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와인의 맛을 알지 못하고 마시기 시작한지 오래되지도 않아, 한 입 입에 물고 호로록 굴리면서, 으음, 뜨거운 태양의 냄새와 껍질의 맛..음, 바닐라가 섞여있고 코르크 향이 나는군...같은 건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맛을 구별하지도 못하지만, 그간 마신 경험만으로 '까베르네쇼비뇽'과 '말벡'이 내 입맛에 좋다, 정도까지의 취향이 생겼다. 이렇게 뭐 자세히 맛을 구별하지도 못하고 그저 와인을 마시면서 온 몸에 도는 열기와 취기를 좋아하는터라, 굳이 비싼 와인을 마실 필요는 없다. 사실 비싼 와인 마실 돈도 없고. 와인은 가뜩이나 소주나 맥주보다 비싼데, 어떻게 비싼 걸 마셔... 여튼 그래서 내가 애용하는 와인은 마트에 갔을 때 '이만원에 세 병'하는 와인이다. 이만원에 세 병하는 와인을 사서 마시고 가끔 만원 안팎의 와인을 사마시기도 하는데, 사치한답시고 월급날 2만원이나 3만원짜리 와인을 사 마신 적도 있다. 그런 비싼 와인을 마신 건 다섯손가락 안에 꼽지만... 뭐, 그렇다는 거다. 


















어제 영화 [데미지]를 봤다. 1991년에 개봉한 영화던데, 지금에야 봤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야한 영화를 보고 싶어 추천을 바란다고 트윗을 작성했는데 그 때 추천받은 영화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영화인데 내가 일본 영화는 좀 별로이고 다른 하나는 벨기에 영화인데 굿 다운로더가 없다. 그런데 이 [데미지]는 <무삭제완역판>으로 굿 다운로더 단돈 1,000원!!!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다. 여자가 자신의 시아버지 될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파격적인 스토리. 줄리엣 비노쉬가 야하면 얼마나 야할까 약간 의심했는데, 이 영화는 내가 원하는만큼 야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남자, 즉 시아버지가 될 사람인 '제레미 아이언스' 가 겁나 멋진 거다. 이 남자는 영화속에서 인정받는 정치인이며 앞으로 더 커나갈 가능성도 품고 있는 남자다. 지위와 명성을 가지고 있고 인기도 있는 사람. 이미 가진게 많은 사람인 그가, 아들의 여자친구를 보고 폭풍같은 열정에 휩싸인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그로서도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오죽하면 이 나이든 남자는, '그녀를 너무 갖고 싶어' 침대에 누워 울기까지 한다. 만나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어디를 만져야할지, 어디에 입을 맞춰야할지 안절부절 전전긍긍, 만나지 않을 때는 보고싶어서 돌아버릴라고 하고. 그런 그가 유럽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가하고자 브뤼셀로 날아간다. 긴 회의후 주어진 열두시간의 휴식시간, 그는 그녀가 있는 프랑스 파리로 열차를 타고 간다. 그리고 아침 일찍 그녀를 잠깐 만나고는 호텔에 체크인을 한다. 크로아상과 베이컨이었나, 암튼 이것저것 프런트에서 아침 메뉴를 주문한 뒤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 그리고 좋은 레드와인 한 병도요.



아.............저건 뭐지...묻지도 않고 '좋은 레드와인'을 주문할 수 있는 저 여유........부럽다. 엄청나게 부럽다. 내게도 저런 날이 올까? 근사한 호텔에 들어가 룸서비스를 시키면서 얼마인지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그저 '좋은 레드와인 한 병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 지금의 나는 간혹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가 와인을 주문할 때, 가장 저렴한 걸로 시킨다. 맨 위, 가장 저렴한 와인을 손으로 콕 짚어서는 '이거 주세요' 하는 것이다. 너무 비싼 레스토랑에 가면 차마 와인을 병으로 시키지도 못하고 글라스로 주문하면서 '많이 주세요' 같은 찌질한 멘트만 날리는데.... 씨양. 좋은 레드와인 한병, 이라니.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주문할 수 있는 그 여유는 어디서 오는거냐. 네 돈에서 오는 거냐. 지위, 명예? 레드와인에 쓰는 돈 쯤은 사실 별 거 아닌, 뭐 그런 거? 하아- 배아퍼 배아퍼 부러워 부러워 나도 저거 해보고 싶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 저렇게 주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체크아웃 했을 때 혹은 레스토랑에서 계산하고나서 계산서 확인 안하겠지? 고깃집에서 계산하고 영수증 주세요, 한 다음에 고기 3인분에 36,000원 소주 세 병에 12,000원 공기밥 1,000원 맥주 두 병 10,000원 그러니까 59,000원 맞나, 하고 들여다보며 계산하는 거...안하겠지? 그러다 계산서보고 나갔다 다시 들어와 '저희 소주 두 병이었는데 왜 세 병 계산하셨어요?' 이런거 따지고 그러지 않겠지? 



아, 좋은 와인 사가지고 이런거 해보고 싶다.





두번째 사진처럼 피크닉 가서 하면 분위기도 좋고 신날 것 같은데 화장실...은 어쩌지? 풀밭에서 해결해야 하나? 암튼 이 두 사진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스틸컷인데, 지금 올리면서 이렇게 넷이 가면 참 좋겠다, 생각하다가 나랑 내 애인이랑 한 커플 그러면 또 한 커플은 누구와 함께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미숙이 생각이 났다. 내 친구 미숙이. 미숙이랑 미숙이 애인이랑 이렇게 넷이 가서 와인 취할때까지 먹으면 좋겠다. 아니면 나랑 내 썸남, 미숙이랑 미숙이 썸남..뭐 이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꼭 사진처럼 두 커플이어야만 할 것 같아... 상상의 나래.... 안주는 육덕육덕하고...신선한 것도 물론! 치즈도 있어야 돼. 아 이따 집에 갈때 치즈 사가서 먹어야징. 아 집에 가고 싶다 ㅠㅠ 와인 마시러 가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뭔가 드러누워 뒹굴면서 칭얼대고 싶다. 피크닉 가자가자 아 몰라 가자가자 와인 먹자먹자 아 몰라 먹어먹어 그러면서 사지를 흔들며 칭얼대고 싶어...

(첫번째 사진이 제일 좋다, 나는)



아, 암튼간에, 수트 입은 제레미 아이언스는 진짜 근사했다. 어쩜 저렇게 멋질까 싶을 정도로..그런데 스틸컷 찾으려니 괜찮은 게 없더라. 그러니까 패쓰. 줄리엣 비노쉬도 예뻤는데, 크- 이 숏컷 보면서 또 누가 좋아하겠군, 하는 생각도 했다. 의외의 장면에서 내가 좀 꽂혔는데, 이건 비밀이고. 여튼 내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작은 목표가 생겨났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자신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p.124)







기쁨과 마찬가지로 목표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걷기 위해서는 큰 목표와 작은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삶은 그렇게 구성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언젠가 타임지에 실릴만한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 같은 건 큰 목표에 해당하는 것일테고, 아이패드를 사겠다 같은 건 작은 목표가 되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다가 불쑥, 내게 작은 목표 하나가 추가되었다. 이것은 은밀하고 내밀하며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므로 빔!일! 작은 목표가 하나 생겼네, 라고 생각하다가 아..졸 큰 목푠가...싶기도 한 것이.... 여튼, 목표가 생겼다! 목표가 생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뭔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간다면, 삶이 또 내가 그린대로 형태를 갖추는 게 아닐까. 




어제 출근길, 평소 나오던 출구로 나와 회사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다가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똭- 임원을 마주쳤다. 나는 마치 못봤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열심히 앞을 향해 걸었다. 난 못봤어, 난 못본거야...그런데 뒤에서 내게 말을 걸더라. 하아- 제기랄. 나는 돌아서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썼던 선글라스를 빼며 '어머, 안녕하세요, 왜 거기서 오세요?' 라며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했는데, 아마도 그 임원은 나의 가식..을 다 눈치챘을 것이다. 지하철이 편해서 차 안끌고 지하철 타고 다니고 계신다더라. 양재역에서 항상 걸어오신다고...하아- 그렇다면 늘 이 길로 다니는 것인가, 그러면 나는 또 마주칠 수 있는건가, 나는 출근길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퇴근길에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특히나 임원이라면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만나고 싶지 않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버스를 타고 가나, 아니야 나는 다이어트 중이니까(응?) 걸어가는 게 맞아, 그렇다면 다른 출구를 이용해야 하나, 아아, 나는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누구도 내게 일러주질 않았네......라며 오늘 평소처럼 그 길로 왔는데 오늘은 만나지 않았다. 이것은 삶의 작은 기쁨에 해당한다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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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보면 그 임원님도 알라디너?? 호호호

다락방 2015-05-29 11:18   좋아요 0 | URL
아....그러면 어쩌죠? (쫄아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5-05-2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 이번 주말에 데미지 꼭 봐야겠다!!!

오늘 저녁엔 와인 한잔해야지. 메뉴가 와인과 어울릴거임.ㅋㅋ 인증샷 날릴게요~

다락방 2015-05-29 11:45   좋아요 0 | URL
나도 지금 와인 할 생각에 들떴음. 집에 가고 싶어 미치겠는데 오늘 일이 많아요 ㅠㅠ
인증샷 기다리고 있을게요.
치즈치즈치즈치즈 치즈를 잊지말고 사가야할텐데 치즈치즈치즈치즈

레와 2015-05-29 12:37   좋아요 0 | URL
다락방. 치즈치즈치즈치즈 잊을리가 없잖아!! ㅋㅋㅋ

다락방 2015-05-29 14:33   좋아요 0 | URL
오늘 일 많아서 들어가다가 잊을 지도 몰라 ㅠㅠ

춤추는인생. 2015-05-2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에서는 와인가격이 매우 싸고 잔디밭에서도 편히 마셔요 다락방님.
마치 콜라처럼~ 매끼 식사에 한잔의 와인은 필수같이 느껴져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와인이 무슨 고가사치품으로 변신해서 샤또팔머네 로마네꽁티네 이런식으로 비싼와인을 마시는것이 하나의 유행이거나. 아님 그반대로 저가와인인데, 가성비가 떨어지는게 많은것 같아요. 어서 빨리 우리나라도 동네 슈퍼에서 제발 아무간섭도 없이 와인을 마음껏 집어들수있는 나라이기를 바래봅니다. 치즈도 마찬가지구요 !!!
저도 까쇼 말벡 아주 좋아해요. 히히 불금 와인과 함께 달콤한 밤 보내세요 ~~~^^

다락방 2015-05-29 14:35   좋아요 0 | URL
네, 춤인생님. 외국 영화 보면서 제일 부러웠던 게 그냥 아무 까페나 이런 데 들어가서 와인 한 잔 시켜서 마시더라고요. 부담없이 그냥 시켜마실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저 양재동에서 한 잔에 15,000원 하는 데도 가봤어요. 너무 겁나서 딱 한 잔만 마시고 안주도 안시키고 그냥 나왔답니다. ㅠㅠ

얼른 집에 가서 와인 마시고 싶네요. 엉엉 ㅠㅠ

2015-05-2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5-29 14:35   좋아요 0 | URL
그런 날이 올까요? ㅎㅎ

프레이야 2015-05-2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와인 ㅠ 저 요새 한약 먹느라 못 마시고 있는데 훅‥
화장,에서 김규리가 회식 2차 자리에서 ˝여기 지공다스 주세요˝ 그래요. 그거 마셔봐야지,하고 있답니다. 원작에는 없는 게 이 와인 관련 장면들인데 상징적으로 배치한 와인과 와인색‥ 암튼 임감독의 와인 초이스,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저는 데미지,의 제레미 아이언스보다 더 매력적인 중년은 보기 어렵지않을까 해요. 롤리타,에서보다 더. 마지막장면 슬리퍼인가 쪼리인가 그런거 신고 베이지색 헐렁한 옷에 골목길을 털레털레‥

다락방 2015-06-01 09:06   좋아요 0 | URL
저 프레이야님의 이 댓글 읽고 지금 지공다스 검색해봤어요. 그러다 이걸 마셔봤다는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됐는데 3만원 좀 넘게 주고 샀다고 하네요? 만약 제가 이걸 마시게 된다면, 제 돈주고 산 가장 비싼 와인이 될 것 같아요. ㅎㅎ 아 이번달 월급 타면 마트나 백화점으로 달려가서 지공다스 한 병 사 마셔봐야겠어요. 크- 기대돼요! >.<

말씀하신 마지막 장면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치즈를 자르잖아요. 그래서 저도 마트 달려가서 치즈 샀답니다. 꼭 그렇게 잘라먹는 치즈를 먹고 싶더라고요. 결국 저는 금요일에 치즈를 사가서 와인을 마셨어요. 물론 다른 안주들도 함께요.

한약 다 드시고 와인 맛있게 드세요, 프레이야님! 참았던 만큼 더 만족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

Juni 2015-05-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때 와인전문점에서 사온 4만원정도의 와인을 가장즐겼는데 요즘은 못먹어서 힘듭니다 ㅎㅎ

다락방 2015-06-01 09:07   좋아요 0 | URL
요즘은 왜 못드세요, 쭌천사님?
4만원정도의 와인은 제가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는데, 혹시라도 연봉이 오른다면 한 번 사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

에이바 2015-05-2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드웨이닷!! 사진보고 환호하면서 들어왔어요. 나파 밸리의 와인이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한 영화(?)죠ㅋㅋ 다락방님 다음에 분위기 있게 캘리포니아산 와인 한병... 데미지 보면서요. 독서 공감 5만부 달성이 성사되었더라면!! ㅠㅠ 마트 와인이면 어떤가요 이런게 일상의 작은 기쁨 아닌가요ㅎㅎ

다락방 2015-06-01 09:07   좋아요 0 | URL
사이드웨이 다시 봐야겠어요. 늘상 다시봐야지 생각만 하면서 못보고 있어요. dvd 도 사놨는데 말이지요.

네, 마트 와인으로 누리는 일상의 작은 기쁨, 저도 만족합니다.
그나저나 사이드웨이 좋아하는 에이바님이라니, 반갑습니다! >.< 저 이 영화 진짜 좋아해요. 엉엉 ㅠㅠ

hellas 2015-05-30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레드와인 한병만 주세요;ㅅ; 멋들어지네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5-06-01 09:07   좋아요 0 | URL
제가 살면서 이런 말을 할 날이 올까요? ㅜㅜ

transient-guest 2015-05-30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ideways를 보면 늘 와인 한 잔 때리고 싶죠.ㅎㅎ 제가 저 영화에 나온데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었는데도 못 가봤어요.ㅎㅎ 솔뱅과 산타바바라의 와인컨트리는 참 이쁘다고 하데요. 그나저나 저 사진에서 파티의 끝은 결혼앞둔 총각과의 광란, 배신, 그리고 구타였죠??ㅎㅎㅎ 참 잘 만든 영화라서 요즘도 가끔씩 봅니다..

다락방 2015-06-01 09:09   좋아요 0 | URL
저는 마일스가 61년산 슈발블랑 마시던 장면이 아주 좋았어요. 아주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명장면이에요 명장면.

그걸 어떻게 마시지 않을 수가 있죠?
특별한 순간에 마시려고요.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에요.

마야와 이 대화끝에 결국 그는 가장 비참할 수 있었던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버리잖아요. 크-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moonnight 2015-05-3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줄리엣 비노쉬 안 좋아했는데 데미지 보고 정말 싫어하게 됐지요. 영화에 너무 빠져든건지@_@;; 저도 비싼 와인 안 마셔요. 구별도 못하는데-_- 뭔가 손해보는 느낌;;

다락방 2015-06-01 09:10   좋아요 0 | URL
오, 저는 저 영화 보고 줄리엣 비노쉬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숏컷을 잘 소화해내다니, 하면서 예쁘다..감탄도 하고요. 그런데 영화속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마음을 제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one fine day 2015-06-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미지를 본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상처받은 사람은 위험하다`와 `그녀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지 않았다`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대사입니다. 천명 사이에 있어도 만명 사이에 있어도 그 사람만이 보이는 것.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지.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그 말에 내 사랑도 저리되겠지 싶어 어찌나 슬프던지 한참을 울다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다락방 2015-06-02 10:09   좋아요 0 | URL
저는 그저 파격적인 내용의 영화일줄로만 알았는데 재미있었어요. 마지막 아들이 그 장면을 본 장면, 그 장면도 인상적이었고요. 무엇보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다가 이 여자를 만나 어쩌지를 못하는 것도...오, 그런건 대체 뭘까요?

마지막에 여행하면서 툴레툴레 걷던 장면이요, 그때 제레미 아이언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일, 그러니까 아들의 애인을 만나 사랑하는 일이 없었다면 그런 여행은 없었을 것이고 또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이미 일어나 모든 걸 버리고 혼자 떠나야 했던 지금의 순간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거요. 재미있게 봤어요.

어느 멋진 날 님의 사랑은 그 뒤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궁금하네요.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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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실린 단편은 <절반 이상의 하루오>였다. 목차도 안보고 이 책을 골랐고, 그래서 <절반 이상의 하루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 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아, 나는 이장욱을 좋아할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반 이상의 하루오라면 내가 각기 다른 작품집에서 두 번 읽은 작품이다(두 번째 읽었을 때야 내가 읽은 거구나 했다). 이번 책에서 또 읽는다면 세번째가 되는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하루오를 쓴 '이장욱'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내가 이장욱으로부터 별로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게 아닌가. 


- <어느 날 욕실에서>가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는데, 와- 이거 너무 무섭다 ㅠㅠ 책으로 읽을 때 상상되는 장면이 진짜 무서운 공포소설인데, 만약 이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정말이지, 옆구리가 터질 정도로 비명을 질렀을 것 같다 ㅠㅠ 이 작품 읽으면서 '아, 나는 혼자 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ㅠㅠ 무서워 ㅠㅠㅠㅠㅠ


- <올드 맨 리버> 에서 '히스 레저'를 언급해준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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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015-05-2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가 참 .......예뻐요..... 안에 실린 단편들은 다른 문집에서 거의 다 봐서 사지는 않고 있지만... 책이 참 예쁘뮤ㅠ 읽었던 것 중엔 <우리 모두의 정귀보>와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이 괜찮더라구요. 이장욱 작가 소설 나온지도 벌써 십 년이네요. 이젠 더 이상 젊은작가상엔 못 들어가실듯 두둥

다락방 2015-05-27 09:1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위에 쓴 것처럼 <어느 날 욕실에서>가 너무 무서웠어요. `이승우` 단편 중에서도 완전 이렇게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방`에 대해 무섭게 쓴 소설이 있었는데, 이장욱의 이 단편 읽으면서 이승우의 단편 생각도 나고 그러더라고요. 이승우의 단편은 `심리적` 무서움,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무서움이었다면 이장욱은 `본 것`에 대한 무서움을 표현하고 있어요. 아 너무 무서웠어요, 이름님 ㅠㅠ

아, 언급하신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도 좀 무서웠어요..

웽스북스 2015-05-2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모두의 정귀보 재밌지 않나여!!!!

다락방 2015-05-27 10:31   좋아요 0 | URL
저는 뭐 딱히 재미있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욕실에서>가 더 재밌었어요. ㅎㅎ

웽스북스 2015-05-27 10:31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받았으니 얼른 읽어보겠어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5-05-27 10:32   좋아요 0 | URL
네, 그 단편 읽고 어땠는지 얘기해줘요!!

웽스북스 2015-05-27 10:33   좋아요 0 | URL
네 전 아마도 다음주쯤 ㅋㅋ 이번주는 가즈오 이시구로 읽고 주말부터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여!

다락방 2015-05-27 10:34   좋아요 0 | URL
아이리뒷나우 어플 좀 활용해요, 웽님. 뭐 읽는지 좀 보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5-05-27 13:16   좋아요 0 | URL
업뎃완료 ㅋㅋ

프레이야 2015-05-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이 이렇단 말이죠~ 담아가요. 다락방님 리뷰를 신뢰하는 1인^^

다락방 2015-05-27 10:32   좋아요 0 | URL
네, 이장욱은 최근에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저도 새로운 작가를 좋아하게 될거란 기대로 읽었는데 전 그냥 이승우를 좋아하는 이상 새로 누군가를 좋아하긴 힘들 것 같아요. ㅎㅎ

nomadology 2015-05-2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은 이장욱이군요.
제가 이 정보를 활용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 (제 주변엔 컨템포러리 소설 이야기할만한 친구가 거의 없어서요) 아는 체할때 써먹겠습니다. ˝사실 요즘은 좀 .. 이장욱이쟎아? 근데..˝ 그러면 그쪽에서 뭔가 치고 나오겠죠?
뭐 이정도만 활용하면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5-05-28 08:33   좋아요 0 | URL
아 완전 빵터졌네요. 사실 요즘은 좀...이장욱이잖아? 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입니다!! >.<

hellas 2015-05-2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오 저도 이곳저곳에서 세번쯤 읽은 거 같네요. 이장욱 엄청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시도 무척 좋고:)

다락방 2015-05-28 08:34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저도 이곳저곳에서(그게 어디인지는 잘...) 두 번쯤 읽고, 이장욱의 단편집에서 또 읽게 됐네요. 세번째 읽을때는 읽다가 말았어요. 하핫. 제 친구 미숙이도 이장욱 좋다고하는데 저는 이승우...( ˝)

moonnight 2015-05-2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다락방닝 덕분에 또 알게 되는 작가@_@; 보관함에 잽싸게 담아갑니다. 감사드려요^^

다락방 2015-05-28 08:35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은 이장욱을 어떻게 읽으실까요? 궁금합니다. 언젠가 음주페이퍼에 감상 남겨주세요! :)

아애 2015-05-2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해서, 이장욱 님의 소설은 아직 만남이 없기에 읽을 참이었는데 다락방 글을 읽으니 잠시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제 상황은 무서움을 이길 정신이 아니거든요.

다락방 2015-05-28 14:35   좋아요 0 | URL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이 다 무서운 건 아니고요, 딱 두 개가 무섭더라고요. 그 무서운 단편들만 건너뛰신다면 다른 단편은 평이 좋은 만큼 아애님도 좋아하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애 2015-05-2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럼 조만간 읽어볼게요.

다락방 2015-05-29 11:15   좋아요 0 | URL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헷 :)

테레사 2015-05-2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장욱과 아는 사이죠..아 물론 지금은 세월에 의한 절교상태지만 ㅎ그의소설중 칼로의 유쾌한 악마를재밌게 읽어었으나..그외 간간히 접한 시와 소설은 별로였어요. 그래 뭐 별 신경을 안썼어요..헌데 이소설을 속는셈치고 보자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그래 페이스북에 한마디썼죠,이장욱 이번소설집 재밌네 하고.

다락방 2015-05-29 11:16   좋아요 0 | URL
세월에 의한 절교상태..시군요. ㅎㅎ
저는 이승우라는 작가를 좋아하고난 뒤로 다른 작가들을 좀처럼 좋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승우는 너무 세달까요? 이승우가 너무 강하게 딱- 자리잡고 있어서 다른 작가들이 치고 들어올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국내작가들에게 쉽게 마음이 열리질 않는, 뭐랄까, 음, 지고지순한 스타일의 독자가 되어버렸달까요... ㅎㅎ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두다 칭찬을 해서, 오 진정 레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려나 싶어 세 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예매했다. 터키 영화라는 것도 내게는 신선했고. 그렇지만 사람들이 칭송하던 그 우아함이 내겐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반팔을 입었고 극장안은 추웠다. 세시간 십오분을 고스란히 떨고 있자니 영화가 빨리 끝나기만 바라게 되더라.


영화속에서는 이렇다할 어떤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진 않는다. 그러나 저마다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진 평소의 생각과 신념을 아주 장황하게 풀어놓는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의 행동은 옳지 못해.'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그게 누가됐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말만 블라블라블라블라~

그 말들에는 어김없이 상대로부터 반박당할 논리들이 숨어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질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며 인정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말(혹은 글)이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한다고' 해서 용서된다고 혹은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칠게 말하는 태도의 폭력이 있다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단어들을 나열해가면서 폭력적인 말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내용의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의 태도가 부드러웠다는 것만을 자랑삼지, 자신의 내용을 고칠 생각은 하질 않는다. 윈터슬립 에서도 겸손한 태도를 유지한채 상대의 기분을 건드리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말을 하는 사람이 됐든 듣는 사람이 됐든, 그들중 누구도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러면서 계속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지옥으로 가는 문은 선의로 덮여있다'는 말이 영화속에서 인용되는데, 크,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좋은 뜻으로' 했다는 건 얼마나 좋은 핑계가 되는가. 그러나 그 좋은 뜻은, 대체 누구에게 선의로 작용하는가. 사람들이 '선의'를 베풀었다고 했을 때, 그 선의는 대부분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선의일 때가 많다. '선의를 베푸는 나'를 보여주고 싶은 경우일 때가 많다. 영화속 '니할'의 경우도 그런 경우였는데, 그녀는 '자선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찾게 됐다'고 했지만,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너 돈 없지? 내가 돈이 많으니까 너 이 돈 써, 라고 하는 순간, 그녀의 자선은 구역질 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녀가 품고 있는 선의는, 그녀 자신에게 향한 것이다. 



영화속 호텔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슨 절벽 같은데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호텔이며 동굴처럼 되어 있는데, 아니 저기까지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겠다 싶더라. 버스가 다닐 것 같지 않은 곳이랄까. 버스가 다녀도 하루에 한 두대쯤 다닐 것 같은 외진 곳. 풍경은 멋지겠지만, 뭔가 마트나 편의점이 보이지도 않는 곳이라, 아, 저런 데서 한 번 묵어보고 싶지만 길게는 묵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서울여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생각나고..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어 밀월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바로 여기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커다란, 객실이 있는 동굴 같은 데서 나와 좀 걸어가면 작은 동굴이 나오는데, 거기는 남자 주인공의 서재이다. 오.. 되게 근사하더라. 저런 서재 하나 있으면 정말 딱 좋겠다는. 영화와는 별개로, 서재에서 남자가 작업하는데 남자의 여동생이 간혹 들어와서 뒤쪽 소파에 앉아 잡지를 읽거나 하는데, 내가 만약 저런 서재를 갖게 된다면, 저 소파에 앉는 것이 허락되는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막 다 들어와 저기 앉는건 좀 싫을 것 같다...




아, 나도 이런 서재 갖고 싶다. 어쩐지 글도 막 잘 써질 것 같고 책도 막 잘 읽힐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이 찾아온다면, 함께 앉아 술을 마셔도 좋겠다. 기승전술...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나는, 다 보고나서 '우리에겐 이 영화보다 [위아영]이 더 나을 것 같다' 고 얘기했다.






크- 그리고 이거슨, 크- 어마어마하게 근사한 영화다. 엄청 멋지다!!! 대박이다!!!! 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의 초절정 재미를 가지고 있으며 스토리와 캐릭터까지 완벽하다! 남자주인공은 그저 거들 뿐, 이 영화속에서 짱멋진건 샤를리즈 테론이 다했다. 아, 이 언니는 진짜 캡멋져! 원래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매드맥스에서 멋진 전사의 역할을 한 것은 정말이지, 그녀의 이력에 대단한 한 줄을 추가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샤를리즈 테론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정말 좋은데, 스쿠터를 타는 아주머니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감동해서 목이 메이더라. 몇 번이나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글썽였는데, 주연부터 조연들까지, 자신의 커리어에 이 영화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빛나는 업적을 쌓은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나도 나의 커리어에 이 영화를 넣고 싶은데, 정말이지, 스쿠터 타고 헬맷을 벗는, 씨앗을 가지고 다니는 나이 든 여자사람 2 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씨앗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다. 희망은, 그렇게 전해지고 또 전해지는 것. 


그리고 조연이지만, 크- 로지 헌팅턴 휘틀리도 멋졌다. 예...예......예뻐...멋져!!!!!!!!




맨 오른쪽의 여자가 '로지'인데, 나는 최근에 로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해서 종종 그녀가 올리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제일 처음, [트랜스포머3] 으로 그녀를 알게 됐을때만 해도 '예쁘고 몸매도 멋진 여자' 가 그녀를 향한 나의 생각의 전부였는데, 요즘의 그녀는 '완전 멋진 여자' 라는 생각을 주더라. 


오래전에 트레이너였나, 몸이 엄청 근육으로 다져져서 우락부락한 남자가, 역시 몸짱인 여자와 데이트 하는 장면, 일상을 같이 보내는 장면이 텔레비젼에 나온 적이 있었다. 설정이 섞여있었겠지만, 크림소스스파게티를 먹고 싶어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그거 먹고 운동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아냐, 칼로리 신경 안쓰이면 먹어라, 하면서 구박을 하고, 각자 운동화를 챙겨와서는 데이트랍시고 남산의 계단을 올라가는데..그들은 그게 서로에게 맞고 좋아하니까 연인이 된 것이지, 나는 저렇게 하자는 남자와는 이별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시당초 그런 남자가 나를 좋아할 리도 없겠지만. 여튼, 몸몸몸몸 근육근육근육근육 다이어트다이어트다이어트다이어트 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와는 사귀고 싶지도 않고 딱히 막 알고 지내면서 까르르 웃고 싶지도 않은데, 며칠전 인스타에서 로지가 운동하는 짧은 동영상을 봤다. 하아-


그걸 동료 직원과 들여다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자가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한다, 라는 얘기를 했다. 로지도 운동을 하는데 우리가 뭐라고 운동을 안하고 쳐묵쳐묵하기만 하는가...하는 반성의 시간을 누룽지통닭을 시켜 앞에 두고 했다. 





그녀는, 알다시피 내가 좋아하는 1순위 남자배우 '제이슨 스타뎀'의 연인이다. 이 연인은 현재 5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연인들의 관계는 그들만의 내밀한 것이니,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갈지 또 어떤 것들로 인해 서로에게 강하게 끌림을 느끼고 싫증을 느끼기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토록 잘나가는, 스스로 잘나있는 남자와 여자가 오랜 시간 연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내게는 경이롭게 느껴진다.



자막 때문에 시끄러워졌지만 어쨌든 제이슨 스타뎀은 최근에 [스파이]라는 재미있(다)는 영화에 출연했고 뭔가 점점 더 나은 필모그라피를 만들고 있는 것 같으며 로지 역시 [매드 맥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를 연기해 그녀의 이력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들은 계속해서 운동하고 자기들을 가꾼다. 사실 나는 '자기 관리' 이런말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싫어.....), 이들이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또 단단한 이력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들은 자기들이 건강하기 때문에 관계 역시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일전에 [마녀사냥] 에 '한고은'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 '남자친구가 취직만 하면 자꾸 때려친다, 집에 있는 돈만 믿는 것 같다'는 사연을 읽어준 적이 있다. 그런 남자는 나도 싫다, 고 나 역시 생각했고 패널들도 역시 그런 식으로 말하거나 했는데, 한고은은 그때 '한 사람과 오랫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신뢰가 있는 것 아닌가요?' 라는 말을 하더라. 그때 아! 했다. 제이슨 스타뎀(이라고 인터넷에 나오던데 나는 아직도 '재이슨 스태덤'이 더 편하다)과 로지는, 현재의 내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연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크, 역시 내 눈은 틀림이 없어. 멋져! ♡



나보다 이 영화를 먼저 본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을 나누었다. 뭐하나 버릴 장면이 없다, 진짜 최고였다, 하면서. 





덕분에 '이브 엔슬러'의 책들을 보관함에 넣었다. 오늘 아침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에 대한 정성스런 리뷰로부터 알게된 '레베카 솔닛'의 다른 책도 함께 보관함에 넣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어쨌든 단 한명이라도 희망을 품고 있다면 세상이 쉽게 멸종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또한 이렇게 영화로 또 책으로 누군가 어딘가에서 자꾸 말을 해준다면, 그 말이 자꾸자꾸 퍼지게 될테니 역시 희망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트윗에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의 아주 괜찮은 감상을 읽었는데, 오늘은 알라딘에서 정성스런 리뷰를 읽었다. 매드 맥스의 각본가들은 이브 엔슬러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고, 그 점에 대해 로지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수리산'에 갔다. '축령산'을 예정해두고 갔었는데, 축령산은 경사가 가파르고 험하다고 해서 그보다 완만하다는 수리산으로 급변경. 어차피 입구는 같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만 선택하면 된다. 걸으면서 계속계속 언덕이 나와 당황했다. 둘레길 혹은 산책코스를 기대하고 간 터라, 우리 일행은 모두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이렇게 빡센 시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우리 옆을 지나가던 무리들중 1인은 '길이 서있어' 라고 말하더라. 말그대로 서있었다 진짜. ㅠㅠ 어쨌든 다른 산에 비하면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조용한 길을, 우리는 계속 걸었다. 열심히 걸었다.




한시간 여를 걸어서 울창한 숲이 나오고, 산림욕이 가능하다는 그곳에 들어가 우리는 준비해온 김밥과 빈대떡을 풀었다. 원래 김밥 한줄씩만 먹으려고 했는데, 입구에서 빈대떡을 팔고 있더라. 아- 막 부쳐내는 그 냄새가, 도저히 그냥 가지 못하게 해. 게다가 옆에 있던 아저씨가 '이걸 산에 가서 먹으면 더 맛있지' 하는 바람에, 아아, 몰라몰라, 사, 사, 해서 사가지고 간 것.




아아, 맛있게 먹었고, 정말 이때만 해도 좋았다. 일단 먹고나서는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니, 전망이 진짜 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철쭉동산을 지나치며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리산 정상을 거쳐야했고, 아아, 산은 산이었다, 남아있는 코스들이 완전 험난한 코스. 밧줄을 잡고 바위위를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중간에 멈춰서서 나는 밧줄 없는 저 언덕을 어떻게 올라야할지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 거다. 친구 둘은 나보다 약간 밑에 자리한 상황, 나는 그들보다 약간 앞서서 저 길을 어떻게 올라가나, 한 걸음만 더 디디면 미끄러져 구를 것 같은데, 하고 벌벌 떨고 다리 후달려가며 납작 엎드려있는데, 위에서 내려오시던 아저씨가 '일어나요 일어나, 일어나야 돼요' 하는 게 아닌가. 일어나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억지로 다리를 폈는데 도무지 발이 움직이질 않는 터, 그 아저씨는 자리에서 멈추더니 본인의 등산지팡이를 내게 내밀었고, 나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 지팡이를 잡고서는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아저씨가 지팡이로 나를 끌어주셨어.. ㅠㅠ


그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내가 최대한 노력을 하면, 누군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구나! 아아, 이런거였어. 

막 이렇게 감동하고 있는데, 그 다음엔 밧줄도 없는 서있는 흙길이 나와...하아- 우리 셋은 진짜 벌벌 떨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서로 손을 잡고 막 그러면서 그런 코스들을 이동해 간신히 정상을 찍었다. 하아- 잘했어, 수고했어, 하면서, 그치만 만약 내려가는 길이 이 길이라면 못내려갈 것 같아, 경사가 너무 심해, 운동화라 미끄러워, 이런 대화를 하면서 잠시 쉬다가 반대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나는 그쪽길도 경사가 가파르냐 물었고, 그분은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그래, 다행이야, 우리는 역경을 이겨냈어! 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쭉동산은 산그늘이 좋았고 아아, 잘왔어 잘왔어, 하고 좋다좋다 감탄하며 내려갔다. 그러나 철쭉동산을 지나고나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경사가 심했다. 아 씨발. 우린 이제 어쩌지...


하아...


미끄러지고 소리지르면서, 어떤 길은 밧줄을 잡고 어떤 길은 나무를 잡고 어떤 길은 커다란 바위를 잡으면서 내려오는데, 와, 너무 무서워서 신경이 뽝- 집중됐다. 어느 순간 갑자기 어깨가 확 뭉치더라. 어쨌든 우리는 오랜 시간이 걸려 산길을 내려왔고, 내려오고 나서는 서로를 부둥켜 안았으며 ㅠㅠ 고생했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해줬다. 그리고는 휘청이는 다리로 걸어내려가 가장 먼저 만난(그러나 산입구의 유일한) 구멍가게에 들러 맥주를 한캔씩 사들고 나왔다. 버스가 도착하기 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흑흑 ㅠㅠ 우리 몸살나겠다 ㅠㅠ 이런 말들을 주고 받으며 도착한 버스를 타고 마석역에 내려 후다다닥 서둘러 경춘선 지하철을 타고 상봉역에 내렸다. 우리는 고기고기한 식사를 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고깃집에선, 레어템이라는 순하리를 만났다.



고기와 순하리의 아름다운 하모니-



그러나 순하리는 내 입엔 별로여서 한 잔을 마신 후로는 그냥 처음처럼 달라고 해서 그냥 소주를 마셨다. 나한테는 역시 쓴 술이 최고인것 같다. 달짝지근 맛있는 술은 역시 나는..아닌 것 같아..... 뭐랄까, 단 술, 맛있는 술을 마실거면 술을 왜마시지? 하는 느낌이 내게는 좀 있달까. 술은 써야 돼!! 그래서 마시고나서는 크- 해야한단 말이야!!!!!!!!!!!!!!!!!!!




어제는 저녁에 남동생과 오리고기에 맥주(호가든호가든!!!!!!!!!)를 마시면서 우리가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가에 대해 말했다. 남동생은, '나 알콜의존증인가봐 술이 너무 좋아' 했고, 나는 '야 장난 아냐, 나는 진짜 술 너무 좋아. 고기도 좋고. 나는 앞으로도 고기랑 술 나처럼 좋아하는 남자 만나서 같이 고기랑 술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라고 하자 남동생이 말했다. '고기랑 술, 누나는 지금도 충분히 먹고 있잖아..'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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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5-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대떡, 사, 사, 사에서 막 웃다가, 등산지팡이에서 어머! 하다가, 남동생분 이야기로 마무리했어요.
다락방님의 이런 재미있는 페이퍼를 읽어야 월요일이예요. 아니다, 오늘은 화요일이죠.
네, 즐거운 화요일이에요^^

제이슨 스타뎀 여자친구, 완전 이쁘네요. 운동도 열심이라니. 참... 세상은 불공평해요.
운동 동영상 좀 찾아봐야겠어요. 나도 운동..

다락방 2015-05-26 15:25   좋아요 1 | URL
예쁜 여자들은 운동하는 모습도 예쁜것 같아요. 제가 운동하는 거 거울 보면..참...하아- 뭐라 더 할말이 없는..orz
암튼 본격 다이어트를 해야할텐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다이어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더욱요. ㅠㅠㅠ

밥 너무 좋고
고기 너무 좋고
술 너무 좋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스탕 2015-05-2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드맥스 안보려다 보고 완전 뻑- 간 영화. 전 영화 보면서 어쩐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가 생각났었어요.
순하리는 술 못 먹는 제 입에도 별로..

벌써 막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시죠? :D

다락방 2015-05-27 10:36   좋아요 0 | URL
맞죠맞죠그쵸그쵸 완전 뻑-갔죠!!
제 남동생은 제가 충동질해서 저랑 같이 보러간건데 첫번째 액션이 끝나자마자 제게 속삭였어요.

이거 장난아니다..

히히히히히. 암튼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그리고 좋은 영화였어요. 제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를 본 게 없어서....제가 애니를 잘 안봐서.......최근에 초콜릿과 선거와 교복이었나..뭐 그런 제목의 애니를 한 번 볼까 생각을 잠깐 해보았지만, 여주인공들이 말도 안되게 가슴이 커서.....앗 댓글이 산으로 가요! >.<

전 잘지내고 있습니다, 무스탕님.
무스탕님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어제 <버자이너 모놀로그> 떠올리면서 무스탕님 생각했어요. 그때 제 옆자리에 무스탕님 계셨는데, 하면서요.
:)

2015-05-2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8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8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8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7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8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madology 2015-05-2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드맥스 재미있게 봤습니다. 후속편도 얼른 더 나왔으면 좋겠네요. 요즘은 말만 영화지, 사실은 CG 애니메이션인 영화들이 많쟎아요. 어쨌든 노장의 일관된 근성이라 생각하니, 뭔가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락방 2015-05-28 08:38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기대했는데 와 진짜 완전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액션이면 액션 스토리면 스토리 캐릭터면 캐릭터..하아- 정말 좋은 영화였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왜그러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두 번 보진 않을거지만.. 하핫.
후속편도 얼른 보고 싶어요, 저도!! >.<

레와 2015-05-2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또 보고 싶어. 와놔. 이 아침에 또 생각났음.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05-28 08:59   좋아요 0 | URL
멋진 영화다!!
나는 또 보진 않을것 같은데 여튼 겁나 좋은 영화였음!! ㅎㅎ
샤를리즈 테론 짱!!

transient-guest 2015-05-29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사다망하신 시간이었네요.ㅎㅎ 저도 매드맥스는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을 첨에 That Thing You Do에서 주인공을 두고서 치과의사와 바람나는 여친으로 나온걸 첨 볼 때 이 아지메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어요.ㅎㅎ 윈터슬립의 저 아늑한 서재는 저도 참 맘에 드네요. 보고만 있어도 따뜻합니다. 위의 눈보라치는 성과 어울려요.ㅎㅎ 카파도키아를 카르파티아의 성으로 바꾸면 조금 으스스해지겠네요.ㅎ

다락방 2015-05-29 11:17   좋아요 0 | URL
오오. 저 댓씽유두 두 번이나 봤는데 거기에 샤를리즈 테론이 나왔었나요? 리브 타일러 밖에 생각이 안나네요, 등장하는 여자로는요. ㅎㅎ 그 영화 엄청 재미있게 봤었어요. 대학시절 겁나 우울했는데 비됴방가서 그냥 이거나 보자, 하고 아무 정보 없이 봤다가 급유쾌해져서 비됴방을 나왔었죠. 후훗.

언젠가는 저런 아늑한 서재를 제 것으로 갖게 될 날이 올까요? 그러기를 바라봅니다. 친근한 사람들은 가끔 서재로 초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

transient-guest 2015-05-30 07:24   좋아요 0 | URL
서재에서 아늑하게 불 키고 와인과 안주를 즐기면서 책 이야기를 하면 참 좋겠어요..ㅎ

다락방 2015-06-01 09:11   좋아요 0 | URL
크- 책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히히히
 
출근길에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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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행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커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 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 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 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 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 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주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아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설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적다)





애초에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읽어야 할 책이 아닌데, 처음부터 잘못 선택했다 싶었다. 자꾸 눈물이 핑- 거려서. 그런데 이 시를 읽을 때는 참을 수가 없더라. 결국 지하철 안에서 콧물까지 흘렸다. 상실로 인한 고통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곁으로 달려가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 사람과 함께 얘기하고자 하는 시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다가, 숱하게 생겨나는 그 많은 감정들을 눌러 버리고, 결국 눈물이 흘렀다.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정말 그랬다. 읽을 때도 눈물이 나더니, 결국 여기 옮겨 적으면서도 코를 훌쩍였다.


이 시의 주인공 유예은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란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목소리가 생생한 시가, 여기 이렇게 있을까. 예은이의 목소리를 진은영 시인은 어떻게 들었다는 걸까, 했더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단원고 희생자 유예은 학생의 열일곱살 생일이 지난 10월 15일이었죠. 선생님께서 제게 '이웃'에서 열리는 예은이 생일 치유모임에서 예은이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는 말을 시로 써달라고 요청하셨어요. 세상 떠난 아이의 마음에 내가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자신의 삶보다 더 소중했던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을 어떤 언어의 결로 어루만질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어 몇시간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예은이의 마음과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의 페이스북도 열심히 기웃거리고 예은인가 친구들과 봄날 벚꽃 아래서 노래 부르던 동영상이나 해질녘 해먹에 누워 있는 사진을 오랜 시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낸 일주일이 저에게는 참 특별하고 치유적이었어요. 그렇게 시를 쓰고 난 뒤에는 그 아이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세상을 조금씩 매만지고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어요. (p.210, 진은영)




진은영 시인은 정헤신 박사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들의 문장이 시적인 것 같아 내게는  한 번에 쉬이 명료하게 읽히지 않았다. 정혜신 박사의 말이 오히려 명징하게 와서 닿았다. 질문의 문장들이 좀 시적이지 않나, 우리 엄마가 읽을 수 있을까, 하고 갸웃 하다가 진은영이 썼다는 저 시를 만나자 그냥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고 또 무슨 말을 더 할수 있을까. 



인용문만 옮겨적겠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고, 내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과 옆 사람 살이 타들어가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게 사람이에요. 각자가 자신에게 너무나 무거운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지 않지만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해요. (p.54, 정혜신)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시간이 멈춥니다.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삶의 진도를 나갈 수 없고 다음 과업으로 넘어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어떤 것이 트라우마의 치유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삶이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가장 핵심적인 것이 진상규명입니다. 이건 저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정신과의사로서, 트라우마 치유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기 위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p.95, 정혜신)

심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요소가 바로 일상이죠. 다른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이것이 결여되면 망가지고 비뚤어지는 거예요. 반대로 다른 것이 없어도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안정적이고 빛날 수 있고요. (p.180, 정혜신)

저는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이고, 그것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치유작업을 하는 동안 제가 하는 일이란 건 결국 그 사람 안에 있는 치유적 요소들, 그 사람이 지닌 온전성, 건강성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것일뿐이에요. 그래서 그 과정이 끝나면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가 아니라 `내가 참 괜찮은 데가 있나봐`라고 할 수 있어야 온전한 치유인 거예요. 거기까지 나아가면 그 사람은 제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자기 안에 있는 힘을 확인하고 그 힘으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그러지 못하면 의존적인 관계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동쪽으로 가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일이 너무 잘 풀렸어요. 그러다 살다보면 또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그럴 때 마다 또 점집에 가서 이번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물어봐야 하는 거예요. 그건 아주 병리적인 의존관계입니다. 치유에서도 조언을 하거나 훈계를 하거나 해석을 하는 기능적인 수준에 머무르면 반드시 그런 관계로 끝나게 되어 있어요. (p.184, 정혜신)

유가족들은 지금 자기가 살던 세상이 모두 깨어진 거잖아요. 자식들 기르면서 가족끼리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이었는데, 이게 모조리 무너졌어요.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는 이제 살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웃치유자들을 접하고 그들의 마음을 느끼면서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거예요. 다른 가치와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 세계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그건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지만, 이 세계를 지탱할 수 있는 또다른 세계가 생기기 때문에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그게 치유입니다. 그러려면 이런 재난을, 트라우마를 입었을 때 주변에 누가 있느냐가 무척 중요해요. 건강한 이웃 치유자들이 많이 있을수록 다른 세계로 더 수월하게 진입할 수가 있어요. (p.191-192,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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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5-2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읽겠어요 못읽겠어
세월호 관련 서적은.... ㅠㅠ

다락방 2015-05-21 21:33   좋아요 0 | URL
이건 그나마 가장 약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ㅜㅜ 세월호 관련책 저 더 있는데 어쩌죠 ㅜㅜ

레와 2015-05-2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지 않아야지.. 꼭.

다락방 2015-05-28 08:38   좋아요 0 | URL
응 잊지말자, 우리.
 

핑-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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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날 이후에도 너는 사랑받는 아이야.
    from 마지막 키스 2015-05-21 17:56 
    그날 이후아빠 미안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엄마 미안밤에 학원 갈 때 행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아빠 엄마 미안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