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던 때가 생각난다. 사회과학의 기초학문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통과의례로 생각했던 경제학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보다는 주로 경제사나 경제철학 학설사 부분이 보다 관심이 많았다. 경제학자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시대나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고 이론화되는지에 대해 보다 눈길이 갔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주류경제학인 미시, 거시, 개량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숫자와 수식에 빠져 정작 왜 수학을 풀고 있는지 이것이 가진 경제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잊고 있을 때가 많았다. 복잡한 수학이나 선형회귀분석 등의 기법들을 사용하지 않고서 순전히 사고를 요하는 분야인 학설사부분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을 잡고 첫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부터 나는 이 책이 '괴짜'딱지가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이 주류경제학의 주된 주제인 수요, 공급, 노동시장, 금융시장, 통화, 환율 등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미시적인 사회현상 어느 주제에나 천착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서술 방법도 수학과 도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게끔 표와 설명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장점은 기존의 경제학체계내에서는 명백하게 밝힐 수 없었던 사회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날카로운면서도 정확한 분석을 했다는 점이고 그것이 정밀한 통계자료를 자의적인 해석이나 왜곡없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조작과정을 통해 주어진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외생변수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고려를 했고 따라서 표본집단과 비교집단을 선정하는 방법과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고 그것은 교과서적인 경제학의 이론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자신의 직관과 상상력으로 채워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의 방법도 과학적인 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해내지 못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정보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얼마나 상반된 결론을 도출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가를 언론이나 정치인들을 통해 충분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따라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의 왜곡과 자의적인 해석을 떠나 엄격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도출된 정보로서 현상 뒤에 내재한 원인들을 밝혀내고 있다는 점에서 실추된 경제학의 권위를 복원하고 앞으로의 사회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에서의 범죄율의 하락은 낙태와 상관이 있고, 자녀의 학교 성적은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집에 책이 많은 학생들이 학업성적이 높은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는 점과 스모선수와 교사들도 승패나 성적을 조작한다는 사실은 그에게서 검증된 새로운 사실들이다. 결국 우리는 의심해야 하고 물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고정관념을 가지는 일들에 대해....그래서 고정관념이 가진 자리를 비워둔 다음 그 자리를 상상력과 주어진 정보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다루는 방법들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사회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우리들의 삶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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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0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봤습니다~
 

상추씨앗을 심은 지 두 계절이 가버렸네

한 번은 거름이 너무 많아

생을 한 번 피우지도 못하고

또 한 번은 풀어둔 개가 스틸로폼

상자를 다 뒤집어 엎어버렸으니

이걸 어쩌나, 싹이 돋자 노친은 한 잎

한 잎 따다 베개 머리맡에 챙겨 놓고

이러시면 안 된다며 속상해하다가

오뉴월 땡볕에 잎사귀 다 녹아내리고

그래도 상추 몇 대궁이 허연 뿌리로 흙을 물고

처서 지난 바람결에 온 몸을 흔들고 있으니

나는 꼭 무슨 유언을 듣는 것만 같아서

귀가 커지다가 귀도 없어지고

마음만 고요한 한 마당

일생이 푸르고 붉게 타올라

대궁이 아래 눌러 붙은 잎사귀

이 땅에 피는 것들 불꽃 아닌 게 어디 있으랴

습관의 신발을 벗고 보면

서 있는 모든 곳이 떨기나무 불꽃 아니랴.

 

                                               - 이희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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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하는 첫 날이다.

아침에 아파트 단지에서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깨어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조용한 시간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여 서재로 갔다.

육조단경을 펼쳐 들고 책 속으로 들어갔다.

읽던 도중 문득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가 생각났다.

있다 없다는 상대적인 세상을 떠나 모든생각이 사라진 자리

성성한 화두 하나로 깨어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본래 내가 가진 자성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 하나가 모든 삿된 법을 깨뜨린다.

집을 나서니 훌쩍 높아지고 푸르러진 가을 하늘이 드러난다.

강버들 사이로 비치는 오랫만에 보는 강풀 그 사이로 도도히 흐르는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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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8-2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바쁜 일상으로 들어가셨네요. 우린 아직 사흘 남았는데.
개학 축하합니다.^*^(축하 할 일 맞죠?)

달팽이 2005-08-2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날마다 새로운 세상이라 했는데, 늘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그 축하가 비로소 의미를 가질 듯 하군요...고맙습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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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르메타는 정말 네루다를 좋아했구나. 그만큼 네루다를 국민시인으로서 국민들의 일상생활속에 네루다의 시가 스며들었던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했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해서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는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면서부터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시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베아트리스를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고 가정을 꾸리는 전 과정에서 그는 점점 더 시인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시인의 시와도 그렇게 된다.

  베아트리스가 그녀의 과부어머니와의 얘기 속에도 시는 메타포로서 살아있다. "기막혀! 남자애 하나가 내 미소가 얼굴에서 나비처럼 날갯짓한다  그랬다고 산티아고에 가야 되다니."하자 과부역시 말한다. "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의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삶 모두가 온세상이 메타포가 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현실이 오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아니 오감각이 상상력을 통해 뒤엉킨 새로운 세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칠레사회를 사회주의적인 개혁을 거쳐 민중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도 가슴속에서 먼저 만들어진 메타포이며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게 사랑의 색깔로 채색한다는 것도 일종의 메타포다. 그래서 현실보다 더욱 현실인 메타포가 되며 메타포는 새롭게 현실을 창조해간다.

  네루다가 파리대사로 가서 병들었을 때 소니녹음테이프로 파도소리와 종소리 갈매기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담아달라고 했을 때 마리오는 그 소리들을 정성껏 채집하는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런 자연의 소리가 어떻게 네루다의 마음을 통해서 시로 형상화되는 것인지...그것은 마리오에게 있어서 네루다의 가슴과 직접 만나게 해주는 시작의 과정이었다. 평범한 어부의 아들이 시인적 감성을 갖고 시작을 시작하는 과정. 자연의 소리를 가슴에 담아 자신에게 일어나는 느낌들을 포착하는 과정...

  왜 이 이야기의 결론은 검은 물이었을까? 칠레혁명의 실패와 좌절을 담았을까? 네루다의 죽음을 의미했을까? 그토록 경쾌하고 가벼운 필체로 써내려간 이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에서 감당하기 힘든 어두움과 무게로 끝을 내려했던 스카르메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삶이 대중음악과 자전거여행과 춤과 여러 가지 가볍고도 즐거운 취미들로 가득찼었고, 그것도 문학속에 반영되었지만 그 가벼움을 바탕으로 한 생활에서도 역사와 삶과 시에 대한 무거움이 마치 바람을 맞아 강표면의 물이 나부끼더라도 밑바닥의 물이 그것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버티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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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8-2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지막 부분이 어둡게 끝났었지...싶어요...
근데 베아트리체의 엄니는 질펀하게 말씀도 잘 하신다니까요~

2005-08-2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8-2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습니다. 이카루님 이렇게 또 과부아줌마의 말에 감동하는 독자를 만나게 되어서요...ㅎㅎㅎ

2005-09-0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9-0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속삭인 님 잘 읽어보세요...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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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도 사회에서의 댐 건설이 가장 밑바닥의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임을 목격한 이후에는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쓸 뿐이고, 자신이 할 일이란 그저 자기의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녀는 작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글쓰기의 연설문에서 " 나의 경우처럼 평화롭다고 추정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한 작가가 불행하게도 조용한 전쟁에 마주치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단 그것을 보고 나면, 그걸 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본 다음에는 입다물고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발설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이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 그녀의 말에서 그녀는 확실히 그녀가 의도했건 안했건간에 그것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이 책장 앞에 실려 있다. 뭔가를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응시하고 있는 저 눈빛 속에 인도에 대한 세상에 대한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밑에 숨은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를 보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암베드카르가 생각이 났다. 인도 불가촉천민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인도 민중해방의 아버지. 자신에게 주어진 작가로서의 명성과 성공의 길을 접어두고 이미 알아버린 사실에 대해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의 삶을 선택한 용기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이끔으로써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카스트제도의 구습과 불가촉천민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워지지 않는 인도 사회에서 그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자라오면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였는지도 모른다.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라고 하는 수세기가 공존하고 있는 인도사회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면서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민중들의 삶과 처지에 눈을 떴고, 더 나아가 민중들의 되물림된 가난과 압제와 착취와 희생 위에서 피에 절은 고기를 뜯는 재벌과 권력자 그리고 미국 사회의 관료, 정치인, 군산복합체의 기업가들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눈으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거기서 욕설과 고함이 튀어나오고 잠시후엔 나의 머리를 내리치는 망치가 튀어나오고 총과 폭탄 미사일 등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한 기계들이 튀어나올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에게서 이미 보았듯이 소수의 권력자의 번영 위에 뿌려진 다수 민주의 피로 자라는 기형적인 민주주의에서 '민'자엔 '그들에게 시민은 없다'라는 말이다.

  미국은 나쁜가? 인도는 나쁜가? 아니 국민들의 의사 대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소수 돼지들의 뱃속만을 생각하는 그들의 행정부와 정치인 기업인 권력자들이 문제의 핵이다. 이미 권력과 부에 맛을 들여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몸집만 키워가는 그들의 눈에 돈과 권력 아닌 것은 모두 없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인들이 없고 '이라크의 자유'에서는 이라크의 국민들이 없었다. 심지어 권력자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국민들도 안중에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배신한 유대인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을 배신한 정권이 자신의 국민을 학살한다.

  세계화와 자본 논리에 대항한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패스트푸드 음식에 대한 불매운동과 반전운동 군산복합체에 대한 불매운동 나아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정치적 선택의 권리가 책임의식하에 이뤄지도록 하는 일, 그래서 소수의 권력자와 눈먼 미친개에게 주어진 권력을 다시 의식있는 개개인의 손으로 돌려야 한다는 점, 그러기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도 부귀와 권력과 명성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리는 삶을 살 것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명성은 자꾸만 내 뒤에 매달려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깡통꾸러미와 같다."는 말처럼 언젠가 떨어져나가고 그곳에 마음이 들러붙은 정도만큼 반드시 잃게 될 때 가지는 상실감의 크기를 느끼게 된다. 그것을 겪어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그런 삶을 피해가는 것도 참다운 민주주의를 손에 쥐기 위한 방법이자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마인드는 세계적으로 실천은 지역적으로"라고 했던가. 그녀가 인도의 댐건설반대운동에서 보여준 많은 노력과 용기가 인도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자들에게는 희망이요 빛이다. 자신의 집에서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것을 견디며 댐건설과 함께 죽겠다는 의지와 숲을 떠나서는 삶의 아무런 보장과 희망도 없는 그들에게 인도정부와 거대한 다국적 기업 인도의 상류층과 중산층의 위협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써 막아내며 생명을 연장해가는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없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 아룬다티 로이는 캄캄한 세상에 하나의 빛처럼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민주주의는 희망이요 꿈이요 사랑인 것이다. 남들에게 빼앗긴 내 권리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사랑과 공존을 위한 빛인 것이다. 그 '민'은 그래서 확장된 '나'가 '온인류'로 나아간 것이며 '온생명'과 '온우주'로 나아간 것이다. 다시 그녀의 사진을 본다. 그녀의 눈빛엔 호기심과 의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이 없어 생존의 위협아래 놓인 민중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말없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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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저는 민족주의가 자칫하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깨달았답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부시1세가 한 무책임한 말요,
"나는 그 어떤 것이 사실이라해도 내가 알 바 아니다"..
이게 미국의 민족주의로 대변된다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달팽이 2005-08-2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죠 임지현 교수의 '오만과 편견'에 보면 심지어 일제치하에서의 우리의 민족주의도 일본이 서양에 대립하기 위한 대동아공영주의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간디가 말하는 민족주의(민족애?)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더군요.
보통의 민족주의 하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간디는 그런 배타성이나 폐쇄성이 없거든요. 그런면에서 마음과 의식이 품고 있는 어떤 생각이 나에게서 수신하고 가족 사회 민족 국가 세계 온우주로 열려 나가는 곳에서 막히는 바가 없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불교나 타 종교의 본래 취지, 동양사상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점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족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계급이기주의 민족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국가이기주의 기업이기주의....무엇이든 막히는 순간 그 그은 선 밖의 존재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거든요...
세계화나 세계화의 경제적 정치적 본질에 대한 책은 많은데 인도사회의 구체적 사안에서 시작하여 그 유려한 문체로 세계화와 정치의식까지로 나아가 더구나 자신의 삶도 일관성있게 살아가는 당당한 인도여성을 만난 것이 님의 덕입니다.
읽으면서 문득 파란여우님의 당당함(있다면..)과도 비슷한 빛깔이 스치는군요...

파란여우 2005-08-2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저에게는 당돌함과 무대뽀가 있지요.^^
당당함은 제 과제입니다. 무거워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