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이 짧든 길든 싱글로 지내본 사람들이라면 특별한 인연을 찾는 일이 가끔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제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몇 년 동안 연속해서 따분한 남자들이나 정신 나간 여자들과 연애를 하다보면 좌절하고 실망하며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반드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싱글로 지내온 피터 배커스라는 수학자는 2010년에 자신과 데이트를 할 잠재적인 여자친구의 수보다 은하계에 존재하는 지적인 외계 문명의 수가 더 많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p.15-16)
수학자이며 과학 작가이기도 한 '해나 프라이'는 자신의 책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에서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 흥분해 얘기하면서 모든 수학 공식들 안에 사랑을 대입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사랑을 이룰 확률이 더 높은지에 대해서 지극히 당연한 얘기들을 하는거다. 사실 거기엔 수학 공식까지 필요없지만-아주 많은 조건보다 그렇지 않을 때 연인을 만날 확률이 높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봐라- 해나 프라이가 좋아하는게 수학이니만큼 빗대어 설명하는 거다. 그리고 해나 프라이는 중요한 걸 짚고 넘어간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공식의 오류가 날 수 있다는 것. 그 공식에는 숫자 대신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래전 읽은 이 책을 떠올린 건,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다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건 가족이나 친구 연인같은 친밀한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나랑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다른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이 식당에, 까페에, 주유소에 일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일상이 유지되고 안전을 보장받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이 갑자기 우리에게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를 주기도 한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도 또 슬프게 하는 것도 예상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전혀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기도 하다. 세상이 나 혼자 사는게 아니라서. 나와 친밀한 사람이 혹은 낯선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반응을 해서. 상대에게도 상대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것이다' 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숱한 경험으로 알 수밖에 없다. 나는 네가 이럴줄 알았어, 나는 저 사람이 그럴 줄 알았지. 그건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당연히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식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황하다가 그 당황함이 기쁨으로 바뀌기도 하고 또 분노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자영'(전종서) 은 오래된 애인과 이별하고 젊은 육체가 외로워 남자를 구한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도 섹스하는 꿈을 꾸는 그녀의 젊음은 성적 욕망이 가득하다. 감정적으로 외롭고 육신은 섹스를 원하는 자연스런 상태에 놓여있다. 친구들이 권하든 권하지 않았든 그녀가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는 것은 그녀의 의지다. 그리고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 단순히 하룻밤을 보내거나 사랑으로 이어지거나 하는 것도 데이트앱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이루어질 확률이 당연히 높다. 상대 역시 대부분 비슷한 걸 원하고 그 앱에 가입했기 때문에, 그런 앱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방안에 앉아서 졸라 외로워 애인 원해 섹스하고 싶다,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적극적이며 실용적인 방법이다. 물론, 나는 데이트앱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사실 다른 여성들에게 딱히 권하고 싶지도 않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지만, 해나 프라이의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러니까, 2와 3을 넣으면 5가 나온다는 수학공식과 '나'와 '낯선 남자'가 만나 건강한 연애가 된다는 공식은 같지 않으니까. 특히나 데이트앱의 오류는 더 빈번할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자영은 외로워 외로워 섹스하고 싶어 섹스하고 싶어, 하면서 섹스할 남자를 데이트앱을 통해 찾게 된다. 마침 그 남자 '우리'(손석구) 도 섹스 칼럼을 써야했던 터라 섹스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그들이 섹스를 했고 그 섹스는 나쁘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다시 연락하게 되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관계가 친밀해지는 것도 당연해진다. 자영은 친한 친구들에게도 할 수 없었던 얘기를 우리에게 한다. 아직 그렇게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오히려 더 편안한 마음 같은 것이 그녀에게 있다. 구남친에게 조연 취급받고 내팽개쳐진 일에 대해 고백하던 날, 자영은 술에 취해 기절해버린 우리에게 얘길 들어주어 고맙다고 혼자 말한다. 그녀가 원하는 건 사실 단순했다. 대화를 하고 섹스도 하고. 그녀가 원하는 건 대화였다. 대화와 섹스. 그런데 그게 왜그렇게 힘든걸까?
힘들다. 그건 힘든게 맞다. 대화와 섹스, 단순해 보이는게 힘들다. 왜냐하면 그게 나 혼자 하는게 아니니까. 대화를 하기 위해서도 나와 '당신'이 필요하고 섹스를 하기 위해서도 나와 '당신' 이 필요하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서 관찰해야 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에 3이 왔으니 5가 되겠지? 천만의 말씀이다. 2에 3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나는 7인데?' 할 수도 있고, '너는 왜 네멋대로 3이라고 생각해? 나는 -1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렵다. 5를 당연히 기대하다가 어려워진다. 혹은 덧셈이라고 생각했다가 어려워진다. 내가 원하는 건 덧셈이었는데 상대는 곱셈을 바라는 3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함께 있기 때문에 대화와 섹스는 해내기 힘들다. 대화만으로도 그리고 섹스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내가 기대하는 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 네가 원하는게 5였니, 그렇다면 플러스 3이 되도록 해볼게,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그런 마음가짐은 어느 정도의 예의와 다정함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의와 다정함과 애정이 생겨나기까지는 당연하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은 그리고 대화와 섹스가 장착된 연애는 단순한 수학공식이 결코 될 수가 없다. 2 더하기 3은 5가 아닐 뿐더러, 둘의 합의하에 5라는 답을 맞추기로 했음에도 자꾸 삐걱댄다. 내가 원하는 게 그렇게 거창한거야? 대화와 섹스, 그게 그렇게 힘들어?
힘들다.
다시 말하지만 그거 힘든 거 맞다.
나에게 당신이 있으니까 그건 힘든게 맞다. 나와 당신이 합을 이루어야 하니 힘든게 맞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나인 것처럼 당신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당신이니까. 각자가 가진 그리고 각자가 이루어낸 세계가 만났는데 내 세계가 더 좋아 여기로 걸어들어와, 라고 상대에게 초대해봤자, 상대 역시 나는 내 세계가 나에게 잘 맞아, 해버리면 답이 없다. 너와 나의 세계를 합쳐서 더 좋은 세계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잭 리처도 얘기했다. 섹스는 두번째가 더 좋다고. 아, 이거 아니다.. 지금 나오면 안되는 말이야. 그렇지만 잭 리처의 두번째 섹스, 동의합니다.
자,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이 관계는 잘 진행되는듯 보였다가 어그러진다. 당연하게도 처음엔 서로의 욕망이 맞았다. 원하는게 뭐였든 이성애자 둘이서 이성을 그리고 섹스를 원해서 나왔으니 거기까진 잘 갔다. 그런데 숫자 대신 그들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감정이 끼어들었고, 우리는 그녀와의 경험을 익명이라지만 칼럼으로 써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다섯번이나 썼고 조회수가 폭발했고 보너스도 받게 되었지만, 그런데 이러면 안될것 같다. 이건 자영에게 못할짓인 것 같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간의 일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 그녀를 만나지만, 그녀가 '내일 대관람차 타러 갈까' 하는 바람에 고백을 다음날로 미룬다. 대관람차는 그의 섹스 스팟중 하나였다. 대관람차에서 섹스해보고 싶어, 라고 자영에게 말했더랬다. 꼭 굳이 대관람차에서 섹스를 하는게 아니어도 자영과 대관람차라니, 그렇다면 고백을 내일로 미루자,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이게 바로 인간의 연약한 마음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용기가 필요했던 거다. 결국, 사랑은 용기인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고백해버리면 그 다음의 즐거운 시간이 안올 수도 있으니까, 상대의 원망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이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릴지도 모르니까. 이 모든 불편한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용기인것인데, 용기란 그 단어가 주는 바로 그 느낌처럼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악물고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결코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다. 박우리는 그저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죄를 고백하는 대신, 그것을 다음날로 미루고 즐거움과 쾌락을 선택한다. 그런 후에 오는 결과는 당연하게도 비극이다. 들켜버리고 용서받지 못하고 까발려지고 손가락질 당한다. 무엇보다, 그녀를 잃었다. 나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게 만든 그녀를. 가장 큰 절망은 거기에서 온다. 일자리를 잃은것보다 그녀를 잃었다는 것. 계속 생각하게 되는 그녀를 잃었다는 것. 그녀를 잃고서 그녀를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사랑은 용기다.
잘못된 일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고 그 일을 하기를 거부하는 것도 용기고, 잘못된 일을 인지하고 고백하는 것도 용기다.
박우리가 한 일은 잘못됐다. 영화에서는 최대한 잘못을 줄이기 위해 익명으로 썼다지만, 그 글 속에 등장하는 당사자로서의 자영은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쓰여진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쁜건, 그렇게 쓰여지기 위한 도구로 취급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신이 수단이었으니까,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니까. 자영은 심지어 박우리에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구남친이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뒤에도 섹스 파트너 삼고 그러나 결혼을 다른 여자와 했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기분이 더러웠는지를. 그런데 또 한번 수단이 됐던 것이다. 네가 3인줄 알고 2인 내가 만났는데 왜 우리의 합은 -9인거야? 그리고 자영은 절망하며 말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실패의 경험은 또다른 실패를 예측하게 만드니까. 그러나 '마리 루티'가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 말했다. 사랑은 어차피 상실이라고, 언제라도 잃을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지속되는 사랑이 예외이고 상실이 일반적인 거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직물은 처음부터 상실이라는 실로 짠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사랑이 본디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언제라도 잃을 수 있음을 알기에 사랑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모두 찰나의 것들입니다. 들판의 야생화가 아름다운 것도 잠시 피었다 지기 때문입니다. (p.229)
물론, 자영이 비통한 건 사랑을 잃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사랑을 잃은 것이었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그가 했던 사랑한다는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있는데, 그런데 나는 칼럼을 위한 수단이었나? 내가 수단이 되는 순간 사랑은 손에서 빠져나간다. 수단은 사랑을 내팽개친다.
재미있는 지점은, '내가 수단이었다' 라는 사랑의 상실 역시 자영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것. 그 말은 일정 부분 참이었으되, 그러나 모두다 참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다. 아직 끝을 모르는,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이가 만나게 된 사랑. 손에 잡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자영이 끝에 고백하는 것처럼 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랑의 끝이 반드시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도 역시 참은 아닐테니까.
최근에 음담패설에 대해 생각했는데, 이 영화속에서도 음담패설이 나온다.
음담패설을 네이버 어학사전에 검색하면 '음탕하고 덕의에 벗어나는 상스러운 이야기' 라고 나온다. 음담패설은 음탕하고 덕의에 벗어나는 상스러운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야한 농담'이라고 얘기하려 한다면, 나는 그것이 '그래도 되는 사람하고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속 자영과 박우리가 나누는 야한 농담은 서로를 설레게 하고 서로를 흥분시킨다. 이건 그 둘이 이미 섹스를 튼 사이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다. 내가 야한 농담을 가장 재미있게 하고 깔깔대고 웃을 수 있었을 때는 나와 섹스를 나눈 상대가 했을 때이다. 제삼자가 들었을 때 천박할 수 있는 이야기, 어떻게 그런 더러운 얘기를 할 수 있어, 하는 것도 그와 내가 섹스를 했고 우리 사이에 그것이 어떤 뜻인줄 알고 있는 사이에서라면 우리에게 그것은 말 그대로 '농담'이다. 그러나 그렇게 친밀한 사람이 아닌 상황에서의 야한 농담은 '농담'이 될 수 없고 대부분 불쾌할 뿐이다.
일전에 여성 개그우먼의 섹스 토크를 넷플릭스에서 보다가 채 몇 분도 안돼 꺼버렸는데, 그건 아마도 그래서였던 것 같다. 제삼자의 성적 농담을 나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나는 자영과 박우리가 자꾸 웃어서 그들의 사랑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경우엔 그렇다. 나는 상대가 아무리 웃기다고 얘기해도 상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전혀 웃지 않는다. 안웃기다. 졸라 차가운 여자인 것이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웃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웃고 있다. 자영과 박우리가 만날 때마다 웃었다. 내가 잘 웃어서 상대가 내게 '나 되게 웃기지'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응 근데 너 웃겨서 웃은거 아니고 좋아서 웃은거야' 했다. 나는 좋아서 웃었다. 좋아서. 좋아서, 당신이 웃기려고 한 얘기가 웃겼다. 그런 거다.
아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나빠가지고 마그네슘도 한 알 먹고(마음 평안에 도움이 된다해서) 재미있는 거 뭐 쓸까 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과적으로 이 영화 얘기 쓰긴 했지만, 사실 2022년 기록 쓰려고 했었다. 2022년 올해의 책이나 뭐 이런거 하려다가 ㅋㅋㅋ너무 귀찮아서 안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내가 연애할 때랑 안할 때랑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게. 일단, 2022년의 기록부터 보자.
2022년에 128권의 책을 읽었다. 영어책도 더러 있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두꺼운 책도 있었다. 보통 1년에 백권 이상은 읽고 있는 것 같은데, 자, 내가 연애를 했던 2015년에는,
93권을 읽었다. 연애는 사람을 독서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 헤어졌단 말야? 그래서, 2016년에는,
115권을 읽는다. 그러다가 2016년 말부터 다시 연애를 시작해서, 2017년에는,
94권.. 이 때 충격 받았었다. 세상에 1년에 백권도 못 읽다니!!!! 이게 다 연애 때문이다. 당시에 애인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다!! 하고 버럭 했더랬다. 그리고 2017년 12월에 헤어졌는데, 이제 다신 사랑 안해~ 하고 싱글에 익숙해져버린 2020년의 나는,
146권으로 모든 칸을 꽉꽉 채우고 넘쳐나서 저거 옆으로 스크롤 하면 책이 또 계속 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약간 어떤 마음이냐면, 책 읽어야 돼서 연애 못하겠는, 그런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마음 누가 알까... 아무도 몰라. 그래서 인간은 외로운거다... 외로운 동물이야. 시방 나는 외로운 짐승이여. 이런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
자, 사랑은 용기니까 제니퍼 로페즈의 brave 듣고 가실게요.
오래전에 회사 동료가 내 뒷모습 보고 제니퍼 로페즈인줄 알았다고 한 적 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