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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ㅣ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무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게 된다는 건 사실이다. 안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많은 책이나 영화에서 그리고 실생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두려워하면서도 기어코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난 니가 뭔지 몰라 무서워, 넌 뭐니? 그러다 쥐라는 작은 동물이든가 고양이라든가 하는 걸 발견할 때면, 아 그렇게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물론 공포영화에서는 그렇게 안도하고 돌아서는 장면에서 도끼살인마가 나오고 막 그러지만.. 흠흠.
나는 죽음이 두렵다. 몇번이나 언급했지만 죽음이 두렵다. 죽음이 내게 찾아올 것이 두렵고,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 뒤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이 두렵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맨 그 마음을 나는 알겠다. 죽기 싫다. 죽기 싫고 이 세상을 영원히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노라면 간혹 친구들이 "늙지 않고 아프지 않다면 괜찮겠지만 늙어가고 아파서 거동도 힘들면 그렇게 사는 건 더 힘들것 같지 않아?" 라고 내게 묻곤 한다. 물론 내가 영원히 살고싶다고 말할 때에는 지금 모습 그대로,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늙고 병이 드는, 약해지는 자연스런 현상이 찾아온다 해도 나는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고 그 세상을 변하게 하고 혹은 유지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고 관계를 맺고 싶다.
죽음이 두려운 것을 내가 '극복'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두려움을 끌어안고 가야할텐데, 뭔지도 모르는채로 끌어안고 가는것보다는 아는게 낫지 않을까. 안다면 두려움을 좀 가볍게 만들면서 혹은 다독여가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죽음에 대한 책을 가끔 찾아 읽는다.
이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에서도 언급된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2013년에 읽었는데, 역시나 읽은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죽고난 후에는 나의 존재 없음에 대한 걸 내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나는 밤에 자려고 누워서 죽음이 찾아올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내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내게 속삭인다. 괜찮아, 어차피 죽고 나면 나는 내가 죽었다는 것도 몰라.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p.306
유성호 교수는 일전에 채널을 돌리다 <유퀴즈>에서 보게 됐다. 오, 저런 교수님의 책을 읽고싶네,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미 사두었더라 ㅋㅋㅋㅋ 역시 준비성 철저한 퍼펙트 우먼 되시겠다. 유성호 교수는 서울대에서 죽음에 대한 교양 강의를 한다셨는데, 책을 끝내면서는 더 듣고 싶다면 서울대에 입학해서 강의를 들으라 하신다. 교수님.. 그 농담 너무 쎄요..
법의학자가 하는 일에 대해 유성호 교수는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주체적인 죽음'이다. 내가 내 죽음에 주체적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당연히 삶과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죽음을 접하게 되지만, 예전에는 생명의 빛이 사라져가는 걸 누군가가 지켜보고 그래서 임종의 자리에 가족들을 불러 이별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죽음 역시도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마땅할 것이겠다. 죽음이 늘 두려워 주체적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결국 죽음이 내 삶의 종착지인만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주체적으로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숱한 자살시도와 또 안락사 등에 대한 일화들을 이야기하면서 죽고 싶었으나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는 것이다.
자살에 대해서 지면을 꽤 할애하는데(자살하지 말라고!!), 자살하는데 술의 영향에 대해서도 말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그리고 마시지 않는 사람도,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 경우를 알고 있고 보아왔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왜 개가 되냐, 그것이 술이 한 일이냐. 그것은 그 술을 마신 '내가' 한 일이라는 걸 모두 알 것이다. 개였던 사람이 꾹꾹 눌렀던 자기의 개성질이 술을 마시면 억누르지 못하고 발현되어 버린다. 유승호 교수는 알코올이 '억제를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억제하고 살다가 알콜을 흡수하는 순간 그 억제를 놓아버린다는 것. 그렇다는 것은 평소에 그것을 억제했다는 것이고 그런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범죄가 그 안에 있었다는 것. 자살 역시 마찬가지. 억제를 억제하는 알코올로 인해 우울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가 놓아버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자살을 하는데, 그러므로 우울한 사람에게 술이 치명적이라고 유승호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주로 술을 마신다. 예를 들어 실연당했을 때 "야 너, 실연당했다며? 술 한 잔 먹고 잊어버려" 라고 한다. 물론 정서적 취약 계층이 아닌 사람으로 건전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상태라면 술 한 잔으로우울한 느낌을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 사회적인 어려움이 있어 우울감이 심각한 사람에게 알코올이 주어지면 그 자체로 문제가 매우심각해진다.
실제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자살자의 상당수가 자살 직전 높은 알코올 수치를 기록했고 알코올이 깰 때쯤 자살을시도했다. 자살한 유명 연예인들 모두가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알코올 수치를 보였는데, 실제 음주 농도가 0.1퍼센트의 만취한 상태에서 자살이 일어난 경우도 여러 건이었다.
물론 단순하게 알코올을 자살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알코올이 자살을 생각해왔던 사람에게 실행력을 높이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쁠 때 술 한 잔 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알코올을 섭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주 만나는 친구 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이는 상대에게는 절대 술을 권하면안 된다. 알코올이란 분명 장점에 비해 단점이 많은 물질인것을 명심해야 한다. (p.183-184)
이십대 중반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내게 우울할 때는 술마시지마,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훌쩍 많았던 그의 그 말이 그런데 잔소리로 들리지 않고 그 당시에 오케이, 하며 듣는 말이 되었는데,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내게 퍽 유용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번 잘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심하게 우울한 날에 술생각이 난다면, '오늘 너무 우울하니까 술 마시지 말고 내일 마시자'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연애에서 그는 그것 말고도 여러 가르침을 주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이 가르침이 제일 좋았다. 나는 그로부터, 그 연애로부터 우울할 때는 술을 마시지 말자는 것을 배웠다. 모든 연애에서는 지나고나면 하나라도 꼭 배울 게 있다. 하다못해 '이런 놈은 절대 만나지말고 피하자' 라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울할 때 술마시지 마세요. 기쁠 때 마셔!!
각설하고,
나의 주체적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결국은 그것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강의를 나도 듣고 싶다.. 라고 생각하다가, 그런데 나는 뜻밖에,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맙소사,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어떤 질병에 의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급속도로 삶이 무너져 사망에 이르렀던 반면 이제는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에 걸렸다 해도 완치율이나 생존율 또한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게다가 뒤에서 다시 살피겠지만,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을 멀리하고자하는 사회 풍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음을 방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생을 잠시 보류한다면 어쨌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미리미리 죽음이라는 것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두자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끝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반복하는 것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본인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 학창 시절에 다들 시험을 치러봤을 텐데 시험 보기 하루 전날에 공부하면 성적이 잘 안 나오지 않던가. 조금이라도 일찍 공부를 시작하면 성적이 잘 나오는 경험을 다들 해봤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재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지금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2045년 이후에는 혹여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죽음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처럼 찬란한 칭송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토록 찬란한 내 삶의 모험 같은스토리, 그 마지막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도 지금건강할 때 조금은 치밀하게 계획해두는 것이 찬란한 삶을 끝까지 빛나게 하는 방법이지 않나 싶다. (p.240-241)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네?? 뭐라고요???
아, 내가 이러려고 이 책을 읽었구나. 이 구절을 보기 위해 이 책을 읽었어. 신은 나를 사랑하셔 나를 두렵게 하지 않으시려고 이 책을 읽게 하셨다. 앞으로 23년, 23년만 건강하게 살아가다보면 영생을.. 누릴 수도 있는거야. 할렐루야! 영생의 가능성이라니. 만세! 나는 영생하면서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래야 영생을 누리는동안 지적인 여성으로 우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지.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과학의 발달, 컴온! 나는 영생으로 간다...
(어쩐지 사이비종교 같은 끝맺음이 되어버렸군.)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P142
그런데 과연 죽음을 원한 환자들이 모두 그 죽음의 버튼을 눌렀을까? 그렇지 않았다. 신청자의 60퍼센트만 누르고, 40퍼센트의 누르지 않았다. 말로는 번복하지 않고 죽음의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죽음을 시행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 P163
그들은 모두 말한다.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해서 실제로 실행했는데,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순간에는 모두 다 자기 판단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다들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중학교 1학년 때 시험을 망친 후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그 나이에도 잘 못 본 시험은 엄청난 시련으로 느껴졌고 내가 세상을 떠나면 그 시련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이정도 수준에서 그러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실행이 되는 것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 P175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소속감이 있다면, 가족의 일원, 회사의 일원, 어느 공동체의 일원으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는죽음에 대한 관념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 P175
앞서 통계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는 자살의 증가 추세가 유독 가파른 나라다. 그래서 죽음 하면 우선적으로 자살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셸리 케이건 교수가 충분히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자살도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실제로 충분한 숙고 끝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해서 자살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가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구출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빼고는요.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였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 P174
알코올 또한 자살과 상관관계가 있다. 실제로 알코올 접근성이 높은 나라는 자살률 또한 높다. 동유럽 국가들 중에는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있다. 최근 OECD통계에서 우리나라를 제치고 자살률 1위를 차지한 리투아니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곳에 가보면 경제도 굉장히 침체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알코올을 상당히 많이 섭취하는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알코올 접근성이 꽤 높은 나라에 속한다. 또한 모든 음주 사고에 대해 외국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편으로, 알코올에 대해서 굉장히 너그러운 나라에 속한다. - P181
이러한 노인 자살자는 대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인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가족과의 소통이 없었던 경우다. 가족과오랜 기간 연락이 없었던 이러한 경우는 사후에도 가족을찾기가 쉽지 않다. 자식들이 멀쩡히 있는데도 말이다. 노인자살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는 자식이 많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자식이 많으면 적어도 그중 하나의 자식과는 정서적 교류가 분명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노년의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친구가 가장 필요한데, 한국 남자들에게친구가 없다는 것도 자살 증가의 큰 이유다. 헌신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지만 퇴직하면 직장에서 알았던 사람들과는어울리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보니 노인 자살에서 남성 자살이 3.5배나 많은 것이다. - P185
그렇기에 노인 자살은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라고도 할수 있다. 본인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투자하고 결국 스스로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여성의 자살률 또한 상당히 높다. 어떤 사람들은우리 사회의 자살 증가를 내적 가치관의 부재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는데 일부분 맞는 말이기는 하다.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삶을 지탱해줄 내적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사실상정신과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모든 자살의 원인은 정신 질환 때문인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사회가 산업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정신 질환이 증가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정신 질환만으로 모든 자살을 해석할 수는 없다. 왜 유달리 노인층과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높은지를 정신 질환이라는 기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 P186
한번 자살 제지를 받은 사람 중 67퍼센트는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평균 수명을 다했다. 누군가의 자살 시도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생각해온 결심의 표출이지만 막상 그날 누군가의중재로 당신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진심으로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죽음이 아닌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살 장소로 유명했던 마포대교에 자살 방지 캠페인을 벌여 자살률을 많이 줄인 것으로알고 있다. 삶의 소중함에 대한 글귀도 붙여놓아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게 하고 경찰도 수시로 순찰하면서 자살자를 방지하고 있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 굉장히 훌륭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 P191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 사고는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우선 자살을 오래도록 계획한 후에 자살 시도를하게 되기에 중간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그리고 사회적 안전망까지 잠재적 자살자에 대한 우리의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국가적으로도 자살 방지 정책을 시행하는 데 일정 정도의 예산을 들이는 것을 당연시해야 한다. - P192
결코 자살은 자기 통제 수단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정서적감정, 사회로부터 소속감이 없어지는 기분, 자포자기와 체념 및 절망 등의 정서 문제에 의해서 발생한다. 혹시나 지금 죽음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들이있다면 자신의 정서 문제가 치료를 통해 회복될수 있으며, 결코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주기를 바란다. 정서 문제는 신체의 질병, 예컨대 감기 등과같이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지지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 P202
내가 중환자실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죽음에 대한대화가 단절됨으로써 오는 가족 간의 비극,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특히 죽음을 앞둔 환자가 부모님이라면 어떤 자식이라도 대부분, "우리 부모님 꼭 살려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고생 많으셨던 부모님이라서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원한 경우 대개 말기암 환자이다. 사실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두고 대화하지 않는다. - P225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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