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부터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다. 몸도 정신도 엉망이었는데 몸이 안좋아서 영혼도 안좋은건지 영혼이 안좋아서 몸이 안좋은건지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너무 엉망이었다. 그런데다 읽는 샐리 루니의 책은 정말 짜증스러웠다. 사실 샐리 루니라는 젊은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고 그 지점이 나는 너무 좋다. 이 책에서는 '억압적인 백인 남성'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지금의 젊은 여성작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책 속에 넣는단 말인가. 게다가 나이든 여성이 결혼을 빨리하라고 조언했을 때 책 속 등장인물 '보비'는 '전 게이에요' 라고 바로 말한다. 이런 지점도 무척 좋다.
일부일처제가 부조리하다고 보비는 주장하며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 친구와 논쟁하는데, 유부남과 불륜관계에 있는 프랜시스 역시 당연하게도 보비의 편을 든다. 나 역시 결혼 제도라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바,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게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프랜시스가 연애중인 유부남이 자신의 아내와도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고백했을 때 너무 화가나는 프랜시스 읽으면서, 좀 짜증스러운거다. 인간이란 무릇 모순된 존재인것을.. 네가 아내를 두고 나와 바람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랑 아내가 섹스하는 건 화가 나, 나는 일부일처제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나랑도 자고 아내랑도 자는 거 짜증나.. 이러는 거... 나였어도 당연히 겪었을 감정이지만 사실 나는 프랜시스에게 이입을 잘 못하겠다. 나 자신을 자꾸 바닥으로 내팽개치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게 분명해, 라고 자꾸만 생각하게 만드는 연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나로서는 좀 스트레스다. 여하튼 이번주면 이 책은 끝난다.
사실 가장 짜증스러운 건 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나였다. 그러니까 원서를 지금까지 읽어오면서(이번이 네 번째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단어 외우는 게 세상 쉬웠는데 최근엔 단어 외우는게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르는 단어를 마주하면 찾아보기도 하고 귀찮으면 그냥 넘기기도 하는데, 자주 나오는 단어라면 알아두는 게 나을 터. 그러면 찾아보고 그 단어의 뜻을 책에 써둔다. 그렇다면 다음에 그 단어를 다시 만났을 때 당연히 뽝- 그 뜻이 떠올라야 할텐데 그게 안되는거다. 하아- 계속 이러했지만 지난 주말은 내가 컨디션이 안좋은 탓인지 너무 짜증이나서 미쳐버리겠는거다. 내가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거야. 분명 지난번에 몰라서 찾은 단어라는 것은 기억나는데, 그런데 그 단어의 뜻은 기억나지 않는 거다. 이런 일이 지금까지 네번째 원서를 읽으면서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지난 주말에는 뭔가 견딜 수 없을만큼 화가 나고 짜증스럽고 다 집어던져버리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하아- 한숨을 쉬었더니 거실에서 콘샐러드 드시던 엄마가 "왜, 안외워져?" 하셨다.
"응, 찾은 단언데 기억이 안나네."
이러면서 좌절하다가 또 그 다음 문장을 읽는데 번역서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해석이 너무 안되는거다.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또 이렇게 덧붙이면서 도대체 이걸 읽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실력 향상이 1도 안되는 것 같은데.. 하면서 짜증이 나버려가지고 책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태우진 않았다. 귀찮아... 에휴.....
아무튼 토요일에는 점심 먹고 재난지원금으로 책을 사러 나갔다. 나가기 전, 에밀 졸라를 살 계획인데 혹시 에밀 졸라 내가 모르게 사둔거 있나 싶어 책장 앞에 섰다가, 아,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아니, 문동 전집에 죄와 벌.. 니가 거기 왜있어? 내가 널 샀어? 나는 대혼란에 어쩔줄을 모르겠다.
얼마전에 친애하는 알라디너 님의 서재에서 문학동네 죄와벌 백자평을 보고 내가 분명히 거기에도 댓글을 달았다. 열린책들 죄와벌로 이십대에 읽었는데 문동으로 사서 다시 읽어야될지 갈등된다, 라고. 게다가 며칠전 내 페이퍼에도 내가 친히 문학동네의 죄와벌을 링크하며 나 열린책들 것으로 가지고 있는데 문동 사고 싶다 어쩌지.. 하는 댓글을 달았던 거다. 그러다가 재난지원금이 들어와 이걸로 책사겠다! 하면서 사고자 하는 책들의 목록을 적어두었는데, 거기에 문학동네의 죄와벌이 당당히 이름을 올려두었던 터다. 그런데 서점에 가기 전 확인해보니, 아니, 문학동네 죄와벌이 있는거에요... 돌아버리겠네. 나는 너무나 미칠것 같은 심정이 되어서 대체 너를 내가 언제 샀냐, 기억이 1도 안난다... 하게 되는 것이다. 휴.. 그래도 확인해서 다시 사지 않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내가 내 책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죄와벌 사 들고 왔을 것이고, 문학동네 전집 있는데에 꽂다가 아니 쉬벌 이거 뭣이여??? 했을테니까.
나여, 잘했어..
그리고 나는 보았네, 내 책장에서, 에밀 졸라를... 응??
인간 짐승..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거야????????????????????????????????? 세상에.... 나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것인가..
아무튼 내게 있는 죄와벌과 졸라를 확인한 뒤 서점으로 갔다.
아아, 그러나 슬프게도 제법 큰 서점이었는데도 내가 찾는 책들의 대부분이 없었다. 에밀 졸라의 책들중 내가 사고 싶은 건 없었고 내가 가진 것들만 있었다. 그밖에 목록 적어간 것들중에 있는게 별로 없어, 하는 수없이 그동안 사려고 생각해왔던 것들중에 그 서점에 있는 것들만 골라 가지고 왔다. 백팩에 넣고 오느라 진짜 넘나 힘들었지만..
찾는 책들이 없어서 그렇다면 필립 로스 살까, 검색했더니 다른건 다 없으면서 세상에 필립 로스의 《사실들》이 있는거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얼른 빼가지고 왔다. 《스토너》는 예전에 친구가 커피였나 뭔가 쏟은 책을 줘서 그걸로 읽었었는데 좋아서 늘 '다시 사야지' 하던 참이었지만 '다시' 이기 때문에 늘 뒤로 미뤄졌는데, 그래 이번참에 사자, 하고는 충동적으로 뽑아들었다. 《파친코》는 예전부터 사야지, 읽어봐야지 했지만 역시나 늘 뒤로 미뤄졌던 책이다. 그런데 이 서점에서 너무 눈에 딱 띄길래 빼들었다. 맨스필드 파크 생각보다 두껍네요... 네.....
아무튼 이거 들고 와서 너무 피곤했어..
그리고 서재방 저기 한구석에 두었는데, 늘 이걸 어떡하나 정리가 안돼 어떡하나 부끄럽기 짝이 없었는데, 며칠전 공쟝쟝님이 올리신 페이퍼 를 보고 아직 괜찮다고 안심하게 되었다. 그 페이퍼는 조르주 뒤메질에 대한 것이었다. ☞ https://blog.aladin.co.kr/jyang0202/12967775
뒤메질 책상 보고나니 뭐 나 따위, 더해도 되겠는데? 난 고작 이정도거든.
나는 아마도 한동안 더 책을 사도 되겠지만, 뒤메질에 비하면야 한참 더 사도 되겠지만, 그런데 저 책들 대부분이 읽지 않은 거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좀 그만 사고 이제 읽어야겠다.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재난 지원금 좀 남아있지롱? 그건 책 사는거 말고 다른데 써야겠다. 요긴하게.... 배부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