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나는 무려 <시사IN>을 정기구독하는 사람이다. (응?)
뭐,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니고, 이번 주 시사인을 받아들고 표지를 보며 가슴 답답해했다가, 늘 그랬던것처럼 뒤에서부터 하나씩 기사를 읽기 시작한다. 신문도 그렇고 주간지까지, 나는 뒤에서부터 읽기 시작하며 모든 기사들을 정독하지 않는다. 제목만 보고 재미 없어 보이는 기사들은 그냥 패쓰한다. 그러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영어에 대한 글을 읽었다.
제목만 보고 답답해졌다. 내 중학교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인데, ABC 정도를 떼고 학교에 오라니, 와, 이건 나로서는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나는 알파벳을 외우지 않은채로, 아니 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당시로서는 이런 내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중학교에 가면 영어 과목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과목을 가르치는 게 중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미리 알고 가는 건, 내 역할은 아니었다.
그런데 읽다가 놀랐다. 중학교 얘기가 아니었다. 영어-중학교 라는 당연한 인식이 박혀있던 내가 읽다가 놀란 것이다. 이건 초등학교 3,4학년의 얘기였다. 맙소사, 초등학생들 교과 과목에 영어가 있다고??
나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한글을 뗐었다. 그당시엔 한글나라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떼는 게 일반적인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방학을 이용하며 우리 집에 와있던 막내이모로부터 한글을 배웠고, 부모님들 말에 의하면 천재처럼 빨리 익혔다고 했다. 사실, 잠깐 다른 말을 하자면, 그당시의 나를 너무 천재로 기억하는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 때문에 나는 내가 진짜 천재인 줄 알았다. 영재 교육 받았으면 지금 어마어마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첫 조카를 만나고나서부터 이 모든 게 그저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태어난 갓난 아이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익히는 과정을 눈으로 보게 되면, 정말 천재처럼 느껴지는 거다. 고개를 가눌 수 있고 뒤집고 기고 걷고 뛰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천재 같은지. 말해준 것들을 기억하고 의사를 표현하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를 볼 때면, 와, 얘는 진짜 천재구나 싶어지는 거다. 왜?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였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첫 조카를 마주하고나서, 첫 조카에게 내가 천재라는 타이틀을 내 마음대로 부여하고 난 뒤에야, 아, 우리 부모님과 친척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이거였겠구나, 했다. 내가 '첫째' 였기 때문에. 실제로 어릴때 천재란 소릴 들은 건 나 였지만, 아이큐가 더 높고 공부를 더 잘하는 건 내 여동생이었다. 전교 1등을 한 것도 내 동생인데, 아직까지도 천재란 타이틀은 나에게 있어....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게 무슨.... 자, 원래 하려던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 학급의 아이들은 60명을 초과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글을 이미 떼고 온 아이들은 한 반에 열명도 채 안되었었다. 선생님은 한글의 초성부터 우리에게 알려줘야 했고, 그렇게 알려줘도 아이들은 '이'와 숫자 '10'을 헷갈려하며 쓰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 당연한 거였다. 물론 이미 떼고 간 나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한글을 받아들이는 게 더 쉽긴 했다.
영어도 마찬가지. 중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운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뭔가 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미 알파벳과 기본 회화를 좀 배우고 온 아이들은 한 반에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은 더 빨리 영어 시간에 습득을 익혔겠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알파벳을 알려주었고, 외우도록 했으며, 알파벳에 소문자가 있다는 것도 가르쳤고, 또한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소문자'의 존재를 알고 외우기 시작했다. 쪽지 시험을 보고 다 맞았다고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도 기억난다. 알파벳 대소문자 쪽지시험에서 나 백점 받았다고. 그 당시엔 이 시험에서 백점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어 수업 시간은 내게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알파벳 외우는 건 시키는대로 할 수 있었지만 '발음기호'를 설명할 때는 머리가 빙빙 돌았다. 이게 뭐여...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 그러나 이미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아이들은 번데기 발음에 thank you 를 대답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쪼르르 달려가 그 아이에게 너 어떻게 알아? 했더니 과외를 한다고 했다. 아...나는 '내가 모르는 데' 누군가 '나보다 훨씬 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초등학교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니까. 집에 가서 엄마에게 과외 시켜달라고 해보았고 학원에 보내달라고 해보았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안했다. 엄마가 해준 건 헌책방에 가 헌책으로 참고서를 사 준 게 다였다. 표지도 다 떨어져나간 참고서...
그러나 참고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는 왜 번데기 발음에 땡큐가 있는지, 왜 I am In-su 가 나는 인수입니다 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뭔말이지..영어 선생님은 당시에 엄청 무서웠고, 수업이 시작하면 아무나 불러세워 지난 번에 배운걸 물어보셨다. 대답하지 못할 경우엔 등짝을 후려 갈기셨는데, 나는 맞으면서 학교를 다닌 적이 없던 터라, 맞는 게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데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건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나는 맞는 아이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I am In-su 가 왜 나는 인수입니다 인지 알 수 없으니, 무조건 외웠다. 달달 외웠다.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다. 아 이엠 인수, 나는 인수입니다. 유 아 마이 프렌드, 너는 나의 친구이다. 교과서를 아예 머리에 그렸다. 나는 맞아서는 안되었다. 영어 수업 시간은 내게 공포 그 자체였다. 나를 '맞는 애'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학교 다니기가 싫었다. 죽고 싶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렇게 또 한번의 영어 시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우리 분단을 차례로 줄세워 선생님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게 선생님이 물은 건, '너는 나의 친구다' 였다. 나는 유 아 마이 프렌드, 라고 답했는데, 이걸 '알고' 답한 게 아니라, 이건 교과서 오른 쪽 몇 째 줄에 있던 그거지, 하고 대답한 거라 맞는지 틀리는지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앉아' 라고 말했고, 나는 맞지 않았기에 선생님께 본능적으로 물었다. '(제 대답이)맞아요?' 라고. 선생님은 '이 자식아 니가 대답하고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몰라?' 라고 웃으며 꿀밤을 먹이셨는데, 그제서야 나는 내 대답이 맞는 대답이었구나 했다. 나는 '알고' 대답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때의 내가 느낀 공포를 여전히 기억한다. 영어 시간이 내게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그 영어시간은 무려 자주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느낀 그런 공포를, 이제 초등학생들이 느끼고 있단다.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맙소사. 이게..말이 되는가. 이게, 현실인가?
내 공포는 1학년 2학기부터 사라졌다. 왜? 영어 선생님이 바뀌었기 때문에. 영어 선생님은 의사인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전근을 가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다섯의 여선생님이 새로운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이 선생님은 순했고, 아이들을 때리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대답을 강요하지 못했고, 그럼 앉어, 라고 약한 목소리로 얘기하곤 했다.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았고, 대답하지 못해도 맞지 않으니 공부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지속됐다면 나는 아마 영어에 손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새로온 선생님이, 맙소사, 팝송을 가르친거다. 그것도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던 '장국영'의 <To You> 를!!
이건 신세계였다. 나는 달달 외워 따라 부르고 싶었다. 한글로 선생님이 부르는대로 받아 적었다. 인 더 레인 아임 스탠딩 히어 아임 올 얼론 앤 미싱 유...엄마를 졸라 최신팝송 1,500원짜리 테이프를 샀다. 첫번째 곡이 장국영의 투 유 였고, 나는 반복해 들으며 달달 외웠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선생님이 발음해주지 않으면 나는 영어를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1학년의 겨울방학, 외갓댁에 놀러갔다가 삼촌은 내가 영어의 발음기호를 모른다는 데 충격을 받았고, 나를 앉혀두고 영어사전을 꺼내서는 발음기호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꽈배기 발음을 가리키면서는 이건 우리 말의 '애'라고 생각하면 돼, 라고 했고 e 를 가리키면서는 이건 '에'가 되는거야. 라고 했다. 그렇게 삼촌과 두시간쯤 반복해 공부하다 보니 발음기호를 외울 수 있게 됐고, 삼촌은 사전을 아무데나 펼쳐 읽어보라 시켜보고는 내가 맞게 대답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 해주었다. 기뻤다. 나는 이제 어떤 단어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신이 났다. 다음날 삼촌은 외할머니와 이모, 엄마에게 말했다. 얘 진짜 똑똑해, 두 시간만에 발음기호 다 외웠어! 이 칭찬에 나는 또 너무 좋아가지고 혼자 막 사전 펼치고 단어들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 뒤로 닥치는대로 좋은 팝송을 외웠다. 그렇게 중2때는 더티댄싱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다 외워서, 당시 전교1등이던 내 친구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야, 너 모든 노래 다 외우냐, 하고. 걔랑 같이 공부하려고 만나서 걔는 공부하고 나는 옆에서 팝송을 따라 부르고 있었던 거다.
분쿄 구 센고쿠에 사는 평범한 주부인 내 처제(서른다섯 살)가 갑자기 영어 회화 학원에 다닌다는 건, 솔직히 말해 그럴 필요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길거리에서 외국 사람이 뭘 물어보면 어떡해요"라는 게 그녀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유인데, 그런 경우를 과연 '필요'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정말 분간하기 어렵다. 일본도 세계화되고 있으니 그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도 옳은 말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다 외국 사람이 길을 물으면 그냥 "I'm sorry. I can't speak English"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싶다.
그리고 외국 사람이 길을 묻는 일은 삼 년에 한 번꼴도 없지 않나요?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지난 십 년 동안 외국 사람이 내게 길은 물은 적은 고작 한 번이다.)그 때문에 일부러 영어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시간을 심히 비경제적으로 쓰는 말이 아닐까?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인생에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자기 마음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또 지금 유행하는 유아 영어 교실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더군요. 우리 조카도 그런 데 다니고 "Thank you very much" "You are welcome" 하는 말을 조잘거리는데, 이게 필요한 것일까요? 어렸을 때의 어학 학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 또 할 말이 없지만,평범한 여섯 살 아이가 왜 2개 국어를 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모국어도 잘 못하는 어린아이가 표층적으로 2개 국어를 좀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몇 번이나 말하지만 재능이 있거나 혹은 필요가 생기면, 굳이 어린이 영어 교실에 다니지 않더라도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영어 회화쯤이야 반드시 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먼저 나라는 인간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모국어를 통한 진정한 회화가 거기서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 회화 역시 거기서 시작 된다. (pp.150-151)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살아가는 데 아주 많은 것들을 '더'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 기준에서 보자면 좋아하는 작가의 원서를 읽을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외국 여행을 할 때도 더 수월할 것이며, 해외직구를 할 때도 편할 것이다. 확실히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외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가져온다.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할 때' 익혀야 한다. 내가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내가 원서를 읽고 싶다면, 내가 외국여행을 더 수월하게 하고 싶다면, 내가 세상의 더 많은 것들을 더 알고 싶다면, 그러면 외국어 공부를 하면 된다. 이것이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주입시켜야 하는 것이라니, 게다가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생각에 우울해하고 학교 다니기를 두려워하며 영어 수업 시간이 오는 것에 겁을 먹어야 한다면, 이건 정말이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닌가.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내가 '익히고 싶었으므로' 발음기호를 외울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팝송에 흥미를 붙이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불러주는 발음기호를 받아적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까지 발음기호를 읽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사람들보다 아이큐가 높지 않다. 천재라니. 가당치 않은 소리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보다 기억력이나 암기력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음기호를 외울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의 내가 그것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몇년전 영국 가수 미카의 콘서트에 갔을 때, 거기 모인 많은 관객들이 미카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라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에게 누군가 '영어 공부를 위해' 그 노래들을 외우라고 했다면, 그들이 그 노래를 외울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기에 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어 공부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 국민에게 어릴때부터 외국어를 강제하는 게 아니라, 못하면 병신인증 되는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외국어를 못하는 건 사실 지극히 당연한 거지, 그렇지만 네가 외국어를 통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공부를 해서 익히면 된단다, 라고 해준다면.
세상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고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으니, 아이들은 자라면서 영어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필요하다 느끼고 하고 싶어진다면, 그 아이들이 익히는 속도는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속도보다 현저히 빠르고 정확하다. 이건 뭐, 나만 아는 게 아니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이 세상 천지 어디에 외국어를 익히며 스트레스를 받는 열살 아이들이 존재할까. 나는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말해주고 싶다.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리한 면이 많겠지만,
못한다고 부진아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암튼, 병신 같은 나라다. 병신 같은 세상이고. 나는 중학교때 느낀 공포가 어마어마한데 그걸 그당시의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느끼고 있다니. 확실히 잘못돌아가는 세상이다. 이 병신들아.
아..흥분했더니 배고파..
이 책은 내 책장에 꽂혀있기만 한지 아주 오래되었다. 몇 년전에 서재에서 순오기님이 연말 영화이벤트를 해마다 하셨는데, 어느 해에 내가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읽고 싶어 내가 선택한 책인데, 아주 많은 책들에 그러하듯이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를 않았....
그러다 최근에 친구와 심규선 얘기를 하며 이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심규선의 노래 중에 <sue>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집에 보면 이 책, 《핑거 스미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적혀있엇던 거다. 수 가사 왜그래, 라는 친구의 말에 그게 핑거스미스 보고 쓴 거라는데, 핑거스미스 책이 아마도 동성애를 다룬 것일거야, 그렇다고 하면 그 가사가 이해가 되지, 라고 답하고서는, 이번참에 읽어보자고 했던 거다. 그리고 첫 페이지. 나는 수를 만난다.
'수' 라는 이름이 발음하기에도 참 좋은 것 같다. 아직 얼마 읽지 않았는데, 다른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드' 다. 모드 란 이름도 좋다. 어쩐지 자꾸만 '크리스타벨 라모트'가 떠오르고,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떠올리노라니 '랜돌프 헨리 애쉬'도 떠오른다. 어떤 이름들은 잊혀지지 않는단 말이야? 암튼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을 기대감으로 가득 차올랐는데, 하아- 이 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더럽게 무겁다
는 것이 그것이다. 아, 진짜 너무 무거워. 보통 여성들이 들고 다니는 가죽(혹은 인조가죽 혹은 다른 재질이든 뭐든)백은, 가방 그 자체 무게만으로도 이미 결코 가볍질 않다. 그래서 나는 지갑도 아주 작고 간편한 지갑을 넣고 다니는 둥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씨양, 이 책 한 권 넣고나니 팔이 빠질 것 같은거다. 요즘 텀블러까지 들고 다니니 더한듯 싶어, 아, 너무 무거워, 하고 가져오던 첫날인 엊그제, 빡이 쳤더랬다.
열린책들 판형답게 촘촘하고 빽빽하게 채워진 지면이 책의 무게를 더하는구나 싶어지는, 그런 무게랄까. 그래서 오늘 아침엔 바쁘게 출근준비를 하던 도중, 백 안에 있던 짐들을 죄다 꺼내 에코백에 옮겼다. 핑거스미스를 읽는 동안에는 늘 들고 다니던 백을 못 들고 다니겠어. 너무 무거워..난 무거운 것도 싫고, 양손으로 짐 나눠서 드는 것도 싫어...그래서 에코백에 다 쑤셔 넣었는데, 제기랄, 에코백에 넣어도 무겁기는 마찬가지구나. 딱히 크게 줄어들진 않네, 무게가....이토록 무거운 책이라니, 얼른 읽어 치우는 게 상책이겠다.
그런데 맨날 배고프고 졸려.. 나 기생충 있나? 아침 잔뜩 먹고 배 두드리면서 왔는데 왜 회사에 도착하면 또 배가 고프지 ㅠㅠ 아무래도 초콜렛을 사서 늘 가방에 넣고 다녀야겠다. 하아-
<Sue> (Inspired by 'Fingersmith')
아직도 생각해 그 날을
아무 의심 없이 너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이상한 일인지 물었잖아
두렵지 않았어 그 밤은
너는 나와 닮았고 나는 너와 같았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이상한 일인지 물었잖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걸
내 무력함이 나도 화가나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는 걸
그 순간을 나는 후회하지 않아
I don't understand you
I don't understand you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you)
I don't understand you
You don't understand me baby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you
아직도 생각해 그 날을
아무 의심 없이 너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이상한 일인지 물었잖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걸
내 무력함이 나도 화가나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는 걸
그 순간을 나는 후회하지 않아
I don't understand you
I don't understand you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you)
I don't understand you
You don't understand me baby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I don't understand you
I don't understand you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I can't live without (you)
I don't understand you
You don't understand me baby
I can't live withou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