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there for you.



















남자랑 여자가 알고 지낸지도 6년쯤 되었다. 6년간 매일 만난 것도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난 후에는 3년후에 만나고, 그리고 나서는 2년 후에, 그리고 나서는 1년 후에... 식으로 몇차례 만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웃게 하고 서로의 우울함을 달래준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남자는 뉴욕의 공항에서 갈등한다. 엘에이에 사는 여자에게 가고 싶은 마음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가야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이 여자한테 가고 싶은데 다른 쪽에 내 일이 있다... 그리고 남자는 벤처자금을 신청해둔 상태였다. 



얼마전 읽은 《마티네의 끝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방해물이 되는건 여러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서처럼 다른 사람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처럼 '내 욕심' 이기도 하다. 자기가 정해놓은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벤처자금을 받고 자신의 사업을 일으켜야 했다. 그게 그 순간 그에게 당면한 과제였고, 그래서 그는 여자가 있는 엘에이를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벤처자금을 받는데 성공한 그는 환호성을 지르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는 결국 망한다. 시작했던 사업을 접고 부모님이 계신 집에 돌아가야 하는 거다. 분명 5-6년 후면 사업도 성공하고 아내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업도 실패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게 된 것. 



여자는 소소하게나마 사진 찍어 주는 일을 한다. 예식장이나 생일파티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고 있으며, 작게나마 전시회도 연다. 그런 여자앞에 오랜만에 다시, 남자가 등장한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부터 남자는 그녀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본 조비의 <I'll be there for you> 인데, 그 노래로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거다.






아주 오래 걸렸지만, 남자는 자신이 과거에 장담했던 그 모습이 아니지만, 일년전에는 여자와 사업을 두고 갈등하다 사업을 선택했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그녀에게로 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기타도 잘 못치고 노래도 잘 못부르면서. 

이렇게 어렵게 결심하고 용기를 내어 노래했으니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준다면 아름다운 로맨스가 되었겠지만 후훗. 세상은 그렇게 내 맘대로 굴러가는게 아니다. 여자는 약혼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자는 뒤돌아 가야한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고백했음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남자가 사업과 여자를 두고 고민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만약 그 때,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고민하는 대신, 여자에게 기다려달라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있잖아, 내가 안정된 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너와 함께하고 싶어, 그런데 너를 사랑해, 이런 나를 조금 기다려줄 수 있겠니? 라고 말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가끔 우리는 상대와 의논하면 더 나은 문제에 대해서 혼자만 고민하고 제대로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티네의 끝에서》에서도 그랬다. 남자는 자신의 음악생활에 슬럼프를 겪게 되고 이걸 어쩌나 싶어 우울해하지만, 그걸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티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 역시 자신의 앞에서 테러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는 결코 남자에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이 그런 상태, 자신의 어려움과 힘든 점을 서로에게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그 방해에 속절없이 끌려가버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좀 더 굳건한 관계였다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잘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나 요즘 기타가 잘 쳐지지 않아서 마음이 좀 안좋네,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나 그 날 이후의 트라우마로 상담을 받고 있어, 라고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그걸 계기로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를 '잃는' 대신 서로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보다 더 강한 결속력으로 맺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마키노는 예전에는 당연한 듯 가득 채워졌던 창조적인 삶의 충실이 하필 지금 이런 때에 자신에게서 완전히 빠져나간 불우함을 저주했다. 만일 음악가로서의 행복과 요코의 존재가 가져다준 행복이 일치했다면 오늘 이 시간을 얼마나 환한 환희와 함게 보냈을 것인가.
그는 자신이 결코 후자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악은 그의 삶의 근거이고 그가 자신에게서 찾아잴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고 보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연주가로서 패기를 잃은 것이 너무도 창피스러운 요즘 같은 상태로는 언젠가 요코와의 사랑조차 결코 마음껏 누릴 수 없으리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p.206-207)

 

자릴라는 왜 마키노에게 PTSD 에 관해 털어놓지 않느냐, 분명 기댈 곳이 되어줄 게 틀림없다고 몇 번이나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요코는 그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전에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 혹시라도 마음대로 마키노에게 그런 얘기를 전하기라도 한다면 너와의 신뢰 관계는 끝나버린다고 선언했다. (p.234-235)




나 역시 내가 완전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원한다. 내가 좀 더 완성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멋있고 더 똑똑하고 더 근사한 사람인채로 그에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는 자신이 부족하다 여길 것이고, 그러니 좀 더 나은 모습인 채로 상대에게 갈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리가 잡힌 후에, 좀 더 완성된 인간이 된 후에, 우울함은 좀 털어낸 후에, 그 후에 상대에게 가야지, 라고 생각하면, 상대는 물론이고 시간과 상황이란 것이 내 뜻대로 기다려주질 않는다. 상대에게는 그동안 상대의 사정이 생길 것이고, 그리고 나와 상대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주 작은 변화들로 또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것들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주 작은 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진정 강한 사람은, 나의 약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나와 당신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함께 얘기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봐봐, 그러니까 추운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아 춥네, 한마디면, 함께 자고 있다가 안아주게 되잖아, 약한 모습과 우울한 모습 아직 채워지지 않은 모습도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영화 속에서 남자가 자신이 가고 싶은 곳과 가야하는 곳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때 여자에게 '너에게 가고 싶은데 나는 지금 당장은 여기에 가서 이걸 해야해, 이런 나 어때? 기다려줄 수 있겠어?'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혼자 공항에 앉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자 나오는 답은 뻔하니까, 상대에게 물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안정적인 모습이 된 뒤에 상대에게 당당하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정적이 된 후에 상대가 기다려주리란 보장은 어디있지? 또 시간이 흐른다고 자기가 안정적이 되란 법도 없잖아? 영화속에서 남자도 망해버렸는걸? 그러니 안정적 모습이 되기까지 함께 있게된다면, 그들 사이엔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이게 되지 않을까? 혼자 가기에 힘든 길을 같이 가서 좀 덜 힘들게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책 속에서 여자가 트라우마를 혼자 앓고 있었던 것도, 영화 속에서 남자가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것도, 다 내모습인 것 같다. 혼자 고민하는 모습이. 혼자 고민 백날해봤자 쥐뿔 아무 답도 안나와.... 진정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나의 약함을 상대에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해. 





다다다닥 글을 쓰고 있는데 코에서 뭔가 후루룩 나오는 것 같아, 어어, 코피인가, 하고 얼른 휴지를 가져다댔는데, 오오, 콧물이었다. 이 더위에 왜 콧물이 후루룩 나와버리지. 왜 줄줄 콧물이 나오지?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서 내가 지금 상태가 메롱이고, 얼른 집에 가고 싶고, 그래서 앞으로는 술을 끊어야겠다!! 술을 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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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7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7-06-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피 아닌 콧물인거 다행이죠? ㅎㅎ
에이. 다락방님이 술을 끊는다구욧? 거짓부렁~~~~

다락방 2017-06-27 13:59   좋아요 1 | URL
헤헤헤헤 콧물도 이제 안나요. 아침에만 잠깐 났어요.

술 끊을거예욧! 다시 마시기 전까지만요...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끊지 마세요..
그러다 이렇게 당차고 야무지고 야물딱진 리뷰를 못쓰게 되면 우리들은 어쩌나요???정말 어쩌면 좋지요???

다락방 2017-06-27 14:32   좋아요 2 | URL
아니 클래비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래비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진짜 어쩔 수 없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술을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진짜 클래비스님 때문에 술 마시는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ㅑ ㅎ ㅑ ㅎ ㅑ ㅎ ㅑ
원래 예술의 세계란 이렇듯 비정한 법..글때매 술 몬 끊으시는걸로ㅋ

다락방 2017-06-27 14:50   좋아요 2 | URL
그쵸 예술과 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것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6-2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는 참 어려운거 같아요ㅠㅋ 이 글을 읽고 좀 더 용기를 내보겠습니다ㅎ

다락방 2017-06-27 17:43   좋아요 0 | URL
오, 좋은 댓글이네요, 고양이라디오님.
고양이라디오님께 용기를 내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글이라면, 저 스스로에게도 참 만족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용기를 내요!

보슬비 2017-06-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주말고 절주해요~ 우리~~~~ ㅋㅋㅋㅋ 요즘 제가 그래요.
술 때문에 나이 듦을 느껴요. -.-;;

다락방 2017-06-28 08:24   좋아요 0 | URL
아휴 술 많이 마셨더니 다음날 너무 피곤하고요 ㅋㅋㅋㅋㅋ 절주...해야겠군요. ㅋ
조금씩만 마셔야 되는데 월요일에 저도 모르게 그만 들이부었네요. ㅎㅎㅎㅎ

비연 2017-06-28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끊겠어! 앞에 오늘까지만.. 이라든가 이번주까지만.. 이라든가 이런 말들이 숨겨진 거죠?ㅎㅎ
저랑 한번 와인 마셔야죠, 락방님!

다락방 2017-06-28 08:2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다음번 술 마실 때까지만? ㅋㅋ
비연님, 그러게요. 우리 와인 한 번 마셔야죠!
우리가 알라딘 내에서 알고 지낸게 대체 얼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