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비가 오면 회사는 무조건 쉬라고 했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날 집에서 쉬라고 하면 사람들은 빈대떡을 부쳐 먹을 것이고(부추를 사러 시장에 가자!), 막걸리를 마실 것이고, 책을 읽을 것이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해 먹을 것이고(호박을 사러 시장에 가자!)....경제가 살아나지 않겠는가!! ( ")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오는 소리, 비가 오는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지만, 우산을 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끔찍한거다. 어우.. 아니나다를까, 버스 정류장을 가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다가(응?) 물 웅덩이를 밟아 샌들 가득 물이 잔뜩 들어왔다. 생일 선물로 샌들을 받을거라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올해초에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를 차곡차곡 적어두었었는데, 지금은 그 리스트중 단 하나만 살아 남았다. 시간이 지나니 갖고 싶은 욕망이 절로 사라졌던 것. 오, 이 리스트를 만들어 두는게 좋겠구나 했다. 만약 내가 그걸 생일선물 리스트로 적어두지 않았다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내가 사버렸을 테니까. 그랬다면 그건 분명 필요없는 소비였을 것이다. 리스트를 만들어 적을 땐 분명 '너무 갖고 싶어 그런데 돈이 없어, 생일 선물로 받자'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거 없어도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는데?' 가 되어 리스트를 지우게 된다. 여튼 그렇게 리스트중에 하나만 살아남고, 나는 그 리스트에 샌들을 추가한다. 아니, 그런데 내가 지금 샌들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왜 이야기가 이렇게....여튼 샌들이 젖고 발도 젖고 종아리도 젖고....휴- 비오는 날의 출근길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의 출근길보다 정말이지 몇 배는 더 힘들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양재역에 내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으면서, 나는 푸슈킨을 생각했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아, 이 둘 다 진짜 어리석다. 대체 왜 결투를 해, 결투를? 이건 남자들의 허세 아니야? 낭만이 가슴속에 가득 자리했는가본데, 사실 그걸 결투로 표현하다니, 허세잖아!!

















그러니까 나는 어제부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러시아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재미없었다. 알면 재밌긴한데, 아는 과정은 별로 재미도 없고 나는 한 나라의 역사나 배경 같은 게 통 외워지질 않아...이런 쪽의 뇌는 나에게 발달되지 않은듯?? 여튼, 그리고 드디어 제일 처음 실린 '푸슈킨'을 읽었는데, 와, 재미있다! 푸슈킨의 작품 목록을 보며, 으음, 나는 읽어본 게 하나도 없는데 '대위의 딸'을 읽어볼까?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가 오오 아니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자, 하고 얼른 스맛폰으로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크- 단 한 명 읽었을 뿐인데 벌써 장바구니에 책을 추가하다니...더 읽다보면 대체 몇 권의 책을 집어넣게 될까.


여튼, 푸슈킨을 읽으면서, 나의 대학 시절에 나는, 그러고보니, 문학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교양과목으로 작문이랑 문학을 조금 들은것 같은데 이렇게 재미있는 순수 문학에 대한 이야기, 책 속의 주인공들이 왜 그러했고 어떤 기분이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거다. 그러자 나의 대학 시절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그때 내가 문학을 들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나는 대학시절 공부를 엄청 못하고 학사경고를 받는 학생이었는데(그런데도 대학 등록금을 꼬박꼬박 냈다는 사실이 분하다..), 만약 내가 대학때 이렇게 문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면, 나는 장학금 까지는 아니어도 그나마 '공부 좀 하는' 학생 축에 속하게 되지 않았을까? 으휴...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게 부질없지만, 이 러시아 문학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읽노라니 내 대학 시절이 원망스럽기만 한거다. 



나도 문학 강의 듣는 대학생이고 싶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튼 그렇게 푸슈킨을 끝내고 잠이 들었고, 오늘 출근길에서는 두 번째 작가 '레르몬토프'에 대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이름을 보노라면 사실 내게는 다 익숙한 이름들이다. 푸슈킨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워낙 유명해 알고 있었고,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톨스토이,체호프 모두 내가 책을 읽어봤던 작가들이 아닌가! 음..게다가 다 재미있게 읽었었네? 그런데 이 '레르몬토프'는 내가 몰라! 처음 들어봐! 여튼 그래서 신기한 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가 나는 똭-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때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다음 해인 1841년, 이번에는 사관학교 동창인 마르티노프 소령의 아내와 염문을 뿌리다가 결투 신청을 받고 결투 끝에 결국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1837년에 이름을 알리고 1841년에 죽었으니 작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아주 짧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미하일 레르몬토프, p.79)



아니, 이게 뭐냐. 대체 왜 당신들은 결투를 하는겁니까. 결투를 하는 장면이야 영화속에서 보긴 했지만, 이건..너무한거 아닙니까. 한 번의 결투로 목숨을 잃는데, 이런걸 대체 왜 합니까. 그런 결투로 27세에 죽다뇨. 살아있다면 당신은 더 많은 작품을,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살아있다면 당신은 스물일곱이 되기전까지 느꼈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요. 더 오래 살았어야죠. 결투 같은 거 하지 말았어야죠!


사실 그당시 그들에게 결투란, 결투에서의 죽음이란 대단한 명예였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정당함을 방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들이라고 생각이 없는 인간들이 아닐진데, 그들이라고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모를 리 없었을텐데, 그런데도 결투를 한 거라면, 거기엔 그당시의 문화가 크게 작동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그래도, 이 소중한 생명들이 한 번의 결투로 무너진다는 게 나는 실로 안타깝다. 레르몬토프를 읽기 전, 푸슈킨 역시 결투로 목숨을 잃었으니까. 자신이 반한 여인과 결혼한 후 고작 6년을 살고 죽었다. 이게...뭐냐고, 대체.



1831년 2월에 결혼한 푸슈킨은 슬하에 네 자녀를 뒀습니다. 1837년에 죽으니까 결혼생활은 6년밖에 안 됩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 곤차로바는 20대의 젊은 나이였어요. 나중에 한 장군하고 재혼합니다. 푸슈킨은 결투로 죽게 되는데, 계기가 된 건 프랑스군 출신의 황실 장교 단테스와 아내의 염문이었습니다. 아내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결투를 신청하는데, 첫 결투는 단테스가 곤차로바의 언니와 결혼하는 걸로 무마됩니다. 말하자면 푸슈킨과 단테스는 동서지간이 됩니다. 그러다가 1837년 1월, 단테스에게 재차 결투를 신청합니다. 푸슈킨이 투서를 받고 분격해서 결투 신청서를 단테스의 양아버지인 네덜란드 공사 헥케른에게 대신 보냅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내와의 염문 때문에 단테스와 결투하게 된 것이지만, 아내 곤차로바를 눈여겨보던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결투 신청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무튼 결투에서 배에 총상을 입고 신음하다가 사흘째 되는 1월 29일,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알렉산드르 푸슈킨, p.51-52)




염문에 휩싸인 아내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결투를 했다...........글쎄. 이건 기사도정신을 칭송해줘야 하는걸까? 당신은 당신의 아내의 명예를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걸었군요, 하고?? 아내는 어떤 기분일까. 내 염문 때문에 남편이 결투하다 죽었다는 사실을 맞닥뜨렸을 때. 그때 대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이 '결투'란 것에 있어서 심히 불만스럽다. 그건 비단 내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생에 대한 애착이 강한 타입이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살아있기를',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니까.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제 몫을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가 함께 잘 살기를 원하니까. 내 남자가 내 명예를 위해 죽어갔다면, 나는 그 남자에게 감사하기 보다는 평생을 미안해할 것 같다. 내 명예가 뭐라고 당신이 목숨을 잃었나요? 물론 어떤 사람들에겐 명예가 목숨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푸슈킨에게는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치워가면서, 나는, 꿋꿋이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오히려 '누구나 죽는다'는 바꿀 수 없는 진리 앞에 더 두려운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내 명예를 위해 대신 죽어간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쓰다보니 완전 진지해져서 흥분했는데, 그러니까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결투로 죽은 것은 내가 보기에 전혀 멋있지도 않고, 오히려 안타깝고 아쉽다는 거다. 물론, '나의 죽음'은 '나의 선택'이 가져와야 하는 거라면, 그래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뜯어 말렸을거다. 하지마,하지마,하지말라고!! 


싫어...



아직 레르몬토프를 다 읽지 못했고, 앞으로 고골, 투르게네프,도스트예프스키,톨스토이,체호프가 남아있는데,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결투로 죽은 사람이 더는 .. 없겠지? 




정말이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모두들 출근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랬다면 나는 오늘 집에서 엎드리다가, 빈대떡을 먹다가, 고골과 톨스토이에 대한 부분을 읽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여간 우리나라 기업이건 나라건, 뭐 잘하는 게 없다니깐.




오늘 경향신문 1면에는 이런 그림이 실렸다.




출근 준비하며 틀어두었던 라디오에서는, 이근철이 세월호 참사 100일 얘기를 하며 이런 노래를 들려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우산을 받치고, 노래를 듣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이 모든 순간들의 어느 한 켠에 잠시동안 슬픔이 차오를 때가 있다. 어느 한 켠에 늘 박혀있는 것 같은 슬픔이 알은체를 한다. 유가족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여전히 눈물이 핑- 돌고, 내가 이렇듯 일상을 살아내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또 찾아든다. 우리는 지금 모두 '잊지 않겠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살아는 가겠지만, 그렇지만 이 일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살아가는 데 죄책감을 느끼게 한걸까. 



비가 멎었다. 다시 비가 내리면 또 우산을 펼쳐 들어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우산을 말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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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골과 나, 우리의 내적 갈등
    from 마지막 키스 2014-07-25 11:41 
    와- 이 책 진짜 재밌다. 이제 톨스토이와 체호프만 남겨두고 있는데,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다. 나는 사실 '소설'을 읽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 누군가의 교육이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오히려 그런 게 없이 내가 읽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는 거, 그게 진짜라고 생각했다. 느낌은 배움으로 알 수 있는게 아니라고.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에 얽힌 사연들도 다 얘기를 해주니 내가 읽은 책들이지만 참 새롭게 보이는거다. 고골의 책도,
 
 
자작나무 2014-07-2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딱 젖어서 출근했는데 사장님이 불러서 작년 매출이 너무 적다고 모라구 하는군요. 나름 양심을 지키면서 번다고 했는데 회사가 많이 어렵다구 하니 이제 양심을 팔아야 하나 아님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예요. 비는 멎었건만 마음은 마르지 않네요. ㅎㅎ

다락방 2014-07-24 12:41   좋아요 0 | URL
점심은 드셨습니까, 자작나무님?
저는 오늘 전무님이 사주셔서 차돌박이된장찌개를 먹었어요. 아주 맛있었어요. 좀 짰지만..
양심을 팔아야 하나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고민도, 식사 후에 하세요. 음..둘 다 쉽지 않은 선택이네요. 그나저나,

요리사..는 역시 아니셨어요. 그쵸? 훗. 아닐 줄 알았다니깐요!

자작나무 2014-07-24 13:32   좋아요 0 | URL
요리사는 직장인 아닙니까? 돈 벌어야 한다구요! 전 짬뽕 먹구 들어왔어요 ㅎㅎ

다락방 2014-07-24 13:39   좋아요 0 | URL
요리사가 점심에 요리 안하고 짬뽕을 먹는다고요?!!!!!!!!!!!!!!!!!!

자작나무 2014-07-24 14:03   좋아요 0 | URL
요리사는 점심 먹으면 안되나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다락방 2014-07-24 14:11   좋아요 0 | URL
요리사가 점심 먹으러 가면 점심 먹으러 식당에 온 손님들한테 요리는 누가 해주나요?????

자작나무 2014-07-24 14:33   좋아요 0 | URL
전 화수금토 에만 주방에 들어가요.

곽수철 2014-07-24 19: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 다락방 님의, 실례합니다, 자작나무 님을 향한 '합리적 집요' 덕분에 잠깐 웃고 갑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의 웃음, 오랜만이네요.^^

...로그인하기 귀찮아서 이렇게 글 남기고 갑니다~

다락방 2014-07-25 08:3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곽수철님께 웃음을 드렸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뿌듯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4-07-2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다락방님보다 먼저 읽은 책이 있다, 하면서 즐겁게 읽어내려가다, 나는, 마지막 문단에서...

눈물이 핑 돌아요.
한겨레에서는 박재동 화백이 그린 세월호 희생 단원고 아이들의 그림을 매일 보여주고 있어요.
부모님들이 보내는 편지도 있고요. 난, 매일,,,, 거의 매일 그 애들을 보면서... 눈물이 자꾸 나서..
눈물짓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지 못 하는, 내가 너무 바보같아, 매일 눈물만 닦아내요.

오늘이 세월호 100일이라, 오늘 밤에 서울광장에서 추모문화제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아침에 딸롱이 임원엄마들과 만나 밥을 먹는데, 밖을 보면서 계속 기도했어요.
5시까지는 폭우로 쏟아져도 좋으니, 제발 밤에는 비가 안 오게 해 달라고,
모이는 발걸음이 많아지게 해 달라고.
이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다락방님, 지금, 날이 너무 화창한 거 아세요? 제가 기도해서는 아닐지 모르지만,
우산을 접어야 하는 시간이 이렇게 반가운 때가 또 있었나 싶어요.

......

다락방 2014-07-24 17:1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지금 제가 있는 곳도 마치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해요. 퇴근하기 위해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면 또 덥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여태 두 명분 밖에 못읽었지만 ㅎㅎ 이거 읽으니까 여기서 언급하는 책 다 사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나마 고골,투르게네프,도스트예프스키,톨스토이의 작품들은 제가 다 읽은 것들이라 다행이에요. 안그랬으면 죄다 살 뻔 했잖아요. ㅎㅎ

단발머리님.
맛있는 것 많이 드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우리는 아주 씩씩하게 지내요. 씩씩하게 지내면서 잊지 않도록 해요. 그리고 지켜보기로 해요.

2014-07-25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5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닐 게이먼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군단에 속하지만, SF 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나는 SF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머릿속에서 장면장면을 그리는데, SF는 아마도 내가 장면을 잘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튼 그럼에도불구하고 닐 게이먼 이라면 관심있게 지켜보고 그의 책들을 몇 권 읽어보았다. 뭐, 몇 권 안되지만... 어쨌든.


이 책도 처음에는 흐음, 아주 오랫동안 11살인 소녀라니,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싶어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니, 흐음, 포기하고 다른 책 읽을까? 했었는데, 중간이 되기 전부터 와- 흠뻑 빠져들었다. 어제 퇴근길 지하철 안이었는데 내려야 하는게 속상할 지경이었다. 완전 푹 빠졌어. 


주인공은 일곱살 남자아이이다. 페이퍼를 쓰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거다. 뭐지? 이름이 뭐지? 그래서 책을 다시 촤르륵 훑으며 이름을 찾아보려 해도 쉬이 이름이 나오질 않는거다. 왜 책을 읽고난 바로 직후인데 이름이 생각 안나지? 람세스 의 왕비 네페르타리는 아직도 생각나는데? 그러다 작품 해설에서 이런 각주를 보게 된다.



*실제로 주인공의 이름은 작중 명확하게 한 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조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어슐러 몽턴은 주인공을 쫓으면서 "새콤달콤 귀여운 아가(sweety-weety-pudding-and-pie)"라고 부르는데, 영국에는 George Porge pudding and pie 라는 오래된 너서리 라임이 있다. 또, 아버지는 주인공을 "핸섬 조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작품해설 中 p.293)



아이는 열한살 소녀를 만나 이 세상에 들어오면 안되는 존재를 함께 막아내지만 여차저차하여 그 초자연적 존재는 아이의 집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가정부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아이를 제외한 아이의 부모와 아이의 여동생은 모두 그녀에게 푹 빠져서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슐러 몽턴이라는 가정부에게 휘둘리고, 급기야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욕조에 빠뜨려 죽이려고까지 한다. 아이의 엄마는 일을 나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황, 나는 어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 장면들을 읽으며 애가 탔던거다. 엄마는 왜 젊고 예쁜 가정부를 두고 이토록 오래 집을 비우는걸까, 아버지는 어쩌면 저렇게 쉽게 가정부에게 현혹될까, 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 날의 기억을 도무지 잊지 못하겠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아이가 집으로부터 탈출해 자신을 지켜줄 소녀에게로 향하는 길을 힘찬 마음으로 응원했다. 아이는 가둬진 방안에서 탈출을 시도하는데, 그러다가 가정부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나는 창으로 걸어갔다. 커튼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방 안이 들여다보였다.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어슐러 몽턴을 맞은편 벽의 커다란 벽난로 옆쪽에 누르고 자신의 몸을 꼭 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거대하고 높은 벽난로 선반에 손을 댄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있었다. 그녀의 미디스커트는 허리 주위까지 끌어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사실 그때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p.131-132)



아이는 아버지와 가정부가 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너무나 정확히 인식했다. 그래서 더 원망하는 마음이 되었다. 왜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거야-물론 그것이 황당한 말이었지만!-, 왜 아들을 욕조에 빠뜨릴 정도로 분노해놓고 이렇게 바로 다른 여자랑 섹스를 하는거야, 왜 엄마는 집에 오질 않는거야, 왜,왜,왜,왜.......




집에 와서도 잠들기 전까지 나의 책읽기는 계속됐다. 다 읽고 자려고 했지만 졸리기도 하고 오늘 출근길에 읽을 부분은 남겨두자 싶어 잠을 잤는데,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결혼을 했다. 그 남자는 현실에서 내가 한 번 만난 남자사람이었는데, 그 남자에 대해 어떤 남성적 매력을 느꼈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왜 뜬금없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꿈에서 그는 아이를 하나 둔 남자였는데, 나는 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지금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집에서 함께 살았다. 우리에겐 방이 하나 주어졌고, 우린 그 방에서 나와 나의 남편과 남편의 아이. 이렇게 셋이 지내야했다. 남편의 아이는 아직 '아기'였고, 나는 이제 이 아기를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기가 어린지라 남편과 나는 잘 때 우리 사이에 아기를 두고 잤다. 아기가 자다가 밤에 깨서 칭얼대면 다독여주기도 해야했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 하루 이틀 사흘..아기를 가운데 두고 잠만 잤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섹스를 하지 못했고, 이것은 스트레스가 되었다. 자고싶다, 남편과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으로는 아이를 다독이고 있노라니 아기가 밉게 여겨지는거다. 그런 생각이 치밀때마다, 아니야, 나는 이제 이 아기의 엄마야, 섹스보다 아기를 생각해야해, 라고 생각하며 자꾸만 삐져나오려는 욕망을 억눌렀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아무리 내가 이 욕망을 죽여야 하는 아기의 엄마이다, 라고 생각해도 남편하고 자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루는 그런 나를 보다못해 나의 엄마가 '아기를 내가 맡을테니 너희들 둘이만 자거라' 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러길 원하지 않았다. 아기를 자기 옆에 두고 싶어했다. 나는 헤어지자고, 이혼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뭐야, 결혼했는데 남편하고 잠도 못자고 아기만 볼거면 이걸 뭐하러 해, 라고 원망하면서...그러다가 나의 엄마가 모두 대중목욕탕에 가자고 했고 어쩐일인지 나와 나의 엄마와 남편은 대중목욕탕에 함께 갔다. 목욕탕에서는 옷을 홀딱 벗고 목욕을 해야하는데, 나는 아직 남편하고 잠을 잔 적이 없으므로 옷을 벗는다는 게 부끄러웠고, 그래서 옷을 입은채로 샤워를 해서 옷이 흠뻑 젖었다. 알람이 울렸고 그러다 잠에서 깼다. 


깨고나서도 너무 짜증이났다. 뭐야, 결혼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섹스 한 번 못하고 깬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신경질나. 그렇게 아침을 먹고 그렇게 출근준비를 하다가 어제 읽었던 책이 퍼뜩 생각이 난거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의미없는 꿈이 꿔진거야? 하다가 아! 오솔길 끝 바다!! 아빠가 가정부랑 섹스한 걸 엄마가 없는 집에서 아이가 봤지! 이 책 때문이었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친거다. 아이구야 .... 나는 책읽기를 이제 그만두어야 하는 것일까? 



결혼까지 했건만 대체 왜...............Orz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양재역에서 나는 회사까지 두 정거장 되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산을 받치고 버스로 두 정거장 되는 길을 걷기가 좀 힘들것 같아서. 그러나 내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는 막 출발한 뒤였고, 다음 버스는 11분 후에 온다고 안내표지판에서 불빛이 깜빡였다. 11분..이라니. 아놔...그걸 어떻게 기다리냐. 하는수없이 나는 걷기로 했다. 11분 기다렸다 버스 타고 두 정거장 내려서 가는거나, 그냥 안기다리고 지금 회사까지 걸어가는거나 시간은 비슷하게 걸릴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안한 채로 기다리기'만' 11분을 할 자신이 도무지 없었던거다. 그래서 우산을 받치고 걸었다. 비는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고 샌들이 젖었다. 우산을 받쳤는데, 이 우산이 강남길 한복판에서 5천원주고 산 싸구려3단우산이라 그런지 가끔 빗방울이 우산 안에서 떨어졌고 ㅠㅠ, 내 덩치에 3단우산은 작은건지 어깨도 젖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뭔가 흠뻑 젖은 기분이었고, 축축했고, 매우많이 힘들었다. 그러자 또 오늘 아침 깨기전까지 꾸었던 꿈 생각이 났다. 아! 옷 입고 샤워해서 흠뻑 젖었던 꿈!! 이렇게 비오는 데 걸을려고 그런 꿈을 꿨구나!!!!!!!!!!!!!!!!!!!!!!!




하고 싶은 건 못하고 힘들기만 했던 아침을 보내고나니 배가 몹시 고파서, 점심은 무려 만 원이나 하는 뚝불을 먹었다. 오오, 양이 너무 많은 거 아냐? 하고 걱정하는 척하면서 신나게 먹었다. 커다란 뚝배기를 쓱쓱 다 비워냈다. 








 













이창래의 책 《만조의 바다 위에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라딘의 d 님으로부터 듣게되어 이창래의 이름을 넣고 검색해봤다. 어떻게 생긴 책인가 보자, 하고. 이창래의 이름을 검색하자 저런 책들이 나란히 떴다. 이창래란 이름을 넣고 주루룩 뜨는 저 책들을 보노라니 뭔가 경이로웠다. 내 이름을 쳐 넣었을 때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여러개 검색된다는 것. 그건 어떤 기분일까? 내 이름이 새겨진 책 표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데, 그 책들이 여러권 있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텐데,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중 몇 개를 혼자 만들어내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이건 너무나 근사하잖아. 대단히 으쓱하며, 대단히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닌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세상 곳곳에 떠돈다면 나는 대체 매일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까? 




어제 같이 밥을 먹은 친구는 이 책, 《유빅》을 시작했다며 가방에서 이 책을 꺼내어 내게 보여줬다. 나는 책을 받아들고 제일 처음, 늘 그렇듯이, 작가 소개를 읽었다. 그러다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1928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일생을 보냈다. 미숙아로 태어난 직후, 쌍둥이 누이를 잃는 등 불안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안전강박증에 시달렸고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불안한 삶을 살았다. 1952년에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36편의 장편소설과 100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딕은 평생을 생활고에 시달렸고, 죽기 몇 년 전에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작가소개 中





불안한 유년 시절, 마약 중독,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불안한 삶. 그러한 그의 삶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36편의 장편 소설을 써냈다는 거다. 100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는 거다. 불안한 삶을 자신의 상상속에서는 다른 것들로 바꿨던걸까? 나는 아직 필립 K 딕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본 게 없는데, 이 사람은 살아생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어느틈에 유명해지고 널리 알려져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까지 번역이 되고 있다. 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만든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마음을, 여기가 아닌 저기 저 먼,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읽는다는 것. 그건 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서 어떤 생각,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까? 가끔 그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고 슬픔을 주고 또한, 말도 안되는 꿈을 선물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면서 꾸는 꿈이, 누군가의 머릿속 환상들이, 그것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때문이라면, 와- 진짜로 어메이징한 게 아닌가! 




저녁은 뭘 먹을지 생각해봐야겠다. 집에는 김치찌개가 있는데...




밑에는 《오솔길 끝 바다》 의 밑줄!



"중요한 걸 하나 너한테 말해줄게. 어른들도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의 모습이 아니야. 바깥에서 보면 그들은 크고 배려심도 없고 언제나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있지. 하지만 안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야. 네 나이와 다르지 않아. 진실은, 어른이란 없다는 거야. 이 넓은 세계 전체에 하나도 없어." (p.185)

"너는 네 삶을 살아야지. 레티가 네게 준 삶 말이야. 너는 계속해서 자라고, 시도 하면서, 그것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해."
억울함이 번뜩였다.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살아남고 세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것, 그렇게 그럭저럭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만으로도 힘드었다. 무슨 일을 했을 때 그 일이 누군가의 것을‥‥‥죽지 않았다 쳐도, 그녀의 생명을 기꺼이 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도 힘들었다. 이건 공정하지 않았다. (p.269)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나에게는 공통점이 너무나 적었고, 분명 나는 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책을 읽고 자기만의 세계로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행동하기를 바랐다. 수영하고 권투를 하고 럭비를 하고, 자유분방한 기쁨을 느끼며 속력을 내어 차를 몰기를. 그러나 결국 그는 그런 아들을 얻지 못했다. (p.273)

"각각의 사람들은 사건을 모두 다르게 기억해.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어도 그것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않을 거다. 그 사람들이 같은 곳에 있었든 아니든 말이야. 서로 바로 옆에 서 있는 두 사람도,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륙만큼 떨어져 있을 수 있지." (p.278)

"음, 레티가 저를 보고 싶어 해서 여기로 부른 거라면, 그녀에게 저를 보여주세요."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이미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 벤치에 얼마나 오래 앉아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었던가? 내가 그녀를 추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도 나를 살펴보고 잇었다. "아, 레티는 이미 저를 봤어요, 그렇죠?"
"그래, 얘야."
"그럼 전 합격했나요?"
오른쪽에 있는 노부인의 얼굴은 짙어지는 황혼에 가려져 읽을 수 없었다. 왼쪽의 젊은 여인이 말했다. "사람으로 사는 일에 합격이나 불합격은 없단다." (p.282)

"어린아이를 울리면 자기가 강해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p.233)

나는 친구를 사귈 때, 아주 천천히 사귄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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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07-2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닐 게이먼과 필립 K. 딕 이라니..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고 계시는군요. ㅎㅎ

다락방 2014-07-24 08:14   좋아요 0 | URL
필립 케이 딕은 아직 안읽어봤어요. 사지도 않았고요. 유빅...을 한 번 읽어볼까 생각만 하고 있는 참입니다. 드림아웃님은 뭐 읽고 계세요? 전 어제부터 <로쟈의 인문학 강의>시작했어요. 재밌어요. ㅎㅎ

dreamout 2014-07-24 22:18   좋아요 0 | URL
언더 더 스킨과 이것 저것 여러 책들을 깨작깨작... ㅠㅠ
요즘 제대로 못 읽고 있어요. ^^;;

유빅은 저도 사놓기만 하고 아직..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좀.. 흐느적 거리고 있는데,, 정신 번쩍 드는 책 좀 읽고 싶어요. ㅋ

다락방 2014-07-25 08:40   좋아요 0 | URL
헐.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인데 인문학 강의라고 썼네요. 왜그랬지 -_-
저는 이 러시아문학 강의를 다 읽고나면 어쩐지 러시아문학을 좌르륵 읽어나가게 될 것 같아요. 다 궁금해졌어요, 다. 고골도 궁금해졌고요 푸슈킨도 궁금해졌어요. 도스트예프스키는 읽었는데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요. 그렇지만 결국 어떤 책을 읽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습도가 높아서 흐느적거리는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ㅎㅎ
정신 번쩍 드는 책이라...흐음. 어떤 책이 그럴까요?
혹시 <심플 플랜>은 읽어보셨어요??

아무개 2014-07-24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뭔가 그러니까...야~한 꿈을 꾸면
꼭 그 결정적인 순간에
고양이가 밥달라고 울거나
알람이 울리거나
아니면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야하거나
뭐 그러저러한 이유로

그 결정적 순간은 정말 '꿈깨고 마는 순간'이 거의 대부분인데
그러고 나면 왠지 뭔가 되게 억울해요. ㅡ..ㅡ

다락방 2014-07-24 08:2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개님 댓글 읽다가 제가 다 짜증나네요. 아니, 왜 결정적 순간에 깨는겁니까!! 김빠져.. ㅎㅎㅎㅎㅎ 아무쪼록 우리 모두 건강하게 이 여름을 보냅시다. (읭?) 우리 앞으로는 꿈 때문에 억울해하지 말아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해요. 흑흑.

단발머리 2014-07-2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솔길 끝 바다]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필립 K. 딕의 인생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 중에 제일은 다락방님 꿈이야기네요.

꿈 속에 사건사고가 얼마나 리얼한지. 재미있고, 안타깝고, 처절하네요.
저희 엄마가 이렇게 꿈을 리얼하게 자주 꾸시는데요, 제가 듣기론 예술가적 기질이 많은 사람들의 꿈이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축하.... 드립니다^^

다락방 2014-07-24 09:06   좋아요 0 | URL
ㅎㅎ 축하...는 예술가적 기질....에 대한건가요, 단발머리님? ㅎㅎ
저는 리얼한 꿈을 아주 자주 꿔요. 게다가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하는지! 제가 구미호가 된 적도 있다니깐요. -0-
여튼 그래서 저는 제 꿈을 좋아하고 또 믿는 편입니다.
ㅋㅋㅋㅋㅋ

매일매일 밥만 먹고 잠만 자고 꿈만 꾸고..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하핫

2014-07-24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4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알라딘으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내가 보관함에 넣어둔 책을 오늘 사면 알사탕 500개를 준다는 것.


'이창래'의 《척하는 삶》이 그것인데,

아아- 이런건 진짜 너무 힘들다.

알사탕 500개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너무 힘이드는거다.

알사탕 500개는 알라딘 상품권 2,500원의 가치가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지금 산다면, 나는 2,500원 만큼의 이익을 보는 거다. 게다가 이 책은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고, 그래서 보관함에 들어있던 책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야한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니다, 2,500원을 할인받기 위해 나는 지금 당장 읽지도 않을 책에 1만3천원을 투자해야 하는거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어리석게 그 뒤에 쓰게 될 더 큰 금액을 못보는 거다. 그러니 사지 않는게 맞다. 게다가 7월달에 배송된 책이 벌써 몇 권인가. 그래, 사지 말자. 이 책을 너무 읽고 싶어서 참을 수 없을 때 사자. 그게 현명한 삶이다. 카드값..못갚는다, 나.




그랬는데, 좀전에 친구가 《안녕 헤이즐》이란 영화와 함께 그 영화의 원작인 책도 소개해주는 거다. 아 놔...듣도보도 못한 책이며 영화인데, 영화 포스터도 마음에 들고(여자 웃는 모습 너무 예쁘다!), 책이...왜, 도대체 왜!! 반값이냐!!! 이럴래 정말????





접힌 부분 펼치기 ▼

 

미국 작가 존 그린의 장편소설. 존 그린은 한해 가장 뛰어난 청소년 교양도서를 선정, 수여하는 프린츠 상과 가장 뛰어난 미스터리에 수여하는 에드거상을 동시에 수상한 다재다능한 소설가이다. 반짝이는 유머와 절절한 눈물이 어우러진 이 책은 존 그린의 검증된 문학성과 재기를 응축한 결정체라 할 만하다. 

그런 점을 인정받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물론, 일일이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의 무수한 찬사를 받았다. 그 애정 고백의 상당수는 쟁쟁한 언론과 평론가, 그리고 동료 작가들로부터 나왔다. 가장 아름다운 것만이 가장 슬프다. 빛나는 유머와 생생한 슬픔으로 꽉 찬 보석 같은 소설. 현재 아마존닷컴 선정 2012년 최고의 책(Best Books of the Year So Far)에 올라 있기도 하다.

16세 소녀 헤이즐은 말기암환자다. '의학적 기적' 덕에 시간을 벌긴 했어도, 헤이즐의 인생 마지막 장은 암 진단을 받는 순간 이미 쓰이고 만 셈이다. 다른 십 대와 달리 화장품 대신 산소탱크를 상비해야 하지만 매순간 유머를 잃지 않는 근사한 소녀. 암 환우 모임에서 만난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이 첫눈에 드라마틱하게 빠져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래에 비해 한없이 죽음에 가까운 두 사람은, 지구에서 가장 보편적인 질문에 관한 답을 함께 풀어간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 줄까? 우린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펼친 부분 접기 ▲



도처에 유혹 투성이.

반값이라니, 너무 싸잖아..

가격 올라가기 전에 쟁여둬야 하는거 아닐까.

그런데 저거 하나 사면 배송비 나오니까...척하는 삶도 같이 사면...알사탕도 얻는거잖아?

그러면 결국...현명한 소비..........아니야? ( ")



트위터에는 지금 알라딘에서 어스시, 은하수를 여행하는.. 그거, 멋진 징조들..모두 반값이라고 난리가 났다. 멋진 징조들은 읽었으니(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패쓰.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 나는 관심을 끌것이다. ㅠㅠ












아...내가 등록한 중고알림 문자도 왔어...어떡하지. 딱 한 번만 더 5만원어치 채울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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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7-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이 페이퍼 괜히 봤어요.
장바구니 또 채웠음. ㅡ.ㅜ

다락방 2014-07-18 11:25   좋아요 0 | URL
나도 오만원이 될 것 같아. 그렇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으려고요. ㅠㅠ

자작나무 2014-07-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뜰한 락방씨.

다락방 2014-07-18 17:1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럴까요? 아닐걸요? ㅠㅠ

비밀을품어요 2014-07-18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가장 큰 유혹은 다락방님,
페이퍼 들리기 전 통장 잔고 확인은 필수라지요
아아, 살 책이 또 늘어버렸네 ㅠㅠ

다락방 2014-07-18 17:46   좋아요 0 | URL
으응?
기억상실님. 신중히, 신중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요!
일단 집에 있는 책 먼저 다 읽고!!!!! ( ")

버벌 2014-07-2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스티븐킹 신간을 당장 읽고 싶은데... 알라딘에서 구입하면 추가적립금을 또 줘요. 마일리지와 적립금을 위해 참느냐. 아니면 걍 무시하고 지금 서점에 가서 책을 사오느냐. 고민하고 있어요. 전 지금 너무 그 책이 읽고 싶은데... 마침 약속도 서점이 있는 곳이라. 지금 어마무시하게 혼란스러워요. 한데 아마 살것 같아요... 오프라인으로 ㅠㅠ 아니야........ 온라인으로,,, 아니야.,, 아니야.,

다락방 2014-07-22 08:03   좋아요 0 | URL
아이쿠야. 지금은 7월 22일 화요일인데, 어떻게, 마음의 결정은 내리고 구입하셨는지요, 버벌님? 벌써 다 읽기까지 한 건 아닙니까!! 현재까지의 진행과정을 말해줘욧! >.<

dreamout 2014-07-2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래의 신작. 만조의 바다 위에서. 나왔네요. ㅎㅎㅎ

다락방 2014-07-22 08:02   좋아요 0 | URL
아니 ㅋㅋㅋㅋ <척하는 삶>도 아직 못사고 있는데, <생존자>는 아직 사두고 읽지도 못했는데..이렇게 자꾸 나오면 어쩝니까. 아이참... ㅋㅋㅋㅋㅋ
 

스물다섯 살 때 내가 사귄 남자는 여태 내가 사귀어온 남자중에서 외모로는 탑을 차지할 정도로 잘생겼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남자들 중 한 명이긴 했다. 사귀자고 했는데 좋은 남자라고는 생각했으므로 그러자고 답은 했지만 내가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어느날 그는 나를 집에 바래다 주면서 우리 집 앞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한메일 검색창에 네 이름을 넣어서 검색해봤어, 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그는 '그냥' 이라고 답했고,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검색창에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이름을 넣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리고는 이내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지도를 펼쳐서 너의 집과 우리집 사이의 위치를 보기도 했어, 라고. 나는 웃었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나는 그를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약간은 그가 무섭기도 했다. 여차저차 그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사귀면서 나는 이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 사귀던 남자는 나에게 '좋아하면 그럴수도 있어' 라고 말해서 나는 '아무리 좋아해도 어떻게 그래?' 라고 대꾸했었다.



오늘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양재역에서 내리고, 스벅에 들러 샌드위치 먹으며 책 몇 쪽 더 보고 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스벅앞에까지 갔다가, 업무상 오늘 일찍 나랑 처리할 일이 있다고 어제 L 과장이 말했던 게 생각나서 아, 사무실로 곧바로 가야겠구나, 하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다가 갑자기 스물다섯, 그때 한 남자가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었던 일이 생각났고 지도에서 우리집을 찾았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그러다 이내, 몇 년전의 내 생각이 그 위로 겹쳐왔다. 몇 년전 내가, 꼭같이 저렇게 했다는 사실이 떠오른거다. 맙소사.


몇년전의 나는 한 남자의 이름을 구글창에 넣어 검색했다. 그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검색되질 않았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검색창에 넣었을 때 뭔가 좌르륵 검색되는 남자를 좋아한 게 아니었으니까. 역시 지도를 보며 그가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의 거리를 가늠했었던 일도 떠올랐다. 스물다섯에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을, 서른이 넘어 내가 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그러나 스물다섯의 그와 서른이후의 내가 하나 다른 점이 있었으니, 나는 내가 그러했다는 사실을 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좋아했던 상대는 나에게 '무섭다'는 생각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뭐, 다른 일로 무섭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 ")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그는, 몇해전의 나처럼,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게나 컸던걸까, 하고. 너무 커서 그렇게라도 해야했던걸까, 내가 그랬듯이. 그러다 이내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건너건너 알게된 그때의 그는 현재,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으니까. 우연찮게 결혼식 사진도 보게 되었는데(오, 인터넷은 좋은겁니까 나쁜겁니까!), 그는 그 잘생긴 영화배우 같은 남자에서 '퉁퉁한 남자'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와 결혼한 여자는 나와 헤어진 후 사귄 여자였다. 그 후로 한결같이 그여자만 사랑하며 지내다가 결혼한 것. 그에게 나랑 헤어진 것은 잘된일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든 부질없는 이 기억들이 떠오른 건, 내가 출근하면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앨리스는 현재 서른 아홉인데 체육관에서 쓰러져 최근 십년간의 기억을 잃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 스물아홉에 기억이 멈춰있다. 정신이 들고 그녀가 곧 마흔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녀는 충격에 휩싸인다.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아이가 셋이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운동을 싫어하는 자신이 조깅을 즐기며 체육관에 다닌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토록 뜨겁게 사랑했던 남편과 이혼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럴리가 없어, 내가 어떻게 닉과 헤어져? 우리는 싸워도 곧바로 화해하곤 했는데? 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남편인 닉에게 전화했을 때 남편이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다는 사실에 대체 이게 뭔가...어째서 이 남자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가...혼란스러워한다. 그는 이제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건가?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친구라며 전화를 해온 여자는, 정말이지 5분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여자다. 내가 이런 여자랑 친구라고? 게다가 자신의 언니도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누구지? 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것 같지? 십 년간의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거지? 왜 언니에겐 아이가 없지, 왜 엄마는 시아버지랑 결혼한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그리고 내 방에 있는 꽃들, 그 꽃들 사이로 자신과의 데이트가 즐거웠다는 카드에 적혀있는 낯선 남자의 이름. 이 남자는 뭐지?


그녀는 바람을 쐬면 자신의 마음이 진정될까 싶어 집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집에 오려던 남자 '도미니크'를 마주친다. 내게 즐거웠다고 말한 다른 남자도 있던데, 나는 닉과 헤어지고 벌써 두 번째의 남자를 만나고 있는건가. 그녀는 혼란스럽다. 그리고 당연히 도미니크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묻는다. 우리, 잘  돼고 있었느냐고.



"그러니까 우리가, 음, 얼마나 오래 만났죠?"

앨리스가 물었다. 도미니크는 재빨리 앨리스를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풍선 끝을 묶고, 풍선이 천장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달 정도죠."

아까 앨리스가 단기 기억상실증을 진단받았다고 했을 때, 도미니크는 왠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앨리스가 마치 지능에 문제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원래 말투가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음, 잘돼가고 있었나요?"

앨리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이 남자와 키스했을까? 섹스는? 도미니크는 아주 컸다. 매력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앨리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불쾌하기도 했지만 조금 떨리기도 했다. 왠지 키득거리며 말하는 10대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에, 저 남자랑 섹스하는 상상을 해봐!

"그럼요!"

도미니크가 대답했다. 재미있으면서도 긴장이 된다는 듯이 입을 묘하게 움직였다. 엽기적인 괴짜가 분명했다. 도미니크는 풍선을 들어 헬륨 통 노즐에 끼웠다. 그리고 앨리스를 예의 바르게 똑바로 쳐다보면서 근엄하다 싶은 말투로 말했다.

"음, 그러니까, 난 그렇게 생각했어요." (p.231-232)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이 더이상의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여전히 이 남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왜냐하면 나는 그때의 나이니까-, 그와 내가 헤어졌다니.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와 내가 즐겁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니. 이런 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실제로 앨리스는 사랑하는 상태에서 남편과 헤어진거라 느끼므로 가슴 아파한다. 모든 이별이 아프듯이, 그렇게 아프다. 계속 믿을 수 없어하고. 내가 만약 최근 십년간의 기억을 잃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제일 처음 나는, 최근 나의 십년동안 잊고 싶은 남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남자들은 만났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어지니까. '실수'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들만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지도를 들여다보게 하고 검색창에 이름을 넣어보게 한 남자들까지 지워진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실수로 느껴진다한들, 나는 그 실수로 인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만약 그 실수를 잊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같은 실수를 앞으로 또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기억속에 그 실수는 없을테니. 만약 실수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반드시 나는 또 그런 남자를 만나 또 그런 실수를 하겠지. 그건 더 싫다. 그러니 여러모로 나는 기억을 잃지 않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십년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는 이별로 아파하고 있었을테니까 싫다. 허우적대고 있었을 테니까 싫다. 내가 그 당시에 얼마나 오래 질척거리고 힘들어했는지 나는 안다. 그렇지만...그렇지만....


실수를 하지 않고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전혀 다른 사랑을 할 수도 있겠지? 앨리스도 앨리스의 몸이 자연스럽게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전화기를 사용하는 걸 기억했듯이, 어쩌면 나도 과거의 남자라던가 사건을 기억하지 못해도 자연스럽게 어떤 남자들을 피하고 멀리할 수도 있을테니까. 그렇지만....아...............안돼. 나는 기억을 잃어서는 안된다. 내 나이 서른 하나에 만났던 사람 때문에라도, 그 사람을 기억에 붙들어두기 위해서라도, 내가 아주 가끔 그를 떠올리면서 얼마나 짜릿해하는데, 이걸 놓치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억을 잃지 않은 지금의 나여야만 한다. 어떤 남자들은 내 기억속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친구로서 그들을 만나야 하고, 혹은 십년 뒤 이십년 뒤에 우연히 만나서 웃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있어야 한다.





작년이었나, 내가 소설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을 때 상대가 그런 말을 했다. 너는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책 속으로 도피하는 거라고, 그건 니 스트레스를 푸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는 대신, '이 사람은 책을 안읽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말을 멈추었다. 부질없는 말싸움이 이어질 것 같아서. 소설책이야 말로 얼마나 많은 현실을 담고 있는지, 그 사람은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보기도 하며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게, 그게 소설 때문임을 그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어제는 몹시 지치고 힘들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깨서 잠깐 트윗을 확인하다가 항공기 사고 기사를 봤다. 전원 사망이라는 글자들 속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사건과 사망 소식에, 우리는 이러다가 점점 무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죽는다는 것,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고 반복되면, 결국 우리는 으레 '또 일어났군' 하고 무뎌지는 건 아닐까. 무뎌지다가 금세 잊진 않을까. 무뎌지고 금세 잊는다면, 우린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을텐데. 



사무실에 도착해 커피를 내렸다. 비가 오니까 커피를 마셔야지, 했다. 비가 안와도 커피를 마시지만. 커피를 내려 컵에 따르고 책상에 가져와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병신같이 커터칼을 커피가 든 컵 속으로 빠뜨렸다. 윽- 하고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이게 뭐야..이 커터칼 오래된 거라 드럽고 지저분한데... 다시 내리기가 귀찮아서 그냥 마실까...생각했다. 이런 나를 보고 동료가 자신이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고, 나는 됐다고 했다. 그리고 또 고민했다. 그냥 마실까, 버리고 다시 내려 마실까. 나는 용기를 내 벌떡 일어나 커피를 버렸다. 그리고 다시 내렸다.



나는,

비가 오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고, 친구들과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출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는 책을 읽고 싶다.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고 싶고, 많이 웃으며 지내고 싶다. 회사 복도와 계단에서 동료들을 만난다면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싶다.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 설레이고 싶고, 다정한 사람들과 안부를 나눠가며 살고 싶다. 끊임없는 사건 사고 소식에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게 기적이라고 느끼는 일이 더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 모두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땅 속에서도, 모두들 안전하고 무사하게 시간시간들을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속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마음 놓고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억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고, 이제 태어난 사람들과 살아갈 남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무사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런 뒤죽박죽의 기승전결 없고 짜임새도 없는 글이,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됐으면 좋겠다. 사랑과 이별과 기억, 그리고 생명이 모두 무사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모든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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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4-07-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 드리고 싶은 다락방표 페이퍼! ㅎㅎ 복 받는 복날 보내시길! ^^

다락방 2014-07-18 11:27   좋아요 0 | URL
점심에 삼계탕 드실거에요, 야클님?
야클님도 복 받으세요. 아울러 양파와인의 효능을 빨리 확인하실 수 있기를! 후훗

단발머리 2014-07-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근사한 페이퍼예요.*^^*
모두, 모두 무사하길 바라는 다락방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요. 점심은 삼계탕인가요? ㅋㅎㅎ

다락방 2014-07-18 11:27   좋아요 0 | URL
점심은 아마도, 삼계탕이 될 듯 합니다.
근사하긴요.. 중구난방 ㅠㅠ

마립간 2014-07-1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체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데, 그냥 글이 '쨘'하네요.

다락방 2014-07-18 11:28   좋아요 0 | URL
구체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쓰지 못하는 게 제 글의 가장 큰 단점인 것 같습니다. 이건 뭐 따로 학습을 해야되는 건지..해도 안되는건지.. Orz

아무개 2014-07-18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헤어지자고 말했던 상대방이
내가 자기랑 뭘했고
어딜갔고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 이야기 해준적이 있었는데
정말 단 한개도 기억해내지 못해서
그친구를 꽤나 서운하게 했어요
그런데
저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과 했던일 갔던곳 대화뿐만 아니라
그사람 사소한것 까지 아직도 다 기억이납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억들은
내가 기억하려고 선택한것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다락방 2014-07-18 17:18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기억은 내가 선택한 것들만 남아있는 것 같아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요.
최근에도 이런 얘길 친구로부터 들었네요.
넌 니가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는거라고.
곰곰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것 같아요, 아무개님.
그래서 좋았다가 그래서 슬펐다가 해요.
이 오락가락하는 사람 마음.

루쉰P 2014-07-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현실 도피가 될 수가 없어여. 더욱 현실을 진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정이 음...뭐랄까 마음이 자꾸 확장된다고 할까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도 소설 속의 주인공의 성격과 흡사한 면이 있구나 놀라기도 하고 말이죠.
사람은 태어나 한 곳에만 왠만하면 머물러 있지만 책을 읽으면 마치 그것이 하나의 워프홀? 세상을 여러 개 연결해 주는 통로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ㅋ

오늘은 화창해요 ㅎ 그래도 커피를 내려 드시기를 ㅎ 전 집에서 커피 믹스 가져와서 컵에 다가 타서 마시며 캠퍼스를 봐요.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힘이 솟아요. 푸하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마치 유명한 그림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그들의 밝음이 참으로 좋아요. 그러다 화장실 거울에 있는 저 보고 시무룩 해 지곤 하죠. 후후후후

다락방 2014-07-18 17:20   좋아요 0 | URL
저도 거울 보면 시무룩해져요. 누구냐 넌... ㅎㅎㅎㅎㅎ

어제 루쉰님의 베가본드 리뷰 읽고 집에 가는 길에 스맛폰으로 노무사가 뭐하는 건가 검색해봤어요. 그간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거든요. 그리고 검색할수록, 루쉰님이라면 아주 잘 하겠구나 싶어졌어요.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누구보다 루쉰님이 노무사가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시험 되게 어렵다던데, 경쟁률도 어마어마하다던데, 루쉰님, 꼭 합격하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아주 좋은 노무사가 될 수 있도록 제가 진짜 완전 진심으로 빌게요.
끼니 잘 챙겨먹으면서, 우울할 때는 캠퍼스를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요. 꼭!!

루쉰P 2014-07-21 09:18   좋아요 0 | URL
네!! 두 주먹 불끈쥐고 화이팅! 전 이미 8시부터 도서관이에요.

어울리신다고 하니 뭔가 정말 제가 태어난 이유는 노무사를 하기 위해서이지 않는 가란 착각까지 들어요. ㅎ

다락방님도 너무 거울 보지 마시고요! 책 마니 읽으세요!!!!


2014-07-18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8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4-07-1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보다 저는 더 많은 별을 주고 싶은 다락방님표 페이퍼!!
괜히 저를 위해서 쓰신 글 같다는 느낌도 들;;;;;;;;ㅎㅎㅎㅎ
참 좋으네요. 따뜻해...

다락방 2014-07-18 17: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아롬님의 글을 읽으니 반가웠어요.
가끔 오셔서 그곳의 소식 들려주세요, 아롬님.
알라딘이란 다정한 공간에서, 비록 우리가 얼굴은 알지 못해도 이렇게 알고 지내는데,
계속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은채로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있게 본다는 거,
참 좋지 않아요?
:)

moonnight 2014-07-18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내 기억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술마신 다음날 -_-;;;;;;;;;;;;;;;;;;;

다락방님의 멋진 페이퍼에 이런 댓글밖에 못 달다니. ㅠ_ㅠ;;;;;;;;;;

다락방 2014-07-18 17:4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기억까지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특히 술마신 다음날이 그렇지요. 정말 그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문나잇님. 자, 이 더운 여름에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또 써주셔야죠!! >.<

비밀을품어요 2014-07-1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번 페이퍼도 너무 좋네요 ㅠㅠ
지난 사람 떠올리게도 만들고
저 책이 사고 싶게도 만들고
괜시리 마음이 스산해져서 술 한잔도 생각나게 만들고,
다락방님은 능력자!!

다락방 2014-07-22 08:04   좋아요 0 | URL
술 한잔 생각나서 어떻게,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상실님.
저는 지난 한 주 너무 술술술 거려서 급기야 코피까지 쏟아버렸어요.
이번주엔 자중하고자, 어제 만난 친구와는 얌전히 갈비탕을 먹고 자몽티를 마셨습니다. 만쉐이~!
저 책 다 읽었어요. 좋았어요. 이것저것 생각도 했고 말이지요.
오늘 아침부터는 다른 책을 시작했는데, 기억상실님은 현재 무슨 책을 읽고 계신가요?

달사르 2014-07-1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미니크 불쌍..
10년 전이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을 어찌 풀어나갈지 궁금하네요. 간만에 장바구니에 책 하나 넣어갑니다. ^^ 책 안 읽은 지 넘 오래..

다락방님, 저도 공감이에요. 십년이든 일년이든 나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기분 이상일 것 같아요. 괜히 떨리는데요. 그리고 음..다락방님의 연애담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상큼하네요. ^^

다락방 2014-07-22 08:06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랑할 사람, 스쳐지나갈 사람, 함께 살 사람 등이 이미 다 정해진 게 아닌가, 그런 운명이란 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책 속 앨리스처럼 기억을 잃고나서야 다시 누군가와 제대로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렇다면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나..하는 뭐 그런 생각말이지요. 어쨌든 말씀대로 도미니크는 불쌍합니다. 도미니크는 대체 무슨 죄에요.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서는 행복했을텐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가 서로 서로 기억을 잃지 않고 매일을 무사히 살아가는 게, 결국은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달사르님.
언제나처럼 반갑습니다!
:)
 
너는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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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여전히, 조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봐준다. 이만큼이나 그들의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특유의 반복적인 문장이 잠깐 힘들게 읽힌 적이 있었고 또한 《일식에 대하여》에서처럼 <고산지대>같은 '어마어마한' 단편이 포함되어 있진 않아 살짝 아쉽지만, 아쉽다고 해서 이 책이 어딘가 부족하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고산지대 같은거 하나만 있어주지..하는 마음이랄까.


간혹 이승우는 '공포소설'을 써내는데도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읽은 그의 단편집 《오래된 일기》에서 <타인의 집> 이었나, <방> 이었나, 이 둘 중에 한 단편을 읽고 와 엄청 무서웠던 적이 있었던거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빈 집이 '빈' 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그러니까 내가 쓰지 않고 있는 저 닫힌 방 문을 열면, 거기엔 내가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그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것이 점점 확실해지는 데서 오는, 그러나 그 문을 열어보지는 않고 끝내는 데서 오는 무서움. 이번 책에서는 <하지 않은 일>에서 무서움을 느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에서 오는 무서움을 뛰어넘어 사람은 자신의 양심까지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는 데서 오는 무서움, 어쩌면 억울함은, 원통하고 원통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은, 내 영혼을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시킬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



며칠전에 아빠와 같이 뉴스를 보다가 '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가둬두기 위해 존재한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돈이 있으면 법 위에 군림할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꼼짝없이 법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이런 법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닌것 같다, 부자들 살기 편하고 가난한 자들 벌주려고 존재한다, 는 대화를. <신중한 사람>에서의 남자는,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삶을 살아내질 못한다. 노력했지만 안된다. 가족들에게도 '싫어', '아니'란 말을 하지 못한다. '성가신' 상황이 발생하는 걸 견디기 힘들것 같아서. 묵묵히 원하지 않는 고생을 하고 자신이 원하던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그때, 물론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가 맞닥뜨리는 건 '내 집이 더이상 내 집이 아니'라는 현실이었다. 그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 집에 기생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는데, 그런 그를 도와주는 건 아무도 없다. 자신의 집에서 빌 붙어 살게 되어버렸는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해. 혼자인 사람, 혼자라서 힘이 없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부조리앞에 너무나 무력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도 없다. 분명히 이 상황은 '옳지' 않은데 그 옳지 않은 상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아, 이토록 신중한 사람이라니. 



의도가 있지 않았음에도,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궁지로 몰 수 있다. <어디에도 없는>에서 여관 청소부가 '우편물을 책상에 놓아두었다'고 주인에게 말만 했어도, 주인이 우편물을 제 때 챙겨주기만 했어도, 남자는 자신이 꿈꾸던 나라로 갈 수 있었을텐데. 여관방에 누워있다 집행관을 만나는 일을 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삶은 이토록 치열하고 피곤한 일이라는 걸 사소한 사건들의 어긋남으로 우리는 알 수 있게된다.

물론, 의도가 있어서 상대를 궁지로 몰아가는 것 역시 당연하게도 가능하다.

일전에 나는 '가해자'가 되어 한동안 고통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승우가 그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그 사람이 약자와 피해자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에 곤혹스러움이 더했다. 약자와 피해자를 자처하는 것은 싸움의 상대방을 추악한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다. 힘이 없거나 덜가진 자들이 힘이 있거나 더 가진 자들보다 항상 의로운 것은 아니고,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보다 무조건 선한 것도 아니다. 사악한 약자도 있고 의로운 강자도 있다는 것을 안다. 힘이 있거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악을 행할 때 힘이 없거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악을 행할 때보다 그 영향이 파괴적일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약자와 가난한 자가 곧 의인이고 선인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자신의 약함을 내세우면, 가해를 한 것으로 추정된(고발된) 사람의 악덕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갈등과 분쟁에서는 감정이 자주 재판관 역할을 떠맡기 때문이다. (「하지 않은 일」, p.271)



나는 무엇보다 이승우가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불편함을 내가 느끼는 그대로 느껴주고 표현해줘서 퍽 다행이라 느낀다. 좋은 일을 한다고 크게 떠벌리는 사람들로부터 느껴지는 그 불편함. 나는 이런 좋은 일에 이토록 힘을 쓰는데 너는 그걸 하지 않는구나, 하며 상대를 자연적으로 의롭거나 착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드는 그 아둔함. 아 재수없어. <리모콘이 필요해> 에서, 남자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잘해주려는 선배로부터 불편함을 느낀다. '쟤랑 함께 놀아주고 쟤를 즐겁게 해주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에서 오는 오버센스.



그 순간 불현듯 대단치도 않은 생각이 대단한 깨달음인 양 찾아왔다. 왜인지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향해, 그것이 무엇이든, 온몸을 내던지듯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나는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과감하고 거침없는 움직임을 거북해하는 것 같다. 그들이 곧 과감하고 거침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들이밀고 대들 것 같아 무섭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애쓰는 선배가 왜 거북한지, 왜 그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지 알 것 같아졌다. (「리모컨이 필요해」, p.33-34)




<칼>인 일전에 문학상수상작품집에서 읽은 적이 있었던 단편이었는데, '일몰시간에 출근해 일출시간에 퇴근한다'는 것만 기억이 났던 나로서는, 남자 주인공이 등대지기였지, 하는 미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읽다가 등대지기가 아니라 깜짝 놀랐다. 아이쿠야, 등대지기라니!

<칼>은, 이승우의 '반복된 문장'에서 오는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반복된 문장은 '힘이 없고 약한 자들'의 마음을 지독하게 잘 대변한다. 그로인해 나는 '칼을 소지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눈을 돌리면,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각하게 되고 안돼 안돼 그러면 안돼, 칼을 소지한 자들과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되어버리는데, 다시 책 속으로 돌아오면 '당신은 칼을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겠어' 하고 말아버리는 것. 내가 이승우의 반복된 문장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바로 몇년전에 읽었던 이 단편, <칼>이었다.



내 고객들은 모두 심약한 사람들이야. 누구보다 약하고 억눌린 게 많고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칼을 모을 만큼 강한 것이 아니라 칼을 수집해야 할 정도로 약한 거지. 칼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칼을 소지하는 거야 ‥‥‥다마스커스의 사장이 한 말이다. 칼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칼을 가지지 않고도 잘 살지만, 칼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은 칼이라도 지녀야 겨우 살 수 있다고, 실제로 그 사람들은 칼을 가지고도 애초에 칼을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칼을 수집하는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해하는 척했지만 정말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칼」, p.218-219)



나는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일을 할 대도 칼을 지니고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칼을 지닌다. 칼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뭐라고 불리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는 것이 칼이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누구나 칼 한 자루씩 품고 산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칼은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우표, 동전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동전, 열쇠고리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열쇠고리와 같지 않다. 칼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우표나 동전이나 열쇠고리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우표나 동전이나 열쇠고리를 수집하듯 칼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다. 우표나 동전이나 열쇠고리를 수집하는 것은 그저 취미에 지나지 않지만 칼을 수집하는 것은 그저 취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가끔 나를 염려한다. 나는 나를 염려하지 않는다. (「칼」p.224)



'나는 나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외워두고 써먹고 싶다. 여전히 나는, 그가 쓴 문장 그대로를 어떤 번역과정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아무런 힘이 없고, 뜻하지 않게 원통함을 맞닥뜨리게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곁에 이승우가 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문장들을 가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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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4-07-1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급관심이.... ㅎㅎ 무더운 노출의 계절 여름에 어찌 지내시나요? ^^

다락방 2014-07-16 14:10   좋아요 0 | URL
아 더워더워 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먹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 추운 겨울에 그랬듯이요. ㅋㅋㅋㅋㅋ

반가워요, 야클님! >.<

레와 2014-07-1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껴 읽어야지! 후흣~

다락방 2014-07-17 08:54   좋아요 0 | URL
우후훗- 지금은 뭐 읽고 있어요?

레와 2014-07-18 11:14   좋아요 0 | URL
여러가지 짬뽕으로 뒤적이고 있어요. ㅎㅎ

단발머리 2014-07-1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과 카뮈보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다락방님 리뷰를 읽을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다락방 2014-07-17 09:43   좋아요 0 | URL
우리가 같은 책을 읽겠군요! >.<
카뮈 보틀 화이팅!! ㅎㅎ

단발머리 2014-07-17 13:35   좋아요 0 | URL
근데 제가 왜 애들한테 카뮈보틀을 자랑했을까요?
아직 배송 전인데 서로 자기들이 갖겠다고 학교 가기 전부터 싸우고 난리예요.

참나.... 카뮈보틀 오면 이럴려구요.
카뮈를 읽은 사람만 카뮈보틀을 가질 수 있다... ㅋㅎㅎ 괜찮아요?

다락방 2014-07-17 14: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카뮈 읽었어요. 저 주세요,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4-07-18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8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4-07-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이승우를 알게 된 일인 ^^ 보관함에 넣습니다. (앗 이 책 사면 카뮈보틀 주나봐요! +_+;)

다락방 2014-07-17 17:32   좋아요 0 | URL
5만원 이상 사야합니다 문나잇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노란곰 2014-07-1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동진씨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작가를 이승우로 뽑아서 한번쯤 읽어봐야지 했는데..
알라딘 사은품 노예로써 이미 헤밍웨이 보틀을 가지고 있는데 다락방님이 자꾸 카뮈보틀을 말씀하시니..
집에 쌓여있는 신간들을 모른 척하고 다시.. 결재를 해야할까 봐요. (아, 이 신중치 못한 인간ㅋ)

다락방 2014-07-18 11:2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헤밍웨이 보틀을 가지고 있는데요, 헤밍웨이는 글자수가 많아서 옆으로 튀어나가잖아요. 아, 씨, 카뮈가 예쁘겠네 싶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카뮈 보틀을 받기 위해 또한번 지르겠다는 건 결코, 결코, 결코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ㅎㅎㅎㅎㅎ

봄밤 2014-07-3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상의 노래>를 무척 인상깊게 읽었어요. 알고 있던 어떤 소설과도 다른 체험이었고, 한 권이 무척 두껍고 진중했고요. 이 책 제목을 보고 참 이승우 답다 라는 생각 들어요. 표지마저 굳굳! 마지막에서 윗줄은 정말이지, 동감이에요. 한국 소설을 읽는 기쁨이에요, 번역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약간의 슬픔이기도 하고요.

다락방 2014-08-01 08:34   좋아요 0 | URL
봄밤님, '봄밤'이란 닉네임이 참 이쁜거 알아요? 봄밤님 때문에 저도 '여름밤'으로 바꾸고 싶어졌어요. 후훗.

한국 소설을 읽는 기쁨을 가장 크게 주는 소설가가 바로 이승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한국어로 글을 써주는 것이 전 정말 고맙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