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문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04
김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평점 :
이 시집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크다.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화두는 우리가 얼마나 독재적인 주체로서 이해하려 드는가였다. 혹은 끌려가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서도.
해설을 한 남승원 평론가가 이 시집을 읽고 당혹했을 독자들에게 풀이를 꽤 잘해 줬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인식 구조의 생성을 저지”(p131) 하려는 문장들에 대해서. 발화자의 권위를 내려놓은(‘서정적 주체의 죽음’(p135)) 시가 질문과 대답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펼쳐놓아 수평적 의미 찾기가 되는 시 읽기에 대해서. 승부가 도저히 날 거 같지 않은 시적 정황 속에서 구조가 아니라 해체로서 의미를 만끽하는 자유에 대해서. 정해진 의미도 의지도 없으므로 ‘이성적 조직화’(p143)가 아니라 ‘감정의 생기’(p143)와 ‘정념’(p144)을 되살려보는 일에 대해서.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며 계속 유쾌했다. 제목과 내용이 그것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가져오는데 다 읽고 나면 그걸 무화 시켜버리는 반전 때문에 흥미가 꺼지지 않았다.
「결정」에서는 ‘못’, ‘안’, ‘오래’, ‘자주’, ‘번번이’, ‘한사코’, ‘어서’, ‘깊이’ 같이 우리가 결정을 할 때 주로 쓰는 수식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결정했다거나 결정됐다가 아니라 ‘결정하고 있다’는 미완의 혹은 계속 진행 중인 상태로 끝이 난다. 그 끝은 첫 문장 “나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로 되돌아간다.
「균열」에서는 ‘계속해서’, ‘더 가늘고’, ‘희박한’, ‘압박하는’, ‘미루면서 더 미루어 있는’, ‘공활하게 올라가는’, ‘더 가늘면서 퍼지고 있고’ 같은 표현으로 균열을 묘사하고 있지만 발화의 핵심은 “안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순간’의 속성처럼 ‘균열’도 계속될 것이다.
「그 생각」도 아주 재밌는 병치들이 재미를 준다. 생각은 알다시피 불안처럼 막을 수 없다. 이 시에서 육체는 ‘벌벌 떨고 있는 손과 발과 귀', ‘꿈적도 하지 않는 발바닥’으로 꼼짝 못하고 있다. 생각이 자유자재로 녹아 이 신체들은 반응하기 바쁘고 ‘어떤 말이 와서 꽝 하고 닫히는’ 것도 감당 못하는 가련한 상태다.
김언 시인의 시는 은유와 환유를 넘나들며 상황극을 보여주는 게 정말 재밌다.
「북방의 말」에서는 “점점 추워지는 말을 익히고 있다. 익혀서 먹는 말을 배우고 있다”처럼 말(言)이 먹는 대상이자 배우는 대상이 된다. ‘살아남을까?-들려줄까?’, ‘굳어버린-녹여 먹는’, ‘올라가서 싹을 틔울-흩어지듯이 내려오는’, ‘부러지거나 똑바로 서 있는’도 유사한 성격과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동강나기 쉬운 무기’와 같은 역설처럼 유지하기 어려운 말을 이토록 내뱉고 있음에도 우리는 늘 굶주려 있고 참고 있는 상태다.
극도로 배고픈 말이 참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나와 이것」 , 「당신과 그것」, 「그것 없이도」, 「나와 저것」 시들이 될 텐데 이 대명사들이 사물인지 대상인지 상태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 속에서 살아서 작동하고 있으며 ‘나’나 ‘당신’이나 ‘모두’를 두루 설명해주고 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어리둥절한 채 따라가게 된다. 이해할 수 없거나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읽기를 이해하기를 멈추고 나가버릴 수도 있다. 즉 공통의 이해는 없다는 소리다.
“나와 이것은 둘이지만 그 둘을 각각 지시하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나와 이것은 잘 알고 있다. 서로가 나와 이것을 이해하고 있다. 각자가 나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나와 이것은 더 이상 나와 이것이 될 수 없다. 나와 이것은 함께 다닌다.”
ㅡ 「나와 이것」 중에서
1부가 인간의 고질적인 어떤 상태들을 보여준다면, 2부는 그 근원을 추적하는 고찰, 3부는 그것들이 만나는 관계들(「고용」, 「친구」, 「가족」, 자화상같이 그려진 ‘물 한 잔’에 대한 연작시), 4부에서는 불가능-끝없는 지속-불가지(不可知)에 대한 총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문제가 되는 곳은 문제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완벽한 천체에 봉사하는 시녀가 되기에 충분했으므로 후대를 위해 그들이 남겨놓은 것은 불필요한 논쟁과 질문뿐이었다. 가령, 강철보다 단단한 밤하늘을 별은 어떻게 운행하는가? 안개를 걷어차면서 전진하는 인간의 발걸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 원리를 빛이 대답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허점과 동격인 먼지투성이 별이 스스로 밝혀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 모든 일들이ㅡ천국과 지옥의 운행까지 포함하여ㅡ한 두개골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누가 대신 밝혀줄 것이 아니었다. 그 또한 한 두개골의 캄캄하고 물렁한 내부에서 밝혀져야 할 사실이었다.”
ㅡ 「강철보다 단단한 밤하늘을 별은 어떻게 운행하는가?」 중에서
"말하고 싶었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말할 틈을 놓쳤거나 말할 자신을 잃었거나 말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그 말을 그는 알까?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았는지 모를 것이다.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면서 어떤 말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는 내가 어떤 말을 밀쳐두고 어떤 말을 대신 하면서 참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말했겠지. 그게 무어냐고 묻기라도 했겠지. 묻는 것을 참기라도 했겠지. 그는 정말 모른다. 내가 어떤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지를. 나도 모른다. 그가 하지 않고 남겨둔 말을."
ㅡ「하지 못한 말」중에서
자, 묻고 싶다. 당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많은 것들을 끌어와 제시하는 지성들과 천재들이 맞다고 해서 결론낸 답을 따르고 있는 건 아니고? 이것과 저것 중에 맞다고 생각하는 쪽 편을 드는 건 아니고? 당신의 이해를 이해하는 자는 완벽한가? 그 모든 것에 어떤 결함도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텐가? 모르긴 몰라도 한 문장으로도 한평생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언어의 기원조차 명확하게 소급하지 못하는데 이 불완전한 언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해로 우리는 참 쉽게 이해한다고 으스대거나 웃거나 말한다. 내게 이해는 너무도 광활하고 어둡고 무겁다. 오늘 나는 여전히 물 한 잔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거 같다. 그저 밤 벚꽃을 보며 조금 서성이다가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403/pimg_7598491531877295.jpg)
1일 1사진 - 간발의, 곧 간밤의 일이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