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모니스'의 <칸지의 부엌>을 읽으면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주 조금, 정말이지 아주 조금 알게 됐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대해 엄청나게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 작가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사업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했으니 전혀 엉뚱한 내용을 쓰진 않았겠지만, 중간에 매춘하는 여자에 다룬 부분에 대해서는 '흐음' 하며 약간 찜찜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동양인들이 매춘을 하는 약자 혹은 수동적 인간으로만 보이는건가 해서. 그러니까 중국의 매춘을 다룬 것 자체가 편견과 어긋난 시선, 그런걸로 보인 탓이다.


그러나 그 찜찜함이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작가는 얼마나 오랜시간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중국이 그 책 안에 있었다. 가난하고 후지고 짝퉁만 만들어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건 중국에 대한 극히 일부이며 편견이었다. 짝퉁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데 왜 그걸 그렇게 죽일듯이 생각하냐는 중국 대학생들의 토론 장면은 인상 깊었다. 중국에서 먼저 만들고 다른 나라들이 따라한 것도 많은데. 게다가 중국의 역사는 깊고도 깊었고, 그 인구는 실로 방대해서, 성매매에 나선 여성만도 1억이 넘는다고 되어 있었다. 이것이 중국의 현실이라고 봤을 때, 니콜 모니스가 본 자신의 남편과 원나잇을 한 상대는-그 여자가 성매매에 나선것도- 드문것도 아니었고, 편견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 살아오며 봐왔다면 그런 여자들을 보는 것도 역시 어렵지 않았을터다.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내가 <정글만리>를 먼저 읽고나서 <칸지의 부엌>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사전>을 읽으면서 <정글만리>가 도움이 되었다. 연결된 독서란 이런것일까, <정글만리>에서 몇 번이나 언급되던 '마오주석'의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는 건 여자' 라는 말이 <연인을 위한 외국어사전>에도 나왔고, 당에 소속된다는 것, 거기에서 개인은 사라진다는 것 등을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거다. 크~ 이것이야말로 연결된 독서로구나.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보이는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진다. 이해도 쉬워진다. 멋진 경험이었다. 



그러다 중국 여성들의 성매매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글만리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대학까지 졸업한 여자들이 부자 남자들의 '얼나이'(첩)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게 어딘가 모르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것을 그저 손가락질 한다고 그만일까, 하면 그것도 아닌것이, 애초에 '대학까지 가서 학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더 나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부자 남자의 얼나이가 되어 자신들이 먹고 싶은 걸 먹고 입고 싶은 걸 입고 산다는 데, 거기에 대해서 그건 옳지 못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인생의 목표 자체가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었다면, 누군가의 얼나이가 되어 노동하지 않고 부유하게 사는 게, 그 사람에게는 목표의 달성이 아닌가 말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얼나이가 대학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린다. 그것은 그들에게 힘을 준다. 열심히 공부해서 누군가의 얼나이로 안착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사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어딘가 삐끗한 느낌을 주는데, 그걸 과연 비난하는 게 옳은가 하면, 대체 그 비난은 누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잘 모르겠다. 흐음..역시..잘 모르겠다.






금요일에는 H를 만나 종로에서 술을 마셨다. 2차로 간 술집에서 우리는 돈까스 안주를 주문했는데, 15,000원이나 하는 돈까스는 이런 모양새로 나왔다.



헐. H와 나는 이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이 하얀거, 잔뜩 위에 뿌려진 이 하얀 게... 마요네즈...는 아니겠지? 설마 돈까스 위에 마요네즈를 뿌리진 않겠지? 에이, 말도 안돼. 그리고 포크로 살짝 찍어 먹어 보았다. 헐. 마요네즈였다. 우린 당황했다. 아니..돈까스에 이렇게 잔뜩 마요네즈를 뿌리다니, 이게 뭐지? 왜 돈까스에 마요네즈를 뿌리지? 도무지 이걸 먹을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종업원을 불렀다. 마요네즈를 먹을 수 없으니 바꿔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몹시 꺼리는 표정으로 가져가면서, 이건 사장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고, H 는 그러라고, 사장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후,


무섭게 생긴 남자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나는 겁이 났다. 그는 뭐라해야하나, 깡패같은 포즈로, 돈까스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아..완전 무서웠다. 우리를 한 대 칠 것 같았......벌렁벌렁하는 가슴으로 앉아있는데 내 앞에 앉은 H는 '그렇다, 마요네즈 뿌려진 돈까스를 먹을 수 없다, 바꿔다오 '라고 했다. 그러자 사장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다, 소스를 따로 드리면 되겠냐' 고 묻는거다. 우리는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은 '미리 말을 하면 따로 줬을것이다' 라고 한다.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말했다. '돈까스에 마요네즈를 뿌려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라고. 나는 아직 한 번도 돈까스에 마요네즈 뿌려주는 음식점(혹은 술집)을 가본 적이 없는데, 이게 참... 어쨌든 잠시후 소스를 따로 덜어서 돈까스를 새로 나왔다. 아 깜짝이야. 완전 두근두근했어. 너무 무서워서 닥치고 먹어야 되나 잠깐 생각했는데, H는 본인도 무서웠을 것 같은데, 쫄지 않았...어휴...무서워... 혹시 모르니 다음엔 H 한테 싸움 잘하냐고 물어봐야겠다. 쿨럭.




어제 일요일엔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었다. 남동생은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팔 아픈데 무슨 부침개냐고. 나와 엄마는 동시에 말했다.


"내가 하면 되지."

"누나가 하면 되지." (이건 엄마가 한 말)


그러자 남동생이 말했다.


"그럼 맛이 없잖아!"


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린 다들 빵터졌고, 결국 부침개를 해먹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요리란 걸 해본답시고, 어제 한 계란말이. 그게 이런 꼴이었다.



이게 (계란)말이야 덩어리야....쩝. 나는 왜 뭘 해도 이모양이냐...

어릴 적에는, 내가 뭐든 잘하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못하는 게 없는 아이.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해서 도대체 뭘 더 잘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아이.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니미. 현실의 어른인 나는,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계란말이조차 저렇게 지저분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사람. 쩝..피아노도 못치고 요리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고 게으르고....




아침엔 김치와 시금치된장국 고추장아찌등를 반찬으로 해서 밥 한그릇을 뚝딱 비워냈는데, 어제 남동생이 저녁에 포장해 온 피자를 먹지 않았던 게 생각나, 그걸 한 조각 데워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는 데워줬고, 나는 그 한조각을 또 말끔히 먹어 치웠다. 와...배가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 분명 오늘 아침 출근길엔 뒤뚱거렸을거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소화가 다 되어버리고 말았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슬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배고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책 살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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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4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작나무 2013-11-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책감상에서 소소한 일상생활로 쉬프팅후 먹거리로 마무리되는 포스팅이 가히 천의무봉의 경지로다!

다락방 2013-11-04 17:06   좋아요 0 | URL
천의무봉: 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뜻으로, 시문 등이 일부러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무결하여 흠잡을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 일부러 꾸민 데가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무결하여 흠 잡을 데가 없다.

천의무봉 사전 찾아봤네요. ㅎㅎㅎㅎㅎ

가연 2013-11-0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 돈까스... 저는 어제 피자 1판을 몽땅먹어버렸습죠. 덕분에 오늘저녁은 굶었는데.. 슬슬 라면이 먹고 싶네요

다락방 2013-11-05 09:01   좋아요 0 | URL
으악 저도 라면 먹고 싶네요. 지금 배가 터지는데 ㅋㅋㅋㅋㅋ 라면은 너무 매력적이에요 ㅠㅠ 이 세상에 모든 몸에 나쁜 음식은 전부 매력적인 듯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듯이...(읭?)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당신은 내 프라이버시를 침범했어요! 그럴 순 없는 일이에요! "

처음, 당신은 사자처럼 나에게 소리친다.

"무슨 프라이버시요?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데! 우리가 연인이라면 프라이버시 없어요!"

"당연히 있어요! 누구나 프라이버시는 있어야죠!" (p.126)

 

 

스물셋의 여자는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홀로 영국으로 날아온다. 중국에서 영국까지, 열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이 필요하다. 여자에겐 '자아' 혹은 '개인'이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은 언제나 '당'에 속해야 했고, 그 당은 개인보다 우선했다. 집에서는 식구들과 한 집에 살아야 했고, 그런 그녀에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낯선 개념이었다. 그녀는 그의 연인이었고, 당연히, 그녀는 그가 없는 동안 그의 일기장을 읽으며 그가 일기를 썼던 그 당시를 생각해보고 그렇게 그를 더 알고자 한다. 개인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아직 영어에도 서툴며 영국 문화에도 서툴었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에게 자신이 그의 일기장을 봤음을 얘기한다. 아주 떳떳하게. 이 일은 그 남자를 깜짝 놀라고 당황하게 만든다.

 

 

여자와 남자의 물리적 거리는 비행기 시간만으로도 열시간 이상 떨어져 있었다. 내 두발로 걸어 오분 거리에 위치한 곳에 사는 남자라 해도, 우리의 물리적 거리가 그토록 가깝다고 해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난 이상 성격과 가치관에 충동은 당연한 듯 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모님이 달랐고, 사는 환경이 달랐고, 다닌 학교가 달랐고, 사귄 친구들이 달랐고, 읽었던 책과 들었던 음악, 보았던 영화들이 달랐다. 설사 같았다고 한들, 그동안 우리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주변의 모든 일들이 같은 걸 보고 다른 걸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까이에 살았어도 당신은 내가 아니고 나는 당신과 같을 수 없음이 당연한데, 저토록 먼 거리의 남자와 여자라면 얼마나 더 많이 달랐을까. 그들이 서로의 다름을 낯설게 생각하면서도, 그들 사이엔 다른 국적 다른 언어가 자리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들이 외국어에 익숙해지고 그 공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서로에게 동화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이 모든걸 극복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사랑이 모든 일에 만병통치는 될 수없다. 서로의 언어를 더 잘 사용하게 됐다한들 나는 네가 될 수없고 너는 내가 될 수없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노력만으로는 극복될 수없는 것들이 언젠가는 찾아오고, 그것을 서로가 깨닫는 순간 그들은 우리가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 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별은, 그렇게 온다.

 

 

 

남자는 영국 사람이고 여자는 중국 사람이다.

 

"티베트가 중국에 속한다던 당신 말이 기억나는군. 나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글쎄 ‥‥‥. 당신은 매사를 백인 영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죠. 당신네 영국인들이 티베트와 중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실패한 게 참 안타깝네요." 내가 맞받아친다.

"하지만 지금은 티베트가 중국의 식민지가 되었잖아요!" 당신이 목소리를 높인다.

"만일 티베트인들이 중국인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영제국이나 미국인들에게 지배당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티베트는 정말로 경제적으로 독립한 적이 결코 없거든요! 그들은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고, 강력한 정부에 의존할 필요 있어요. 중국과 티베트는 같은 땅덩어리에 있는데, 왜 우리 두 나라가 함께일 수 없다는 거죠?"

"그건 '함께'라는 의미에 따라 다르겠지! 티베트 문화를 희생 대가로 삼을 수는 없는 거예요." (pp.204-205)

 

 

"당신과 매일 식사하는 건 지루해요. 당신은 채소만 먹고, 밀도, 파스타도, 하얀 쌀도, 빵도 안 먹고, 생선은 고사하고 염소 치즈만 먹지. 좀처럼 당신한테 맞는 식당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리고 내 요리도 별로 흥미가 없어. 우리 부모님은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을 잃고 있다고 말씀하실 거예요."

"글쎄, 당신은 동물들의 적이야. 평생 얼마나 많은 동물을 당신이 죽였을 것 같아요?" 당신은 독으로 독과 싸운다.

"동물을 먹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예요. 숲에서 호랑이는 토끼를 먹죠. 사자는 사슴을 먹어요. 그게 자연이 돌아가는 방식이라고요." 그것은 내가 중학교 때 선생님이 말씀한 내용이다.

"하지만 당신네 중국인들은 아무거나, 심지어 멸종 위기의 동물도 먹잖아요. 내가 장담하는데 만일 중국 숲에서 공룡들이 어슬렁거린다면 누군가 공룡 고기는 어떤 맛일지 알아보고 싶어 할걸. 어떻게 당신네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분별력이 없을까?"

"하지만 식물만 먹는다고 뭐가 그렇게 다른데? 모든 것에는 생명이 있는 법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순수하다면, 왜 그냥 먹기를 관두지 않죠? 그럼 똥도 안 쌀 수 있을텐데?" (pp.205-206)

 

 

남자와 여자가 단순히 문화적 차이 때문에 싸우기만 할까. 아니다. 남자는 그런 남자라서, 여자는 그런 여자라서 싸운다. 그들은 문화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이겨낼 수 없었듯, 자신들 고유의 성향에서 오는 불협화음도 이겨낼 수가 없다. 여자는 자신이 그에게 유일하기를 원한다. 남자는 여자가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면서 자신의 생활을 갖기를 바란다. 이것은 자꾸 서로에게 불만이 된다. 남자는 여자가 세상을 더 경헙해봐야 한다며 여행하기를 권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여자는 애인이 돌아왔는데도 친구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가 못마땅하다. 우린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에게 충실히,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사람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고, 이런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은 서로와 맞지 않음을 느낄때마다 자꾸 반복되게 튀어나온다.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너도 제발 나 말고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려봐.

 

 

 

나는 이 세상의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살다가 아주 운좋게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슷하다는 게 같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가도 사소한 문제들에서 어그러지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뒤돌아 서게 될 수도 있다. 달라도 마찬가지. 우리는 서로가 다름에 대해서 매력을 느껴 끌릴 수도 있다. 남자는 영어에 서툰 여자를 극장에서 만났고, 그녀와 걷고 대화하기를 즐기며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쳐준다. 여자도 영어 학원에서 선생님에게만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남자와 함께 살면서 영어가 더 빨리 늘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남자는 '내가 언제나 당신이 묻는 단어의 뜻만 가르쳐주며 시간을 보낼수는 없는 법' 이라고 짜증을 낸다. 우리는 서로 달랐기 때문에 그걸 매력으로 느껴 상대에게 한 발 다가섰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다시 두 발 뒤로 물러서게 된다. 우리가 비슷해도, 아주 많이 달라도, 우리가 다가서도 뒤로 가는건 사소한 걸로 시작되고 그 사소한 게 쌓여서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부딪치고 싸워가며 우리가 사소하게 다른 점들을 받아들이느냐,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그다지 행복하게 느껴지질 않아 뒤를 돌아서느냐 하는건, 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그 관계에 달렸다.

 

 

 

거의 1년이 지나갔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참으로 열정적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오래되어, 먼지에 뒤덮여 있다. 매일 아침 당신은 신문을 사기 위해 길모퉁이 가게에 간다. 당신은 작은 카페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며 신문을 읽는다. 당신은 집에서 긴장을 풀 수가 없기 땜누이라고 말하며, 차라리 어디든 밖에서 신문을 읽으려한다. 내가 이 집을 떠나 당신에게 공간을 되돌려주어야 하나? (p.333)

 

 

처음엔 이 공간보다 여자가 더 소중했다. 공간의 한 켠을 나누어 주고 싶고 함께 쓰고 싶을 만큼. 그러나 이제는 그녀보다 자신의 공간이 더 소중해진다.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이 나로 인해 소멸되고 있음을 본다. 나날이. 밤마다. (p.356)

 

 

그토록 아름다웠던 당신이, 나로 인해 그 아름다움을 잃고 있다면, 그 때, 바로 그 때가 안녕을 고할 시간.

 

 

 

이 책속의 여자와 남자의 만남과 사랑이 다른 연인들의 것에 비해 특별하거나 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짐작할 수 있는 바로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자가 영어를 익혀갈수록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게 흥미롭고, 영어가 능숙해진다고 해서 영국 남자와의 관계가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인상깊다. 자라온 환경은 한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걸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아주 다른 사람, 아주 다른 환경이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경험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있을까. 우리가 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안의 근본적인 어떤 것은 달라질 수 없는 건 아닐까.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여자는 지금과는 다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영국 남자와 사랑하고 헤어져봤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는 연인의 일기장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를 익히는 것도 그리고 연애조차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하는 하나하나의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각 꼭지마다 영어 단어 하나씩들이 등장한다. 이 구성이 흥미로워 이 책이 인상깊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구성의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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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11-0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을 부르는 다락방님^^ 말씀대로 구성이 재미나겠어요. 다락방님은 소설 쓰셔도 참 재밌게 이야기를 끌어갈 거 같아요. 땡쓰투유~

다락방 2013-11-04 17: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소설을 써보고 싶은데 제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게 도무지 자신이 없어서 전 그냥 열심히 읽는것만 해야할 것 같아요. ㅠㅠ
그치만 이 책의 구성이 좋아서 자꾸 욕심이 생기네요. 흑흑.

[그장소] 2013-12-3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부딪치는 현상이 여기 책속에 있군요..
다만 여자인 내가 책 속의 남자"와 같이 생각하고
남자인 친구가 책속의 여자"와 비슷하게 군다는걸 빼고..
아, 밑줄치고 동그라미 치고 별표까지 해줘도..
그는 나만 쳐다보고 책은 안중에도 없을..답답함..하핫핫

다락방 2013-12-31 08:59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나만 쳐다보는' 게 나를 잘 사랑하는 방법은 아닌데 말이죠,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흐음...
 
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의 성격이 모두 나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의 미연이 내 친구라면, 나는 이 무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하소연을 들으며 술마시다가 잔소리를 좀 했을것 같다. 그전에 물론, 나와 친해지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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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3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당에 도착했을 때 결혼식은 끝나고 성당 뒷마당에서 기념 촬영이 한창이었다. 성당으로 오르는 길 양옆에 놓인 강렬한 원색의 팬지들 너머로 녹색 잎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수많은 하객들에게 포위되다시피 한 신랑, 신부의 뒤쪽으로 절정에 오른 색색의 철쭉들이 한껏 축제 분위기를 냈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멈추어 섰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당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 갔지. 오늘 아침에 분명히 넣었는데. 거칠게 손을 놀렸지만 선글라스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몇 번 더 헤집다가 백을 뒤집으려는데 뒷마당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아 들고 성당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달려가는 신랑의 동선 뒤로 한층 강해진 햇살이 찬란히 빛을 내뿜었다.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봄의 명동 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전에 보았던 결혼식의 환한 아우라가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다. 결혼식. 한 타인과 영원히 인생을 함께할 것을 서약하는 자리. 그 끝이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영원을 서약하는 예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가. 흐물이 비판을 일삼던 종교에 귀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흐물에게 전화해서 '흐물!' 네가 왜 하느님 품에 안겼는지 알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튈 것처럼 생생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나는 멈추어 섰다. 흐물과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었던가. 흐물과 있을 때, 나는 찬란히 빛났다. 만방에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렇다면 흐물과 나, 둘 중 누가 누구를 이끌었던 것일까. 흐물이 나를 이끌어주었을까, 내가 흐물을 이끌어주었을까. 일방적으로 흐물을 이끌어주었다고 생각했던 그동안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pp.283-284)

 

 

 

 

 

 

 

 

 

 

 

 

 

 

 

 

 

결혼식은 축하해주러 가야 하는 자리이지만, 행복을 빌어주어야 하는 자리이지만, 그 결혼식에 참석해서 내 기분이 항상 좋으리란 법은 없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입맛이 쓴 경우도 더러 생긴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나도 한 결혼식의 하객으로 참석했다. 사실 그때 나는 결혼하는 당사자를 축하하러 가는 것이 본 목적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반드시 하객으로 올 M 을 보러 가는 거였다. 우리는 헤어졌고 오랫동안 못보았지만, 그 결혼식엔 반드시 올 것이고, 그 결혼식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터다. 나는 그를 그렇게, 보고싶었다. 그 자리에서 하객대 하객으로 만난다면 우리는 그저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게 전부겠지만, 이제 나는 그와 부러 만나는 사이가 아니니 그렇게 보는 것 말고는 그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버렸지만, 그 당시엔 내가 좋아했던 원피스를 입고, 향수를 뿌리고,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온 J의 차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아는 몇몇 얼굴들과 인사를 하고 틈틈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J 가 분명 M 이 여기에 온다고 했는데, 오면서 통화도 했다고 했는데..

 

예식을 채 보지도 않고, 당연히 식사도 하지 않은채,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식장을 나왔다.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걷게될지 모르지만, 혹여라도 늦게 M 이 도착한다면 이렇게 걷다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가 참지 못하고 M 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오랜만의 통화였다. 여보세요, 그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그에게 왜 예식장에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온 김에 얼굴좀 보려고 했는데,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덧붙이며. 그는 거의 다 도착했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느라 좀 늦었노라고.

 

아.

 

식장에서 그를 기다렸다고한들, 그렇게 그와 마주쳤다고한들,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긴 껄끄러웠겠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굳이 여기를 올 필요는 없었는데. 결혼하는 당사자와 내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내가 올 줄도 몰랐을텐데. 욕심이 화를 불렀네. 나는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예식장은 우리 집에서 차로 삼십분 거리에 있었고, 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서 결국 집까지 갔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근처의 시장에 들러 피자를 한 판 포장해갔다. 누군가의 결혼식은, 아주 쓸쓸한 게 될 수도 있는거였다.

 

 

이 책속의 여자는 남자를 '보험같은 이성친구'라고 생각했다. 먼 곳에 살면서도 자기가 부르면 언제나 다가와주는 그를 언제까지고 옆에 있을 상대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었을때에도, 어디 감히 나를 넘봐, 라는 생각으로 그를 무시했다. 그를 만나다가도 자신이 공을 들이는 다른 남자의 전화를 받고는 그를 버려두고 가버리기도 했다. 그 후에 연락이 잘 되지 않던 남자가, 글쎄, 결혼을 한다고 한 거다. 자신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여자는 그 결혼식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가 결국 가기로 마음을 바꾼다. 삼십만원을 축의금으로 내려다가 십만원으로 바꾼다. 결혼식에 갔지만 아는척하지 않고 돌아간다. 가야했을까 가지말아야했을까. 왜 누군가의 결혼식엔 하객으로 참석하는 게 이다지도 쓸쓸하고 고독하고 입맛이 쓰단 말인가. 이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허해지면서 영화 <사이드웨이>가 생각났다.

 

 

 

 

 

 

 

 

 

 

 

 

 

 

 

교사인 마일즈는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그 친구와 둘이 총각여행을 떠난다. 이혼을 했고, 교사로서 돈벌이도 좋지가 않고,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지만 어느 출판사도 그의 책을 출판해주려하지 않고, 호감이 가는 여자와는 잘 되질 않는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게 바로 와인. 와인을 맛보고, 와인을 수집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커다란 기쁨이다. 그 순간들이 그에겐 무척이나 소중하다.

 

 

"수집한 것중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 뭐예요?"
"61년산 슈발 블랑이요."
"와우. 그걸 어떻게 마시지 않고 두고만 있을 수 있죠?"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과 마시고 싶어서요."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인거예요."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여행에서 돌아와, 마일즈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이제 결혼을 하는 것만으로도 쓸쓸한데, 그렇게 혼자 하객으로 왔던 그는, 그 결혼식장에서 자신의 전(前)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새로운 남편을 소개시켜주고 임신 소식을 알린다. 마일즈는 그녀에게 축하를 건네고, 친구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많은 하객들 중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도 못한채로 결혼식장을 빠져나온다.

 

이 때의 마일즈가 떠올랐다. 보험같은 이성친구를 떠나보내는 여자를 책으로 만나면서, 그녀가 식장에서 뒤돌아 혼자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마일즈가 생각났다. 그러나 마일즈에겐,

 

61년산 슈발블랑이 있었다. 마일즈는 특별한 순간에 마시고 싶었던 그 와인, 61년산 슈발블랑을 챙겨들고 소박한 식당으로 간다. 식당에 간 그는 햄버거 하나를 시켜서 그 햄버거를 앞에 두고 61년산 슈발블랑을 꺼내 식당의 플라스틱 컵에 따른다. 그는, 혼자서, 소박한 식당에 앉아, 그토록 소중하게 아껴온 61년산 슈발블랑을 마신다.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인거예요.

 

 

그는 자칫 비참하고 외롭고 절망에 빠져들 수도 있었을 그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버린다. 수많은 영화의 수많은 장면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나의 사이드웨이 DVD 는 어디에 있지? 누구에게 있는거지? 기억이 나질 않네 ㅠㅠ

 

 

 

퇴근길에는 우체통에 두 개의 편지를 넣었다. 하나는 부산으로 갈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서구로 갈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그립다 썼고 다른 하나에는 시를 한 편 적었다.

 

 

여름의 끝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쓸쓸하게 돌아서야했던 결혼식장과, 보험같은 이성친구를 잃어버린 여자와, 61년산 슈발블랑을 혼자서 따라 마셨던 마일즈가 생각났던 날, 이 시를 읽으니, 쥐약같았다. 여름, 내가 여름에 잃어버린 사랑이 떠올랐다. 여름에 시작되고 여름에 끝냈던 사랑이. 겨울에 시작됐고 여름에 끝났던 사랑이. 여름에 잃었던 그 두 사랑이, 내게는 가장 찬란했다. 그들 앞에서 나는 가장 가슴 떨렸었다. 여름에 헤어지면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고질적인 병인가보다. 사랑을 잃고난 후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었지만, 그러기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했다. 마찬가지로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맨발에 수없이 많은 고통이 가해졌을 것이다. 날카로운 돌을, 깨진 유리를, 고인 물엉덩이를 그 발로 디뎌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단단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름에 사랑을 잃어본 적이 있다면, 그전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에 사랑을 잃는 걸 권하고 싶진 않다. 그런식으로 여름의 끝을 맞이해서는 안된다.

 

 

 

 

나도 와인을 마셨다.

마일즈에게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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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1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10-3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정말 멋진 글입니다. sideways..ㅎㅎ

다락방 2013-10-31 08:45   좋아요 0 | URL
아이참 가연님도..부끄럽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아한다)

아무개 2013-10-3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생각해보니 저는 주로 봄여름쯤에 연애를 시작, 슬슬 추워질때즘 헤어졌던거 같아요.

좀 더 강해졌을진 모르겠지만 좀 더 추웠던거 같습니다.
그 이별이 있던 겨울들은요.

다락방 2013-10-31 09:36   좋아요 0 | URL
물론 겨울에 헤어진적도 있지만, 저는 여름에 헤어진 두 남자가 유독 기억에 남네요. 그 헤어짐이 엄청 힘들었어요. 그 두 남자를 제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기도 했고요. 그들은 제게 환상적인 존재였어요. 크-
그 여름이 무척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어휴, 그 눈물들.. ㅠㅠ

아무개 2013-10-31 09:45   좋아요 0 | URL
자면서 울고 밥 먹다가 울고 전절에 서서도 울고 길을 걷다가 울고.....
참 많이도 울었었네요.

나중에 만나면 실연이야기나 잔뜩 해볼까요?
아마 그날은 누구하나쯤 인사불성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락방 2013-10-31 09:48   좋아요 0 | URL
실연이야기 ㅎㅎㅎㅎㅎ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ㅋㅋㅋㅋㅋ 뭔가 소주가 술술술 하면서 넘어갈 것 같아요. 하하하

아무개 2013-10-31 09:52   좋아요 0 | URL
담번 모임의 주제는 내인생 최악의 연애와 최고의 연애입니다.

흠...어디 방이라도 잡고 술마셔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다락방 2013-10-31 09:56   좋아요 0 | URL
전 이거 지금 말할 수 있어요.

내인생 최악의 연애는 '사랑하지 않았던 상대와 했던 연애' 이며
내인생 최고의 연애는 '해보지 못했던 게 많았던 연애' 입니다. ㅎㅎㅎㅎㅎ

자작나무 2013-10-3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 님과 무개 님의 화려한 인생과 풍성한 기억에 슈발 블랑을.
난 살아오면서 왜 기억나는게 별로 없을까요? 연애조차도.

다락방 2013-11-03 22:29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일들과 만나게 될 사람들이 기억되지 않을까요?

2013-10-31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3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3-10-3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우리 사이드웨이를 플레이 시켜놓고 밤새 와인을 마셔봅시다.

다락방 2013-11-03 22:29   좋아요 0 | URL
캬- 좋죠. 아름다운 영화에요. 난 이 영화가 몹시 좋아요!

에르고숨 2013-11-0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우체통에 넣은 편지 이후의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으려나요... 다락방 님이 안 계신 마지막키스서재가 참 쓸쓸합니다.

다락방 2013-11-03 22:30   좋아요 0 | URL
어머. 에르고숨님, 저 기다리신 겁니까? 움화화화핫.
일요일 밤이라 여기를 안 올 수가 없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 어떻게 보냈어요?

에르고숨 2013-11-04 00:58   좋아요 0 | URL
예. 슬픈 글을 남기고 ‘멋지게’ 잠깐 부재해주시니 그러지 않겠어요?
주말에 술 마시고 책 읽었어요, 물론 여기도 들락거리고요. 역시, 새 독후감을 갖고 와주셨네요. 또 한 주 무탈하고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13-11-04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주말에 술 마시고 에르고숨님 서재에 들락거렸어요! 흔적은 안남겼지만 말예요. 헤헷.
^_________________^
 
정글만리 3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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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영어를 미국사람들처럼 잘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 조그맣고, 1인당 GDP도 2만 달러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는 나라에서 사교육비를 매해 20조원 이상 쏟아붓는다고 그들의 매스컴이 보도하고 있다. 그거야 자식 교육에 광적인 한국 부모들의 사적 욕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그런데 황당한 일은 영어 교육 강화를 위해 나라에서 역사 시간을 일주일에 1시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그들이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세계의 선진국들은 일주일에 역사 시간이 3~4시간이고, 역사 시간을 줄이는 일은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저지르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그 용감무쌍한 결단력이 세계1위, 금메달 감이 아닐 수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조지 산타야나의 이 유명한 말을 한국 정부만 모르는 것일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짓밟힌 굴욕의 시대를 살았으니 역사 시간을 몇 시간으로 해야할까. 프랑스 입장에서 볼 때는, 정부가 그런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는 데도 역사학계나 지식인들이 침묵 속에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참 야릇하고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43-44쪽

흔히 말하기를 기업이 크든 작든 딴 나라로 진출할 때는 미국은 5년, 일본은 3년 정도 조사하고 검토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기간이 없이 괜찮다 하면 즉각 행동개시로 돌입하는 것이다. 그 신속성은 저돌성이기도 한데, 그게 무슨 기질인지 이해도 안 되고 분석도 되지 않았다.하긴 기질이며 성품이며 습관이며 인습 같은 것이 수학 문제풀듯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주재원들도 불가사의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일류기업일수록 명문대 출신들이었고, 하나같이 집념과 열정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느리고 까다로운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지치거나 포기하는 일 없는 끌질김으로 중국시장을 확대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드은 거의가 영어를 능통하게 잘하면서도 중국 시장에 들어서면 곧 중국어를 미친 듯이 익히는 것이었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집념과 열정의 소산인데, 어떻게 하나같이, 마치 인조인간들처럼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불가사의였다. 중국말을 능란하게 구사해 가며 그들은 자기네 물건을 팔기에 앞서 중국사람들의 마음을 사버렸다.-251쪽

"사람을 능력만으로 고르지 말아라. 능력 반, 사람 됨됨이 반이어야 한다. 술을 마셔 보고, 노름을 해보고, 등산을 해보고, 여행을 해봐라. 이기적인 자, 언행이 안 맞는 자, 마음이 가벼운 자, 인내심이 약한 자, 불평이 많은 자, 협동이 안 되는 자, 뒷말을 하는 자,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자, 다 골라내라."
양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 사장단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앤디 박이 언제부턴가 남자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그가 풍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고 있을 뿐이었다.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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