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청소년 관람불가>인 영화 《키싱 부스》를 봤다.
'엘'과 '리'는 한날 한시에 태어난 단짝 친구이다. 부모님들끼리도 단짝 친구여서 엘 과 리 가 단짝 친구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십대가 되어버린 지금까지 그들은 늘 함께했고 서로에게 비밀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는 우정을 지키기 위한 단짝 친구의 룰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과는 사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아, 그러나 리 에게는 너무나 멋진, 학교의 인기남 '노아'라는 형이 있었고, 노아는, 말 그대로 너무나 환상적인 남자였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운동도 잘하는데다가, 얼라리여, 하버드에 진학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세상엔 그런 캐릭터가 있지... 학교의 모든 여자애들도 노아와 친해지고 싶어하지만, 엘은 언제나 노아에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마' 라고 하면서 그에게 반한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고, 오오, 노아는, 너무나 전형적으로,
나에게 반하지 않은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이러면서 그녀에게 쏠랑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여자친구가 생긴 리는 엘의 행복을 바라지만, 여전히 엘과 친하고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이 노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지만 리는 엘이 자신의 형과 사귀는 것을 받아들일 순 없었고, 그래서 서로에게 점점 빠져드는 노아와 엘은 자신들이 사귀는 것을 비밀로 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둘만은 뜨겁게, 더 뜨겁게..청소년 관람불가로 사귀게 되는 것이다. 오오, 청소년들이여, 청소년 관람불가로 사귀는구나!
노아와 엘이 서로에게 빠져들고 사랑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와..어찌나 부럽던지.. 이미 이걸 보고 내게 추천해준 동료에게, 보다말고 '부럽다..' 메세지를 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학교 인기짱 노아는..넘나... 내스타일 아닌 것. 이 영화를 나보다 먼저 본 동료는 여자와 남자의 덩치 차이가 너무나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나에게 노아는 '너무 크고', 왜 인기많은 학생인지 잘 알겠지만, 내가 좋아하진 않을 타입이었다. 영화 설정상 그는 하버드에 진학하지만, 그러나 내게는 오오, 너무나 백치미... 너무나 멍충미가 보이는 것이야. 아아, 사랑할 수 없어. 역시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하는구나. 잘생기고 키크고 몸 좋아도 뭔가..멍충미가 흐르면 사랑이 안돼. 내 사랑은 무엇?
이 둘이 진행해나가는 로맨스로도 즐겁게 보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리 와 엘의 우정이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엘과 노아가 사귀는 것을 리가 알게된다. 엘이 말하기 전에 리에게 들켜버린 것. 리는 나름 노아에 대한 컴플렉스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형에게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에 진심으로 화를 낸다. 엘은 몇 번이고 리에게 용서를 빌어보지만 리는 받아주지 않는다. 그들만의 단짝친구 룰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주면 무조건 용서해준다'고 했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가차없었다. 리는 엘이 준 아이스크림을 눈 앞에서 버린다.
리는 자신의 형이 자신보다 모든게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다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형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것이 자신의 단짝 친구 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나 분노가 차올랐던 것. 리 역시 자신의 오랜 단짝친구를 잃고 너무나 가슴아파 그 우정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녀는 노아와 헤어질 생각까지 하면서 리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들이 항상 만나던 오락실에서 늘 그렇듯이 댄스 머신(이거 뭐더라, 동전 넣고 하는 오락실에 있는 그거 였는데) 플레이를 켜고 리는, 망설이다가 두 명의 플레이어를 선택한다. 그리고 엘에게 살짝, 늘 그랬듯이 그녀가 있던 옆자리를 가리키고. 그렇게 그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같이 춤을 추고, 이 시간이 그리웠노라 얘기한다. 리 도 여자친구가 생겼고, 여자친구와도 함께 이 머신 위에서 놀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엘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서로 단짝 친구였던 그 우정을 그리워했고, 그리고 이렇게 화해하면서 그것이 다시 그들에게 왔음에 기뻐하며 포옹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제일 좋았다.
친구를 되찾는 장면. 우정을 다시 이어가는 장면. 긴 시간 함께한 것이 반드시 가장 좋다는 것을 보장하진 않지만, 그들은 아주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애인과는 또다른 의미로 그들의 그 우정은 깊었고 소중했다. 서로에게 비밀조차 없을 정도로 각별했던 사이었는데, 그것이 멀어질 때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그것을 다시 되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이 영화속에서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잃었다고 생각했던 우정을 다시 찾는 장면. 그리고 이 장면이 가장 부러웠다. 내가 갖고 싶은 것도 이거였다. 우정을 다시 찾는 것. 다시 친구가 되는 것. 정말 좋은 친구,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며 서로의 인생에 턱- 하니 자리한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란 건 흔한 게 아니니까. 단짝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다시 찾는 것 역시. 리와 엘은 앞으로 숱하게 사랑을 잃어보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우정'이 있는한 잘 버티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근사한 노아와 사귀게 된 엘 보다, 리 라는 친구를 가진 엘이 부러웠다. 그들에게 서로가 있다는 게 너무 근사하게 여겨졌다. 와-
잃었던 우정을 다시 찾다니,
다시 친구가 되다니.
축복받은 삶이로구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노아, 엘, 리. 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