 그렇다면 둘이서 사이좋게 빠에야를 먹을 수 있을텐데. 애인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다거나 섹스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로만 끝나지가 않는다. 애인이 없다는 건,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루시아에게 빠에야를 1인분만 해서 팔란 말이다, 식당들아!!!!!



(아..근데 나 진짜 글 잘 쓰는 것 같다. 뭐랄까. 키보드에 손만 가져다대면 생각지도 못했던 글들이 막 튀어나와.. 나는 글 쓰는 천재.... 내 글은 손이 쓴다........)



'파스칼 키냐르'의 『신비한 결속』도입부 에서 '클레르'는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서 고향을 찾다가 배가 고파 혼자 식당에 들어간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탐탁지 않아 한다. 그 장면을 읽는데 영화 『루시아』 생각이 나더라. 여자 혼자 식당을 간다→ 생각대로 순조롭게 잘 먹을 수가 없다의 과정으로 진행되면 나는 그냥 루시아 자동연상...



클레르는 평생 한 남자만 '진정으로' 사랑했다. 아니 방점은 '사랑했다'에 찍히는 거라고 봐야겠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었지만, 결혼한 남자도, 자신의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은 채로 그들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어릴 적에 그가 사랑했던 '시몽'을 찾아왔고, 사십육세에 다시, 시몽과 사랑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나버리고 만다. 이미 아내가 있던 시몽은 아내와 아이들을 떠날 수 없었고, 그렇게 클레르에게 헤어짐을 말한다. 클레르는 절망한다. 절망 정도가 아니다. 아, 클레르...


아니 근데, 사십육세에도, 사십칠세에도 사랑 때문에 울고 절망해야 한다면... 세상은 뭐지..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도 사랑 때문에 힘들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십세쯤 되면 사랑하나 잃었다고 우는 건 그만해야 되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사십 오세를 넘어가도 또 울고...그렇게 육십에도 울고 칠십에도 울고..그러는건가... 어쨌든 그녀는 사십육세에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절망을 하고...그리고 죽을때까지 평생, 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생 그를 그리워한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녀는 일도 손에서 놓고 먹는 것도 마다한다. 그녀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걷는다. 계속 걷는다. 그녀가 부지깽이처럼 말라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녀는 눈만 뜨면 일어나 걷고 걷고 또 걷고 먹는 건 마다하고 또 걷고 계속 걷고 가끔 바닷물에 얼굴을 박고 그 물을 마시고 걷고 또 걷고 잘 때만 집에 들어온다. 그녀에게서는 이제 자연 모든 것들의 냄새가 난다. 아아, 여자여... 어느 부분에서의 클레르가 나 같았다. 물론 열시간 이상을 걷고 일도 팽개치도 식음도 팽개치는 부분에서는 절대 나같지 않고. 다른 부분에서는 나 같았는데, 그걸 언급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사람에겐 누구나 그런 존재가 있는 것 같다. 결코 자신의 삶에서 아웃시킬 수 없는 존재. 필연적으로 맺어진 인연인 가족이 아니라, 완전한 타인이었음에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 만나고 헤어져도, 내 삶의 축에 늘 부재로 존재하는, 그런 존재. 클레르에겐 시몽이 그랬다. 시몽과 헤어지고난 후에도 늘 시몽의 뒤를 좇았고, 시몽을 바라봤다. 시몽이 퇴근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시몽도 그걸 알고 있었다. 클레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시몽이 죽고난 뒤에도 클레르의 삶에는 계속 시몽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자신의 옆에 살거나 숨쉬는 게 아님에도, 그녀의 인생엔 언제나 시몽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닌 사람. '이디스 워튼'은 자신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마음 속 성소'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부재의 존재는 마음 속 성소에 그 사람을 두었다는 표현과 같은 뜻인 것 같다. 



그 후로 그들 사이에 더는 연락이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聖所)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민음사, p.324)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숱한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갖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와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성소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누군가를 간직하며 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대상은 언젠가부터 입밖으로 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이겠지만, 클레르에게 그 대상이 시몽이었음은, 클레르가 살고 있는 곳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는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는 클레르를 알고 이해한다. 어떤 절망은 그렇게 계속 걷게 만드는 거다.



걷고 

또 걷고

계속 걷고...





그가 가는 곳에 나도 가리라.

그가 사는 곳에 나도 머물겠노라.

그가 죽는 곳에 나도 묻히리라.


「룻기」 (파스칼 키냐르, 『신비한 결속』에서 재인용)







누나의 눈이 갑자기 반짝이면, 시몽과 관련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였다.
시몽을 생각할 때만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토록 그를 생각하기 때문에 누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p.123)

하지만 그 역시, 바위들 위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바다에서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헤매고 다니며 자신을 지켜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하루 온종일 시간대별로 그녀를 눈으로 뒤쫓았다. 누나도 마찬가지로 바다에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바다가 지겨운데도 낚시를 하는 척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맺어지길 원치 않는 그를. (p.156)

"하느님께서 슬퍼하십니다. 슬프다고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어요. Tristis est anima mea(내 마음이 슬프도다). 그런데 단지 슬픔만을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죽고 싶을 만큼 삶에 환멸을 느낀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너무나 슬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마음이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프도다.`" (p.261)

그녀가 건방지고 냉담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어느 누구의 비위도 맞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시몽을 사랑하므로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했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들의 스토리를 쭉 지켜본 내 말을 믿어도 좋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거의 처녀였다. 오직 한 가지 명분, 즉 시몽에 대한 사랑만이 그녀의 삶에 동기를 부여햇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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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6-04-0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다락방님 오늘 글 좋고요... (다락방님 손에게 경배!)

다락방 2016-04-06 13:46   좋아요 0 | URL
건배! ㅎㅎ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6-04-0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정말 글을 잘쓰는거 맞는거 같습니다... 술... 드신건 아니죠? ㅋㄷㅋㄷㅋㄷ

다락방 2016-04-06 13:46   좋아요 0 | URL
어제 마신 술이 안깬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6-04-0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원래부터, 예전부터, 처음부터 다락방님 손을 좋아했어요.

하나는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손이라서구요.
또 하나는 너무 부드러워서....
아이 같은 손, 다락방님 손은 여름에도 핸드크림 발라서 그 촉촉함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손이예요.
너무 부드러운 손, 고운 손...

다락방 2016-04-06 13:47   좋아요 0 | URL
오케이. 그렇다면 저는 이제부터 여름에도 핸드크림을 사용하도록 하겠어요. 불끈! 단발머리님 말씀에 충성!!

단발머리 2016-04-06 13:50   좋아요 0 | URL
우리 만나서 손 잡는 그날까지 내가 느꼈던 그 퀄리티~~~ 그대로 유지해야 돼요!!!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갑자기... 뒤통수가 뜨겁네요...
여러분이 생각나지만서도 아무개님...
아무개님이 보셔야 하는데..
아무개님~ 저 아무개님 형이랑 손 잡을거예요~ 메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04-06 16: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오늘은 아무개님이 조용~ 하시네요.
제가 나이들면서 노화로다가 손이 거칠어지고 있는데 ㅠㅠ 여튼 최선을 다해서 손을 보호해보도록 하겠습니닷. 필승!!

시이소오 2016-04-0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성소, 공감이네요
순수의 시대를 읽어야겠군요 ^^

다락방 2016-04-06 16:59   좋아요 0 | URL
순수의 시대는 좋은 소설이에요, 시이소오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

시이소오 2016-04-0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앞부분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볼게요. 저런, 죄송합니다 책은 이미 사놔서 땡스투 불가하네요. 아무튼 땡스입니다^^

다락방 2016-04-06 18:01   좋아요 1 | URL
ㅎㅎ 땡투 못받으면 어떻습니까. 시이소오님께 순수의 시대가 재미있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으하하핫

건조기후 2016-05-1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다락방님 이 달의 당선작 보다가 이 페이퍼 다시 읽어 보는데 무서운 한 줄을 발견했어요.

고 죽을때까지 평생, 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생 그를 그리워한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녀는 일도 손에서 놓고 먹는 것도 마다한

다음 줄로 가야하는데 어쩌다 `먹는 것도 마다하고` 로 이어지는 건 줄 알고 읽다가 놀랐어요. 그리움이 무한반복돼요...
다락방님 손은 정말 엄청난 손이네요!

다락방 2016-05-16 08:09   좋아요 0 | URL
그리움이 무한반복되는 시간에 써서 그런걸까요. 제가 그런 타이밍에 있어서 그런건가봐요. 제 손이 제 마음을 알고... 흙 ㅜㅜ

젤리곰 2016-05-1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귀여워...귀여워... 너무나 귀여우심... 세상에 귀여워... (숨이 넘어간다...) #아_저는_김오키


다락방 2016-05-18 16:1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제가 귀엽다는 말씀이시죠? 맞죠?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설 [제인 에어]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남자주인공 '로체스터'였다. 그는 아직까지도 내게 인상이 강해서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는데, 소설의 끝에 그는 눈도 멀고 팔도 못 쓰게 되는데, 제인 에어를 만나서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뜨겁게 고백을 하는 거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혹여라도 내가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편이고, 또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잘난점을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하는데, 그런 나였다면 아마 내가 눈이 멀고 팔을 못쓰게 되었을 때, 위축됐을 것 같은 거다. 상대보다 내가 불편함을 갖고 있단 사실에. 나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도 약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그의 앞에 반드시 멋진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걸까? 사실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숨기는 것 보다는 당당하게 드러내는 게 훨씬 건강한 것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실제로, 나는 내가 혹시 알츠하이머 초기증세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을 때, 신경정신과에 방문을 하면서, 그 당시 사귀던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알츠하이머 초기증세라고 한다면, 그렇게 결론이 난다면, 그에게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를 편하게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만약, 그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면-난 아프니까 우린 헤어져-, 나는 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아-

결론적으로 나는 알츠하이머가 아니었고, 닥터는 내게 '알츠하이머와는 아주 거리가 먼' 생활습관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었다. 길가면서 책 읽거나 핸드폰 보지 말라는 조언만 듣고 돌아왔었지....

어쨌든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위축되는 상황이 되는 게 싫었고, 그런 나의 상황 때문에 상대가 불편해할까봐 염려했는데, 로체스터는 일단 그 모든 걸 제쳐두고 '나는 너를 사랑해'를 외치는 거다. 와, 진짜 너무 멋진 거다.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이렇고, 내 상황이 이렇고, 어쩌고 하고 뒤로 숨는 게 아니라, 감추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밝혀야 한다고.


로자 룩셈부르크를 마주하면서 나는 로체스터 생각이 났다. 로자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깊었는데, 단순히 똑똑한 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마주한 사랑에도 늘 당당했다. 요구할 게 있다면 요구했고,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다 읽고 하루를 지내면서 생각한 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마음이 따뜻하기만 해서도 안된다는 거였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학시절 성적이 좋았고(우리는 이미 시사인에서 그녀의 대학시절 성적표를 본 적이 있잖은가), 증명된 바는 없지만 몇 개의 외국어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실 정말 대통령이 똑똑한지 어떤지 증명된 바는 없지만, 어쨌든, 똑똑하다고 쳤을 때, 그러나 대통령은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몰랐다. 지금도 모르고 있다.

로자가 노동자들의 편에 서고, 전쟁을 반대하고, 사람들 앞에서 뜨겁게 연설하며, 경제를 연구했던 이 모든 것들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었고 사랑이었다. 로자는 채찍으로 맞으며 일하는 물소 앞에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건 녀석의 눈물이었죠.

루마니아의 그 아름답고 자유롭고 보드랍고 푸르른 초원은 이제 얼마나 멀어져 버렸으며 얼마나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그리고 여기, 이 낯설고 추악한 도시, 음울한 축사, 구역질나는 것들, 썩은 지푸라기들이 섞인 더러운 건초더미, 기이하고 두려운 인간들,
-온통 구타와 상처에서 흐르는 피...
아, 이 가엾은 물소, 내 가엾은 사랑하는 형제!
우린 둘 다 할 말도 잃은 채 무력하게 여기 서 있고, 똑같은 통증과 무기력과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p.144)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더 나은 곳으로 이곳을 바꿔야 한다는 강한 열정,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지식과 더불어 그녀를 자꾸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게다가 인상적인 건,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면서, 사랑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뜨겁게 사랑했고 뜨겁게 이별했다. 그녀가 사랑하고 이별하며 그 모든 감정들에 충실했던 것들은, 그녀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녀 자체도 자신이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어쩌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모습은 지성과 사랑할 줄 능력-비단 연인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을 모두 갖춘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어느 한쪽만 가까스로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하는 대신, 코르셋을 벗어던져 허리 둘레가 넓어진 자신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다.



그녀가 많은 책을 읽고 이해를 하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연구를 하는 모든 행위들을 하는 것도 분명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지만, 그런 그녀가 더 돋보일 수 있는 건, 그녀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그 모든 행위에 있어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으며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했다는 거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걸 알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모든 감정들을 솔직히 인정하며, 그 감정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린 평생 함께할 계획이 천 개는 있었어요. 인생을 만끽하고, 여행을 다니며, 좋은 책을 읽고, 지금껏 못해봤으니 다가오는 봄을 경이로운 눈으로 맞아보고 싶었죠. (p.142)


실행될 수 없는 천 개의 계획에 대해 마음이 무척 아프다. 그녀와 함께 울고 싶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궁금해져서 그녀에 관한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맨 처음의 책이 '평전'이란 이름을 달고 있어서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지은이가 '막스 갈로'라서 망설여진다. 내가 막스 갈로의 책을 읽고 뭔가 되게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뭐였지? 검색 좀 해보자..나폴레옹 이었나??









아하하하. 그래, 나폴레옹이 맞았어! 내가 저 다섯 권 읽느라 진짜 얼마나 힘들었는지, 원. ㅠㅠ

아 머리 아프다 히융.



최근에 읽은 이 책 [레드 로자]와 주말에 본 드라마 [아이가 다섯](제목이 이게 맞나??), 영화 [나이트 인 로댄스], 그리고 지금이 선거철 이라는 것 때문인지, 이 모든 것들이 섞인 복잡한 꿈을 꿨다. 꿈에,


나는 아들 둘의 엄마였다. 나는 사회생활이 굉장히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짬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 어쨌든 그 날도 집에 갔는데 어린 둘째 아들이 엄마는 항상 바쁘다며, 그런데 엄마를 봐서 너무 좋다며 안겨드는 거다. 나는 아이에게 폭풍 입맞춤을 해주고 잘자라고, 완전 사랑한다고, 내일 아침에 네가 자고 일어나도 엄마는 있을 거라고 말해준 뒤에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고 금세 잠이 들려는데, 잠이 들려는 시점에서 나에게 남편이 있는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거다. 나 남편 있나? 아이들 혼자 키우나? 그래서 벌떡 일어나 두리번 거렸는데, 저 쪽 침대에 남자가 혼자 자고 있더라. 아, 남편 있구나, 그런데 왜 저기서 자지? 우리는 별거중인가? 아니면 그냥 침대 따로 쓰나? 하고 갸웃하다 다시 잠들었고, 그렇게 아침이 되었는데,


아이가 둘인지 셋인지 여튼 하나는 아닌 여동생이 우리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 거다. 자신은 너무너무 바쁘다며 아이들을 좀 봐달라고. 그래서 나도 겁나 바빠 네 아이들을 돌볼 짬이 없다, 우리 애들을 네가 봐라, 하며 티격태격 하고 있으려니, 왜때문인지 하루종일 아무 할 일도 없는 나의 남편이 나와서는 걱정말라며, 아이들 모두를 본인이 보겠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러라며 고맙다고 우리는 각자 나갔다.


그런 여동생과 나는 한 동네에서 마주친다. 여동생은 선거운동 중이었다. 아하하하하. 동네 어른들은 여동생과 악수를 하고서는 참 훌륭한 사람이라며 칭찬들을 해댔다. 나 역시 선거운동중이었는데, 나를 뽑아달라는 건지 내가 지지하는 자를 뽑아달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네 사람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내가 속한 정당은 내 여동생이 속한 정당과는 달랐는데, 동네에서 인사를 나누는 분들은 나를 보고는 '동생도 훌륭한데 언니는 더 훌륭하다'며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아하하하.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함께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남편을 마주쳤다. 동네분들은 그를 잡고서는, '당신 와이프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그걸 당신이 꼭 알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음... 아이들하고 놀아주지 못하고 이렇게 바깥에만 나와있는데 내가 훌륭한걸까...라고 잠깐 생각하며 빨리 끝내 나도 아이들하고 놀고 싶은데..... 생각을 했다.



이게 로자와, 아이가 다섯인 드라마와, 당신을 가진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하는 영화를 봐서 꾼 꿈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책 [람세스]에서, 이집트 왕 람세스는 왕비 네페르타리와 함께 정치를 한다. 왕비는 지혜롭게 그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름답고 우아하며 게다가 정치적 안목까지 있는 그녀는 감히 내가 따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야, 나는 왕비는 못하겠고, 그냥 왕의 세컨드나 해야겠다, 정치 같은 건 다른 사람이 하게 두고 나는 사랑이나 하고 살아야겠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보면 지혜로운 왕비와 그 왕비를 의지하는 왕을 보며 질투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내가 속 편하게 살려면 나는 그냥 사랑만 하고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아, 나란 인간은, 로자와 정말이지 얼마나 다른가... 나는 이렇게나 소박해서 민중 앞에 서서 이 모든 걸 뜯어고치자고, 일어서자고 말하는 대신, 초콜릿에 커피나 마시며 서초구 양재동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로자는 로자의 할 일이 있었고 나는 나의 할 일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사실, 내가 할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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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04-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레드 로자 그냥 책표지만 봤을때는 만화인줄 몰랐는데, 다락방님 페이퍼를 보고 만화라는것을 알았어요. 그냥 글이었다면 못 읽을텐데, 만화라 좀 더 쉽게 접근할수 있을것 같아 읽어보고 싶어져요.^^

다락방 2016-04-06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만화인 줄 몰랐다가 만화인 걸 알게된 후에 구입했어요, 보슬비님. 만화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만화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으로 시작했다면 아마 다 못읽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알고 싶어져서 평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쪽수가 어마어마해서 확 지르진 못하겠지만요. 으흐흐흐.

읽어보세요, 보슬비님. 이 책 좋더라고요.
:)

2016-04-06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6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4-0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 로자, 정말 멋진 여자였네요.
사랑에서도 일에서도요.
자기 앞의 남자를 사랑할 줄 알고 종으로서의 인간도 사랑한 사람이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만화라서 읽는 거 아니예요.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내용이 궁금해서 읽는거예요.

그리고 동생분 학교 선생님 제안.... 잘 진행되고 있죠? ㅎㅎ
저도 생각해 봤는데요(뭐 이래.... 나, 다락방님 매니저예요? 내가 스스로 막 생각해보나요?ㅎㅎ)
좋은 기회 같아요. 다락방님도 다락방님이지만 아이들에게도요.
조금만 용기내 보세요~~
전에, <순수의 시대> 페이퍼에서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거 있잖아요.
그것만해도 한 시간은 족히~~ (뭐래.... 나 내용도 생각하고 있어요? )

다락방 2016-04-06 09:39   좋아요 0 | URL
네, 로자는 너무나 근사한 사람이었던 거에요. 종으로서의 인간도 사랑하고 또 물소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여자였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니, 정말 멋진 여자였던 거에요!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고 저같은 사람도 있고...(응?)

동생 학교는 얘기가 한 번 더 나오면 그때 한 번 만나서 `나한테 뭘 원하나요?` 물어볼 작정인데, 아직 그 뒤로 얘기는 없어요. 이대로 저는 묻힐지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영화 얘기로 시작해서 소설 무시하는 병신들에 대해 얘기해야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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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것인데, 그 친구는 이 책을 중고샵에서 샀다고 했다. 그러니 어디에서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표지는 상당히 지저분하다.




그렇지만 책의 본문을 읽기에 전혀 지장이 없고, 책의 본문에는 밑줄도 하나 그어있지 않다. 책의 표지에 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기에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책을 읽는 족족 중고샵에 팔고 있는데, 이 책은 표지가 너무 지저분해서 차마 팔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께 드리고자 한다. 표지가 저래도 아무 상관없으며, 이 책이 읽고 싶으신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읽었던 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책은 한 권이니 한 분께만 드릴 수 있고요, 가장 먼저 이 책을 달라고 댓글 달아주신 분께 드리겠습니다. 택배비도 제가 부담합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기전부터 조용히 나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생각이 더 강해진다. 어느 하루,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내 내면을 가만 들여다보자. 나에 대해 계속계속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내가 가야할 방향도 보일 것이다. 사실, 방향은 이미 정해 두었지만.



죽음처럼 어쩔 수 없이 절대적으로 혼자 맞이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피할 수 없기에 `혼자라는 것`에 대한 질문 또한 우리의 인생에 부수적인 그림자와도 같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다. 물론 같이 해야 하는 일도 있다.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의 삶은 쉽사리 균형을 잃어버린다. (p.12-13)

혼자 사는 사람으로부터 성적 방종을 연상하든 금욕을 연상하든 상관없이, 또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콘으로 격상시키든 버림받은 영혼인 양 동정의 대상으로 삼든 상관없이,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한 모든 이미지는 공통점을 지닌다.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전부가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낯설기 그지없다.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조차 낯설어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해서 만들어내고, 이 이미지에 따라 혼자 사는 사람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판단하고 참견하고 간섭하고 조언한다. (p.23-24)

4인용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마치 투시경이라도 손에 쥔 것처럼 아직도 1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로맨스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충고하고 측은하게 여기고, 때로는 혼자라는 사실을 과장해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졸지에 혼자 사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피고인이 된다. 4인용 테이블에 있는 사람은 아무 때나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유를 물어도 되는 자격증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한다.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왜 결혼하였어요?"를 묻지 않는데 그 반대 경우는 언제든 허용된다. 4인용 테이블 사람은 특권이라도 지닌 것처럼, 그리고 마치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기라도 하는 양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왜 혼자 사느냐고. 1인용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 사이에는 개인 간 능력의 격차도 성실성과 책임감의 차이도 없지만, 양적 다수를 차지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궁금증 억제의 법칙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p.105-106)

이 시대에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줄었다 해도 그것이 젠더마다 동일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벡 부부의 지적처럼 "과거의 여성들은 실망에 부딪혔을 때 자기의 희망을 버렸지만, 오늘날의 여성들은 자기의 희망을 고수한 채 결혼을 버린다." 관습적 성별 분업이 가족 내에서 지켜지는 한, 대부분의 남성에게 결혼은 혼자 사는 것보다 편리하다. 대부분의 남성에게 결혼이란 힘겹게 유지했던 1인 다역에서 벗어나 남편과 아버지라는 역할로 단순화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여성은 달라졌다. "그녀들은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가 했던 것, 즉 남편의 요구에 맞춰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은 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전에 응집력을 보장했던 접착제들, 즉 과거에 여성이 맡았던 역할들은 사라져가고 있다.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기, 최소한 겉으로라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끝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감정 패치워크를 떠맡기 과제를, 이제 누가 수행해야 하는가? 많은 여성들은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에 싫증을 내고 있고, 많은 남성들은 아직 준비가 ehl어 있지 않다."(p.127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분명 고독한 작업이다. 그 성찰이 고독한 이유는 성찰이ㅡ 결과 우리가 허무와 마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삶에 대한 성찰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아니,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때로는 삶의 성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타인이 대신하거나 대리하도록 명령할 수는 없다. 권력을 행사하는 독단인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을 배려하지만, 단독인은 권력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는 권능의 힘에 의해 자신을 배려한다. 단독인의 권능은 타인을 제압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손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내면을 통해 자란다. (p.174-175)

자기밀도가 분명한 사람들의 또 다른 욕구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욕구이다. 그것은 `은둔`과 거리가 멀다. 세상과 등을 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데, 밀집된 혼란으로 인해 되돌아볼 수 없었던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혼자서 해내는 과정이 홀로서기이다. 분명 군집생활은 필요하다. 군집생활을 했기에 인간은 진화할 수 있었다. 군집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지 못하고 다른 종에 의해 절멸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같이 하기에 많은 것을 얻는다. 사회 분업으로 인한 편리성 증대를 생각해보라. 그러나 같이 한다는 것이 분명한 장점을 지니지만, 인간의 모든 장점을 같이 한다는 것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같이 한다는 것은 때론 스트레스의 원인이기도 하다.(p.190)

기꺼이 혼자가 되어 홀로서기를 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자폐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과잉화된 `일반화된 타자`와 거리를 두는 능력의 획득을 의미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일반화된 타자가 입혀준 옷을 벗고 잠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190)

반면 직업과 관련 없이 행할 수 있는 활동을 우리는 `취미`라 한다. 취미는 호구지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채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한 행동이다. 겉으로는 노동처럼 보이지만, 그 행동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취미일 수 있다. 고기 잡는 행위는 어부에게는 노동이지만, 샐러리맨이 주말에 고기를 잡으러 가면 노동이 아닌 취미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취미는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에 의존한다. 어떤 취미를 가질 것인가 혹은 근본적으로 취미가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는 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취미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기호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취미는 자기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영역이다.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p.198)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하지 않고,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몰입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경쟁해야 하고 타인을 압도해야 하기에, 타인이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있을 때는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질투심이 생긴다. 그 질투심은 착한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취미의 세계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하기에, 진정한 취미의 세게에서는 질투가 사라진다. (p.198-199)

성별 위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보이지 않은 유리천장이 있는 상황 속에서 결혼은 여성이 커리어를 쌓아 가기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성공한 여성들이 미혼인 경우는 남성 미혼에 비해 훨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혼자 살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은 이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 자율성에 있다. 만약 경제적 자율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들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는 성공한 여성과 같은 특별한 집단을 설명하는 틀로만 머물러 있을 경우 큰 문제는 없지만, 만약 이러한 상식적 주장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자격 기준`의 담론으로 변화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혼자 사는 어떤 사람을 정당화해주었던 상식적 표현인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라는 말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능력주의 및 자격주의 담론으로 바뀌면, 능력이 없는 자는 혼자 살아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평가되는 한, 혼자 사는 것에 대해 논할 대 우리의 사유 관습은 또다시 `화려한 싱글`의 스펙트럼에 갇히게 된다. (p.230-231)

독거노인, 고독사가 왜 사회문제가 되는가? 이들이 가족이 없기 때문일까? 만약 독거노인과 고독사의 문제가 가족 외부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가족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은 독거노인과 고독사에 처한 사람들이 부딪히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독거노인과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혼자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드이 자립적인 삶을 사는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가족과 함께 하는 삶과 혼자 사는 삶은 절대적인 충족과 절대적인 박탈이라는 양극의 이미지에 의해 채색될 필요 없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p.235-236)

모든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만큼이나 개체가 되려는 욕구 또한 갖고 있다. 단독인의 사회란 달리 말하면, 모두가 혼자 살라고 선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통합하는 힘과 개체가 되려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 개체가 되려는 힘을 갖고 싶어 하는 개인이 가족 환경이나, 집단의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p.236)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은 그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 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노동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근본적인 대립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인가, 얼마만큼의 기본소득이 필요한가 등에 대한 부수적 논쟁까지 다각도로 진행 중이다. 나는 사실 논쟁 중인 여러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기본소득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본소득이 단독인의 사회에 대한 구상과 가장 긴밀하게 결합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p.238)

기본소득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는 세 개의 차원으로 구성된다.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ㄷ늘이 개인 단위로 자산조사나 근로조건의 부과work requirement 없이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이다.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다른 사회복지제도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에 의한 공적 부조라는 측면이라는 점에서 단연 돋보이며, 1인 가구가 지배적인 형태가 될 앞으로의 사회에 적합해 보인다. 기본소득이 엄격하게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는 의미는 "지역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이 기본소득의 수급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개인이 수령하는 급여가 그가 속해 있는 가구 유형과 무관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 단위의 지급일 때만 개인은 가족에 속해 있지 않아도 보호 받을 수 있으며, 또는 가족에 속해 있을지라도 개인의 자율권을 지킬 수 있다. 가족구성원 사이에서도 자율권의 결정 권한은 균형적으로 배분되어 있지 않다. 기본소득은 개인이 아닌 가족에 대해서도 불균형한 가족구성원 간의 교섭력을 보완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p.238-239)

한편으로 기본소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느냐와 상관없이 개인들이단독인이 될 수 있는 인큐베이터인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소득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한다. 또한 경제적 자립성이 없기 때문에 가족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 불량한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자금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공유해야만 했던 개인에게도 기본소득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독립자금이 없어서 학대받으면서도 집단을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 매 맞으면서도 가족을 떠날 수 없는 개인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것이 `기본소득`이든 `사회적 지분`이든 어떠한 구체적 형태를 지니든 상관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두가 다 함께 단독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독인을 위한 독립자금 역시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대서야 비로소 단독인이라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은 더 이상 위인이나 특별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p.239)

국가나 집단은 개인을 대신하여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집단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개인을 대신하여 집단이 판단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개인은 집단이 내린 판단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설계한다는 점이다. 집단주의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는 이상, 개인의 삶은 표준적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집단이 내린 판단을 순응적으로 따라한 사람, 집단이 내린 판단을 그대로 내재화한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내재화된 집단의 판단을 후세대에게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 이미 내려져 있는 판단은 언제든 적응해야 할 대상이지, 왜라는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때로는 신기루일 수도 있는 이타주의만을 일방적으로 칭송하는 사회에서는 나를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배려와 나만의 방에 대한 약간의 옥심조차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치부된다. 이런 사회에 순응한 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방법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증에 빠진다. 이 망각증이 지나치면, 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나 개체의 고유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이기적인 탐욕이라 생각하며 자기 통제의 덫에 빠지게 된다. (p.249-250)

얼치기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탐욕만을 알고 있기에, 그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채택하는 방법은 경제적 이기주의이다. 경제적 이기주의는 시장 경쟁에서 자신이 유일한 승리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목표로 삼는다. 운이 좋거나 혹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경쟁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경제적 이기주의의 길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기주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소수의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 길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건 도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하지만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자기에 대한 배려와 자기만의 방에 대한 구체적인 욕구를 뼛속까지 알기에 자기를 탐욕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한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p.251)

자기애를 회복하는 문제를 스피노자는 이기주의의 틀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상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이라 생각했다. 자기에 대한 관심이 항상 경제적 이기주의라는 결론을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 또한 혼자 산다는 것이 곧 세상으로부터의 은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남는 문제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9칸트는 이를 윤리적 문제라 불렀다)이다. 은둔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홀로서기를 통해 자기 고유의 내면과 마주친 사람은 자신의 고유성을 또다른 고유성을 지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자신의 고유성에 대한 인정을 우리는 타인에게 강제할 수 없다. 강제라는 폭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고유성의 고귀함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호소와 간청이 설득이라는 결말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기주의가 요구하는 개인이 타인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형식이 아니라, 서로가 목적이 되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p.255)

두렵다고 해서 힘겹게 얻은 자기만의 방과 자기에의 배려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해지는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힘겹게 독립을 이룬 사람이라면, 자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또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 단독인의 사회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만의 방`이 서로 연락선도 닿지 않는 고립된 섬으로 흩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이어진 사회를 의미한다. 그 네트워크를 다른 단어로는 연대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연대의 필요성을 민감하게 느끼는 두뇌의 촉수를 지니고 있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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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6-04-0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ㅎㅎ 저 이책 나중에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놨긴 했던 책이긴한데 저 읽어보고 싶어요. ^^;;

다락방 2016-04-01 18:41   좋아요 0 | URL
드릴게요!! 주소삼종셋트 비댓으로 알려주세요!! >.<

2016-04-01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4-01 21:39   좋아요 1 | URL
책이 회사에 있어서 다음 주에 보내드릴게요. 나중에 경상도 가면 소주나 한 잔 사주세요. 아니, 한 병 ㅋㅋㅋㅋㅋ

2016-04-02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6-04-0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좋죠!!

다락방 2016-04-01 23:31   좋아요 0 | URL
네 좋았어요.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와 경제적인 능력(?)에 대한 얘기 모두 좋더라고요.

2016-04-0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6-04-0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애를 회복하는 문제를 ...이기주의의 틀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상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이라 생각했다...라는 말에 힘을 얻어요.

다락방 2016-04-05 09:46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도 참 다행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