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면 야외 테이블에 앉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재작년에 이탈리아 갔을 때는 40도를 육박하는 더위에 실내를 고집하긴 했지만, 풍경 좋은 곳에서 야외테이블에 앉는것은 로망 아닌가. 드레스덴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슈니첼 먹던 경험은 잊을 수 없을 것이며, 프라하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기억도 그렇다. 싱가폴에서도 야외 테이블을 더 좋아했는데, 실내가 지독히 춥기 때문이기도 했다. 냉방에 온 마음과 에너지를 다 쏟는 나라 싱가폴.. 한국의 중년여성은 많이 추워요.. 햇볕을 받으면서 야외 테이블에 앉는 것은 참 행복이다. 최근에 멜번에서도 느낀건, 태양과 낯선 도시는 행복이라는 거다. 난 이 두 개만 있으면 행복해! 멜번에서 앤드류랑 마주 앉아서도 태양이 좋고 바람도 불어 아, 너무 좋아 행복하다, 했더니 '널 행복하게 하는건 쉽네!' 라고 했더랬다. 그런데,


야외 테이블의 단점이 있었으니,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이 음식을 먹는 나 외에 다른 숨쉬는 것이 먹기 위해 찾아온다. 사실 '온갖' 이라고 했지만, 그냥 '새' 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해운대 바닷가에 갈매기.. 그런 수준으로 이 야외 테이블에 새들이 달려드는데, 싱가폴 에서도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가 새들이 바닥에 돌아다녀서 마음이 좀 불편했더랬다. 그뿐인가, 식당 문을 열고 닫을때는 심지어 식당 안으로도 들어온다. 싱가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태연한데, 나는 좀 충격이었다. 맥도날드 실내에 새들이 바닥에서 돌아다니고 있어. 오 마이 갓..


그러나 싱가폴의 새는, 하, 내가 놀랄만한 것도 못되었다. 멜번은 대단하다! 여긴 새들과 공존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그냥 바닥에 새들이 수두룩하다. 크로아상과 함께 커피 마시던 나는, 아아 내 크로아상으로 와서 덤비는게 아닐까 싶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리를 떠서 빈 테이블, 아직 치우지 못한 접시 위로 새들이 날아들기 때문이었다. 내가 먹고 있으면, 내 접시에도 덤비는게 아닐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새들아, 오지마.. 난 너네랑 그렇게 막 친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멜번 3대 커피집 중 하나인 '마켓레인' 에서 커피와 크로아상을 마시고 있었다. 멜번은 커피 맛있기로 세계 1위 도시라고 한다. 근데 그중에서도 3대 커피집이 있는데 내가 거길 갔었단 말이지. 이때가 마지막날 아침이어서, 나는 디카프가 아닌 카페인 커피를 주문했다.



핸드드립용으로 좋을만큼 볶은 커피란다.  그런데, 아아, 새들아 새들아 새들아...




그러나 이 새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타닉 가든이라는 어마어마한 야생의 공원에 가서 그 안에 까페를 갔을 때, 그 안에는 전망 때문인지 사람들이 정말 많아 빈자리가 별로 없었는데,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이미 새똥이 있었다. 직원이 와서 닦아주었는데, 와 새들이 엄청 날아다니고, 사람이 앉아있든 말든 개의치않고 막 음식을 노려. 우리 근처에 여러명의 젊은여자들이 앉는 테이블은 막 주문한 음식이 나온 모양이었다. 꺅 소리가 들리고 성급히 일어나고 새들이 그 테이블로 막 찾아오고... 오 신이시여. 

나랑 앤드류는 커피만 주문해서 다행히 우리 테이블에 새가 오진 않았는데, 문제는 우리 위의 파라솔이 우리를 통째로 감싼게 아니라 파라솔과 파라솔 사이 빈틈이 있어서, 거기로 언제든 새똥이 날아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나가다가 새가 똥을 싸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봤다. 우리 테이블에 이미 질러둔 새똥과 또 길바닥에 새똥... 우리 테이블 위에 새가 똥 쌀 수도 있겠는데? 라고 하자 앤드류가 맞다고, 저쪽 자리 비면 옮기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얘들아..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 마시다가 새똥 공격을 당할 수가 있어............. 참고하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멜번이 그립다. 아주 그립다. 6개월 머물렀던 싱가폴보다 멜번이 더 그립다. 어쩌면 멜번은 고작 며칠 있었고 싱가폴은 6개월이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멜번이 너무나 그립다. 다시 그 도시를 걷고 싶다. 커피를 좀 더 많이 마실 걸 그랬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여행이었다면 커피도 좀 사오고 그랬을텐데, 나는 싱가폴로 와서 짐을 챙겨 한국으로 떠나야 했다. 버릴거 버리고 나눠줄거 다 나눠줬는데도 캐리어가 세 개다. 이걸 어떻게 핸들링 하고 가야할지.. 그러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두 개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세 개를 사용해야 했다. 싱가폴에서 과자도 좀 사가고 싶은게 있는데, 그것도 못사간다. 더이상 어디 쑤셔넣을 수도 없고 내가 들고 다닐 수도 없어. 캐리어가 세 개야. 하여간 그래서 멜번에서 커피를 못사온게 너무 한이 된다. 가서 실컷 커피도 마시고(방광 이슈 ㅠㅠ) 또 막 사오고 싶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다. 좀 더 걷고 좀 더 마시고 그리고 좀 더 사오고... 싱가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 좋은 태양을 받고 있어도, 멜번에 있던 내가 생각난다. 멜번앓이중..


쒸웬과 수다떨고 앤드류랑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데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중년의 한국여성과 대화하고 싶다는 거였다. 중년의 한국여성이야말로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에 대해 그렇다. 나와 친한 친구들 그리고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내가 외로움에 대해 말할때 그 외로움이, 그러니까 인간이 본질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외로움이 뭘 뜻하는지를 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외로움은, 지금 당장 섹스할 사람이 없는 외로움이 아니다. 나는 그런거는 하나도 외롭지 않다. 집에 가면 나를 안아줄 사람이 없는 그런 외로움, 그런거 아니다. 나는 그런 외로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 외로움이라는 것,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은,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내가 어떤 것을 보고 분노할 때, 내가 어떤 것을 하고 행복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는거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해해보고자 노력할 수 있을뿐,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면 삶은 풍성해진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누군가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 때부터 비극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건 결코 누군도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인데, 그런데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면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앤드류가 아직 호주에 있고 내가 싱가폴에 있을 때, 톡으로 대화중에 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걸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앤드류는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는 누나네 집에서 개 두마리랑 함께 놀 때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 라고 했다. 아.. 내가 말한 외로움이 그에게 가 닿지 못하는구나. 어쩌면 이것은 나의 영어가 짧아 더이상의 설명을 부연하지 않은데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쒸웬을 만났을 때, 우리는 외국에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다가 외로움 얘기로 넘어가서인지, 아예 다른 외로움으로 그는 접근했다. 갑자기 자기 폰을 이용해서 AI 남자 캐릭터 만들어 내게 보여주면서 한국말로 말걸어보라는거다. 그러면 한국말 해준다고. 이건 AI 남자친구라는거다. 헐.. 나는 그거 필요없어, 나는 그런 외로움을 말한게 아니야,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랑 똑같지 않다는 외로움이야!! 

그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 때 AI 남자친구는 도움이 된다니까? 미래에는 다들 이걸 갖게 될거야. 말 걸어봐.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내가 안녕, 나는 클락키를 걷고 있어, 라고 했더니 AI 남자 캐릭터가 마주 인사하며 뭐라고 다정한 말들을 막 건네더라. 하여간 좀 기괴했어. 나는 이런걸 원하는게 아니야, 나 필요없어!! 했더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지금도 이걸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사람들은 많이 사용하게 될거야. 좋은 남자친구가 될거야, 이러는거다. 야 이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러면 너도 AI 걸프렌드가 있어?


그는 아니라고 했다.
아닌걸까, 정말? 아닌데, 왜 나한테 그렇게 적극 추천해? 왜? 


하여간 웨스턴 가이(오세아니아는 웨스턴이 아닌가요) 랑 아시안 가이랑 얘기해보고...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래 정말로 즐겁고 행복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더한 어떤것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영어를 더 잘하게 된다면, 어느나라 가이를 만나도 소통이 될 수 있는 부분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더한 어떤 것, 좀 더 깊은 것이 필요하다. 내 영혼에는 그보다 더한 어떤것이 필요해.

내가 무슨말 하는지 알지, 얘들아...
그래서 어제도 '아 한국 중년 여성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고 생각한 것이다. 유 노 왓 아 민?


그런 한편, 영어로 쓸 소설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고민이 있다.

원래 내 계획은 처음부터 영어로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생각은 일단 한글로 쓰고 그걸 영어로 내가 번역하는거다. 문제는, 그것 역시 어려울 것이니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야 할텐데, 이럴 경우 영어로 완성된 내 소설은 비도덕적인가?

그리고 가장 큰 고민, 사실 이것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소설 안에 드러나는게 너무 싫다. 주인공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게 싫다. 주인공과 작가는 거리두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이걸 할 자신이 없다. 주인공과 나 사이에 거리두기. 이게 안될것 같아서, 그게 진짜 제일 큰 고민이다. 

내가 지금처럼 알라딘에 페이퍼를 쓰고 리뷰를 쓰고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해서 책으로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글 안에서의 '나'와 실제 그 글을 쓰는 '내'가 분리될 필요가 없는 글의 형태이기 때문이었다. 에세이는 말 그대로 작가 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글이니까. 나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에세이는 거기에 적합한 형태였다. 그러나 소설은 다르다. 일단 소설을 사랑하는 나부터가 작가와 주인공의 거리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내가 소설을 쓰고자 할 때 역시 가장 중요하게 가져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자신이 없어...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생각중이다. 고민하다보면 답이 나오겠지.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겨드랑이 냄새에 대한 글도 써야 하는데, 너무 길어지니까 그건 다음 기회에.. 흠흠. 



지금은 이 책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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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2-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말이니….? 🤣

오우! 사람들이 외롭다는 감정을 그렇게 인식한다는 게 놀랍네요?! 전 인간의 근본적 외로움은 아무리 연인이 있다해도 해소할 수 없는 어떤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잠자냥 2026-02-1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저도 다락방 님과 같은 이유로 소설을 쓰지 못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작가 자신이 작품에 너무 드러나는 작품도 좀 별로입니다. 지금 읽는 책도 좀 그렇네요. ㅎㅎ

망고 2026-02-15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 어릴때부터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는데요 그게 옆에 가족이 있든 친구가 있든 상관없는 외로움이었는데...여기서 앤드류 좀 실망ㅋㅋㅋㅋㅋㅋㅋ내가 실망해서 어쩔건데?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2-15 16:34   좋아요 0 | URL
나도 좀 실망했어….🤣

독서괭 2026-02-1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중년여성 하나 추가요✋ ㅋㅋ
근데.. 자기 자신이 아예 투영 안 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시작은 자전적 작품부터 시작하는 게 제일 쉽지 않을지.. 마음에 안 들어서 어디 내놓지 않더라도요.

그렇게혜윰 2026-02-1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 너무 좋네요^^ 웰컴 투 코리아! 새는 저도 너무 무서운데 낯선 도시에서의 태양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젊어지는 기분 들어요!

hnine 2026-02-1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저를 비롯해서 대체로 외로움에 대한 역치가 낮은가봐요.
그리고 사람은 원래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끝까지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인간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