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여러가지가 있고, 그 직업들은 다시, 보람을 주는 직업과 안정감을 주는 직업, 단순히 돈만 벌게 해주는 직업으로 나뉠 수 있을것이다. 뭐, 이건 나누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텐데, 어떤 직업은 '남들이 보기에도 근사하고 자기 자신도 만족하는' 직업으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직업은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은 만족하는' 직업으로 보일 수 있을것이다. 이것 역시 나누는 사람, 보는 사람의 기준이겠다. 예를 들면, 내 기준에서는 통역을 한다거나 번역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남들이 보기에도 근사하고 자기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헬쓰장 트레이너에 대해서는 남들이 보기에 근사해 보이는 건 아닌데 자기 자신은 만족할 수 있을것 같은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자기 자신이 만족해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이 내겐 있었다.
어제.
식구들과 모여앉아 티븨 채널을 돌리다가 암환자에게 운동이 얼마나 좋은지를 말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 달이 지나고나자 몰라보게 몸이 좋아졌다고들 말하고 있었다. 환자 대부분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하자, 그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트레이너들이 그들에게 운동하는 방법을 옆에서 코치해주었다.
나는 아픈 사람들이 운동을 시작한 것보다, 그들의 운동을 돕는 트레이너들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 직업이, 아주 좋아 보이는거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삶과 아주 다르게 보이는 삶. 아프고 병든 자들을 좀 더 건강한 삶으로 이끌기 위해 프로그램을 짜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코치해주는 그 트레이너들이 무척이나 근사해 보이는거다. 일반적인 대형 헬쓰장처럼 거기엔, 열정 혹은 혈기로 들끓는 젊은이들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 가끔 눈둘 곳을 모를만큼 근사한 차림새의 젊은이들이 바글거리지도 않는다. 혹시 잠깐 시간을 내어 커피 한 잔 할 수 있겠느냐는 은밀한 작업이 그곳엔 없다. 거기엔 남은 삶을 어떻게든 조금 더 이어보고자, 그 삶을 조금 더 건강하게 이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젊음의 시간은 이미 다 보내 버린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에게 동작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트레이너들을 보니, 뭐랄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이상적으로 보이는거다.
그들에겐 성취감이 있을것이다. 물론, 그들이 잘하는 일일 것이고. 빠르고 급하게, 라는 게 거기엔 없을것이다. 퇴근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그 트레이너들의 머릿속에 뭐, 내 생각과 별반 다를바 없는 생각이 들어있을 확률이 크겠지만, 그 트레이너들의 직업이 아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직업으로 느껴졌다. 나는 운동에 별 관심이 없고 잘 하지도 못해서 그 직업으로 옮겨간다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만약 삶의 목표가 '돈 잘 벌고 출세하고 이름을 떨치는' 게 아닌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자신의 삶의 목표가 '조용하고 안정적이며 보람있는' 거라면, 그런 직업은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나는 겉에서만 본 거니, 그 직업으로 막상 뛰어들면 어떤 치열함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어제 티븨를 보는 동안에는, 그들이 완벽해 보였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난 지금의 이 직장을, 이 직업을 오래오래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난 뭘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
깨끗한 식사
어떤 이는 눈망울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
식주의자가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
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
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
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
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
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
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등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
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
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어휴, 이 시는 아주 그냥 강하게 내려치는구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시랄까. 직설적으로 강하게 확- 내려쳐서 턱, 하게 되는 기분. 이래서 강신주가 그토록 김선우를 좋아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휙- 확- 내려쳐서, 내다꽂아서.
이 시집을 펼쳐 절반쯤을 읽었는데, 또 모르겠는 시 투성인거라, 아아, 이것이 나의 문제야. 내가 시 조차도 너무 빨리 읽으려고 해서 그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시집을 덮었다. 생각날 때마다 천천히, 하나씩 둘 씩, 그렇게 천천히 야금야금 읽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뭐든 빨리 읽으려고 하는 성격이 급한 나라도,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천천히 읽게 되는 글들도 있다고. 이를테면,
코맥 매카시라든가, 줌파 라히리라든가, 앙드레 드 리쇼의 글이 그랬다고. 누가 권하지 않아도 천천히, 씹고 싶었다고, 그렇게. 그래도 다시,
천천히, 시를 천천히 읽어봐야지. 뭐, 천천히 읽는다고 내가 더 잘 이해할 것같진 않지만. -_-
정확히 뭘 어떻게 말하는건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는 않는데, 확실히, 그러니까, 음, 뜨거움을 주는 것 같은 이런 시는, 좀 아득하지만, 아름다운 것 같은 느낌.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이 시는, 현재 내가 읽고 있는 소설책보다 더 은밀함과 질펀한 감정을 깨우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처음부터 성욕, 섹스 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있어도, 이 시에서 주는 기운을 따라올라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설도 절반 정도 읽었으니, 끝까지 읽어보기는 하겠다. 어쨌든 그래도 뭘 어떻게 설명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서, 참말이지, 강의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다. ㅎㅅㅊ님 만나면, 이 시에 대한 해석이나 부탁해야 할까보다.
그나저나 오늘 검색창에 신동엽 아이큐가 160이라고 떴던데, 오, 신동엽은 그럴만도 하지, 싶다가.... 흥. 대한민국 머리 좋은 사람들은 죄다 연예인만 하나보다. 연예인들은 아이큐만 공개했다하면 다들 그렇게 높더라. 다시 한 번 검사해보라고 하고 싶다. 늬들, 늬들이 말한 아이큐 안나오기만 해봐, 이 구라쟁이들아.
암튼간에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용히 생각 좀 해봐야겠어..난 머리도 나쁘니까 말이야..
나도 내 프로필 사진에 있는 안젤리나졸리처럼, 저 코트를 입고 저 가방을 들고 저 핏이 나오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ㅠㅠ
졸리는 치맥을 안하나?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