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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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극기훈련을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그것을 어떤 용어로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교관이란 사람은 모든 학생들을 세워두고 여러가지 훈련을 시켰다. 누웠다 일어나기도 있었고 팔벌려 뛰기도 있었다. 너무 힘들면 줄에서 빠져 뒤로 나가 서있으라 했는데, 속속 힘들어 뒤로 나가는 아이들이 생겼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제 끝이라고 할 때까지 교관이 시키는대로 했다. 나 역시 어떻게든 버텨내는 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고. 다음날엔 근육통에 시달렸었다. 체육시간도 자습하느라 많이 써버렸었는데 이런 갑작스런 몸의 움직은 우리들에게 근육통을 당연히 가져올 터였다.


이게 어떤 특별한 기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가끔 생각난다. 극기훈련 초반, 교관이 술 가진 애들 다 내놓으라며 했던 말들보다도, 캠프파이어의 모닥불과 울던 아이들보다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억지로 기억해야만 기억나는데, 교관이 시키는대로 다 따라하고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렸던 그 시간들은, 이상하게도 뜬금없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다 읽고, 뒤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또 이 일이 생각났다.



나는 한때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일렬로 신발주머니의 줄을 맞추고, 친구들이 일사병으로 하나둘 쓰러져나가도 부동자세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던 아이, 수련회에 가서 유사 군사훈련을 받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여자로서 순결을 지키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다나까'로 말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던 아이.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개인행동이었다. 그 반듯한 줄을 탈출해서 멀리로 달려나가고 싶었다. 운동장에 줄을 선 신발주머니들로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로부터, 야, 너, 51번, 차렷, 열중쉬엇, 앞으로나란히, 앉아, 일어서, 앞으로 나와, 싸가지 없는 년, 너희 부모가 돈이 없어서 이런 동네에 살지, 뭐, 너 같은 게 뭐가 되겠어? 지껄이는 입들과 너무 가벼운 손찌검들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로 가고 싶었다.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작가의 말, p.323-324)




고등학교 시절,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조회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 학생이 옆자리 학생과 수다를 떨었다. 그 때 덩치가 큰 미술선생님이 달려와서, 그 전교생이 있는 데에서, 그 아이의 머리를 확 때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워낙 폭력적이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고, 그 학생이 맞는 걸 내가 직접 겪으면서 '꼼짝하지 말아야지, 얘기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해야지' 나는 그런 생각만 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은영의 단편들을 차례로 읽어가노라면, 최은영이 과거의 자신, 의도야 어떻든 무해하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 그대로 내것이 된다. 나는 특별히 못된 아이는 아니었지만, 못되게 굴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에 가까운 아이었지만, 최은영의 말처럼,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어른이 되어서, 이만큼의 나이를 먹어서 후회하는 일들이 많다. 선생님이 그렇게 학생을 과격하게 때리는 걸 보았을 때,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요즘 십대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당한 성추행에 대해 얘기할 때는, 내가 고스란히 당했던 그 시절에 그걸 공론화 하지 못해서, 그러면 안되는거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래서 지금 학생들도 그대로 피해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몇십년간 피해자들이 줄줄이 생겨, '살면서 성추행 한 번 안당해본 여자가 어딨냐'는 말이 기정사실이 되게 만들었으니, 나는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었을까? 나쁜 걸 유지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가.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해도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무심하게 상처 입혔을까.


그래서 이 소설속 최은영의 반성이 나의 반성이 된다. 나는 같이 반성했고 그렇게 매만져주는 최은영의 손길을 한껏 받았다. 그 손길을 따뜻했고, 결국 내 어딘가를 건드리고야 말아,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울고 말았다.



특히 <지나가는 밤> 이 좋았다.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자매가 그러나 소원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가장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도 그립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사이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상처입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어린시절 제게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것을 두고 두고 생각하는 언니의 마음 같은 것,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동생의 마음 같은 것들이, 깊은 밤 내게 찾아들어 나는 그냥 훌쩍훌쩍 거렸다.



<아치디에서> 는 브라질 청년의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라, 처음에는 '대체 왜 이런 화자를 만들어낸걸까' 좀 갸웃했었다. 그러나 그가 아일랜드에서 한국인 '하민'을 만났고, 서로의 과거에 대해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등장인물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겠구나 했다. 한국에서, 그야말로 '착취당하는 딸과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녀의 '희생'이 당연시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어린 여동생만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해주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데에서, 또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비로소 브라질 청년도 자신의 입장과, 자신 때문에 억압받았을 누나에 대해 떠올린다.



<601,602>는 최은영식 '82년생 김지영' 정도로 봐도 되겠다. 여성의 삶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식으로 가야만 했던 것처럼, 어린 딸로서 핍박 받으며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 주변 어른들이 반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어른이 되어 결국 <아치디에서>의 '하민'의 삶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최은영은 이 단편들을 통해 그리고 이 단편들을 엮은 이 단편집을 통해 해야할 이야기들을 했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고, 어쩌면 자신이 무해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는 반성을 했고, 그렇게 독자의 마음을 매만져주었다. '매만지다' 라는 단어는 최은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은 가만가만 스며든다.



이 책을 사두고도 오래 머뭇거렸다. 《쇼코의 미소》는 좋았는데, 그녀의 두번째 단편집이 그보다 좋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이 내게 있었다. 그러나 웬걸, 읽으면서는, 아아, 역시 최은영이구나 했다. 그래, 이런 이야기여야 해, 라고도 생각했다. 아직 국내작가중 가장 좋은 작가가 누구인지 물어오는 질문에는 최은영을 답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에 나올 최은영과 그 다음에 나올 최은영도 계속계속 읽고싶다.



좋은 독서였고, <지나가는 밤> 은, 다른 사람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가져본 핸드폰도 여자가 준 선물이었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라면서 준 그 선물을 들킬까봐 혜인은 핸드폰을 언제나 무음으로 설정해 가방에 넣어놓았다가 베개 밑에 두고 잤다. 여자는 혜인에게 "뭐하고 있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여러 기호들로 만든 토끼, 수박, 별, 가아지 같은 그림을 보내기도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음성 메시지를 남겨서 자기가 겪었던 웃긴 이야기들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혜인에게 위안을 줬다.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 (손길, p.226)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고. (손길, p.231)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소설(‘아치디에서‘)은 사랑은 다만 상대 앞에서 자신의 가장 약하고 수치스러운 감wjd을 노출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 곁에 침묵하며 함께 서 있는 것, 대신해 우는 것, 조금씩 속도를 늦춰 걷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해설,강지희,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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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쇼코의 미소>보다 <내게 무해한...>이 더 나은 듯합니다

다락방 2018-10-01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 ‘으음, 쇼코의 미소보다 이게 더 좋은가?‘ 했더랍니다. 후훗.

카알벨루치 2018-10-01 11:44   좋아요 0 | URL
제가 <내게 무해한 사랑>을 먼저 보고 <쇼코의 미소>를 봤는데 조금 degrade되는 느낌 ㅋ 그래도 최은영 좋아요~한주 힘차게 생활하세요!
 
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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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본격 게이 로맨스'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하나 장르를 주어야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식으로 매 단편마다 '나는 게이야'를 드러내는 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계속해서 '나는 게이야' 라고 드러내며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외치는 소설에 대해서 이 작가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고, 그렇게 이 단편집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실린 단편을 순서대로 읽었는데 첫 단편을 읽고서는 오 신선하다, 그리고 문장이 아름답다! 하고 감탄했다. 이어지는 두 변째 단편 까지도 으음, 하면서 읽었더랬다 그러나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작가는 매 주인공마다 자신을 이입해서 쓴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그냥 한 명의 연애와 섹스가 반복되는 것으로만 읽힌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당연히 사랑과 연애 섹스가 주를 이루겠지만, 책 한 권 내내 저 남자 좋아, 사랑해, 섹스해...만 나오니까, 어느 순간 질려버린달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자리에서 한 권을 내리 읽는 게 아니라, 한 편씩 시간 날 때마다 끊어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 권을 다 끝내야 다음 권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중간 이후부터 매우 힘겨운 독서였다...


다만 작가가 여느 남자 작가들과는 다르게 꽤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마지막 단편에서 자신이 글쓰기와 사랑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정말 글쓰기를, 그리고 사랑을 인생의 주요 목표로 삼는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에는 굉장히 섬세하다. 그런 디테일까지 잘 기억하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지... 하하하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건데,

나는 소설을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 감상에 있어서는 꽤 혹독하고 가차없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면 그 총량의 구십 퍼센트를 나는 영우에게 써버렸다. (p.66)

"형, 사실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영우의 눈을 마주보다 곧바로 대답할 수 없어 물 아래로 한 차례 깊이 들어갔다 나왔다.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이에요. 저는 그러고 싶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믿어요."
"누구 맘대로?"
섹스는 하기 싫고, 고매한 너의 취향에 맞춰줄 말 상대는 필요하고, 앞으로 네 입장에서 잘될 위험은 없는 남자를 찾고 있었던거니?
"넌 날 좋아하지 않앗어. 그건 잘못이 아니야."
"맞아요. 인정할게요."
"근데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에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영우는 천천히 팔을 저으며, 동시에 조금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 표정까지 짓는 걸까. 그 표정까지 가지려는 걸까.
"난 친구가 많아. 많지는 않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있어." (p.87-88)

그가 없는 내 삶에 대해, 그가 없는 채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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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3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syo님 페이퍼 봤을 때 인용부분 읽고는 뭐랄까, 이전에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글이라서 그런지 간지러우면서도 신선하고 그랬거든요.
다락방님이 인용해주신 부분도 그런 것 같아요.
평범하고 쉬운 문장인데 목에 탁 걸린다고 할까요. 독특한 느낌이 있네요.
읽게 되면 다락방님 안내에 따라서.... 한 편씩 한 편씩^^

다락방 2018-09-30 19:47   좋아요 0 | URL
한 권을 내리 읽어내기엔 제겐 무리가 있는 책이었어요. 그래도 기존 문학과는 좀 다른 문학이라 아마 이 책을 계기로 이런 책이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뭣보다 나는 게이야,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고 말하는 남자 작가의 글을 읽는 그런대로 또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감춰야 하고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드러내는 책이라서 말이지요.

네 한 편씩 천천히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흐흣

책읽는나무 2018-09-3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런 내용이군요??
인스타에서 작가가 소설을 냈다는 광고를 보았어요.동료작가들이 축하해 주면서 홍보를 하긴 하던데~저는 그냥 그러려니~했어요.
음......기회를 봐서 읽어봐야 겠군요.
한 편씩....나눠서!!!^^
요즘 단편집들은 그렇게 읽어 내는게 더 낫더라구요.끈기가 부족해서ㅋㅋ

다락방 2018-10-01 09:01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전혀 다른 결이긴 하지만 저는 어제 잠자기 전에 읽고 오늘 출근할 때 읽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쪽이 훨씬 훨씬 좋네요.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지만 역시 최은영이구나..생각하며 울면서 읽었어요 ㅠㅠ

최은영을 추천합니다!

공쟝쟝 2018-09-3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는 부분에서 저도 묘한 이질감을 느꼈어요. 게이여서가 아니라...(페미니즘의 여파인가) 한국 남자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냥 순수하게 막 너무 좋아하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나 봅니다 ㅠㅠ
전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 좀 생각했어요.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잠수를 타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ㅎㅎㅎ

다락방 2018-10-01 09:06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나 잘 알겠어요! 저도 발기한 성기 느끼면서 남자 너무 좋아 이럴 때 음.. 뭐랄까 딱히 공감할 수 없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저도 예전에..남자 너무 좋았고, 난 진짜 남자 너무 좋아! 이랬던 사람인데, 이제 정말 너무 멀리 와버렸나봅니다. 저는 이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남자가 너무 좋아!‘라고 한다니, 어쩌면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것일 수도 있겠구요.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처음, 레즈비언의 관계에서 생각했었거든요. 레즈비언이라면 둘이 함께 살아도 뭐랄까,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대해서 상대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게 이성애랑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다면 이성애보다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는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상대보다 ‘더‘ 사랑하고, 그 사람은 약자가 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불만을 갖고 헤어지고 그러는 것은, 으레 사람이라 모두 그렇구나 하게 됐어요.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삶의 혼돈을 정리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붙잡았을까?
바바라 애버크롬비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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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에는 회고록이나 에세이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어떤 마음 가짐이 필요한지 잘 나와있다. 한 페이지당 하나의 조언들이 적혀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글쓰기에 비유할 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 '바바라 애버크롬비'는 글쓰기에 그야말로 숙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겠다. 게다가 각각의 조언(혹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에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글쓰기를 생각했는지도 덧붙여두어, 이 사람은 스스로가 글을 잘 쓰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많이 읽고 들었구나 싶어 존경심마저 든다. 확실히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책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왜 굳이 글쓰기에 매춘을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매춘(혹은 포주)에 글쓰기를 비유해 설명하는 게 내 기억으로 한 네 번정도 나오는데, 처음 나올 때도 불편했는데 또 나와서 이건 뭐지 싶었다. 그러지 마세요,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달까. 왜그럴까? 나는 매춘이 유머 소재로도 쓰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글쓰기 책에 비유로 데리고 와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매춘을 글쓰기에 비유하면서 자신들이 세상 힙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고, 다 읽고 책장을 덮고나니 그 많은 유용한 조언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찜찜함만이 남는다. 이런 것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내 찜찜함을 가지고 있다.



'출판'은 "세상에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온라인으로 출판해 영원히 사이버 공간에만 가둬둘 수도 있고, 자신의 프린터로 출판해 친구들에게 한 부씩 건넬 수도 있으며, 출판사나 잡지사와 계약하여 그쪽에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있다. 주문하면 출판해주는 회사를 통해 자가 출판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돈을 내면 책을 만들어준다.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든 자신이 쓴 글을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다면 자신의 마케팅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마케팅 매춘부(또는 포주)'가 되라는 얘기다. (p.345)



위의 인용문에서 굳이 마케팅 매춘부가 되라는 얘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그 문장을 들어내도 무슨 말인지 완전 잘 알겠고 고개 끄덕여지는 말인데, 왜 굳이 마케팅 매춘부가 되라는 거지? 이 페이지에 작가가 가져온 다른 작가의 인용문은 이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매춘과 같다. 처음에는 사랑을 위해 하다가 그다음에는 몇몇 가까운 친구들을 위해 하고, 그다음에는 돈을 위해 한다. - 몰리에르 (p.345 재인용)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몰리에르는 매춘이 뭔지 모르나? 매춘을 사랑을 위해 하다가 친구들을 위해 하나? 도대체 왜 글을 쓰는 걸 매춘과 같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글쓰기가 신성한 영역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게 무엇이든, 지금처럼 글쓰기이든 운동이든 음주든 여행이든 그게 뭐든, 그것을 매춘에 비유할 필요가 전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마케팅 매춘부라니...어처구니가 없다 진짜.





매일매일 글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글을 쓸 때에는 항상 위험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세계관을 부정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화가 나서 인연을 끊을 수도 있으며, 당신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따른다. 픽션의 장막과 가면으로 가린다고 해도 자신의 진실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방감이 들 것이다. 머릿속이나 가슴속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이야기를 글로 써내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당신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p.0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가 있다. 그녀는 글쓰기와 자기 단련에 대해 더 이상 배울 게 없는데도 글쓰기 연습, 즉 훈련을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업에 출석한다. 그녀는 이 수업을 자신의 집필 ‘운동‘을 위한 ‘체육관‘이라고 부른다.
배우들이나 음악가들, 무용수드로 모두 훈련을 한다. 작가라고 훈련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p.10)

나는 사생활에 대해 아주 편안하다. 사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않기 때문이다. ... 록 그룹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작사가인 존 페리 발로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생활을 완전히 노출해서 숨길 게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레너드 클레인록 (p.20, 재인용)

나는 멘토들의 선례를 통해,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배우고 있다. -제이 파리니 (p.42, 재인용)

나의 어린 시절 기억 가운데 가장 창피한 것은 1학년 토론수업 시간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가 그 거짓말이 학교 저네로 퍼져나간 일이다. (나는 유명한 영화배우들과 형제지간이라고 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뒷받침하려고 줄줄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배웠다. 거짓말로 이뤄진 구조물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p.55)

줄리언 반스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7일을 글을 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말은 작업하기 좋은 시간이다. 사람들이 내가 놀러간 줄 알고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모두 나가서 노느라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다.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아ㅣㅁ에 일을 한다. 일종의 의식이다." (p.61)

가슴 속에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그런 의문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해라. 그것은 잠가놓은 방과도 같다. 외국어로 쓰인 책과도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p.84, 재인용)

소설을 쓰고 있다면 이름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전화번호부를 펼쳐 이름 몇 개를 추려낸 다음, 소설 속 인물들에게 옷을 입혀보듯 하나씩 붙여보면 된다. 앤 라모트는 소설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할 만한 남자들이 있다면 소설에서 그 인물의 성기가 아주 작다고 묘사하면 된다고 말한다. (p.91)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재능, 인내, 엄청난 노력은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베일즈와 테드 올랜드의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중에서 (p,92, 재인용)

무엇이 됐든 그것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절대 그 길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꾸준히 그 길을 걸어 반드시 가야 할 곳에 당도해라. (p.139)

대개는 책을 읽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자극하는 것은 대개 독서이다. 독서, 독서에 대한 사라이 바로 작가의 꿈을 키워주는 것이다. -수전 손택 (p,186, 재인용)

캐롤라인 냅의 회고록은 술을 끊고 양친 부모를 잃고 개르르 사랑하게 된 후 자신의 세계를 재정의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책의 마지막 문단은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공허함을 주는 것은 무엇이며 충만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연결된 느낌이나 위로받는 느낌 혹은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친구는 얼마만큼 필요하며 고독은 얼마만큼 필요한가? 무엇이 옳다고 느껴지고 무엇이 충분하다고 느껴지는가?" 냅의 개 루실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주지 못하지만, 냅은 루실이 자신을 그 답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들에게 질문은 언제나 출발점이 된다.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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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09-3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왜 하필 굳이 당췌 매춘인지 모르겠네요;; 원문이 궁금할 정도로...

다락방 2018-09-30 19:41   좋아요 0 | URL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요. 여기에서 매춘 얘기가 대체 왜 나오는지..

책읽는나무 2018-09-3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했었던 책이었는데......아쉽군요!!!

다락방 2018-10-04 07:37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유용한 점들을 많이 짚어주긴 하지만, 저에겐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컸어요... 휴....
 

















현실성.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결혼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친구들, 계속 바람을 피우다 중단해버리는 친구들, 심지어 때로는 바람피우는 일을 시작도 못 하는 친구들을 보았는데, 모두 똑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그렇게 하는 건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 그들은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거리가 너무 멀고, 기차 시간표가 편치 않고, 일하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주택 저당, 자식, 개 이야기가 나온다. 또 물건들의 공동 소유 이야기가. "레코드 모은 걸 정리하는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가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의 첫 전율을 느끼던 시절 남녀는 그들의 레코드를 합치고, 겹치는 것은 버렸다. 그렇게 꿰맨 모든 것들 다시 푸는 것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그녀는 그대로 머물렀다. (p.140)



친애하는 청년과 서재 결혼시키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가 아니라, 정말로 서재를 결혼시키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질문은, '너는 만약 너만큼 책 많은 남자랑 결혼한다면 서재를 합칠것이냐'였다.


으으-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앤 패디먼의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고민했더랬다. 만약 나정도의 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서재방을 만들어 책장을 합쳐야 할까? 그러다 겹치는 책이 나오면? 그러면 그중 한 권은 정리하면 되겠지? 그렇지만 만약 그게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면, 내 책에는 내 고유의 밑줄이 있을 것이고, 상대의 책 역시 그러할진대, 그렇다면 처분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같은 책이 나란히 꽂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느니 우리는 각자의 서재를 만들면 어떨까. 최소한 방 세 개짜리에 살면서 하나는 우리의 침실, 하나는 내 서재, 하나는 당신 서재..이렇게.


친애하는 청년은 내게 '겹치는 책이 많은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라고도 물었다. 으으.. 이것도 너무나 어렵다. 나와 겹치는 책이 많은 게 좋을까? 어쩌면 우리는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겹치는 게 별로 없어서 서로가 그간 관심없던 분야의 책을 새로이 맞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책장이었다면 꽂히지 않았을 책을, 이 사람과 함께 하므로 꺼내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멋지잖아?


음..그렇지만 너무 다르기만 하면... 그러니까 겹치는 책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면..음...서재를 합치기 보다는 따로 하는 게 나을것 같다. '너무' 다르면... 내가 상대의 책을 꺼내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0-

그래도 내가 가끔 당신 서재에는 들어가보리다. 당신 책읽다 자면 내가 이불도 덮어주고 그럴게요.

그리고 내 서재방의 책은 아무때나 꺼내 읽으시구려.


그런데... 사실... 책을 안 읽는 상대라면..이런 고민은 너무나 쓸데없어 지는 것......... 책을 전혀 안읽는다면, 내가 서재방 만드는 거에 태클이나 걸지 말았으면...그러다가 어느날에는 '나도 책 좀 한 번 읽어볼까?' 하고는 내 서재방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고 그러다가 책에 재미 들려서 내 서재방을 자기 놀이터 삼아 자주 들렀으면. 그렇다면 내가 서재에 큰 소파를 놓으리다. 킹사이즈 침대를 놓을 수도 있겠소. 음..그러면 그것은 침실인가 서재인가...당신은 내 서재방 책장 곳곳에서 내가 보관해둔 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거 나 몰래 마시기 있긔없긔?



줄리언 반스의 책에서 저 부분, 레코드 정리가 복잡해서 헤어지지 않았다는 부부 얘기를 읽으니, 일단 너무 싫은 상대였다면 '다 필요없어, 됐어' 하고 그냥 나와서라도 헤어졌을 것 같지만, 레코드가 차마 헤어지지 않을 핑계가 되어준 거였겠지만, 나의 경우 책이 섞여있다면 어쩌나 싶긴 하다. 음..역시 '그냥 다 당신 가져' 하고 나올 순 없을 것 같아. 아마도 정리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책 당신 책 표시를 해두어야 할까. 그러나 그렇게 표시를 해둔다는 것은 '우리가 헤어질 것을 대비해서' 해두는 것 같잖아. 일단 우리가 같이 살기로 한 이상, 해피 에버 에프터...를 상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알라딘에서 만난 사람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 치고...나만큼 책을 읽거나 가진 사람 못봤고요..그러니 내가 책 많이 가진 사람 만나서 뭐가 되도 될 것이라는 생각 같은 것은 안하고요..그것은 바라지도 않고요..서재 결혼? 훗. 우습다. 그냥 나는 내 책 내가 가지고 내 서재방 내가 꾸미고, 그러다 읽고 팔고 또 사고... (오늘도 샀다! 만쉐이!! 아니, 그러니까, 오늘은 나의 친애하는 청년이 나에게 책 영업을 하는 게 아닌가...그래서 쏠랑- 넘어가서 홀랑- 사버렸네?) 그래도 너무 어쨌든 즐거운 상상이다. 나와 당신의 서재를 합칠 것인가 분리할 것인가, 당신은 나의 서재를 싫어할 것인가..나의 서재에 태클 거는 사람이라면...내가 애초에 딱히 좋아했을 것 같지도 않다. 책을 안읽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내가 책읽는 거라도 좋아해야 해... 아무튼 나는 그렇게 당신과 나의 서재를 합쳤다가 분리했다가 헤어질 땐 어쩌나 고민도 했다가 아아 그러나 다 부질없다 책 안읽는 남자가 세상엔 훨씬 많다 했다가, 음..어쩌면 아예 다른 식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가 있겠다. 국제 결혼을 하면... 한 쪽 방에는 원서가 가득차겠지. 꺅. 이것도 좋군. 후후훗.



아무튼 나는 안잘생겨도 좋으니까 멍청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 여기서 멍청하다는 건 머리가 나쁘다거나 나쁜 학교를 나왔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 말을 듣지 않는 걸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사고의 확장이 안되고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 자기 안에 갇혀서 자기가 세상 똑똑한 줄 알아. '아아 나는 세상 똑똑한 놈이다' 하는 세상 멍청한 놈이 되는 것이다...



아아, 서재를 결혼 시키려다가 이야기가 왜 이렇게...


아무튼 나는 오늘 내가 읽을 책을 내 돈 주고 샀다. 그 책들은 내 서재방에 가지런히 꽂힐 것이다. 아니면 침대 머리맡에 쌓이든가. 킁킁.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서도 책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흐음..........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연애의 기억》에 대해서는 더 길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지만, 글이 나를 찾아오면, 그 때 써야겠다. 글이 나를 찾아오겠지. 샤라라랑- 하고는 내게 다가와 톡톡 어깨를 두드릴거야. 그럼 그때까지 이만 총총.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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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핑키 2018-09-2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다락방님 페이퍼를 읽다보면 정말 막 - 모니터 안으로 쑥 들어가서 같이 손벽 치고 맞장구 치고 한 자리 잡고 같이 계속 이야기 나누고 싶어져요 ㅋㅋㅋ 저는 책 1도 안 읽는 남자와 결혼해서 7년째 그럭저럭 살고있는데요.. 권태기 왔을때는 진짜 책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다시 사면 되니까요!ㅋㅋㅋ ) 도망가고 싶었구요 ㅋㅋㅋ 책 안 읽는 사람과 살다보니 내남자도 제발 좀 책 좀 읽었으면.. 하는 로망이 항상 있었는데요, 그랬던 남자가 최근에 <7년의 밤>을 완독 하고 뭐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테클 테클 거니까 막 겨우1권 읽어놓고 막 - ㅋㅋㅋ 이러면서 짜증이 짜증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
암튼, 넘 오랜만에 덧글 남겨봅니다ㅋㅋ

다락방 2018-09-30 08:52   좋아요 0 | URL
아니 꽃핑키님..이게 얼마만입니까! 안그래도 며칠 전에 꽃핑기님 서재에 새 글 올라온 거 보고, 아아 이제 알라딘에 다시 오시려는가..했는데 제 서재에서도 이렇게 뵙게 되니 반가워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제 남동생이 거의 한달에 한 권 꼴로 책을 읽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이제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ㅋㅋㅋㅋ 웬만한 책은 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된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책을 써야할 시점인 것 같대요. 참나원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내 남자가 책을 안읽어도 상관은 없는데, 책을 읽든 안읽든 좀 대화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랑 같은 책을 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너무 좋고요!! 꽃핑키님, 자주 오세요!!

단발머리 2018-09-2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남자는 책을 읽는 남자여야 하는가, 아니어야 하는가...는 참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일단 책이 좋다, 책 읽는 게 좋다,라는 걸 아예 이해하는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요.
하지만 이해를 못 합니다. 뭐가 좋아, 책이 뭐가 재밌어? 하면 말이지요. 뜨아~~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읽기 좋아하는 걸 이해하는 정도의 사람. 그런데 그럼 그 사람도 책 읽는 거 좋아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오늘의 문장^^

그런데 나는..알라딘에서 만난 사람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 치고...나만큼 책을 읽거나 가진 사람 못봤고요..그러니 내가 책 많이 가진 사람 만나서 뭐가 되도 될 것이라는 생각 같은 것은 안하고요..그것은 바라지도 않고요.

다락방 2018-09-30 08:54   좋아요 0 | URL
ㅎㅎ 단발머리님. 저는 내 남자가 책을 안읽어도 상관은 없는데요, 대화는 됐으면 좋겠어요. 단발님이 말씀하신 책읽는 재미부터 시작해서 책에 관한 내용을 얘기했을 때 잘 듣고 반응하고 하는 것들이요. 우리는 잘 알지 않습니까. 책을 아주 많이 읽는다고 해서 상대랑 대화가 잘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책 많이 읽어서 자기가 제일 많이 안다는 고집에 휣싸일 수 있잖아요. 으으.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게 열린 마음고 깨어있는 정신인 것 같아요. 저는 이곳 알라딘에 단발님이 계시므로 책 읽는 남자에 대한 같은 환상은 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책에 대한 부족한 저의 지식이라든가 또 같은 책을 읽은 후에 나누는 감상을, 단발머리님과 아주 충분히, 만족할만하게 나누고 있어요.

사랑합니다!!

꼬마요정 2018-09-2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 저는 책을 읽기는 하지만 순식간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해서 서재방을 만들구요. 그 남자는 책 좀 그만 사라고 맨날 잔소리 하지만 책장 주문해서 책 꽂아주구요. 어느새 저랑 같이 책을 읽고 있어요. 처음엔 니 책들은 읽을 게 없어. 라고 했지만 지금은 읽을 게 너무 많아. 다 읽고 싶어. 라고 한답니다. 저 결혼 잘 한 거 같아요. ㅎㅎㅎ 자꾸 세뇌시키니까 되더라구요. (자랑하고 도망갑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18-09-30 08:56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것은 무슨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자랑이란 말입니까! 지난번에는 가장 좋은 친구라고 남편에 대해 말씀하시더니, 이번엔 책 친구이기까지 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꼬마요정님은, 아시는 것처럼 정말 결혼 잘하셨습니다. 제이슨 므라즈도 자신의 노래 [럭키]에서 얘기하잖아요. 가장 좋은 친구랑 연인이 되다니, 나는 운이 좋았다고. 꼬마요정님도 정말 운이 좋은 분이시네요! 가장 완벽한 것은 그야말로 베스트 프렌드와 결혼하는 거 아닙니까!!

뒷북소녀 2018-11-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제목 때문에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졌는걸요.^^

다락방 2018-11-05 08:32   좋아요 0 | URL
줄리언 반스는 굉장히 우아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읽어보세요, 뒷북소녀님!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청소년 관람불가>인 영화 《키싱 부스》를 봤다.


'엘'과 '리'는 한날 한시에 태어난 단짝 친구이다. 부모님들끼리도 단짝 친구여서 엘 과 리 가 단짝 친구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십대가 되어버린 지금까지 그들은 늘 함께했고 서로에게 비밀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는 우정을 지키기 위한 단짝 친구의 룰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과는 사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아, 그러나 리 에게는 너무나 멋진, 학교의 인기남 '노아'라는 형이 있었고, 노아는, 말 그대로 너무나 환상적인 남자였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운동도 잘하는데다가, 얼라리여, 하버드에 진학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세상엔 그런 캐릭터가 있지... 학교의 모든 여자애들도 노아와 친해지고 싶어하지만, 엘은 언제나 노아에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마' 라고 하면서 그에게 반한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고, 오오, 노아는, 너무나 전형적으로,


나에게 반하지 않은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이러면서 그녀에게 쏠랑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여자친구가 생긴 리는 엘의 행복을 바라지만, 여전히 엘과 친하고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이 노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지만 리는 엘이 자신의 형과 사귀는 것을 받아들일 순 없었고, 그래서 서로에게 점점 빠져드는 노아와 엘은 자신들이 사귀는 것을 비밀로 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둘만은 뜨겁게, 더 뜨겁게..청소년 관람불가로 사귀게 되는 것이다. 오오, 청소년들이여, 청소년 관람불가로 사귀는구나!


노아와 엘이 서로에게 빠져들고 사랑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와..어찌나 부럽던지.. 이미 이걸 보고 내게 추천해준 동료에게, 보다말고 '부럽다..' 메세지를 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학교 인기짱 노아는..넘나... 내스타일 아닌 것. 이 영화를 나보다 먼저 본 동료는 여자와 남자의 덩치 차이가 너무나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나에게 노아는 '너무 크고', 왜 인기많은 학생인지 잘 알겠지만, 내가 좋아하진 않을 타입이었다. 영화 설정상 그는 하버드에 진학하지만, 그러나 내게는 오오, 너무나 백치미... 너무나 멍충미가 보이는 것이야. 아아, 사랑할 수 없어. 역시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하는구나. 잘생기고 키크고 몸 좋아도 뭔가..멍충미가 흐르면 사랑이 안돼. 내 사랑은 무엇?



이 둘이 진행해나가는 로맨스로도 즐겁게 보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리 와 엘의 우정이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엘과 노아가 사귀는 것을 리가 알게된다. 엘이 말하기 전에 리에게 들켜버린 것. 리는 나름 노아에 대한 컴플렉스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형에게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에 진심으로 화를 낸다. 엘은 몇 번이고 리에게 용서를 빌어보지만 리는 받아주지 않는다. 그들만의 단짝친구 룰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주면 무조건 용서해준다'고 했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가차없었다. 리는 엘이 준 아이스크림을 눈 앞에서 버린다.


리는 자신의 형이 자신보다 모든게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다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형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것이 자신의 단짝 친구 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나 분노가 차올랐던 것. 리 역시 자신의 오랜 단짝친구를 잃고 너무나 가슴아파 그 우정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녀는 노아와 헤어질 생각까지 하면서 리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들이 항상 만나던 오락실에서 늘 그렇듯이 댄스 머신(이거 뭐더라, 동전 넣고 하는 오락실에 있는 그거 였는데) 플레이를 켜고 리는, 망설이다가 두 명의 플레이어를 선택한다. 그리고 엘에게 살짝, 늘 그랬듯이 그녀가 있던 옆자리를 가리키고. 그렇게 그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같이 춤을 추고, 이 시간이 그리웠노라 얘기한다. 리 도 여자친구가 생겼고, 여자친구와도 함께 이 머신 위에서 놀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엘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서로 단짝 친구였던 그 우정을 그리워했고, 그리고 이렇게 화해하면서 그것이 다시 그들에게 왔음에 기뻐하며 포옹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제일 좋았다.


친구를 되찾는 장면. 우정을 다시 이어가는 장면. 긴 시간 함께한 것이 반드시 가장 좋다는 것을 보장하진 않지만, 그들은 아주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애인과는 또다른 의미로 그들의 그 우정은 깊었고 소중했다. 서로에게 비밀조차 없을 정도로 각별했던 사이었는데, 그것이 멀어질 때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그것을 다시 되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이 영화속에서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잃었다고 생각했던 우정을 다시 찾는 장면. 그리고 이 장면이 가장 부러웠다. 내가 갖고 싶은 것도 이거였다. 우정을 다시 찾는 것. 다시 친구가 되는 것. 정말 좋은 친구,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며 서로의 인생에 턱- 하니 자리한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란 건 흔한 게 아니니까. 단짝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다시 찾는 것 역시. 리와 엘은 앞으로 숱하게 사랑을 잃어보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우정'이 있는한 잘 버티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근사한 노아와 사귀게 된 엘 보다, 리 라는 친구를 가진 엘이 부러웠다. 그들에게 서로가 있다는 게 너무 근사하게 여겨졌다. 와-


잃었던 우정을 다시 찾다니,

다시 친구가 되다니.


축복받은 삶이로구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노아, 엘, 리.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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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09-2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잘생기면 다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 글구 제가 리였다면 아마도 엘을 몰래 좋아했을 거라, 형과 사귄다는 걸 알았다면 더 속상했을 것 같아요. 그 상태에서 우정이 이어질까요. 댄스머신으로 봉합하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다락방 2018-09-30 08:58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 보면서 혹시 리가 엘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이것은 형제간의 싸움이 되는 건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아니더라고요. 그랬으면 정말 뻔하고 싫었을 것 같아요. 다행히 리에게도 좋은 여자친구가 있고 또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먼 훗날에는 결국 서로가 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