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동적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습관을 들일 것.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봅니다" 대신에 "내게 무엇인가 보입니다", "내가 무엇을 봅니다" 대신에 "무엇이 들립니다"로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지각이 어떤 주체적 실체의 행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사건 발생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가짜 실체인 나는 뒤로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2. 잠에 들기 전 10분 정도 앉아서 나는 몸 - 마음의 구성체가 아니고 생기를 주는 그 건너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잠자는 동안에도 이러한 느낌이 여러분 속에 깊이 스며들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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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1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하다보면....잠드는 순간 깨어있음과 잠듬을 가로지르며 지속되는 어떤 것을 찾아내어야만 합니다. 비록 깊은 숙면에서 그것을 알 수 없다 해도 의식이 돌아오는 그 순간, 몸도 없고 세상도 없는 그 순간, 나는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해탈"이란 무엇인가? 해탈, 깨달음, 깨어남이라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근본적으로 직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첫째, 이 모든 현상의 씨앗은 비인격적인 의식이라는 것. 둘째, 우리가 구하고 있는 해탈이라는 것은 발현되지 않은 것의 잠재적 형태라는 것. 셋째, 찾는 자가 바로 찾고 있는 그 자체라는 것!

1. 근본적 상태에서는 그저 "존재"만이 있으며 여기에는 어떤 지식이나 조건, 속성, 형태, 자기 정체성 등이 없다.

2. 그러다가 (그런 것이 그것의 본성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명확한 이유가 없이 "내가 존재한다"는 개념(비인격적인 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의식에 의해서 세계가 살아있는 꿈으로 펼쳐지게 된다.

3. 의식이 자신을 현상으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지닌 물리적 몸이 필요하며 의식은 자신을 그 몸으로 동일시하고 그렇게 해서 "나"의 가상적인 객관화와 함께 "굴레"의 개념이 생겨난다. 이러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마다 개체는 순수한 주관성(무제한의 잠재성)을 객관적 대상(제한된 현상)으로 바꾸어버린 "원죄"를 범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4. 어떤 객관적 대상도 자기 스스로의 독립된 존재는 지니고 있지 못하므로 그 대상은 이 삶의 꿈(living-dream)에서 스스로 깨어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착각 속의 개체는 "절대" 또는 "실제" 또는 아무거나 또 다른 대상을 찾는다.

5. 여기까지가 분명하다면, 이제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의식이 생겨나기 전 원래의 모습은 무엇이었던가를 찾아 내어야 한다.

6. 이 단계에서 우리는 몸도 아니고 의식도 아니며 오로지 모든 의식이 있기 이전의 이름붙일 수 없는 온전한 잠재성의 상태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있게 된다. (의식 속에서는 그 상태가 무슨 이름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은 개념일 뿐이다)

7. 그렇게 해서 이 고리는 완전하다. 찾는 자가 곧 찾아진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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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일체의 현상세계가 나타나는 곳이 의식인 까닭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 공간적으로 나타나질 때만 이러한 모든 시현이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개념적 이미지인 시간 - 공간이라는 정신적 구조물을 시현된 세계를 감지하는 데 필요한 선행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첫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이는 시현된 우주가 지각될 수 없다. 따라서 시공에 확장된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모든 사건들은 단지 개념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시현된 우주가 외양일 뿐이라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우주는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 우주란 그 자신의 질서로 나타나는 무엇인가의 반영이다.

셋째, 현상이란 실체의 대상화된 측면이요, 전체적 가능성(잠재력)으로서, 알려지지 않음의 무한성 속에서 알려진 모두이다. 의식은 의식을 초월하는 데 이용될 수 없고, 그러므로 실체는 인식 범위 밖이다.

넷째, 실체(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 그 자체, that - which - is)는 "존재(be)"할 수밖에 없고, 오직 지금 존재한다. 개념적인 시간 - 공간이 없다면 사물이 존재할 '때'라든가 '곳'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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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옮김 / 미세기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원제목은 "시오니즘의 숨겨진 역사"이다. 저자인 랄프 쇤만은 버트란트 러셀의 비밀 비서로서 제국주의 국가내에서의 민중과 계급문제, 제 3세계에서의 민중해방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던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찌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이 애초에는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감을 찾기 위한 순수한 시도에서 시작된 시오니즘이 자신들의 동족들도 배반하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비극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사악함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역사적인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사의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듯이 팔레스타인의 비극 역시 극단적 시오니스트들이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아무런 힘도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유태인들의 마음 속에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불사하겠다."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심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극단적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선량한 유태인들에 대한 배반이 우선 일어난다. 나찌에 의한 유태인의 대량학살이 같은 민족인 그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동의되어지고 그들은 나찌의 지도자들과 뒷거래를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유대국가 건설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다. 나아가 그들은 나찌가 자기민족에게 써먹었던 학살방식을 팔레스타인 지역의 민중들에게 그대로 써먹는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관계가 식민주의내에서 지배 피지배 관계로 오면 결국엔 같아진다고 했듯이, 자기보다 힘센 자들에게 당했던 화는 사라지지 않고 자신보다 더 연약한 존재를 통해 더욱 가혹하게 가해지고 만다. 시오니즘의 유대국가 건설 움직임이 있기 전부터 이민족들과 이웃으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았던 선량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왜 그런 비극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왜 늘 대량학살과 폭력과 착취는 아무런 방어능력도 없고 말할 수 없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런 일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힘없는 그들이 불의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한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물론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아랍민족들의 해방투쟁과 유태인 노동자계급과의 공동투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고통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한과 고통이 또 다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라고 하는 외양을 띠고서 우리 세상에서 돌고 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세상은 왜 이런 걸까? 마음이 펼쳐진 세상의 비밀은 마음의 비밀에서 해결되어야 할 숙제들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제국주의도, 나찌즘도, 파시즘도 우리 사회 속에서도 내재화되어 있듯이 극단적인 시오니즘도 우리 사회내에 잠재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는 핏대를 세워가며 인권과 생존권을 외면해버리는 사람들, 국가보안법으로 이익을 보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실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국보법의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외면해버리는 보수주의자들, 자신은 늘 선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의견에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교조주의자들의 마음 속에는 늘 인류를 위험과 비극으로 내모는 잔인함이 도사리고 있다.

시오니즘의 숨겨진 역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역사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부정과 폭력을 몰아내고 평화와 사랑을 구하지 않는 이상 세상사의 비극은 돌고 도는 연기의 법칙아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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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의 몸도, 그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도,

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사회와 그 사회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들,

그리고 그 갈등과 비극이 이루어지기 위해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적개심과 분노를 만들어내기 위한 음모도

모두가 마음 하나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기고 사라지고 때로는 고착화되고 현상화되는 마음들이

모두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나의 살터문제로 요즈음 마음이 산란하다

이런 문제를 내게 안겨준 그 사람이 너무 밉기도 하고

그 미운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커져가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돌이키면

그래서 그 미운 마음을 앞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아진다. 놀랍다.

어찌 알까?

그 분이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해 온 분인지....

느닷없고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는 그 생각들이 쓸데없이 자꾸만 커져서

내 마음을 갉아먹고 내 가슴을 불태우지 않도록

마음 지향하는 바를 명심할 일이다

문득 "만법귀일 일귀하처"란 화두가 마음에 착 달라붙는 밤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내 마음이 더욱 밝아져 부처님전에 복많이 짓기를 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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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1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직장 생활 하다보면,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그래서 힘들었던 기억이 많아요. 하지만 가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의 똑같은 유형의 사람을 싫어했던 것 같아요. 그게 아마 내 업장이 올라오는 것이라서 그런가봐요. 내게 가르침을 주러 온사람.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돌아봐질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냥 싫은 감정, 그건 어쩔수 없을때가 많아요.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파도가 잠드는 날이 빨리 오기를....().....

어둔이 2004-10-1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부인의 의부증때문에 고생을 한 한 사람이 부인과 함께 대행스님을 찾아갔습니다. 혹시나 대행스님이라면 그 두 사람의 힘든 인연에 대하여 무엇이라도 해결책을 줄 것같았기 때문입니다. "스님 도대체 못살겠습니다. 무슨 업장 업보가 있기에 이렇게 이 사람에게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스님께서 좀 봐주십시오"라고 하자 스님이 웃으시면서 "처사님은 참 복이 많소. 이렇게 늘 남편생각만 하는 마누라를 두고 살고있으니 얼마나 행복하오"라는 말만 했데요. 스님의 말을 듣는 그 순간은 농담하는 줄만 알았고 그져 이런 문제에 경험없는 스님이라 별묘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지나서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지더랍니다. '그래 마누라는 보이나 않보이나 늘 내 생각만하는구나. 하루내내 마음이 나에게만 붙어있구나'라고 생각이 들고나서는 마누라 대하는 마음이 측은하기도 하고 고맙기도하고..생각이 달라 보인 것입니다. 그러고 난 뒤는 부인의 의부증에 대하여 예전만큼 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나요..

하무튼 어려운 일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가 사건과 세상과 인연의 문제를 변화시키는 것같습니다. 그러니 우선 세상의 비밀은 마음의 비밀입니다. 마음 고쳐먹는다고 한참에 세상이 낙원으로 변하고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서 부터 인연의고리를 풀고 선한 마음을 가진다면 더 이상 꼬이는 인연을 만들지 않습니다. 양화는 악화를 구축하지 않는다. 선한마음이란 선한 마음 그자체로 이미 우주법계의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결과는 바라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생멸심은 두마음이지만 보리심은 한마음입니다. 생멸의 두마음은 한마음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지만 그 한마음이 어디로 가는지는 의도하는 것이 아니고 가는대로 두고볼일이며 받아들일 일입니다. 천지는 불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악인에게도 단비를 내리고 선인에게도 가뭄을 줍니다. 악인은 단비라도 불평하지만 선인은 가뭄이라도 불평하지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한마음은 어디로 가는 마음이 아닙니다.

다시 온갖 생멸심이 들끓는 그 마음에 대고 묻습니다. 세상 만물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

누가 알겠습니까?.......옛탑은 허물어져도 서쪽으로 기웁니다. 서쪽은 방향이 어디입니까?

같은 물음입니다...알겠습니까? ^^!!

달팽이 2004-10-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직 모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