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 정치나 사회구조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전파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행동으로 결집시켜 응집력있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져야만 가능하다. 지속적인 노력과 각성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진보는 개혁과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과거의 어느 시점보다 나아졌다고 단언하기 어려워 보인다. 군사 독재 시절의 비민주적 압살에 비하면 행복하다고 자위할 수 있지만 삶의 질에 대한 문제와 아비투스의 대물림으로 세습적 계층 구조가 고착되고 현상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사회주의는 소련을 모방한 부분이 있지만 색깔이 많이 다르다. 문화적 토대가 다르고 혁명의 과정이 달라서이기도 하겠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혁명 정신도 빛이 바래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관심과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 속에서 그들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백승욱의 <문화대혁명>은 이런 고민들과 함께 아직도 혁명으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명확한 원인과 결과를 말하기 어려운 일들을 소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1966년 8월 8일 통과된 「문혁 16조」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건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단계로서 “현재 우리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와 싸워 이를 물리치고, 부르주아 계급의 반동 학술 ‘권위’를 비판하고, 부르주아 계급과 모든 착취계급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교육을 개혁하고, 문예를 개혁하고, 사회주의 경제 토대와 맞지 않는 모든 상부구조를 개혁하여, 사회주의 제도의 공고화 발전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매우 복잡한 역사적 경험이기 때문에 그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해석 또한 다양하다. 크게 대별하면 권력 투쟁설과 마오쩌둥의 고결한 이상과 대안적 모델을 향한 유토피아적 전망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시대적 맥락 속에서 검토하면 사회주의와 당의 관계,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당의 지도를 둘러싼 갈등의 증폭이 갈등이 표출되는 방식의 핵심 쟁점이었다. 다양한 접근 방식과 해석으로 그 의미를 펼쳐 보이고 있지만 저자의 말대로 아직도 진행형의 사건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40년이 지났지만 문화대혁명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커다란 변혁 운동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로 혹은 변화의 계기로 기억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문화대혁명 그 후의 문제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수많은 대립 구도와 무장 충돌이 벌어졌으면서도 제도적으로 무엇을 남겼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은 상징성 이상의 현실성을 갖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의 제도적 틀 속으로 다시 포섭되었다는 것은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1989년의 6.4 천안문 사건은 그것이 문화대혁명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억압되어 끝나버렸다. 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복기를 거쳐 결실을 맺기도 하고 불씨가 사그라지기도 한다.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와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단순화 시킬 수 없다. 개혁 개방 정책으로 중요한 변곡점 위에 서 있는 중국에는 벌써 빈부격차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오고 있다. 자급자족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화 개방화 시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회주의와 혁명의 계속성 사이에서 중국의 고민은 깊어갈 것이다. 종류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변화와 개혁의 시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변화 시켜야 하며, 우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짚어나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사회의 제도적 형태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지금-여기에서 출발한다면 그 고민의 폭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내다본다면 문제가 조금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나라에 적용하거나 대안을 모색하기는 힘들겠지만 문화대혁명이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변혁의 시점에 서 있다고 믿는 우리 사회를 점검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는 구호들이 살아 숨쉬는 혁명의 언어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071107-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