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오늘밤 자고 일어나면 12월 20 일이라니. 나 <여성과 광기> 아직 백쪽밖에 안읽었는데 아 미치겠다..
여튼 열흘 밖에 안남았으므로 올해의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쓰기로 한다. 진작 쓰려고 했는데 이건 왜 자꾸 미루게 되는지. 아마도 남은 기간 동안 더 나은 책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때문이었는가 보다. 그리고 에세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 생각이 맞았다.
올해의 소설: 필립 로스, <네메시스>
올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읽었고 또 인상적인 소설도 있었지만, 올해의 소설로는 신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해준 네메시스 를 정했다. 필립 로스는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물었을 때 바로 말하게 되는 작가는 아니고 여러면에서 아쉬움이 생기는 작가인데, 글은 너무나 천재적으로 쓰면서 지독하게 남성적인 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서 좀 징그러워.. 이 책, <네메시스>도 남성적인 소설이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적인 냄새가 엄청 나는 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올해의 소설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9월에 읽었는데, 이 책을 읽은 9월, 와 이 책이 올해의 소설이다 이건 변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읽고나서 바로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이 소설속 등장인물은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바르게 자라왔고 바르게 살고자 한다. 건강하게 살고 싶고 누구에게나 떳떳하고 싶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고 약자를 혐오하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는 걸 믿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존경하는 어른이 있고 또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그런 그가 전염병에 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도 한다. 이토록이나 확고하게 바르게 살겠다는 신념이 대단하고 그걸 지켜온 고지식한 사람에게 '내가 이들에게 전염병을 옮겼다', '내가 이곳에 이 병을 가져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병으로 인해 고통받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인상깊게 읽은 건 읽는 내내 소설속 주인공이 전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가 가진 신념과 그 신념을 굳건하게 잡고 앞을 보고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고지식한 면이 내것과 꼭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불구의 몸이 된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왔지만 불구의 몸이 되고, 그에게는 자신의 신체할동이 삶의 기쁨이고 에너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너진다. 누구보다 바르게 살고자 했고 또 선하게 살고자 했는데, 아무도 혐오하지 않으면서 살고자 했는데 고통속에 빠져버린거다. 그 부분에서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는것이 잘못인가? 남들이 피할 때 피하고 남들이 혐오할 때 같이 혐오했다면 그렇다면 내 몸 하나 건강하게 내 삶을 사랑하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거다. '옳게', '바르게', '맞게' 살고자 했는데 그런데 그 모든게 나를 고통에 빠져들게 한다면?
이 신념에 대한 생각은 이 책을 읽은 이후로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어서 이 책은 내게 올해의 소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필립 로스 이 교활한 영감은 이 소설의 말미, 그의 신체가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때를 묘사한다. 정말이지 지독하게 똑똑한 작품이고 나는 여전히, 아직도 이 책의 신념과 고지식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신념과 고지식함을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나는 이대로 좋은가,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옳다고 믿는 것이 과연 좋은길로 향하기만 하는것인가.
올해의 에세이: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공교롭게도 소설도 에세이도 다 노란색 표지네. 노란색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그렇게 되었다. 어떤 일은 내가 예상하지 못햇던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올해의 책을 써야지 마음 먹으면서도 에세이를 등장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건 내가 에세이란 장르를 딱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시인이 쓴 에세이는 너무 질색팔색하고, 에세이 읽으면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굳이 찾게 되는 책, 굳이 읽겠다고 마음 먹은 책들 중에 에세에의 비율은 극히 적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연달아 '아 좋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에세이 역시 어제 리뷰를 올렸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이나 감상도 그렇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이 정말 끝내주는거다. 이것이 시리즈중 두번째 책이라길래 어제 냉큼 첫번째도 주문햇고, 게다가 어제 감동받았던 여러문장들이 도대체 원서에서는 어떻게 표현됐나 궁금해져서 좀전에 원서도 주문했다. 네.. 나란 여자... 왜이렇게 사들이는데 진심인지 모르겠다.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읽고 쓰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읽고 쓰는 일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데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내가 잘 하지 않는 일이고 그럴 일도 별로 없지만 혹여라도 이런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다면 몹시 괴롭다. 나는 삶에 있어서 항상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 역시 다들 답을 찾고자 노력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살다보니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답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답을 누가 대신 찾아줬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나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답을 누가 좀 찾아줬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다. 내 삶의 방식과 다른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들과 가까워지고싶지 않고 혹여라도 나에게 다가올라치면 밀어내기 바쁘다. 나는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좋고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어코 답을 찾아낸다고 믿는다. 문제가 있다면 답을 찾아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원망하는 건 해결하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누가 그랬어?' 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결하면될까'가 먼저 나오는 사람이 좋다.
나는 호기심이 풍부한 사람, 관심을 갖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 좋다. 하나의 사건을 그저 사건으로 보기 이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좋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 그런것들을 키우는데 최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데버라 리비의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데버라 리비가 읽고 쓰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데버라 리비가 이 에세이를 통해 본인의 관찰과 본인의 삶에 대한 회고와 반성,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를 들려주어서 고마웠다.
올해의 여성주의 책: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이 책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의 도서였다. 밑줄을 긋고 플래그 덕지덕지 붙인 건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더했지만, 또 제2의 성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햇지만, 제2의 성이 그렇다는 건 사실 2년전에도 이미 읽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이 책은 읽으면서 실로 놀라웠다. 가사노동에 대한 것이라는 것만 대략 알고 시작했는데 가사노동에 대한 투쟁이어서 놀랐고 마지막엔 토지와 함께 살기, 그리고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서 놀랐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한 관심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을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행동이 이 책안에 있었다. 이런 내용을 만날 줄 몰랐다가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그래서 좋았다. 책은 읽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기대한 것과 어느만큼 어긋날지 혹은 어느만큼 더 좋을지 알 수 없는데 <페미니즘의 투쟁>은 내가 생각한것보다 더 힘찬 책이었다.
<여성과 광기>를 아직 완독하지 못해 어쩔수없이 떨어진 건 유감이다. 미안...
올해의 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OLIVE, AGAIN>
올해 친구들과 영어 원서 읽기를 시작하면서 완독한 책은 네 권이고 지금 다섯권째의 책을 읽는 중인데 이 다섯번째 책-오바마 자서전-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불태워버리고 싶다. 오죽하면 내가 친구들에게 한 주 쉬자고 말했다. 읽어도 읽어도 분량이 줄어들질 않고 게다가 오바마는 말이 진짜 너무 많아가지고 대통령 되기까지도 한참 걸렸고 장관 뽑는데도 내가 이 사람을 왜 선택했는지 도 구구절절 설명해놔서 진짜 읽기 너무 싫다. 그래서 포기하고 다른책을 읽고 싶은데,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 오바마 자서전 읽기는 다시 도전하지 못할것 같아서 망설이게 된다. 이대로 끝일 것 같아. 그런데 너무 재미없어서 의미가 없어. 친구들에게 중간점검으로 너희들은 어때? 물어보니 다들 나처럼 반반 인거라. 완독하고 싶은데 다른책으로 갈아타고 싶고 그렇다고 지금 멈추면 오바마를 다시 만날 것 같지 않고.. 그래서 내가 한 주 쉬자고 했다. 그냥 영원히 오바마 쉬고 싶다.. 하아- 어쩌면 그게 너무 어려워서인지 그보다 쉬워보이는 원서를 미친듯이 주문하고 있다. 나여... 오바마 책에 대한 스트레스... 이번 주말에 책에 돈을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썼다. 나여..
각설하고,
브리저튼 시리즈 1,2 권과 샐리 루니의 책을 읽었고 그리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 책, <올리브, 어게인>을 읽었다. 나는 모두 다 번역본과 함께 읽고 있는데, 그래야만 완독이 가능해지는 나는 영어 초보자..
브리저튼 시리즈는 재미잇지만 시대배경이 1800년대이니만큼 낯선 영어 단어가 겁나 많이 튀어나온다. 공작 자작 뭐 이런거.. 샐리 루니는 이 네권의 원서중에 가장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되게 문장이 쉽다는 거다. 그래서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을 도전해보고 싶다. 번역본 팔았는데 다시 사야되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야 내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고 또 <다시,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고 또 말하고 있는데, 그건 어쩌면 원서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본으로도 분명 좋게 읽었지만 천천히 느리게 원서를 읽는데, 와, 이건 진짜 놀라운 경험이었다. 번역본에서 울지 않던 부분인데 원서에서는 내가 울고 있는거다. 아, 이게 바로 '원서'라는거구나. 원서를 읽는 건 이런거구나를 가장 크게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물론 브리저튼도 울었다 ㅋㅋ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진다 ㅋㅋ)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문장들이 때로는 간결한데도 그 안에 묵직한 감정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원서로 읽기에 너무 좋은 작가인것 같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좋은 이유중에 가장 큰 건, 그녀가 자신이 쓴 인물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책속 등장인물이 나쁜짓을 하거나 혹은 선한 행동을 하거나 하는 일들에 대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자신의 감정을 얹는게 아니라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살고 잇어'라고 담담히 기술해주는 거다. 거기에는 범죄자의 삶이 있고 노년의 삶이 있고 다정한 삶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감정을 품는 건 오롯이 작가의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인 거다. 나는 그 지점들이 진짜 너무 좋다. 등장인물들의 변명을 해주려 하지 않아서. 이 인물들의 이 삶에 대해서는 읽는 니가 알아서 생각해라, 하는 것이 나는 너무 좋다. 그 지점이 너무 존경스럽다.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된다면 나 역시 그런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나같은 쪼렙은 내가 그리는 등장인물에 거리두기... 안될거야.
올해의 관심: 장 지글러
반다나 시바를 만났을 때도 그랬는데 장 지글러를 만나고나서도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지금 나는 여러단체에 후원금을 정기적으로 내고 있는데, 돈으로 후원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쉬운 일이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보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그렇지만 돈 보다 더한 어떤 것을 주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이 세상을 그리고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은 나의 몇푼 돈보다는 직접적 행동이 아닐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거다. 이대로 괜찮을까,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에 대해 생각하게 된게 작년에는 반다나 시바 때문이었다면 올해는 장 지글러의 영향이다.
올해의 문제: 키오스크와 영어
어쩔 수 없이 맥도날드에 가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할 일이 생긴다. 내가 만나본 키오스크 중 가장 똥같은 키오스크가 맥도날드다. 어쨌든 주문을 마치고 나면서 늘 드는 생각은 '도대체 노인들은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것이다. 나 조차도 이걸 이해하는데 그리고 주문에 이르는데 한참 걸리는데, 우리 엄마는 여기와서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을까? 이런게 너무 화가 난다. 일전에도 케이에프씨에 치킨 먹으러 갔는데, 내 또래의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와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거다. 나는 옆에서 뭘 원하는지 물어가며 대신 주문을 해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다. 맥도날드에서는 어떤 할아버지가 헤매길래 도와드렸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받지 못했다. 나는 이런게 너무 화가 난다. 우리 엄마가 행버거를 먹고 싶으면 먹을수가 없다는게 화가 난다. 내가 집에 와서 이런거 화내면 엄마 아빠는 '우리는 니가 사줘야 먹는거지' 하는데, 나는 그게 화가 난다. 왜, 왜 내가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기대야 하는가. 너무 빡치지 않나. 지금 대한민국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리고 내 나이 또래의 중년들이 그러고 있을까봐 화가 난다. 왜 키오스크를 더 쉽게 만들지 않지?
얼마전에는 엄마와 걷다가 <hair salon> 이라고만 써진 간판을 보았다. 한글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엄마, 저 간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엄마는 모른다고 했다. 엄마, 미장원이야 머리하는데. 하고 또 한참 분통을 터뜨렷다. 왜 한국에서 미장원이나 미용실이라고 안쓰고 저따위로 써놓은거지? 읽을 수 있는 사람만 머리 하러 들어오라는건가? 이거 읽지 못하는 사람 안들어와도 상관없다는건가? 나는 이런게 너무 화가 난다.
기계를 쉽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소외되는 세상이 되는 걸 도대체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세상이 바뀌니까 어쨌든 당신들이 따라오쇼, 하는건 답이 아니지않나. 좆같은 세상이라고 복잡한 키오스크와 영어로만 쓰여진 간판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똥같은 세상..
올해의 인물: 크리스토퍼
코로나만 끝나봐라. 덴마크 간다.
크리스토퍼, 나랑 소울메이트 하자.
나는 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소울메이트를 하고 싶을까...... 헤어지기 싫어서 그래.........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지난주에는 연말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친구들이 책을 선물해줬고, 그리고 내가 나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다.그래서 책이 이만큼이나 와버렸다. 깔깔. 깨알같이 굿즈도 ...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위의 책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이고 이거 받아놓고 어제 오늘 또 주문했다. 그것들은 연말 선물 되시겠다. 12월에 이래저래 여러가지로 마음고생 했으니까 위로가 필요하다. 나를 위로해주는 건 누구? 나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