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향한 상실감이 너무도 혹독해 그 고통에 허리를 부여잡을 때가 있다. 때로는 마치 해돋이나 창문 색깔처럼 상실감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상이 물려준 세상이 갑자기 끝장났을 때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종말과 맞서야 했다. 내게도 상징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세탁이었다. 리넨 천을 빠노라면 어딘가 차분하고 일상적인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행군 중에는 당연히 깨끗한 리넨을 볼 수가 없었다. 방식이 색다르긴 해도 줄푸가에게는 그 대상이 옛날 차였을 뿐이다. (p.142)


















e 의 고양이가 죽었다. e 는 어제 장례를 치러주었노라 내게 말했다. 많이 아팠고 병원에서는 오늘 밤이 고비다, 라고 했는데 새벽에 별이 되었다고 했다. e는 고양이 두 마리와 오래 함께 지냈고, 그 중에 한 마리가 어제 작별을 고한거다. 나는 그 마음이 어떨지, 그 상실의 고통에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몰라 토닥토닥만 해주다가 물끄러미, 내 책상위의 꽃을 보았다. 지난주부터 책상위에 꽃을 두기 시작했는데, 이걸 들여다보는 게 좋더라. 내가 꽃을 사고 싶었던것처럼, 예쁜 꽃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처럼, 어쩌면 e 에게도 꽃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e 양에게 꽃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며칠전 읽은 먼 북쪽의 저 문구를 메세지로 넣었다. 



누군가를 향한 상실감이 너무도 혹독해 그 고통에 허리를 부여잡을 때가 있다.



는 문장이 책을 읽다가 콱 박혔더랬다. e 에게도 분명 지금 상실감이 너무 혹독하게 느껴지리라. 고양이와 작별한 친구에게 위로의 꽃을 보내고 싶다 했더니, 이렇게 고요하고 우아한 꽃바구니를 하이드님이 만들어주셨다. 






저기 메모에 꽂힌 나비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고양이 두 마리중 혼자 남게된 고양이의 이름이 '나비'인데, 어떻게 저렇게 나비가 저 메모를 전할까. 마치 살아있는 e의 고양이 나비가 제 집사를 위로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마음이 담기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나비 찝게라니 말이다.





꽃바구니를 받고 e 는 눈물이 또 난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고양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는 길, 이 고양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는 게 고양이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오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 자신에게 정말 위로가 됐다고 했다. e 양은 내게 말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보냈을텐데,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면서 달라졌다고. 



차장님은 슬픔도 기쁨도 솔직하게 다 말씀해주시는데 그거 보면서 저도 배웠어요, 차장님이 제게 그런 말씀들을 해주실 때 저 좋았거든요, 아직 멀었지만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다정한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요즘에는 이렇게 다정한 말을 들으면 참을 수가 없어진다. 그냥 바로 눈물이 난다. 이것도 노화의 한 증상인가? 피부가 거칠어지고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지고 생리양이 줄어드는 것만이 노화의 증상인줄 알았는데, 눈물이 많아지기도 하는건가 보다. 이게 다 내가 늙어가기 때문인가보다. 다정한 말에 눈물이라니.



나는 이렇게 매일 늙어가고 있지만, 잘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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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6-04-0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사람 다락방님.

다락방 2016-04-08 08:1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ㅠㅠ

꽃핑키 2016-04-0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ㅠ 폭풍공감해요 다락방님ㅠ 저도 늙어서 그런지 툭하면 눈물바람ㅠㅠ 어쩔땐 부끄러워 숨어서 울게돼요ㅋㅋ
아. 따뜻한 페이퍼 넘 좋아요♡
꽃사진 딱 봤을때부터 누구 솜씨인지! 한눈에 알아봤어요! 저런 꽃과 메시지라묜, 아무리 커다란 슬픔도 거침없이 꿋꿋하게 잘 헤쳐나갈 힘 생길거 같아요♡

다락방 2016-04-08 08:20   좋아요 0 | URL
흑흑 꽃핑키님. 꽃핑키님도 눈물이 많아요? 전 예전에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왜이렇게 되어버린건지... ㅠㅠ 이제는 서러운 말이 아니라 다정한 말에도 울어요. 확실히 비정상인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어려움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또 저마다의 상실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고 애정을 주면서 버텨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핑키님, 숨어서 울지 말고 드러내서 울어요, 그리고 손 잡아달라고, 위로해달라고 말해요. 덜 아플 수 있게요.

아무개 2016-04-0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래서 형씨를 애정해 마지않소!

다락방 2016-04-08 08:20   좋아요 0 | URL
그 애정 변치 마시오. ㅠㅠ

보슬비 2016-04-0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정한말, 다정한눈빛.다정한몸짓에 눈물이 나고 위로를 얻어요.

다락방 2016-04-08 10:08   좋아요 0 | URL
어제는 문득 다정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의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노력해야 겨우 다정해질 수가 있어요. 다정하다는 게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만큼, 다정한 말과 몸짓에 위로를 얻고 또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레와 2016-04-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내 친구인게 참 고맙소..


다락방 2016-04-08 11:49   좋아요 0 | URL
무슨소리. 나의 기쁨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