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책소개를 훑어보다가 최근 출간된 2권의 시집이 있어 관련 기사를 옮겨 놓는다. 시인을 비롯한 문인, 연예인을 소재로 한 '인물시집'이라는 독특한 기획물이다. 

<한용운부터 손예진까지..詩로 그린 초상화>
인물시집 '사랑했을 뿐이다' 등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시인 만해가 있어서 모국어가 민족혼으로 빛나고
    다시 만난 님으로 조국광복이 앞당겨졌느니
    우주만큼 광활하고 하늘과 바다만큼 높고 깊은
    시인 정신, 그 본체이어라
                                  (유안진 '한용운-그 본체이어라' 중) 

한용운,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부터 최불암, 손예진에 이르기까지 48명의 국내외 문인과 연예인, 예술인 등을 소재로 한 인물시집이 출간됐다. 

시집 '사랑했을 뿐이다', '노래했을 뿐이다'(문학나무 펴냄)에는 오세영, 신달자, 정일근, 유안진, 장석주 등 28명의 시인들이 쓴 인물시 52편이 이인 화백의 캐리커처와 함께 수록됐다. 

시인들이 시로 불러낸 인물들 중에는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이청준, 김남조, 황동규, 윤후명 등 선배 문인들이 가장 많았다. 

    원효로 2층
    어젯밤 쓴 시라며 읽어주시던
    지금 쓰는 것이 대표작이라 하시던 그 목소리 붙잡고
    봄날이 간다를 부르고 싶다
    때로 하느님도 선생님으로 부르는 내 어리광이 덧나
    오늘은 선생님을 아부지 아부지 하고 부르고 싶다
    아부지이- 목월 아부지이-
                              (신달자 '박목월-그 목소리 마시고 싶다' 중) 

    그날 이후
    몇 번을 망설이다 그의 집을 찾았다
    초여름 남색 털모자를 반듯이 눌러 쓴 그는
    이제 약을 끊었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평생 거짓이야기로 세상을 현혹한 죄와 벌에 순응키로 했다고
 
                                    ('이청준-아직 연습이 필요하다' 중) 

최불암, 김광석, 고현정, 손예진 등 연예인들도 인물시의 주인공이 됐다. 

    아름답던 그 이름들을 지나 모처럼
    청초한 간이역을 만났다
    주변에 맑은 하늘과 향기로운 들꽃을 거느리고
    아득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박남희 '손예진-바람을 바라본다' 중) 

이와 함께 이승하 시인은 당당한 죽음이 인상적이었던 사담 후세인, 이윤설 시인은 화가 모딜리아니의 연인 잔느 에뷔테른, 이경림 시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초상화를 시로 그려냈다. 

문학나무는 이번 시집을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인물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연합뉴스, 2009.01.05) 

 

 

 

 

 

 

 

인물시 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고은 시인은 萬人을 대상으로 시를 써내겠다며 이십년이 넘도록 열정적으로 『萬人譜』를 펴내고 있다. 올해에는 완간 소식이 들릴지 모르겠다. 현재 26권이 출간되어 있다. 총 3천 400여편에 이른다. 문단에서는 이 작업 자체가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엄청난 스케일의 작업이고 최대의 연작시집이란 점이 높이 평가되지만, 시적 질에 있어서는 물음표를 던진다. 문학나무의 이번 인물시 시리즈도 재미난 작업이긴 하지만, 보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은을 뛰어넘는 문학적 성취가 필요할 것 같다. 고은은 혼자만의 작업이었지만, 이번에는 쟁쟁한 시인들이 여럿 참여하는 공동작업이니 기대를 해본다. 멋진 삶, 멋진 인생을 살아온 이들을 시로 기르는 일은 대단히 낭만적인 일이다. 독특한 점은, 사담 후세인도 그 낭만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김종철 시인의 시집 출간 소식도 전한다. 

<다시 고향 앞에 선 '못의 시인'>
김종철 시집 '못의 귀향'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그래그래 이밤 
    어머니보다 더 늙은 우리 내외가
    삐뚤삐뚤 쓰여진 철로 따라 예까지 왔구나
    육십 평생 순례의 끝에서
    아들 같은 젊은 나도 데불고
    그래그래 당신에게로 함께 갑니다

                          ('밤기차를 타고' 중) 

중견시인 김종철(62) 씨가 일곱 번째 시집 '못의 귀향'(시학 펴냄)을 출간했다. 

지난해로 등단 40년을 넘긴 시인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을 담은 '초또마을' 연작들로 시집의 문을 열었다. 

초또마을 시편 속에는 곧 고향과 동격이기도 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담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갔습니다
    밤나무 숲에 이르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캄캄해졌습니다
    그 순간 우물에서 무지개가 솟아올랐습니다
      (중략)
    어머니 태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나이 이순, 몸 깊이 숨겨 둔
    당신의 무지개가
    저세상 잇는 다리로 다시 뜨는 날
    나는 한 마리 학 되어
    한 생애를 날아오를 것입니다

                          ('어머니의 장롱-초또마을 시편ㆍ2' 중) 

또다른 연작 '순례 시편' 역시 인생 후반부에 접어드는 시인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과 맞닥뜨리고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초또마을 시편'과 맞닿아있다. 

    환갑 진갑 지나는
    순례의 첫 밤
    그 첫날밤의 꼭두새벽
    두 딸년이 마련해 준 여비로
    일생의 꿈 마무리하듯 기도하다가
    손에 불 덴 아이처럼 쩔쩔매는
    노인네를 보게 되었는데
    그 굽은 못대가리가
    바로 나였다니! 
                         ('개똥밭을 뒹굴며-순례 시편ㆍ5' 중) 

1992년작 시집 '못에 관한 명상'에서 인생은 못 박고 빼는 일의 연속임을 노래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못'과 '망치', '십자가' 등의 은유를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망치를 들어도 좋을 나이입니다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습니다
    눈 감고 못 박아도
    세상의 뒤편인 손등은 찧지 않습니다
      (중략)
    이제는 누구의 관 뚜껑인들 망치질 못 하랴
    이제는 한밤에 못질 되어도 좋을 나이입니다

                                      ('망치를 들다' 중) 

(연합뉴스, 200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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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9-01-0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강남역에서 멜기세덱교 홍보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혹시 계신가 하고 둘러봤는데, 없더라구요. 그 종교를 믿으시는건 아니시죠? ㅋㅋ

심술 2009-01-07 22:44   좋아요 0 | URL
진짜 그런 종교가 있나요? 신기하다.

무해한모리군 2009-01-0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시집 표지가 한국화처럼 참 곱네요.
시집은 한달에 한권정도 읽는데 이번달은 '아배생각'을 읽고 있어서, 다음달에 김종철시인의 책을 읽어보고싶네요.

Alicia 2009-01-0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첫번째 추천은 저예요. 전 지금 박정대시인의 시집 읽고 있어요. :)
멜기님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 그때 참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