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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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읽었다. 으레 그렇듯이 첫 독서에서와는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놓친 것들, 내 관심을 덜 끌었던 것들이 이것 이었구나 겪게 되는 독서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첫 독서에서는 “(19) 불안과 설렘, 그 둘은 늘 함께한다. 불안을 즐기지 못하면 여행도 즐길 수 없다.” 문장이 좋았지만 두 번째 독서에서는 그 위에 있는 먼 곳으로의 여행은 내게 익숙한 모든 것을 무로 만든다.”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22) 선택은 최악의 여건 중에 내가 견딜 수 있는 경우를 고르는 것이라고, “여행도 삶도 결국 선택이 포개진 결과이자, 그것이 옳았다는 것을 정당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와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라고 비장하게 말했지만, 독서 여행은 좀 다르다. 앎에 대한 희구와 증명에 매달리는 이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발견하는 걸 그저 즐..는 행위일 때도 많다. 그래서 책을 읽는 걸 우리는 여행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 같은 책을 읽어도 우리는 자신만의 특..한 여행이고 싶어 한다. 책은 충분히 그렇게 해주었다.

 

책 초반엔 문장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꽉 찬 계획과 각오로 여행을 떠나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행의 우여곡절 속에 지쳐가다 어느 순간 낯선 이국이 문득 친숙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풀어지듯이 그의 글도 점점 그러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토마토소스를 빵에 바른 판 콘 토마테를 먹으며 글루탐산이 공통으로 들어 있는 토마토와 간장의 유사함을 생각하고 친숙한 기억과 고향을 음미하며 웃는다. “(84) 여행하싶다는 바람도 한 꺼풀 벗겨보면 웃고 싶은 마음에 다름없다고 말했듯 독서 여행도 그렇다. 깊은 밤에도 비바람 치는 날에도.

 

“(31) 여행이란,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러한 장소와 이야기들을 옮기려 애쓴다.

베를린 전봇대에서 켜켜이 쌓여 역사를 이루는 포스터, 한 민족의 영웅이면서도 소박한 거처 연못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잉어 밥 주는 게 취미였던 호치민, 호퍼의 그림과는 대조적인 에드워드 호퍼와 조 호퍼의 돈독한 사랑,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을 명작으로 가득 채운 예카테리나 여제의 몰두, 고작 1년 머물렀지만 프랑스 어느 도시보다 루르마랭을 사랑한 카뮈가 아내 프랜신 카뮈와 묻힌 공동묘지, 루마니아를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으면서 드라큘라를 써 많은 이들이 브라쇼브 브란 성을 찾게 만든 소설가 브람 스토커,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낙후된 이스탄불의 시르케지역, 바르샤바 쇼팽 벤치를 찾아 산보를 하며 에튀드가 흐르는 벤치에서 만든 추억, 어느 나라든 실체적 진실을 품고 있을 거 같아 찾아가는 시장과 골목, “(155) 어떤 가이드북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여행지에서 사는 지도, 바로셀로나에서 그가 사지 않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됐을 만년필에 대한 상상 등등.

 

일상을 특별한 여행처럼 여기려 하지만 그는 부인할 수 없다.

“(181) 가서 보지 못하면 영원히 깰 수 없었을지도 모를 내 안의 틀, 여행은 낯선 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189) 여행이란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일상으로 돌아온 후 추억을 떠올리는 일 역시 여행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한 말처럼 이 책을 펼치며 독자들도 설렜을 것이다. 책을 덮고 여운을 즐긴다. 이제 이 책은 퇴근길에 들르는 단골집이나 여행 기념품처럼 남는다.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지닌 채 다른 여행을 꿈꾼다. 그 여행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디 있든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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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01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정말 독서와 여행은 공통점이 많네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레임을 주는 것처럼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 또한 기대감을 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항상 여행만 갈 수 없기에 대부분의 삶을 일상에서 보내는 것처럼, 우리 삶에 주도적인 책들은 ‘인생의 책‘이라할 몇몇 권인것 같기도 하구요^^:)

AgalmA 2018-04-01 00:4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이렇게 책욕심이 많고, 1일 1그림, 1일 1사진 등등 온갖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게지요ㅎㅎ;

2018-04-01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0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4-0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의 봄날을 응원합니다^^

AgalmA 2018-04-01 19: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님도 화사한 봄날 만끽하는 시간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