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본격 게이 로맨스'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하나 장르를 주어야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식으로 매 단편마다 '나는 게이야'를 드러내는 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계속해서 '나는 게이야' 라고 드러내며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외치는 소설에 대해서 이 작가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고, 그렇게 이 단편집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실린 단편을 순서대로 읽었는데 첫 단편을 읽고서는 오 신선하다, 그리고 문장이 아름답다! 하고 감탄했다. 이어지는 두 변째 단편 까지도 으음, 하면서 읽었더랬다 그러나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작가는 매 주인공마다 자신을 이입해서 쓴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그냥 한 명의 연애와 섹스가 반복되는 것으로만 읽힌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당연히 사랑과 연애 섹스가 주를 이루겠지만, 책 한 권 내내 저 남자 좋아, 사랑해, 섹스해...만 나오니까, 어느 순간 질려버린달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자리에서 한 권을 내리 읽는 게 아니라, 한 편씩 시간 날 때마다 끊어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 권을 다 끝내야 다음 권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중간 이후부터 매우 힘겨운 독서였다...


다만 작가가 여느 남자 작가들과는 다르게 꽤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마지막 단편에서 자신이 글쓰기와 사랑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정말 글쓰기를, 그리고 사랑을 인생의 주요 목표로 삼는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에는 굉장히 섬세하다. 그런 디테일까지 잘 기억하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지... 하하하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건데,

나는 소설을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 감상에 있어서는 꽤 혹독하고 가차없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면 그 총량의 구십 퍼센트를 나는 영우에게 써버렸다. (p.66)

"형, 사실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영우의 눈을 마주보다 곧바로 대답할 수 없어 물 아래로 한 차례 깊이 들어갔다 나왔다.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이에요. 저는 그러고 싶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믿어요."
"누구 맘대로?"
섹스는 하기 싫고, 고매한 너의 취향에 맞춰줄 말 상대는 필요하고, 앞으로 네 입장에서 잘될 위험은 없는 남자를 찾고 있었던거니?
"넌 날 좋아하지 않앗어. 그건 잘못이 아니야."
"맞아요. 인정할게요."
"근데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에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영우는 천천히 팔을 저으며, 동시에 조금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 표정까지 짓는 걸까. 그 표정까지 가지려는 걸까.
"난 친구가 많아. 많지는 않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있어." (p.87-88)

그가 없는 내 삶에 대해, 그가 없는 채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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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3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syo님 페이퍼 봤을 때 인용부분 읽고는 뭐랄까, 이전에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글이라서 그런지 간지러우면서도 신선하고 그랬거든요.
다락방님이 인용해주신 부분도 그런 것 같아요.
평범하고 쉬운 문장인데 목에 탁 걸린다고 할까요. 독특한 느낌이 있네요.
읽게 되면 다락방님 안내에 따라서.... 한 편씩 한 편씩^^

다락방 2018-09-30 19:47   좋아요 0 | URL
한 권을 내리 읽어내기엔 제겐 무리가 있는 책이었어요. 그래도 기존 문학과는 좀 다른 문학이라 아마 이 책을 계기로 이런 책이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뭣보다 나는 게이야,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고 말하는 남자 작가의 글을 읽는 그런대로 또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감춰야 하고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드러내는 책이라서 말이지요.

네 한 편씩 천천히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흐흣

책읽는나무 2018-09-3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런 내용이군요??
인스타에서 작가가 소설을 냈다는 광고를 보았어요.동료작가들이 축하해 주면서 홍보를 하긴 하던데~저는 그냥 그러려니~했어요.
음......기회를 봐서 읽어봐야 겠군요.
한 편씩....나눠서!!!^^
요즘 단편집들은 그렇게 읽어 내는게 더 낫더라구요.끈기가 부족해서ㅋㅋ

다락방 2018-10-01 09:01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전혀 다른 결이긴 하지만 저는 어제 잠자기 전에 읽고 오늘 출근할 때 읽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쪽이 훨씬 훨씬 좋네요.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지만 역시 최은영이구나..생각하며 울면서 읽었어요 ㅠㅠ

최은영을 추천합니다!

공쟝쟝 2018-09-3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는 부분에서 저도 묘한 이질감을 느꼈어요. 게이여서가 아니라...(페미니즘의 여파인가) 한국 남자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냥 순수하게 막 너무 좋아하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나 봅니다 ㅠㅠ
전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 좀 생각했어요.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잠수를 타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ㅎㅎㅎ

다락방 2018-10-01 09:06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나 잘 알겠어요! 저도 발기한 성기 느끼면서 남자 너무 좋아 이럴 때 음.. 뭐랄까 딱히 공감할 수 없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저도 예전에..남자 너무 좋았고, 난 진짜 남자 너무 좋아! 이랬던 사람인데, 이제 정말 너무 멀리 와버렸나봅니다. 저는 이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남자가 너무 좋아!‘라고 한다니, 어쩌면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것일 수도 있겠구요.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처음, 레즈비언의 관계에서 생각했었거든요. 레즈비언이라면 둘이 함께 살아도 뭐랄까,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대해서 상대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게 이성애랑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다면 이성애보다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는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상대보다 ‘더‘ 사랑하고, 그 사람은 약자가 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불만을 갖고 헤어지고 그러는 것은, 으레 사람이라 모두 그렇구나 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