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결혼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친구들, 계속 바람을 피우다 중단해버리는 친구들, 심지어 때로는 바람피우는 일을 시작도 못 하는 친구들을 보았는데, 모두 똑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그렇게 하는 건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 그들은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거리가 너무 멀고, 기차 시간표가 편치 않고, 일하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주택 저당, 자식, 개 이야기가 나온다. 또 물건들의 공동 소유 이야기가. "레코드 모은 걸 정리하는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가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의 첫 전율을 느끼던 시절 남녀는 그들의 레코드를 합치고, 겹치는 것은 버렸다. 그렇게 꿰맨 모든 것들 다시 푸는 것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그녀는 그대로 머물렀다. (p.140)
친애하는 청년과 서재 결혼시키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가 아니라, 정말로 서재를 결혼시키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질문은, '너는 만약 너만큼 책 많은 남자랑 결혼한다면 서재를 합칠것이냐'였다.
으으-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앤 패디먼의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고민했더랬다. 만약 나정도의 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서재방을 만들어 책장을 합쳐야 할까? 그러다 겹치는 책이 나오면? 그러면 그중 한 권은 정리하면 되겠지? 그렇지만 만약 그게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면, 내 책에는 내 고유의 밑줄이 있을 것이고, 상대의 책 역시 그러할진대, 그렇다면 처분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같은 책이 나란히 꽂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느니 우리는 각자의 서재를 만들면 어떨까. 최소한 방 세 개짜리에 살면서 하나는 우리의 침실, 하나는 내 서재, 하나는 당신 서재..이렇게.
친애하는 청년은 내게 '겹치는 책이 많은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라고도 물었다. 으으.. 이것도 너무나 어렵다. 나와 겹치는 책이 많은 게 좋을까? 어쩌면 우리는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겹치는 게 별로 없어서 서로가 그간 관심없던 분야의 책을 새로이 맞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책장이었다면 꽂히지 않았을 책을, 이 사람과 함께 하므로 꺼내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멋지잖아?
음..그렇지만 너무 다르기만 하면... 그러니까 겹치는 책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면..음...서재를 합치기 보다는 따로 하는 게 나을것 같다. '너무' 다르면... 내가 상대의 책을 꺼내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0-
그래도 내가 가끔 당신 서재에는 들어가보리다. 당신 책읽다 자면 내가 이불도 덮어주고 그럴게요.
그리고 내 서재방의 책은 아무때나 꺼내 읽으시구려.
그런데... 사실... 책을 안 읽는 상대라면..이런 고민은 너무나 쓸데없어 지는 것......... 책을 전혀 안읽는다면, 내가 서재방 만드는 거에 태클이나 걸지 말았으면...그러다가 어느날에는 '나도 책 좀 한 번 읽어볼까?' 하고는 내 서재방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골라 읽고 그러다가 책에 재미 들려서 내 서재방을 자기 놀이터 삼아 자주 들렀으면. 그렇다면 내가 서재에 큰 소파를 놓으리다. 킹사이즈 침대를 놓을 수도 있겠소. 음..그러면 그것은 침실인가 서재인가...당신은 내 서재방 책장 곳곳에서 내가 보관해둔 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거 나 몰래 마시기 있긔없긔?
줄리언 반스의 책에서 저 부분, 레코드 정리가 복잡해서 헤어지지 않았다는 부부 얘기를 읽으니, 일단 너무 싫은 상대였다면 '다 필요없어, 됐어' 하고 그냥 나와서라도 헤어졌을 것 같지만, 레코드가 차마 헤어지지 않을 핑계가 되어준 거였겠지만, 나의 경우 책이 섞여있다면 어쩌나 싶긴 하다. 음..역시 '그냥 다 당신 가져' 하고 나올 순 없을 것 같아. 아마도 정리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책 당신 책 표시를 해두어야 할까. 그러나 그렇게 표시를 해둔다는 것은 '우리가 헤어질 것을 대비해서' 해두는 것 같잖아. 일단 우리가 같이 살기로 한 이상, 해피 에버 에프터...를 상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알라딘에서 만난 사람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 치고...나만큼 책을 읽거나 가진 사람 못봤고요..그러니 내가 책 많이 가진 사람 만나서 뭐가 되도 될 것이라는 생각 같은 것은 안하고요..그것은 바라지도 않고요..서재 결혼? 훗. 우습다. 그냥 나는 내 책 내가 가지고 내 서재방 내가 꾸미고, 그러다 읽고 팔고 또 사고... (오늘도 샀다! 만쉐이!! 아니, 그러니까, 오늘은 나의 친애하는 청년이 나에게 책 영업을 하는 게 아닌가...그래서 쏠랑- 넘어가서 홀랑- 사버렸네?) 그래도 너무 어쨌든 즐거운 상상이다. 나와 당신의 서재를 합칠 것인가 분리할 것인가, 당신은 나의 서재를 싫어할 것인가..나의 서재에 태클 거는 사람이라면...내가 애초에 딱히 좋아했을 것 같지도 않다. 책을 안읽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내가 책읽는 거라도 좋아해야 해... 아무튼 나는 그렇게 당신과 나의 서재를 합쳤다가 분리했다가 헤어질 땐 어쩌나 고민도 했다가 아아 그러나 다 부질없다 책 안읽는 남자가 세상엔 훨씬 많다 했다가, 음..어쩌면 아예 다른 식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가 있겠다. 국제 결혼을 하면... 한 쪽 방에는 원서가 가득차겠지. 꺅. 이것도 좋군. 후후훗.
아무튼 나는 안잘생겨도 좋으니까 멍청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 여기서 멍청하다는 건 머리가 나쁘다거나 나쁜 학교를 나왔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 말을 듣지 않는 걸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사고의 확장이 안되고 자기 안에 갇히게 된다. 자기 안에 갇혀서 자기가 세상 똑똑한 줄 알아. '아아 나는 세상 똑똑한 놈이다' 하는 세상 멍청한 놈이 되는 것이다...
아아, 서재를 결혼 시키려다가 이야기가 왜 이렇게...
아무튼 나는 오늘 내가 읽을 책을 내 돈 주고 샀다. 그 책들은 내 서재방에 가지런히 꽂힐 것이다. 아니면 침대 머리맡에 쌓이든가. 킁킁.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서도 책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흐음..........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연애의 기억》에 대해서는 더 길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지만, 글이 나를 찾아오면, 그 때 써야겠다. 글이 나를 찾아오겠지. 샤라라랑- 하고는 내게 다가와 톡톡 어깨를 두드릴거야. 그럼 그때까지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