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씨앗을 심은 지 두 계절이 가버렸네

한 번은 거름이 너무 많아

생을 한 번 피우지도 못하고

또 한 번은 풀어둔 개가 스틸로폼

상자를 다 뒤집어 엎어버렸으니

이걸 어쩌나, 싹이 돋자 노친은 한 잎

한 잎 따다 베개 머리맡에 챙겨 놓고

이러시면 안 된다며 속상해하다가

오뉴월 땡볕에 잎사귀 다 녹아내리고

그래도 상추 몇 대궁이 허연 뿌리로 흙을 물고

처서 지난 바람결에 온 몸을 흔들고 있으니

나는 꼭 무슨 유언을 듣는 것만 같아서

귀가 커지다가 귀도 없어지고

마음만 고요한 한 마당

일생이 푸르고 붉게 타올라

대궁이 아래 눌러 붙은 잎사귀

이 땅에 피는 것들 불꽃 아닌 게 어디 있으랴

습관의 신발을 벗고 보면

서 있는 모든 곳이 떨기나무 불꽃 아니랴.

 

                                               - 이희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