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 다녀오고 출근한 월요일이다.
월요일이다.
책탑 사진 올리는 날이라는 뜻이다.
쌀국수 사진 잔뜩 올리려다가 일단 책탑 사진 먼저 올리기로 한다.
월요일이니까.
호치민에서 돌아와 어제 집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자정에 가까웠더랬다. 이걸 예상하고 있었기 땜시롱, 준비성 철저한 나는 머릿속에서 이걸 막 다 그려본 다음에, 목요일 밤에 이미 책탑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렇게 내가 준비가 철저하다. 자, 보자.
《투쟁영역의 확장》은 미셸 우엘벡 소설이다. 그 이름이야 워낙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아직 우엘벡 소설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더랬다. 그러다 최근에 읽은 에바 일루즈의 책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에서 우엘벡 소설이 언급되길래 궁금해졌다. 우엘벡의 이 소설에서는 섹스 자본을 갖추지 못한 남자주인공이 나온다는 거다. 오 그래? 궁금해져서 사가지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일단 자기 일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지만 사실 친구도 별로 없고 친한 동료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는 남자주인공이 등장한다. 업무상 만나게 되는 동료 남자도 너무 못생겨서 여자를 전혀 사귈 수 없을 것 같고, 업무상 만나게된 여자도 남자한테 인기 없을 스타일이고.. 이 사람들과 일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은데 음.. 되게 재미있어 보이지 않나? 그런데 재미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비행기안에서 이 책 분량도 얇길래 다 읽을라 그랬는데 너무 책장도 안넘어가고 무슨소리야 싶어서 책을 덮었다. 그러다 퍼뜩 혹시 기내 영화로 《와칸다 포에버》있나? 찾아봤더니 아니, 있잖아? 내가 이거 개봉 당시에 놓쳤지만 꼭 보고싶었단 말야? 그래서 이 영화를 재생했다. 그런데 너무 졸린거죠... 기내에서 쓰러져자버림.. 그러다가 밥 나와서 밥 먹고 다시 영화를 보다가... 또 자버림.... 안돼, 다 봐야 돼... 그런데 자버림..... 그리고 일어나서 다시 보는데 아아, 여동생이 블랙팬서 된다고 했는데 아직 안됐단 말야? 그런데 자기 나라 지켜야 되고 다른 나라가 전쟁을 선포했단 말야? 그런데 비행기가 착륙해버렸다..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는 우엘벡 소설도 다 못읽고 와칸다 포에버도 다 못봤어. 뒷부분 너무나 궁금하다 와칸다 포에버.. 그래서 네이버로 볼까 했는데 이미 절반 이상 봤는데 또 돈주고 사야하다니. 비행기 안에서 공짜로 볼 수 있었는데! ㅠㅠ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는 호치민에 가져갔고 다 읽었다.
토요일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근처 쌀국수 집에서 쌀국수 사먹고 진짜 겁나 부지런히 걸었다. 이 날 목표가 사이공 대학교였고 나는 당연히 걸어갈 것이었으므로 점심 먹기 전까지 17,000 보를 걸어버린거다. 점심 먹고 호텔로 와서는 1층 bar 로 갔다. 평소 맥주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날은 시원한 맥주가 급했다. 마침 체크인할 때 리셉션에서 준 바우처가 있었다. 체크인이 바로 안되고 내가 몇 분 기다려야 했는데, 그거 미안하다고 바우처를 준거다. 이거 바 에 가서 먹고픈 음료 마시라는 거였다. 나는 그 바우처를 가지고 가서 이걸로 혹시 맥주 마실수 있냐고 물었더니 커피와 차만 된다는 거다. 아 그래? 나는 맥주 마시고 싶어 맥주 한잔 줘 밖에 앉아있을게, 하고 앉아서 맥주를 주문했다. 직원분이 맥주를 가져다주시는데 갑자기 까페쓰어다도 먹고 싶었다. 혹시 까페쓰어다 있습니까? 물었더니 있고, 그건 니 바우처로 가능해! 라고 말해주어 그것도 시켰다.
일전에 백종원이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베트남에 가 연유커피를 시킨 뒤에 마시고서는 맥심 다섯개를 탄 것 같은 찐함이라고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까페쓰어다 처음 마시는 건 아니지만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깜짝 놀랄 맛이다. 진짜 찐하고 진짜 달다. 맥심 다섯개도 약한거 아닌가, 이에 비하면.
실내는 에어컨 틀어두어 시원하지만 나는 부러 밖에 앉았다. 덥고 뜨겁고 이렇게 생생한 곳.
그렇게 맥주도 커피도 다 마시고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를 읽다가 룸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좀 쉬었다. 룸에서도 책을 좀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고단하더라. 그래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진 않았다. 저녁 때가 되어 근처에 나가 분짜를 사먹고 돌아다니고 다시 들어왔다. 내가 여행갈 때 아빠는 퇴원하셨었는데, 내가 도착해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도중 아빠가 응급실에 가셨고 다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호치민에서. 다행스럽게도 여동생과 남동생이 우리집에 교대로 있어주어 부모님의 입원을 챙기고 있었지만 내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나는 내가 혼자 있는게 너무 편하고 또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최근 아빠의 장기간 입원을 겪으면서 좀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빠에게 섬망이 찾아왔을 때 집에 혼자 있었는데, 그때 너무 무섭고 힘들었던 거다. 진짜 못견디겠더라. 그 날은 잠을 한 숨도 못잤다. 너는 혼자 있는 거 좋아하잖아, 라는 엄마의 말에 '엄마, 내가 아프고 내가 고통스러운 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내가 감당하면 되는거니까 혼자 있는게 좋은데, 아빠 아플 때 내가 혼자 있으니까 그건 미치겠더라, 너무 힘들었어.' 라고 말했다. 그랬다. 내 몸이 통제가 안되는 건 내 일이고 나는 여기에 있어서는 혼자 있는게 편하고 또 그것에 대해 어떤 부정적 감정이 찾아들지 않는다. 그런데 아빠가 아픈 거, 그러니까 내 몸이 아니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데 내가 혼자 있노라니 그 때는 막 무섭고 벌벌 떨리고 힘든거다. 물론 동생들과 엄마와 계속 연락하고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내가 혼자 있는 거, 내가 있는 집에 내가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게 너무 힘들었다.
토요일 밤 호치민에서 그랬다. 호텔방에 혼자 있는게 너무 싫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들고 1층 bar로 내려가 와인을 주문하고 책을 쳐다보았다. 가끔은 멍하니 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베트남에 걷고 싶어 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흘리며 걸으려고 갔다. 그래서 열심히 걸었다. 그래서인지 낮에도 밤에도 이렇게 가만 앉아 있는 시간도 좋더라. 그건 그것대로 너무 행복했다. 낮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보다가 그저 지나다니는 오토바이를 멍하니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좋더라. 이거 왜 좋지? 하면서 좋았다. 아빠 때문에 불안하면서도 순간순간 좋다는 감정이 찾아들었다.
아, 저 책은 베트남에서 다 읽었는데 백자평은 곧 쓸 예정이다. 바쁘다.
《관광객의 철학》은 정희진 쌤이 김혜리 기자의 팟빵에 출연해 교토 얘기해주실 때 갑자기 읽어보고 싶어져서 샀다. 이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온건 전혀 아니고 그냥 내가 퍼뜩 생각이 나버려서.
《유리탑의 살인》은 일본 미스테리가 만만하기 땜시롱 가끔 하나씩 읽고 남동생 주려고 샀는데 재미없을까봐 걱정이다. 아무리 좋은 평을 받아도 재미없는, 별 거 없는 미스테리들도 있기 땜시롱..
《죽어가는 형사》의 저 형사 시리즈는 일전에 1권 읽고 더이상 안읽을래, 했던 시리즈인데, 이번에 영화 《헤어질 결심》에 저 시리즈 나온거 보고 딱 하나만 더 읽어보자, 하고 샀다. 나는 1권 영 별로였단 말야?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는 아마도 1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읽다가 산 것 같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는 오래전에 정희진 쌤 책에서 언급되어 담아둔건데 이게 품절된 책이란 말야? 그래서 내내 담아두기만 했다가 중고 있길래 중고로 사버렸다.
《커피의 정치학》은 정희진 쌤 매거진 듣고 샀다. 두꺼워.. 이것도 품절된 책이라 중고 샀는데 책 상태가 좀 별로다 ㅠㅠ 색이 바랬음 ㅠ
《하워드 진의 미국사》는 내가 역사에 진짜 똥멍충이라 기본적인거라도 알아야지 싶어서 샀는데, 내가 이렇게 사둔 역사 책이 한두권이 아니여 증맬루... 한 권도 안읽었다. 씨부럴... 그만 사라, 그만 사란 말이얏!!
이렇게가 내가 목요일날 사진 찍어둔 것이었고 그래서 월요일 책탑의 마무리가 될 뻔 하였는데, 나의 양재동 작업실에 도착해보니 주말동안 택배가 도착해있었다. 친구가 보내준 선물이었다.
(이 사진을 캐나다뷰 원하셨던 분들께 바칩니다 ㅎㅎ)
벨 훅스의 신간이 나왔다며 계급 이야기라고, 그래서 내가 관심있어할 것 같다고 친구가 보내주었다. 내가 이거 보내줄게, 라고 친구가 말해서 오 그래, 계급 좋았어! 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애도클럽》도 들어있고, 오 이건 그래픽 노블이었다. 이 책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던 터라 첫장을 펼쳤는데, 작가 자신의 가족이 그려져 있었다. 동생둘과 아빠 본인 그리고 엄마가 한 장에 그려져 있는데, 엄마는 돌아가셨다고 써있었다. 벌써 눈물이 ㅠㅠ
아무튼 친구여, 잘 읽겠습니다. 계급을 뿌셔버리자!! 뿌셔뿌셔!!
자 이상 양재동 작업실에서 전해드렸습니다.
다음은 여행기로 찾아뵐게요!
라고 하지만 사실 걍 돌아다닌 얘기..
빨빨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