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는데 친구가 내게 '차여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있다고 답했다. 그런 대화를 하노라니 울컥,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는지,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친구에게 말했다. 그때 죽자는 생각도 했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미쳤지, 왜 사랑 때문에 죽어, 그런데 그땐 왜 죽고 싶었을까. 어휴,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고. 친구는 그건 '그때'였으니 그런거라고, 지금은 그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노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동의하지만, 역시 고작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건 내가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말자. 물론 곰곰 짚어보면 내가 죽자, 고 생각했던 건 '사랑에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거부당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랑의 실패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상대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슬픔이 나를 쥐고 흔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거부당했다는 것, 내가 그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것, 내가 그에게 가진 감정을 그가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자존심 상했던 것 같다. 공일오비의 노래 가사중엔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는거야' 라는 게 있는데 나에겐 사랑보다 자존심이 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내가 그때 참담하고 절망에 휩싸여 하염없이 걷고, 먼 곳에 있는 나의 후버까페에게 내 심정을 토로했던 건, 이제와 생각하니 '슬픔'이 아니라 '자존심 상함' 이었던 것 같다. 음...그랬던 것 같아. 뭐, 다 지나고나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거지, 만약 그 상황이 내게 다시 한 번 닥친다면, 나는 내내 울면서 슬퍼 슬퍼 힘들어 힘들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상사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일전에 '전경린'의 소설 《황진이》를 읽으면서 상사병에 죽는 남자가 나왔을 때, 와 얼마나 좋은 마음이 극에 달하면 죽기까지 하나,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 이건 말이 안돼, 라기보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컸던걸까,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 상사병에 죽어가는 남자를 나는 또 만났다.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실린 단편들중 <독립기관>의 '도카이'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 여러 여자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다. 그 삶에 크게 만족하고 지내다가 쉰이 넘은 지금, 한 여자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너무 좋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좋아하면 마음이 힘들기 때문이죠. 못 견딜 만큼 힘들어요.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능한 한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독립기관>, p.132
그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에는 이런 게 있다.
"여러 가지가 잇어요. 다양하게 시도하는 중이죠. 하지만 기본은 최대한 네거티브한 걸 떠올리는 겁니다. 그녀의 단점을, 아니, 별로 좋지 않은 점을 생각나는 대로 뽑아내서 쭉 나열해봅니다. 그리고 만트라를 외듯이 머릿속으로 수없이 반복하면서, 이런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나 자신을 타이르죠."
"잘되던가요?"
"아뇨, 별로 잘 안 돼요." 도카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선 그녀의 네거티브한 면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실은 그런 네거티브한 부분에마저 내 마음이 끌렸던 거니까요. 도 한 가지는, 무엇이 필요 이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도 잘 분간이 안 간다는 겁니다. 그 경계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고 종잡을 수 없는, 분별없는 마음은 난생처음입니다." -<독립기관>, p.133
"그녀보다 미모가 빼어난 여자나 그녀보다 몸매가 좋은 여자, 그녀보다 취향이 고상한 여자, 그녀보다 똑똑한 여자도 적잖이 만나봤어요. 하지만 그런 비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내게 특별한 존재니까요. 종합적인 존재라고 하면 적합한 표현일까요. 그녀가 가진 모든 자질이 하나의 중심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뽑아내 이건 누구보다 못하다느니, 더 좋다느니, 계측하고 분석하기란 불가능해요.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강력한 자석처럼. 그건 논리를 뛰어넘는 일이에요." -<독립기관>, p.137
나는 그것을 의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한껏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어느 상태도 아니었을 때, 어떤 관계라 규정지을 수 없었을 때, 그 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유혹을 받았으나 꿋꿋이 버텨낸 일. 그것을 나는 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짝사랑하는 상대에게조차 의리를 지키는 졸 멋진 여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나를 유혹하는 상대가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근사한 장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는 것 따위를 장점으로 버젓이 위로 끌어 올려놓고는, 그럼에도 더 손이 못생기고 더 좋은 장소로 나를 이끌지 못했던 두고 온 상대를 내내 생각했고 결국 그날의 만남은 그저 지나가는 만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마주한 상대의 아름다운 손을 보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상대를 떠올렸고(그보다 손이 예쁘네), 그가 데리고간 아름다운 장소에서도 두고온 상대를 떠올렸다(그보다 센스가 있어). 그러나 그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그의 면면들이 내게 그를 포기할 이유를 주진 않았다. 이 남자와 그 남자에 대한 분석은, 무의미했다. 그는 그저 그로서 존재했고, 그저 그로서 나를 끌어당겼으므로. 이건 의리도 뭣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그냥 무작정 끌어당기는 거였다. 한마디로 나는 그에게 아주 그냥 홀딱 호오오오오올딱 반. 해. 있. 었. 다. 다른 남자 따위가 그 틈을 파고들 여지가 없었던거다. 그는 내게 그 누구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다.
도카이는 그 특별한 존재로부터 그 사랑을 거절당해,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서서히 죽어간다. 사실 내가 그의 곁에 있었다면 그건 죽을 이유가 안된다고, 무슨 그런 이유로 죽냐고 열심히 설득을 해보겠지만, 사실 본인이 본인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한다는데, 죽음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그토록 방치하는데, 나는 도카이가 아니고 도카이가 내가 아닌데, '그 이유로는 안돼' 라고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설득시킨단 말인가. 아, 쉰이 넘어 찾아온 이 사랑의 처절함이여. 차라리 찾아오지 말지, 왜 찾아와서 그를 이토록 바닥으로 바닥으로, 저 밑으로 보내버린단 말인가. 왜 그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무(無)로 만들고 싶게 한단 말인가.
"중년 남자가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카이 선생님의 경우에는 증상만으로 따지면 명백히 거식증이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미용을 위해 그러셨던 건 아니죠. 제 생각에 선생님이 식사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사병?" 나는 말했다.
"네, 그 비슷한 겁니다. -<독립기관>, p.158
"선생님은 꽤 오래전부터 그 여자와 진심으로, 정말 진지하게 만나셨어요. 여느 때처럼 가볍고 부담 없이 만나는 그런 관계와는 달랐죠. 그러다가 그 여자와의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문에 선생님은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셨고요." -<독립기관>, p.160
이번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내게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키에게 유머를 가장 기대하고, 내가 그간 하루키를 사랑했던 건 그 유머 때문이었는데, 이 책에는 유머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간 나는 하루키의 책들을 읽으면서-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쿡쿡대고 웃었던 일이 여러차례 였는데, 이번 책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것. 그점이 못내 아쉬워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유머를 뺀 자리에 하루키는 따뜻함을 넣은 것 같다. 지난번 장편소설 《1Q84》에서도 아오마메와 덴고 사이의 따뜻함을 느꼈는데, 이번 단편집에서 하루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는 내밀한 따뜻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건 단편중 <사랑하는 잠자>에서 특히 그랬는데, 나는 이런 부분이 무척이나 좋았던 거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죠." 아가씨는 사려 깊게 말했다.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잠자>, p.308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아가씨는 말했다. 이제 그 목소리에는 아주 조금 다정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잠자>, p.309
그녀를 생각하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아련히 따스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란 사실이 점점 기쁘게 다가왔다. 두 다리로 걷고 옷을 입고 나이프나 포크로 식사하는 것은 분명 몹시 성가신 일이다. 이 세계에는 배워야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되었다면 이렇듯 신기한 마음속 온기를 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잠자>,p.311
어제 집에 돌아가는 늦은 밤, 나는 에피톤프로젝트의 <회전목마>를 들었다. 새로나온 에피톤프로젝트의 음반을 들으면서 아, 이번 앨범이 지난 앨범 보다 훨씬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젯밤에는 유독 회전목마의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슬퍼하지 말아요/ 기뻐하지 말아요/ 다 지난 일이야, 이젠 잊어버려요/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아, 지금,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라고 한거야? 와-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라고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렇게 이 노래랑 연결되는 게 아닌가.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이 노래를 듣는 순간에 내 주변으로 둥그렇게 커다란 막이 형성된 것 같았다. 나는 걷고 있고 내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고 신호등은 여전히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번갈아 바뀌지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 노래를 듣는 나는, 내가 만들어 낸 별도의 원 안에 있다. 이 세계는 저들의 세계와 다르다. 내가 만들어낸 공간에서의 나는 조금쯤 붕- 떠있고, 내 주변의 공기는 내가 불러일으킨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 공간 속에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행복하게 웃는다. 우린 함. 께. 있. 으. 니.
나는 웃고 또 웃는다.
나는 내 주변의 공기를 세상의 공기와 지금 당장 바꾸고 싶진 않아, 회전목마를 반복해 듣는다. 아이폰은 이미 <이 노래 반복>에 빨갛게 박스가 쳐져있다.
차세정의 목소리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지만, 내가 그의 목소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말하고 싶지만, 이쯤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알라딘의 이런 바람직한 이벤트!! (라기엔 증정품이 별로 안끌리는 군.. -_-)
☞읽고 쓰기 좋은 계절,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