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동안의 감정과 또 읽고나서의 감정에 대해 적고 싶은데, 무얼 어떻게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깊은 사색과 고민, 성찰이 느껴지는데, 이게 가능하다는 게 너무 놀라워서, 그 자체에 감동하게 된다. 매번 '똑똑한 여자 너무 좋아' 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말 자체가 가볍게 느껴진다. 많이 공부하고,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있게 둘러보고,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걸 글로 풀어내는 모든게 리베카 솔닛에게 가능했다. 아, 더 어떻게 말해야하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면서 어머니와 자신 사이의 갈등과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삶, 그것을 돌아보는 과정에 살구와, 거울, 얼음 등을 가져와 연결시킨다는 게, 내가 읽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고 이렇게 적는데도 소름이 끼친다. 뭐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다있지? 그러니까 이 책이 얼마나 좋으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거다.


매 장이 다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나는 체 게베라와 나병 환자들에 대한 부분에서 아주 많이 놀랐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나 무지했던 '나병'과 거기에 자연스레 따라오며 연결되는 '고통'이란 것에 대해서.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은 그 할머니가 아니라 당시 나의 남자친구였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가 나병 환자들의 손과 발을 상하게 하는 건 정작 병 자체가 아님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나병은 신경을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만들 뿐이고, 그렇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면 환자들은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된다.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다. 스스로가 제 손가락과 발가락, 발, 손을 베이고, 화상을 입고, 멍들게 하고, 벗겨지게 하다가, 결국 그 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p.151)



고통의 역할이라고 해야할까. 우리가 무언가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 그러니까 손과 발을, 입을, 머리를 보호하려고 하는 건,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고, 바꿔 말하면 고통을 느끼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 당연한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이 나병의 증상에 대한 언급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 '고통은 뭐지?' 하는데 생각이 미친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고통은 필요한 거란 말인가, 라는 생각. 지키기 위해서 고통이 수반된다는 건가. 나병 환자들의 손과 발을 상하게 하는 게 병 자체가 아니라, 감각을 느낄 수 없어서라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돌보지 않게 된다니... 이 부분이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거다. 



고통, 뭐지?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오래된 지혜를 새롭게,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재확인한 나는 나병과 고통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p.152)



나병과 고통에 관한 글을 찾아 읽던 리베카 솔닛은 그것을 감정이입으로 연결해 글을 써낸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 그 사람 혹은 그런 사람들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그런 감정이입이 차단될 수도 있다. 사회 전체가 자신은 경계에 있는 소수자들과 무관하다고 여길 만큼 무감각해지도록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맺은 인간적 관계를 지워 버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감정이입 덕분에 당신은 고문, 배고픔, 상실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다음엔 마치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바능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 버린다. (p.157-158)





나병과, 고통과, 감정이입과, 결국은 확장된 단계인 사랑에 대한 글쓰기라니. 매 장마다 내게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나도 이런 글쓰기가 가능할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내게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은 '아니' 였다. 이런 글쓰기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새삼 리베카 솔닛이 있어서, 마사 누스바움이 있어서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너무 멋지다 이 사람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라 해야할까, 너무 좋아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던 부분은, 리베카 솔닛이 어머니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고 또 아픈 남자친구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다 그랑 헤어졌을 때,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본인에게 절망적이라 느껴졌을 바로 그 때, 아이슬란드로부터 걸려온 전화, 올리브 키터리지 식으로 말하자면 그 '무지개'같은 전화, 그 전화가 오는 부분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레이캬비크에서 온 전화, 전화를 건 사람은 내게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하자 상대는 놀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아이슬란드라는 그 먼 미지의 땅, 북풍 뒤에 숨은 그곳이, 내가 가야 할 바로 그곳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전화는 마법 같은 구원처럼,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p.106)




리베카 솔닛이 어쩌면 암일지도 모를 무엇에 대해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그녀를 문병오고 그녀를 도우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빚'과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대해 쓸 때도 느꼈지만, 우리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른 어딘가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딘가에 선의를 베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돌고 돌다가 쌓이고 쌓이다가, 내가 무너질 것 같았던 때에 기적처럼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기만 한걸까. 그 우연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게 아니다. '나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렇게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마법 같은 구원의 전화가 걸려온 뒤의 글도 숨이 막힐것 처럼 좋아서,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고, 숲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하루하루의 대혼란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두 사람이, 본인들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우연히 함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유사함에 혹은 차이에 끌린다. 각자의 두려움과 한계를 오랜 기간 극복하고, 두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겨난다. 수백 만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 안에서 헤엄치고, 어찌어찌해서 여정을 완수한 단 하나의 정자가 역시 단 하나의 어머니 세포와 만나 우리를 낳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냘픈 그 짝짓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그 혼란을 겪은 후 지상에 나오게 된다.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너무나 연약한 유년의 몇 해 동안, 단 한순간이라도 어머니가 한눈을 팔았더라면 당신은 촛불처럼 훅 꺼져 버렸거나, 욕조에서 익사했거나,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삼키다 목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모두 각자의 부모님이 서로를 만날 당시의 작은 우연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불난 집에서 탈출한 사연이나 혹은 할아버지가 폭격을 간신히 피한 이야기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어떤 선택이 있었고, 우리가 축복을 받든 저주를 받든 아니면 둘 다를 받든, 그 모든 일은 그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 선택을 끝까지 좇다 보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의 삶이란 매우 희귀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상한 진화의 결과 같은, 이미 멸종했어야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우연한 작용 덕분에 살아남은 한 마리 나비 같은 것. 우연이라는 단어(coincidence)는 주로 사고와 관련하여 쓰이지만, 말뜻 그대로 보자면 함께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우리 삶의 패턴은 제각기 떠돌아다니는 것들이 아니라, 잠시라도 함께 박자를 맞추어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무용수들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힘이 짝으로 만나는 순간, 생명이 만들어질 때의 온기가 있는 순간, 우리의 부모일지도 모를 알 수 없는 이들 사이에서 은밀한 연애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순간 우리 삶의 패턴은 완성된다. (p.106-107)





이 장은 통틀어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생각나게 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리베카 솔닛이 하는 이 얘기를 그대로 소설로 풀어낸 게 아닐까 싶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속의 작은 기쁨과 큰 기쁨이 그리고 밀물이, 이 모든 것들로 구성되어지고 비롯된 게 아닌가. 




도움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가급적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고 싶다. 여태 나의 삶은 그런 식으로 굴러왔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내가 받지 않으려고 해도 나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모습이 될 수 있었으며 이 삶을 살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은 혼자서 다 잘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야, '정말 강한 사람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견디기 보다는, 내가 이 부분을 힘들어하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 고 내 약점을 인정하고 손을 내밀어 보는 쪽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거다.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내가 진단을 받은 증세뿐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 훨씬 더 많이 치료를 받게 될 것 같다고 적었다.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삶을 강제로 잠시 멈춰야 했다.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좀처럼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나의 경우 과거에 유난히 도움을 주지 않던 부모가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빚을 엊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며, 또한 빚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빚을 진 사람들이 그 부담감 때문에 바로 답례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들이 꼭 주고 싶어 하는 선물들이 있고, 때론 빚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기도 한다. (p.179-180)




호의는 비상식량, 비가 올 때나 겨울, 수확이 없는 시기를 대비해 비축해 두는 식량과 비슷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상상했던 것보다 많음을 발견하는 일은 뿌듯하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모여 들었고, 나는 아름답게 보살핌을 받았다. 친구 안토니아가 중간에서 병문안 오는 사람들의 일정을 조정해 주었다. 나중에 회복기가 되자 삶이 늘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보낸 꽃다발에 묻혀 지내고, 모두 나를 도와주려 하고 걱정해 주는 삶. 하지만 그건 내가 그것들을 필요로 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필요로 할 때마다 그것들을 얻을 수도 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그것들이 거기 있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든 것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p.181-182)



의리 없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머니를 성공적으로 맡기고 난 후에, 어쩌면 이전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의 경험은 좀 더 결정적인 단절을 의미 했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취소하거나 일정을 조정했다. 쓰고 있던 책의 발간을 늦췄고, 못 하겠다고,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가장 잘생기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옷으로 가리고 있던 자신들의 상처에 대해, 혹과 낭종과 흉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끄러운 질환이나 비정상적인 모습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해 주었다. (p.182)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나는 '못하겠다'고 말했다는 부분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못하겠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느냐' 고 묻는 부분. 내게 필요한 것도 그게 아닌가 싶었다.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못하겠다는 말을 너무 못하면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이 책은 진짜 너무 좋았다.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정말 너무 좋았다.

특히 위에 인용했던 어머니와 탄생에 대한 부분은 너무 좋아서 낭독도 해보았다. 중간에 발음이 꼬였지만, 다시 하자니 너무 길어서 그대로 한 번 올려보겠다.








여러분 이 책 읽자. 정말 좋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읽자.


내내 아이슬란드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다고. 그곳의 고즈넉한 풍경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곳은 내가 기존에 했던 여행처럼 지하철을 타고 다니거나 걷기만으로 충분할 것 같지가 않은데, 그렇다면 나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떠나야 하는 게 아닐까. 게다가 기존에 했던 다른 여행들처럼 며칠만을 예정한채로 훅 갔다가 훅 오기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가만, 랩 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빌을 위로하기 위해 함께 만났던 곳도 아이슬란드 아니었나?
가만히 조용히, 아이슬란드에서의 며칠을 생각해본다.
함께 간 사람과 고즈넉함을 같이 바라볼 수 있다면, 같이 느낄 수 있다면 뭔가 평생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슬란드가 주는 분위기라는 게, 뉴욕이나 하노이가 주는 느낌과는 아주 다르니까.
별다른 일정 없이 머물다가, 가지고간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다가, 동행에게 나직하게 읽어주기도 하면서 며칠을 지내다 오면, 그 후의 삶은 그 전의 삶과 다르지 않을까.


아, 이 책은 진짜 뭐지. 되게 복잡한 마음이다. 너무 좋고 고요하고 이상하게 흥분시키고 조금 다른 삶을 꿈꾸게 한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고, 호의를 베푸는 삶을 살고 싶고, 고통을 받는 자들과 연대하고 싶도록 만든다. 내 안에 가득한 사랑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싶고, 그리고 더 공부하고 싶다. 멀고도 가까운, 이 제목에서 뜻하는 바는, 책 속에서 언급되는데, 거기에 대해 인용하며 이 긴 글을 마치겠다. 

퇴근해야 되니깐. -0-



"가까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뉴욕에서 몇 년을 지낸 후 뉴멕시코의 시골로 이사한 조지아 오키프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인사말을 덧붙였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감정은 그 자체의 거리를 가진다. 애정은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것, 자아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침대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낯선 이들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도 있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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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6-2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정성 가득 서평과 감상이라니~ 이 책을 안 읽고 배길 수가 없겠네요. 낭독도 잘 들었어요. 이렇게 목소리까지 아름다우시면 어쩌나요~전 그렇지 않아도 락방님께 반한 처지인데~~

다락방 2017-06-28 18:35   좋아요 0 | URL
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저는 낭독 목소리보다 실제 듣는 목소리가 훨씬 좋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 반하셔야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좋아요!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을 거예요! >.<

다락방 2017-06-2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160 인용문 마지막 줄 오타인 것 같은데 책 있으신 분 좀 알려주세요 ㅜㅜ 제가 책을 회사에 두고 와서 어떤 단어를 잘못 쓴건지 확인이 안되네요. 아니, 저 마지막, ‘찬선‘ 이 뭐여?? ㅜㅜㅜㅜㅜ

다락방 2017-06-28 18:36   좋아요 0 | URL
앗 낯선 인가보다, 문맥상!

책읽는나무 2017-06-28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글샘님의 리뷰를 읽고 아~읽어봐야지! 그랬는데 다락방님의 리뷰까지!!^^
여기저기서 좋은 서평들이 많은 책이네요.아껴 읽고 싶은 책인가 봅니다.
저도 낭랑한 낭독 잘 듣고 갑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편안해서 좋네요.
가을에도 또 책 읽어 주세요ㅋㅋ

다락방 2017-06-29 08:01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이 책 정말 좋습니다.
빠르게 넘어가진 않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에요.
저는 조만간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어려워서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책을 통째로 베끼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베끼는 과정에서 또 이해하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베끼다보면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말이지요.

네, 책은 또 읽어드리겠습니다! 으흐흐흐흣

비연 2017-06-2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좋았습니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죠..
.. 그나저나 ‘책읽어주는 락방님‘, 너무 좋습니다!

다락방 2017-06-30 12:48   좋아요 1 | URL
으흐흐흐 책읽어주는 게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비연님.
이 책 정말 좋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깊은 고민과 생각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어요. 리베카 솔닛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여러차례 들었어요.

단발머리 2017-06-3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좋았어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또... 원서를 사서는 (이건 또 무슨... 버릇 ㅠㅠ)
아무튼 줄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 역시 두 번째 읽을 때는 천천히 읽었어요.

저는 다락방님의 진짜 음성을 직접 들어본 사람으로서... 흠흠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의 목소리는 정말 너무 좋아요. 실제로 들었을 때 진짜 좋아요. 완전 귀호강~~~
근데 이런 녹음 목소리는 다른 사람 것인마냥 또 좋네요.
저 같은 경우 가끔 노래하는 걸 녹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재생시 온 가족이 대피합니다.
실제로 좋게 들려도 녹음하면 완전 다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다락방님은 책 읽어주기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꼭이요^^

다락방 2017-06-30 12:49   좋아요 1 | URL
크- 원서라뇨!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원서라니! 그러고보니 제가 [일곱번째 파도] 원서를 주문한 일이 떠오르네요. 지금 제게로 오고 있습니다. 아마 일주일정도 후엔 받아볼 수 있을거예요. 아니, 대체, 왜...

리베카 솔닛의 이 책을 저도 원서로 사야겠어요. 이왕 필사할거라면 원서로 해도 좋을것 같아요!
그렇지만..그렇게 사둔 원서가 많고 ㅠㅠ 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ㅠㅠ 봐봤자 읽을 수도 없고 ㅠㅠㅠ
저도 이에 구몬영어를 좀 해볼까 싶어 어제 레벨테스트지 받아 풀었답니다. 결과를 기다려봐야 해요. 흙흙


제 목소리를 좋다고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은 진짜 제가 엄청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아셔야 해요, 진짜로요, 진짜로.

clavis 2017-07-02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하면 저 진짜 스토커 되는거죠?? ㅎㅎ제가 이 시각까지 못 잔 이유가 있었어요!바로 이 글을 읽기 위해서♡♡

가을에 책 또 읽어주세요2
글구 락방님 따라서 저도 어떤 기회에 동화책 읽어드리고 다녔는데 넘나 반응좋아서 낭독영업 왕왕 뛰어보려합니다..

먹임이 사랑임을 아시는 락방님은 제가 실제로 아는 여인 중에 가장 똑똑한 여자 중 한 분이시지요♡아아 나는 락방님을 맹신합니다ㅋ락방님 좋아요♥감성과 지혜를 겸비하신 락방님 좋은 글 계속 많이 써 주시고 가을아 빨리 와라,와서 락방님 우리게 글 또 읽어주시게♥♥★

다락방 2017-07-02 17:11   좋아요 0 | URL
우와- 책 읽어주시고 좋은 반응을 얻으셨다니, 정말 좋으네요 클래비스님! 앞으로도 늘 좋은 일 하시고 좋은 반응도 잔뜩 받아들여서 에너지 푱푱 샘솟는 클래비스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주 그냥 저에 대한 칭찬이 폭발하는 댓글이라서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댓글이네요. 똑똑하다, 감성과 지혜를 겸비했다, 하시니 ㅠㅠㅠㅠㅠㅠㅠㅠ 감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제가 진짜 넘나 감사드리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클래비스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또!! 책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저 오늘부터 [헬페미니스트 선언]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발췌해서 읽어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지옥의 페미니스트 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얏호~~~

clavis 2017-07-0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빠른시일내에 읽어서 지옥은..초큼 그렇고..그렇지만 천국의 페미니스트란 어쩐지 강렬함이 사라지니 지옥의 페미니스트 저도 할랍니다!!

다락방 2017-07-02 17:15   좋아요 1 | URL
네, 천국의 페미니스트란...어쩐지 존재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같지 않습니까? ㅋㅋㅋㅋ 지옥의 페미니스트들이 세상을 다 뒤집어놓으면, 그때는 천국이 되지 않을까....생각해봅니다. 우리, 그 길을 함께 걸읍시다!!

clavis 2017-07-0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ㅠ서로의 손 맞잡고ㅠ락방님이 있어서 쒼나쒼나요♡♡
 
I‘ll be there for you.



















남자랑 여자가 알고 지낸지도 6년쯤 되었다. 6년간 매일 만난 것도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난 후에는 3년후에 만나고, 그리고 나서는 2년 후에, 그리고 나서는 1년 후에... 식으로 몇차례 만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웃게 하고 서로의 우울함을 달래준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남자는 뉴욕의 공항에서 갈등한다. 엘에이에 사는 여자에게 가고 싶은 마음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가야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이 여자한테 가고 싶은데 다른 쪽에 내 일이 있다... 그리고 남자는 벤처자금을 신청해둔 상태였다. 



얼마전 읽은 《마티네의 끝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방해물이 되는건 여러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서처럼 다른 사람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처럼 '내 욕심' 이기도 하다. 자기가 정해놓은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벤처자금을 받고 자신의 사업을 일으켜야 했다. 그게 그 순간 그에게 당면한 과제였고, 그래서 그는 여자가 있는 엘에이를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벤처자금을 받는데 성공한 그는 환호성을 지르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는 결국 망한다. 시작했던 사업을 접고 부모님이 계신 집에 돌아가야 하는 거다. 분명 5-6년 후면 사업도 성공하고 아내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업도 실패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게 된 것. 



여자는 소소하게나마 사진 찍어 주는 일을 한다. 예식장이나 생일파티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고 있으며, 작게나마 전시회도 연다. 그런 여자앞에 오랜만에 다시, 남자가 등장한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부터 남자는 그녀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본 조비의 <I'll be there for you> 인데, 그 노래로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거다.






아주 오래 걸렸지만, 남자는 자신이 과거에 장담했던 그 모습이 아니지만, 일년전에는 여자와 사업을 두고 갈등하다 사업을 선택했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그녀에게로 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기타도 잘 못치고 노래도 잘 못부르면서. 

이렇게 어렵게 결심하고 용기를 내어 노래했으니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준다면 아름다운 로맨스가 되었겠지만 후훗. 세상은 그렇게 내 맘대로 굴러가는게 아니다. 여자는 약혼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자는 뒤돌아 가야한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고백했음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남자가 사업과 여자를 두고 고민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만약 그 때,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고민하는 대신, 여자에게 기다려달라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있잖아, 내가 안정된 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너와 함께하고 싶어, 그런데 너를 사랑해, 이런 나를 조금 기다려줄 수 있겠니? 라고 말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가끔 우리는 상대와 의논하면 더 나은 문제에 대해서 혼자만 고민하고 제대로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티네의 끝에서》에서도 그랬다. 남자는 자신의 음악생활에 슬럼프를 겪게 되고 이걸 어쩌나 싶어 우울해하지만, 그걸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티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 역시 자신의 앞에서 테러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는 결코 남자에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이 그런 상태, 자신의 어려움과 힘든 점을 서로에게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그 방해에 속절없이 끌려가버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좀 더 굳건한 관계였다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잘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나 요즘 기타가 잘 쳐지지 않아서 마음이 좀 안좋네,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나 그 날 이후의 트라우마로 상담을 받고 있어, 라고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그걸 계기로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를 '잃는' 대신 서로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보다 더 강한 결속력으로 맺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마키노는 예전에는 당연한 듯 가득 채워졌던 창조적인 삶의 충실이 하필 지금 이런 때에 자신에게서 완전히 빠져나간 불우함을 저주했다. 만일 음악가로서의 행복과 요코의 존재가 가져다준 행복이 일치했다면 오늘 이 시간을 얼마나 환한 환희와 함게 보냈을 것인가.
그는 자신이 결코 후자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악은 그의 삶의 근거이고 그가 자신에게서 찾아잴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고 보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연주가로서 패기를 잃은 것이 너무도 창피스러운 요즘 같은 상태로는 언젠가 요코와의 사랑조차 결코 마음껏 누릴 수 없으리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p.206-207)

 

자릴라는 왜 마키노에게 PTSD 에 관해 털어놓지 않느냐, 분명 기댈 곳이 되어줄 게 틀림없다고 몇 번이나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요코는 그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전에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 혹시라도 마음대로 마키노에게 그런 얘기를 전하기라도 한다면 너와의 신뢰 관계는 끝나버린다고 선언했다. (p.234-235)




나 역시 내가 완전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원한다. 내가 좀 더 완성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멋있고 더 똑똑하고 더 근사한 사람인채로 그에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는 자신이 부족하다 여길 것이고, 그러니 좀 더 나은 모습인 채로 상대에게 갈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리가 잡힌 후에, 좀 더 완성된 인간이 된 후에, 우울함은 좀 털어낸 후에, 그 후에 상대에게 가야지, 라고 생각하면, 상대는 물론이고 시간과 상황이란 것이 내 뜻대로 기다려주질 않는다. 상대에게는 그동안 상대의 사정이 생길 것이고, 그리고 나와 상대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주 작은 변화들로 또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것들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주 작은 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진정 강한 사람은, 나의 약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나와 당신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함께 얘기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봐봐, 그러니까 추운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아 춥네, 한마디면, 함께 자고 있다가 안아주게 되잖아, 약한 모습과 우울한 모습 아직 채워지지 않은 모습도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영화 속에서 남자가 자신이 가고 싶은 곳과 가야하는 곳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때 여자에게 '너에게 가고 싶은데 나는 지금 당장은 여기에 가서 이걸 해야해, 이런 나 어때? 기다려줄 수 있겠어?'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혼자 공항에 앉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자 나오는 답은 뻔하니까, 상대에게 물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안정적인 모습이 된 뒤에 상대에게 당당하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정적이 된 후에 상대가 기다려주리란 보장은 어디있지? 또 시간이 흐른다고 자기가 안정적이 되란 법도 없잖아? 영화속에서 남자도 망해버렸는걸? 그러니 안정적 모습이 되기까지 함께 있게된다면, 그들 사이엔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이게 되지 않을까? 혼자 가기에 힘든 길을 같이 가서 좀 덜 힘들게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책 속에서 여자가 트라우마를 혼자 앓고 있었던 것도, 영화 속에서 남자가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것도, 다 내모습인 것 같다. 혼자 고민하는 모습이. 혼자 고민 백날해봤자 쥐뿔 아무 답도 안나와.... 진정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나의 약함을 상대에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해. 





다다다닥 글을 쓰고 있는데 코에서 뭔가 후루룩 나오는 것 같아, 어어, 코피인가, 하고 얼른 휴지를 가져다댔는데, 오오, 콧물이었다. 이 더위에 왜 콧물이 후루룩 나와버리지. 왜 줄줄 콧물이 나오지?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서 내가 지금 상태가 메롱이고, 얼른 집에 가고 싶고, 그래서 앞으로는 술을 끊어야겠다!! 술을 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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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7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7-06-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피 아닌 콧물인거 다행이죠? ㅎㅎ
에이. 다락방님이 술을 끊는다구욧? 거짓부렁~~~~

다락방 2017-06-27 13:59   좋아요 1 | URL
헤헤헤헤 콧물도 이제 안나요. 아침에만 잠깐 났어요.

술 끊을거예욧! 다시 마시기 전까지만요...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끊지 마세요..
그러다 이렇게 당차고 야무지고 야물딱진 리뷰를 못쓰게 되면 우리들은 어쩌나요???정말 어쩌면 좋지요???

다락방 2017-06-27 14:32   좋아요 2 | URL
아니 클래비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래비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진짜 어쩔 수 없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술을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진짜 클래비스님 때문에 술 마시는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ㅑ ㅎ ㅑ ㅎ ㅑ ㅎ ㅑ
원래 예술의 세계란 이렇듯 비정한 법..글때매 술 몬 끊으시는걸로ㅋ

다락방 2017-06-27 14:50   좋아요 2 | URL
그쵸 예술과 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것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6-2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는 참 어려운거 같아요ㅠㅋ 이 글을 읽고 좀 더 용기를 내보겠습니다ㅎ

다락방 2017-06-27 17:43   좋아요 0 | URL
오, 좋은 댓글이네요, 고양이라디오님.
고양이라디오님께 용기를 내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글이라면, 저 스스로에게도 참 만족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용기를 내요!

보슬비 2017-06-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주말고 절주해요~ 우리~~~~ ㅋㅋㅋㅋ 요즘 제가 그래요.
술 때문에 나이 듦을 느껴요. -.-;;

다락방 2017-06-28 08:24   좋아요 0 | URL
아휴 술 많이 마셨더니 다음날 너무 피곤하고요 ㅋㅋㅋㅋㅋ 절주...해야겠군요. ㅋ
조금씩만 마셔야 되는데 월요일에 저도 모르게 그만 들이부었네요. ㅎㅎㅎㅎ

비연 2017-06-28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끊겠어! 앞에 오늘까지만.. 이라든가 이번주까지만.. 이라든가 이런 말들이 숨겨진 거죠?ㅎㅎ
저랑 한번 와인 마셔야죠, 락방님!

다락방 2017-06-28 08:2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다음번 술 마실 때까지만? ㅋㅋ
비연님, 그러게요. 우리 와인 한 번 마셔야죠!
우리가 알라딘 내에서 알고 지낸게 대체 얼마입니까!!
 


















오늘 출근길에는, 개봉할 당시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를 다시 보았다. 물론 아직 40분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12년만에 다시 보는 영화는 처음부터 새로웠다. 첫 장면은 그들이 만나기 7년전으로 시작하는데, 그러니까 2005년에 개봉한 영화이니 대략 1998년을 보여주는 것일테다. 그때 애쉬톤 커쳐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계속 웃었다. 스타일이 아주 구린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쉬톤 커쳐는 저 긴 머리를 자꾸 손으로 귀 뒤로 넘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머리 잘라주고 싶어서 돌아버리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머리 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그렇지만 남의 외모에 뭐라고 하면 안되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머리 보는데, 아아, 역시 헤어스타일 중요하구나 싶었다. 애쉬톤 커쳐가 하나도 안멋있어 보이고 찌질해 보이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헤어스타일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속에서 아만다 피트와 애쉬톤 커쳐는 뉴욕으로 가기 위한 공항에서 처음 눈이 마주치고, 비행기 안에서 어, 특별(?)해진다. 그렇다해도 아만다 피트는 애쉬톤 커쳐와 그저 스쳐지나가려 할 뿐, 깊은 관계 혹은 아는 사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쉬톤 커쳐는 자꾸 아만다 피트에게 말을 걸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지하철 안에 나란히 앉아 애쉬톤 커쳐가 자신에 대해 블라블라 하면서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되었다'고 말한다. 



- 졸업은 6월에 하잖아?

- 그렇지.

- 그럼 1년 가까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 둘은 술을 마시러 가는데, 거기에서 애쉬톤 커쳐는 자신이 지금은 백수지만 앞으로 5년 길어도 6년 뒤에는 사업을 하고 있을 거고, 집도 있을 거고, 아내도 있을거다, 라고 장담을 한다. 6년후에 울부모님께 전화해서 나 찾아라, 내가 어떤지 봐라, 하고는 자기 부모님 연락처를 아만다 피트에게 건네는데, 그 뒤로 그들은 헤어지고 3년후에 아만다 피트는 수첩에서 그의 부모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보게 된다. 애인하고 헤어지고 얼마 안 돼 너무 외로웠고, 그래서 아는 남자들한테 다 연락해봤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는데, 아아, 이 놈은 당장 만나겠다고 한다. 3년 만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둘이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가는데, 식당에서 이들은 장난을 친다. 서로 물을 내뿜고 식탁 밑으로 들어가고 그런 장난을 치는데, 그거 보면서 새삼, '잘 맞는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저것도 둘이 맞으니까 장난치는거지, 아니, 식당에서 입에 있던 물을 나한테 '장난으로' 뿜는데, 거기다 대고 어떻게 웃으면서 나도 뿜을 수가 있담? 자기들은 낄낄대며 좋아하는데, 이런거, 장난이나 농담은 서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게 아닌가 말이다. 영화속의 아만다 피트니까, 애쉬톤 커쳐니까 저게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쩌면, 저 장난에 대해 누가 '듣는 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애매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만약 둘 중에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장난을 쳤어' 라고 했을 때, 듣는 사람이라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식당에서 그래?' 라고 말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은가 싶은 거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헐, 이게 뭐지' 하고 얼굴을 붉힐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 리액션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장난은, 내 경우에, 상대가 누구라도 싫을 것 같긴 하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우리가 애정을 가진 상대에게 허용 범위를 더 넓히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실제로 해보고 또 들어보지 않나.



"나 원래 그런거 싫어하는데, 니가 하니까 괜찮네?'



하는 거 말이다. 애정을 가진 상대에 대해서라면 내가 '안된다'라고 선을 그었던, 나름대로의 룰을 정했던 것들이 많이 지워진다. 응, 너니까 이거 괜찮아, 응, 당신이니까 괜찮아, 하면서. 



그러나 영화속에서 애쉬톤 커쳐와 아만다 피트는 사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애정을 고백한 것도 아니다. 그저 만났고 장난을 쳤을 뿐이었다. 아직 40분 밖에 못봤고, 물론 나야 결론을 알지만, 그래도 그 뒷부분을 봐야 알겠지만, 만약 '이정도가 내게 아무렇지도 않다' 혹은 '이정도도 즐겁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어? 왜지?' 하고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나는 그 상대를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빨리 뒷부분 보고 싶은데 내가 회사라서 너무 짜증난다.

이놈의 회사는 언제나, 뭘 해도 걸리적거려. -_-

책도 읽을 수가 없고 영화도 볼 수가 없고.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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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술을 끊겠다!
    from 마지막 키스 2017-06-27 08:37 
    남자랑 여자가 알고 지낸지도 6년쯤 되었다. 6년간 매일 만난 것도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난 후에는 3년후에 만나고, 그리고 나서는 2년 후에, 그리고 나서는 1년 후에... 식으로 몇차례 만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웃게 하고 서로의 우울함을 달래준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남자는 뉴욕의 공항에서 갈등한다. 엘에이에 사는 여자에게 가고 싶은 마음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가야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이
 
 
비연 2017-06-26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회사는 언제나, 뭘 해도 걸리적거려. -_- ...

이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담아 커피를 뿜....ㅎㅎㅎ;;;;

다락방 2017-06-26 10:01   좋아요 1 | URL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게 해요, 회사가. 에잇.
집에 가고 싶어요 비연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나 그랬듯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저도 요즘 딥 빠져든 홍차의 세계에 일상이 거치적거리네요

ㅋ언제나처럼 넘 사랑스러븐 우리 락방님!!!
만쉐입니다♡

명문가..나를 돌아볼일이다ㅠ머를 드시고 늘 그렇게 똑똑하신거에요?

(저는 매니아..스톡허 아님ㅋ)

다락방 2017-06-27 15:06   좋아요 1 | URL
아이참 클래비스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뭐가 똑똑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껏 좋아하며 춤을 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생각할 때 무례함과 독재는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는 레닌이 자신의 정치적 유서를 구술시키고 후계자가 될 만한 사람을 고를 때, 스탈린의 큰 결점을 ‘무례함‘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독재자‘로 감탄스럽게 묘사되는 지휘자들이 보기 싫었다. 최선을 다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독재자들, 지휘봉을 잡은 황제들은 그런 표현을 즐겼다-마치 오케시트라를 채찍질하고 멸시하고 굴욕을 주어야만 그들이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듯이. (p.120-121)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그는 항상 자신의 예술이 반귀족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부르주아 코즈모폴리턴 엘리트 층을 위해 작곡을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그에게 바라듯, 교대 근무에 지쳐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거리가 필요한 도네츠 광부들을 위해 작곡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잘 즐겨주는 이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p.135-136)

모스크바 밖에 있는 별장에 가면 제일 먼저 우편이 믿을 만한지 확인해보려고 자기 앞으로 엽서부터 보냈다. 때로는 이런 행동이 살짝 도를 넘을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넓은 세상이 통제 불가능하게 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만이라도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 그 영역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p.199-200)

1936:1948:1960. 그들은 12년마다 그를 찾아왔다. 물론 매번 윤년이었다.

‘그는 자존심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표현에 불과했으나 정확한 표현이었다. 권력층의 압력을 받다보면 자아는 금이 가고 쪼개진다.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는 영웅으로 살아간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아니면, 더 흔한 경우는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도 겁쟁이로 산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도끼날에 반으로 쪼개진다. 차라리 산산시 쪼개져서 조각들이-그가-한때는 딱 들어맞았음을 헛되이 기억하려 애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p.223)

그의 친구 슬라바 로스트로포비치는 예술적 재능이 위대할수록 박해를 더 잘 견뎌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맞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슬라바에게는 확실히 맞았다. 그는 어떤 경우건 낙관적인 성향을 잃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더 젊고, 예전 시대가 어땠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또는 영혼이, 신경이 박살 났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일단 신경이 망가지면 바이올린 줄을 갈듯 바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영혼 속 깊숙이 뭔가가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뭘까?-어떤 전략적인 교활함, 세상물정 모르는 예술가인 척할 수 있는 능력,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자신의 음악과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결심뿐이었다. 그는 드디어 이렇게 생각했다-생기와 결의가 다 빠져나가버려서 기분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기분으로-어쩌면 이게 오늘 치러야 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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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리라는 건 이미 각오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나누고 싶었다. 온화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는 관계를 그녀에게 청할지도 모른다. 미련퉁이 같은 짓이지만 최소한 끝이 아니라 당분간 관계의 중지라는 것으로라도 하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각자의 인생이 이 지점에서 충분히 멀어졌을 무렵에 조용히 재회하는 그때까지, 잠시 동안의 관계의 중지…….(p.295)



















아직 쓰기전이라 어떤 글이 나올지 나도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스포일러 팡팡팡팡파바바방 터지지 않을까 싶으니, 피해가실 분들은 알아서 피해가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스포일러인지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고, 제가 할 말이 아주 많은데,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 글은 쓰긴 쓸것인가...이만큼까지 쓰면서도 잘 모르겠고..... 


글..뭘까요?

인생 뭘까..

페이퍼 뭐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 후에, 자, 글 쓰러 갑니다. 슝-





천재 기타리스트 '마키노'는 그의 나이 서른여덟(38)에 일본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그 콘서트에 왔던 관객중 한 명이자 업무차 아는 사람의 지인인, 기자 '요코'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요코의 나이는 마흔. 요코는 마키노보다 두 살 많았다. 콘서트 뒷풀이 자리에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와, 세상 편한 이야기 상대고 서로 어떤 말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데 막 이 둘은 서로의 얘기를 이해한다. 밤이 깊어가지만, 뭐랄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 날, 마키노는 요코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밤, 그들이 처음 만나 이야기만 나누었던 밤, 그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밤인데, 그들은 서로에게 각별한 사람이 된다. 다시 만나서 이야기나눌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때 연락처 받은 걸 계기로 둘은 간혹 연락하게 된다. 요코는 이라크로 취재차 가있었는데, 일본에 있는 마키노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연락을 하고,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후에 그들은 파리에서 재회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고 그들로서는 두 번째 만나는 것이며 또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인데, 그 만남에서 마키노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요코도 마키노에게 강하게 끌리고 있지만 자신에게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한 후, 스페인에 가 공연을 마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 마키노에게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대답한 뒤에 약혼자와는 파혼했다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밤, 사랑을 확인한 밤, 같은 사건을 공유한 밤을 보내게 되고, 그렇게 연인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밤, 그 아름다운 밤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만 했던 사정으로 그들의 어떤 육체적 사랑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런 채로 마키노는 다시 일본으로 날아가고, 그들은 그렇게 스카이프로 매일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 후에 일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자 그때 어떤 일이 생기냐면,



마키노를 아주 강하게 사랑했던 여자 '사나에'가 끼어든다. 사나에는 마키노의 매니저였고, 인생 목표가 마키노인 여자다. 그런 여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마키노가 잘되기만을 바라는 여자가, 갑자기 등장한 '요코' 때문에 모든게 틀어진다고 생각하고, 요코란 여자가 마키노에게 너무 특별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일본에서 요코와 마키노가 며칠간 함께 보낼거란 걸 알고 절망하고 우울해한다. 그러나 참,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러는지, 부득이한 사정으로 사나에가 마키노의 핸드폰을 잠깐동안 가지고 있어야 했고, 사나에는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과 그렇지만 나는 마키노가 아니면 안돼,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 자신이 마키노인척, 마키노의 핸드폰으로 요코에게 긴 이별통보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내가 가장 싫어했던 건 베른하르트의 '끼어들기' 였다. 베른하르트는 에미의 남편이고, 그러니 아내가 흔들리는 걸 참을 수 없었을 거다. 그러므로 아내의 정신을 쏙 뺏어간 다른 남자에게 자신이 이메일을 보내는 거다. 나는 이걸 반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해서 내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있다. 그게 베른하르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사나에는 마키노를 사랑했다. 마키노가 기타리스트로서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그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 투자한다. 자신은 마키노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요코는 스스로 능력있는 여자다. 마키노가 아니어도 자신이 혼자서 뭐든 이룰 수 있는 여자. 몇개국어가 가능하며 사랑하는 남자도 있고 자신의 커리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이미 너무 가진 게 많은 여자. 그런데 마키노까지...나는 마키노뿐인데... 그녀는 그 순간, 마키노의 핸드폰이 자기 손에 들어왔고, 그들이 만나서 며칠간 함께 보낼거란 걸 안 순간, 그러면 모든 게 끝나버린다고 직감한 순간, 그래서 스스로도 '해서는 안될 짓'이라고 생각한 짓을 해버리고 마는 거다. 헤어져, 헤어져, 헤어져, 내가 사랑해. 이게 사나에의 속마음이었는데, 이 간절한 사랑은 응답을 받는다. 사나에의 '간절한' 바람대로, 그래서 사나에가 쓴 방법으로 인해서 마키노와 요코는 헤어지게 되는 거다. 시간은 흐르고, 마키노는 사나에에게 프로포즈 했으며 사나에는 이제 그의 곁에서 그의 헌신적인 아내로 살면서 임신까지 하게 된다. 순간순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죄책감을 좀 없애보고자 자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도 생각하지만,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이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건 요코'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 말했고 자신과 결혼했으며 자신과 함께 살고 있지만 사나에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사이사이, 그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차에 사나에는 남편의 콘서트 티켓을 끊고 있는 요코를 발견하게 된다. 뒷모습만 보고도 알아보고 그녀에게 오랜만이라며 잠깐만 얘기하자고 한다. 사나에로서는 너무나 불안했다. 여기까지 쌓아온 것, 이만큼 이뤄놓은 것, 이제 안정된 것이 그녀의 재등장으로 인해 다 부숴져버릴까봐. 아무도 모르게 객석에 앉아있다고 해도 남편이 한 순간에 요코를 알아볼 것임을 그녀는 안다. 그녀로서는 요코의 재등장이 너무 싫고 끔찍하다. 요코가 싫다. 그래서 그녀에게 콘서트 보지말고 가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니까 '또' 끼어드는 거다. 남편과 요코 사이에. 이제는 자기가 아내니까, 그 사람이 자기 남편이니까, 남편을 흔들리게 둘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대화속에서 요코는 그때, 오래전에, 자신에게 이별통보를 보낸 사람이 마키노가 아니라 사나에 였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각자의 삶을 살게된 후에...





사랑을 위해서는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짓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뻔뻔함에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키노를 위해 나는 저토록 낮은 곳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 하고 요코는 불안해졌다. 어쩌면 그런 방법을 동원할 것도 없이 마키노에게서 사랑을 받아버린 자신에 대한 통렬한 복수인 것 같기도 했다. (p.407)




사랑을 잃고 아파할 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니가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봐, 라며 내가 온몸으로 이별을 막아내기를 조언했다. 그 방법들은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낮은 곳까지 떨어지는' 행위였다. 그렇게 낮은 곳까지 떨어져서 이 사랑을 잡아야 하는걸까, 머릿속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낮은 곳까지 떨어져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역시 그런가' 하는 생각을 오래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낮은 곳까지 나를 떨어뜨릴 수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 낮은곳까지 나를 떨어뜨리는 행위였다. 내가 그렇게 하면, 내가 그렇게 낮은 곳까지 떨어지면,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를 내내 고민했지만, 내 고민의 끝에 나오는 답은 '아니'였다. 내가 낮은곳에 내려가야만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니, 거기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달아나지 않기를, 내 삶을 이루는 모든 과정에서 언제나 단단한 축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항상 사소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사양 않고 낮은 곳으로 떨어져야 하는 거라면.... 이미 한 쪽이 낮은 곳으로 떨어져야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서로가 사랑한다'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닐까. 바닥까지 떨어진 뒤에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면, 그게 ..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사나에를 보면서, 정말 사나에는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 살게 되고 그의 아이를 낳게 되어서, 와 세상 행복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어, 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과 생각을 하는 틈틈이, 나도 그랬어야 했나, 나도 밑바닥까지 떨어져서 어떻게든 그에게 달려들어야 했나, 그랬다면, 그랬다면 그는 지금쯤 내 옆에 있을까? 그렇게 했어야 하는걸까? 지독하게 사랑한다면 역시 지독한 과정을 겪었어야 했나.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그리움에 허덕이지 않고 내 옆에 그를 세워둘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여전히 나와 다정하게 일상을 공유하고, 내가 그의 아이를 낳고, 매일 아침 함께 눈을 뜨고.....하는게 가능했을까? 그러면 나는 '내가 이렇게 처절하게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건져올린 위대한 사랑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매일을, 매순간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내 옆에 두어야 했을까? 사랑하니까? 



나쁜 방법을 좀 쓰면 어때? 결국 사랑을 이뤘잖아?



이룬건가, 지금 이게??





나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생각하고 시계를 과거의 그때로 돌려봐도,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나는 내가 그와 같은 선, 같은 높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 쪽이 기울어 훨씬 낮은 곳에 있다면, 다른 한 쪽은 당연히 훨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나는, 상대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나와 함께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하면서 내 옆에 있기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가 그렇게 바닥까지 떨어진다면, 나는 그보다 높은 위치에서 그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내려다보면서 사랑하고 싶지도 않고, 올려다보면서 사랑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마주보고,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하고 싶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쩌면, 멀찌감치 떨어지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나에처럼 할 수는 없을거다. 그런짓까지 하는 나를 나 스스로 용서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런 한편, 



그렇다면, 사나에가 나보다 더 마키노를 사랑한 거 아닌가?



라는 당연한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건 아닌건가? 그래서 '그렇게까지' 할 순 없는건가? 그렇다면 그 사랑은,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차지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내 사랑은, 충분히 크지 못했나?





그리고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과 내가 만날 운명.

아무리 사나에게 끼어들어 긴 이별의 문자를 보냈다한들,

마키노와 요코가 그때와는 다른 방법으로 서로에게 얘기했다면, 그러니까 조금 더 상대에게 '왜'냐고 묻고, 그러니까 뭔가 다른 식의 액션을 취했다면, 그랬다해도 그 사랑이 그대로 무너졌을까? 

분명 사나에가 중간에 끼어들긴 했지만, 사나에가 아니었어도 그들은 그 시점에서 무너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다른 계기로 그들은 서로를 선택하지 못할, 그런 운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흘러 요코도 마키노도, '그 때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달라졌을까'를 생각한다. 왜 그 때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시간은 그들에게 '아직은 이만큼'만을 허락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은 이만큼' 이라는 건, 그 다음을 기약한다.

그들은 그때 고작 그렇게밖에 하지 못해서 서로의 인생에 서로를 담지 못한 채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그사람뿐이다 라는 걸 인식하고 있고, 그러면서 '그런 사람은 이제 다시는 못만나'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상대를 사랑한다. 이 남자랑 살고 애를 낳으면서 그를 그리워하고, 이 여자랑 살고 애를 낳으면서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때에 서로를 선택하지 못하고 지금 이렇게 되었지만, 사실 아주 많은 대화들이 지금의 옆에 있는 사람보다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더 즐거울 거란 걸 안다. 그렇게 속으로, 상대에게 할 말을 쌓아둔다. 이젠 말할 수도 없는데. 



그는 왜 요코와 스카이프로 대화하던 무렵에 이 책을 잃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화제들이 너무도 많이 쌓여 있었다. (p.353)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는 요코의 습관을 마키노는 알고 있었다. 사실 고작 그들의 '만남'은 세 번뿐이었지만. 마키노가 언제나 자기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요코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키노가 말을 꺼내면, 요코는 어떤 말인지 듣기도 전에 이미 웃음부터 지었다.



"꽤 오래된 지인 중에 텔레비전 프로듀서가 있는데 부하직원이 뭔가 좀 특이한 아가씨여서……."

단지 거기까지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요코는 벌써 우습다는 듯 하얀 이를 내보였다.

"네에, 그래서요?" (p.125)




그래서 마키노는 요코와 함께라면 자신의 세상이 달라질거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와도 이만큼 가까이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요코라면 아주 다양한 화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요코와 『베니스에서 죽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화제는 무엇이라도 좋았다. 아무튼 무턱대고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이번에는 단둘이서만, 좀 더 시간을 들여서.

함께하면서 그토록 평온함을 느끼고 지적으로 자극받고 무엇보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상대를 마키노는 그녀 말고는 결코 알지 못했다. (p.59-60) 




마키노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누구와 함께 있는 것 자체를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요코를 통해 자신은 다시 한 번 이 유럽이라는 세계를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 앞으로 알게 될 것에 대한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녀와 늘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미래는, 애초에 그녀를 만날 일이 없었던 미래와는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p.154)




나는 사나에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최대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므로 어쩌면 내 사랑을 이루어내지 못한채로 이 생을 지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사랑의 크기가 사나에보다 더 작은것처럼 여겨지게도 만들지만, 나는 내가 사나에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이런 면이 사랑을 유지하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내가 밑바닥까지 떨어지려 하지 않는 면을 사랑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연애든 결혼이든 선택하고 나서 대체적으로 만족하기도 하지만 또 아주 많은 경우에는 일정부분의 체념을 안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의 나의 선택에도 그런 체념은 끼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의 선택에는 체념이 없기를 바란다. '이럴 수밖에 없었지' 라는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내 남은 생을 채워나가고 싶진 않다. 만약 내가 누구를 선택해서 옆에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의 최선이길 바라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최선이길 바란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여야만 돼'가 우리가 서로를 선택한 이유이기를 바란다. 




다시 운명으로 돌아가서.

당신과 내가 운명이라면, 결국 만나게 될까?

내가 당신을 바라고 당신이 나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우리가 운명이 된걸까?

아니면 우리는 어차피 만나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그렇게나 바라고 바라는걸까?



마키노는 요코를 생각하고 요코도 마키노를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없어' 라고 생각하다보니,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그 사람의 소식을 좇는다. 그러면 몸이 움직이기 마련.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게나 서로를 사랑하는데도, 만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돌고 돌고 돌아서, 숱한 돌부리들에 걸리고 넘어지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닿기까지 아주 한참이 걸리고 힘이 들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작 몇 번의 만남에 서로를 깊이 사랑하기도 하고, 심지어 섹스도 없었는데 평생의 사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딥 럽....deep love.....



딥 럽..



딥 럽........ 




갑자기 블리딩 러브.. 생각나는 군.

킵 블리딩 킵킵 블리딩 럽~





그러나 최소한 이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그를 향한 사랑 안에 머물고 싶었다. 지금까지 단 세 번을 만났을 뿐이지만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 음악이 앞으로 내달려갔다. 이 한때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그녀는 기도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기를. (p.480)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연인으로서도 사랑하지만, 인간으로서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깨달았다. 그러보고니 정말 그랬다. 나는 그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해야 했다. 그게 가능해야 사랑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랑한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당신은 알아야 한다.



그녀는 마키노를 사랑하고 있었다.

때때로 가슴이 미어질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의 충동도 경험했지만 그것과 동시에 그녀는 마키노를 뭐랄까, 인간으로서 완전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와 마주하면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대화가 인생의 기쁨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것은 거의 불가사의하다고 느껴질 만큼 기적 같은 일이었다. (p.267) 





그나저나 책 진짜 좋네. 이승우 소설도 그렇고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도 그렇고. 사랑에 대해 공부하고 알고싶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진짜 그 어떤 이론서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출근길부터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장 안읽었는데 너무 좋다. 뭣보다 리베카 솔닛이 얼마나 생각이 많고 또 깊은 사람인지 문장마다 느껴지는 거다. 게다가 겁나 똑똑해. 나는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의 글이 진짜 너무 좋은데, 그런 사람이 똑똑한 건 진짜 축복이다. 너무 멋져... 

나도 그런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사람. 계속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이고 싶다.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을 읽는 것도 너무 신나고, 생각이 많고 깊은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또 너무 신나서, 아아, 책은 정말로 좋은 것이구나, 한다.



그렇지만 마티네의 끝에서, 는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나서도 한동안 나를 쥐고 놔주질 않았어... 어휴, 되게 이 책에 휘둘린 느낌이다. 너무 사로잡혀서 좀처럼 다른 책을 읽을 생각을 못하겠더라. 이야기는 힘이 세구나, 절감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계속계속 생각할 거다.

바닥까지 내려가 이루게 되는 사랑과, 돌고 돌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결국 당신에게 닿는 운명이란 것에 대해서.




그와 함께 있을 때의 자신에 대해 요코는 인생에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종류의 애착을 느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얻은 것만 같았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와 다른 어딘가에 있었을 때의 자신과는 다르게 기분 좋은 것이어서 집에서 혼자 있을 때조차 그가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계속 그런 자신으로 남고 싶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앞으로 그런 자신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단지 추억 속에만 있을 뿐. 그리고 그 '구멍이 뚫린 듯'한 가슴속의 공백에는 이제 한없는 쓸쓸함만 스며들었다. (p.285)






마키노는 예전에는 당연한 듯 가득 채워졌던 창조적인 삶의 충실이 하필 지금 이런 때에 자신에게서 완전히 빠져나간 불우함을 저주했다. 만일 음악가로서의 행복과 요코의 존재가 가져다준 행복이 일치했다면 오늘 이 시간을 얼마나 환한 환희와 함게 보냈을 것인가.
그는 자신이 결코 후자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악은 그의 삶의 근거이고 그가 자신에게서 찾아잴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고 보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연주가로서 패기를 잃은 것이 너무도 창피스러운 요즘 같은 상태로는 언젠가 요코와의 사랑조차 결코 마음껏 누릴 수 없으리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p.206-207)

자릴라는 왜 마키노에게 PTSD 에 관해 털어놓지 않느냐, 분명 기댈 곳이 되어줄 게 틀림없다고 몇 번이나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요코는 그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전에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 혹시라도 마음대로 마키노에게 그런 얘기를 전하기라도 한다면 너와의 신뢰 관계는 끝나버린다고 선언했다. (p.234-235)

요코와의 새 생활에 거는 마키노의 기대감은 막연하나마 이전보다 한층 부풀어 있었다. 그녀 앞에서 최소한 우울한 표정은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컴퓨터 모니터 너머로 얼굴을 마주하면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저절로 웃음이 났다.(p.238)

요코는 감은 눈꺼풀 틈으로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느끼고 미간을 떨면서 그것을 꾸욱 견뎠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왜일까?‘라고 다시금 물었다. 왜 자신은 그와 따로 떨어져 사는 인생을 걷게 되고 만 것일까…….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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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6-2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닥 끝까지 내려가는 사랑, 자신이기를 포기하는 사랑은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 순간 자신의 선택이니까요. 사나에가 다른 사람, 특히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면서 함께 있을 때 행복했을지 어쩔지 모르겠어요. 불안함이, 항상 드리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예요. 그런 거 보면 사나에가, 너무나 미운 사나에가 불쌍하기도 하구요.

리뷰 읽다가 이 책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의 이 부분이 생각나더라구요.

우리는 지속되는 관계가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들지라도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우리는 지속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즐겁다 해도 - 아무리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고, 자신을 탈바꿈시키는 경험이라 해도 - 실패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장기적인 안정과 결부시키는 성향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사람들은 감히 그 대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250쪽)


< 마티네의 끝에서>를 너무나 읽고 싶지만, 그 책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다락방님의 이 리뷰만큼은 못할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확실하게....

다락방 2017-06-23 14: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그래서 요코도 사나에에게 물어요, 행복하냐고. 사나에는 행복하다고 답하죠. 그렇지만 실상, 그렇게 함께하는 삶에서 ‘혹시 알게되진 않을까‘ 걱정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이게 그래서가 아닐까‘ 생각하고 전전긍긍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 사는데 계속 초조해야 하다니. 아, 그런 삶은 진짜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삶이에요. 그렇게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는 건 무슨 의미일까 싶다가, 그렇게라도 두고 싶었던걸까... 싶기도 하고요. 사랑은 가끔 사람을 못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나에도 자신이 잘한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어쨌든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말이죠...


인용해주신 문장 읽으니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당장 읽고 싶네요. 마리 루티의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이었나, 거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통해있기도 하고요. 아 똑똑한 여자들이 쓰는 책 진짜 너무 좋아요. 저는 지금 솔닛을 읽지만, 마리 루티도 꼭 읽을 거예요. 그걸 읽은 단발머리님이라니...아 너무 좋아... 단발머리님 사랑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7-06-2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3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7-06-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기다리는중이니 책을 읽은후에 자세히 읽을 예정인지라 선공감 먼저 할께요~~^^

다락방 2017-06-23 22:33   좋아요 0 | URL
책 좋았어요, 보슬비님. 그리고 아팠구요 ㅜㅜㅜㅜㅜ

hellas 2017-06-2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끼어드는 순간마다 복장이 터져버려서. 매우 지쳐버린 독서였어요 ;ㅂ;

다락방 2017-06-26 15:44   좋아요 1 | URL
네네, 맞아요, 이해합니다. 저도 답답했어요. 그런데, ‘그렇다면 이들에겐 왜 이런 끼어들기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쩌면 이모든 것이 다 운명인 건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이 아니라 ‘나중‘이 이들이 만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일 처음 문자메세지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통화‘를 했다면 달라졌을거고, 나중에 콘서트때도 요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에 참석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를 생각해보니, 그 끼어들기에 대한 뒤의 행동도 역시 본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었던가..싶은거죠.

무엇보다 끼어들었던 당사자가 저는 내내 초조해했을 생각을 하니, 아아, 대체 이 관계란 무엇인가 싶고요. 역시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 혹은 뜻하고자 하는 바가 단 하나일 경우에는 망가지기 쉬운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