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엮음, 김명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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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 앞에 서 있다면 어떤 일이 가장 아쉬운 것일까? 자문해본다. 아쉬운 일들이 참 많다. 나의 부모와 형제 가족에게 마음을 다 써서 대해주지 못한 점. 또한 만나는 사람들에게 품었던 좋지 못한 생각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일을 지키지 못했던 일들. 나를 스쳐갔던 그리고 내 삶 깊숙히 들어왔던 사람들에게 남은 아쉬움과 그리움...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후회스러운 점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세상에 와서 또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침에 학교에 일찍 도착하여 교문을 지나면서 바라보니 간밤 추위에 다 떨어져내린 은행잎들이 땅에 수북히 쌓여 있다. 그 노란색 물감으로 칠해진 교정의 한 켠이 문득 마음에 쏙 들어와버린 것은 왜일까? 차에서 내린 나는 다시 교문을 향해 걸었고 그 은행잎들의 무리 속을 잠시동안 거닐었다. 다시 이들을 볼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 발 밑에서 부드러운 느낌으로 밟히고 있는 이 은행잎들...아침이 문득 상쾌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는 듯하다.

탄줘잉이 옮겨놓은 49가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루 아침에 다 읽기는 아깝다. 하지만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한편 한편 새로운 감동의 파도로 밀려드는 아름다운 인생의 바다 앞에 나는 들었던 책을 쉬이 놓을 수가 없었다. 삶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들은 나의 가슴 속의 가장 아름다운 면들을 일깨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자신을 잊어버린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것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쉰 여덟 살의 노직원에게 오늘 어떤가? 하고 묻는 사장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살아오면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또 다른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도 기억합니다. 분명히 그런 날들도 무척 행복했어요. 하지만 오늘처럼 좋았던 날은 없지요. 그날들 중 어떤 날도 단지 두 번째일 뿐이에요. 그 하루하루가 지금의 생활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행복했던 날들이 모두 모여서 오늘을 만들어준 것이니, 바로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오늘, 지금, 이곳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늘, 지금, 이곳은 자신의 존재에 깊이 천착할 수 있게 하는 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온전히 깨어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육체만으로 구성된 것을 넘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럴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넘어선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넘치는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의 비밀은 마음이다. 작고 하찮은 일이지만 거기에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담기게 되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어떤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자신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집안 가보로 물려오던 담뱃대를 판 아버지에게 그것을 돌려주기 위해 걸린 수십년의 노력 속에 담긴 그 마음을 받고 아버지는 기뻐하였던 것이다. 제자를 생각하는 노 선생의 방에 모아둔 수많은 제자들의 소식과 현황에 담긴 그녀의 제자사랑이 바로 한 남자의 마음을 그토록 깊게 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대할 때 진정으로 대하고 사물을 대할 때 진정으로 대해야 한다. 그 진정한 마음 속에 담겨진 보석이 바로 인생의 보석이다. 창조주는 세상을 창조하면서 가장 중요한 보석을 어디에 숨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것을 가장 잘 숨겨두는 것은 아무렇게나 세상 어디에나 두는 것이란 걸.... 그 보석은 마음이다. 세상의 일들을 아름답게 하기도 하고 추하게 하기도 하는 것. 보잘것 없고 하찮고 사소한 일 하나가 이토록 우리들의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게 하기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이고 삶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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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꼭 해보고싶은 일..
'세계 유명미술관 100일 순례'랍니다.


달팽이 2006-12-04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날이 오면 꼭 사진으로 페이퍼에 남겨주시길...
덕분에 앉아서 간접적으로나마...

파란여우 2006-12-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음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여기는 걸까요.
별로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원래 생각 짧게 사는 사람인지라...
한사님의 사진 다큐를 저도 볼 수 있는거죠?^^

달팽이 2006-12-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짧다고 하는 말에 여우님의 삶이 얹혀진 것을 안다면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누~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얀 케르쇼트 지음, 김기협 옮김 / 꿈꾸는아침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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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은 우리 존재의 시작을 '지금 이곳'에서 알게 한다.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가락들이 가볍게 이곳저곳을 타고 옮겨다니는 것들을 통해서 가벼운 누름이 느껴지고 눈은 흰 여백에 새롭게 채워져가는 글씨들을 지켜본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나의 귓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있음은 내 의식이 몸에 붙어있을 한시적인 시간과 공간내에서일 뿐이다. 내가 늦은 밤 잠자리에서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쫓아가다 어느새 나를 떨쳐버리고 가버린 그가 텅 빈 껍데기만을 남겨놓은 채 사라질 때 있음도 내게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게 온 풍경들은 시시각각 쓰러져 사라져가고 내게 들려온 소리들도 순간순간 잡을 수 없는 소리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그것을 느끼는 마음의 나를 찾아 생각을 가라앉혀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라고 부를 그 무엇은 없다. '있음'은 어느듯 '없음'으로 변하고 만다. 있음과 없음은 존재의 양면인 것일까? 문득 존재의 의문하나가 마음을 차지한다.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 들어온 외부의 세상이 눈과 마음을 채운다. 옷을 벗어버린 채 추운 바람에 떨고 있는 나무와 그 위로 한 줄기 햇살을 비추고 있는 빛, 그리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그것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마음을 통해 '있음'으로 들어가는 창문도 있다. 마음의 번다한 생각들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하는 창이 있다. 그 창문은 어떤 특정한 모양도 형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형태와 모습을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을 숨기는 방법은 모든 곳에 아무렇게나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존재의 보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찾을 생각을 못한다. 마음으로 열린 창을 통해 그것을 찾아가려는 나의 마음은 이 곳에서 시작되어 창문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벗어나라.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기 위해 승복을 입어야 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시간에 교회에 앉아 기도를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참된 스승을 찾아 그를 본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 외부로 주어진 마음을 돌려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길을 찾는다면, 외부로 뻗은 마음의 에너지를 자신을 비추는 빛으로 만들어낸다면 비로소 그 모든 형식과 겉치레는 산산조각이 난다. 더불어 세상이 모두 공부거리가 되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그것이 공부거리가 아님을 알기까지, 뭔가를 추구하는 그것마저도 없음을 알기까지 스스로를 탐구하자.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과 권위로부터 벗어나라. 그 권위가 그 전통이 그 모델이 나에게 하나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더불어 어떤 이상현상이나 신비한 체험이 하나의 관념이 되어 나를 사로잡는것에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비로소 참된 의문이 나에게서 일어난다.

대담은 이렇게 알게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이다. 토니파슨스와 더글라스 하딩과 네이선 질과 크리슈나무르티와 나눈 대화들은 바로 그들이 자리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놀이이다. 진리의 자리에서 시비를 다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완전한 집착일 수 있지만, 완전하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이 , 그 없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에게 맞는 옷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몸이 없으면 애초에 옷도 필요없는 법, 그 옷의 색깔과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가 조금씩은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는 자리에 말을 모두 버리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될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다. 잠을 자다 문득 깨다. 오줌이 마려웠기 때문이다. 문득 이것을 아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내가 깊은 잠을 자는 내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전까지 괜찮다는 것을 아는 자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통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세상이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고 불리우는 존재의 참모습을 알아야 한다. 모든 풍경이 들고 사라지는 그 자리 모든 소리가 들어오고 소멸하는 그 자리 그 모든 감각과 그 모든 비감각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그것이 바로 지금 키보드를 옮겨다니는 내 손가락의 느낌을 있게 하고 채워져가는 글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한다. 무엇인가?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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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인식'은 인간의 특성이겠지요.

달팽이 2006-12-0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지요.

어둔이 2006-12-0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추운 겨울
어디서 방황하는가?
봄조차 겨울의 방황이거늘
겨울의 문턱에서
봄을 기다려 무엇하랴?

집없는 자여!
겨울을 떠도는이여!
 
조용헌 살롱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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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민속학자인 조용헌 씨가 그동안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었다. 책의 구성은 음양과 오행, 이판과 사판으로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생활 속의 이야기들을 각 각의 이야기로서 풀어낸다. 범부들의 일상생활의 이야기로부터 각종 사건 사고에 나아가서는 국가의 흥망과 그것을 좌우하는 정치적 사건과 국제정세의 변화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로서 우리들의 시선을 끈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감각과 인지에 잡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에게 포착되는 것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음양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어떻다고 생각하는 그 점은 반드시 상반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우리가 선이라 명명하면 그에 대응하는 악이 있고 높음이라 하면 그에 비교되는 낮음도 있다. 서로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공존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특성과 재능을 보면서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로 그 장점이 그 사람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음양은 모든 만물이 태어나서 갈라지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태초의 갈라짐 이전으로 돌이키면 우리는 갈등할 필요가 없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모습을 찾는 것도 바로 이와같지 않을까?

  오행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목,화,토,금,수의 요소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우주의 모든 것은 오행의 요소로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밤하늘의 천체의 놓은 위치와 운행이 태양계의 몇 개의 별과 위성의 위치와 운행이 지구의 자기장과 사회적 에너지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오행은 드러난 세상의 법칙이다. 음양이 더욱 세상에 현현해서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판과 사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판은 형이상학적인 세계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세계이자 열반의 세계가 된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영원의 공간이기도 하고 절대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문제가 해결이되면 사판의 문제도 비로소 해결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와 그를 둘러싼 외부의 물질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이판의 문제를 쉽게 마음에 품지 못한다. 세상을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이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삶의 의미의 문제일 수도 있고, 꼭 해결해야만 하는 삶의 화두일 수도 있다.

  사판은 드러난 우리들의 일상생활이요 사회적으로 나아간 삶이다. 우리들의 삶과 사회를 둘러보면 개인의 욕망과 그 욕망의 산물인 제도와 권력간의 갈등들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업이 업을 만나서 일어난 사고들과 욕망이 욕망과 부딪혀 생겨난 결과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 그 혼탁해진 세상은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세상 속으로 묻혀들어간다. 사판은 드러난 세상의 사사무애함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안된다. 그래서 사판이란 이판을 등에 업은 사판이라야 한다. 그러면 사판은 한 송이의 꽃이 된다. 세계일화가 된다.

  추워져가는 날씨, 그 옛날의 난로가 그리워지고 그 난로에 손을 내밀고 둘러앉아 오손도손 정답게 나누는 옛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그럴 무렵 조용헌 씨의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잠시나마 그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의 살롱은 구수한 향수가 베어있다. 잠시동안 그의 난로 앞에서 손을 녹히었으니 이젠 추운 밖으로 나가야 할 때다. 그 추위를 헤치고 따뜻한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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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헌씨의 입담이 대단하지요.
저도 이분의 '명문가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달팽이 2006-11-2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입담으로 표현된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세상과 균형을 맞추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저의 마음을 끕니다.
 
말리도마 - 아프리카에서 온 메신저
말리도마 파트리스 소메 지음, 박윤정 옮김 / 정신세계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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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잃어버린 문명

서구의 물질문명은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문명을 파괴시켜버린다. 이렇게 한 번 파괴된 문명은 다시 복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욱 가슴아픈 사실은 그 문명의 파괴가 물질문명과 보이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될 때 인류로서 살아가도록 운명지워진 창조주의 메세지를 지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는 편리해지고 안락해지고 풍요로워져가는 세상이 내면으로는 다시 돌이키기위해서 많은 시행착오와 무수한 시련을 거쳐서 개척해야 할 황무지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아메리카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졌으며, 호주의 원주민도 아시아의 원주민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져갔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또 하나의 역사인 아프리카의 다가라 문명도 서구문명의 침투 속에 그 자취를 잃어갔던 우리들의 잃어버린 미래가 되었다.

말리도마, 두 세계의 소통

아프리카 다가라 족의 한 원주민인 말리도마의 이야기는 그가 할아버지의 환생이라는 사실과 그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의 길이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박케 할아버지 아래서 조상의 전통과 자신의 미래 삶의 메세지를 받으면서 자라다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서양적인 삶으로 내던져진다. 거기서부터 15년동안 외부로부터 강요된 서구적 사고방식과 삶을 익히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한다. 15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그 곳을 탈출하게 될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의 일원으로서 입문식을 거치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과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두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고 자신의 안에서 두 세계가 소통되는 공간을 가지게 된다. 두 세계의 소통은 부족의 세계와 서양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내면적 진리의 세계와 인생이라는 꿈으로 드러난 현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두 세계의 소통은 체험되어져야 하는 마음을 직접 마음으로써 소통하는 세계와 그것을 드러난 글과 언어로서 소통하는 세계와의 소통이다. 사람의 마음이 글로써 모두 표현되고 드러난다는 서구문명의 발상에서 이젠 마음은 사라져버리고 표현하기 위한 포장인 글과 언어의 화려함과 치장만이 남은 세계가 바로 우리들의 문명 세계다. 그렇다고 글과 언어를 버릴 수도 없다. 세상의 변화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에서 드러나 인간의 몸을 받고 생겨난 이 세상과 세상이 나고 들어가는 그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듯 마음의 세계와 표현된 언어의 세계를 소통시키는 것이 현대의 과제다. 그 두 세계에 대한 소통이 그 스스로의 삶의 과제이자 부족의 과제로서 그에게 부여된 과제가 된다.

병든 기억

서구적인 삶은 물질적인 삶에 중심이 있는 삶이다. 외부적으로 마음을 투사시키는 세계이며 자신의 내부와는 단절된 세계이다. 세상 물질의 법칙과 그 지배에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너머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바로 응시하는 데에 두려움과 공포를 갖는 세계다. 우리들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몸에 강하게 밀착되어 있는 병든 기억들을 떨쳐내지 못한다. 외부로는 끊없는 욕망을 투사시키지만 안으로는 텅 비어 있는 유령들이다. 그 외부로 투사시키는 욕망은 또 욕망을 따르고 그 욕망은 또 더 깊은 욕망을 따르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 따라간 우리들은 자아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다. 그 최초의 자아에 대한 인식은 또 그것을 고형화시키는 기억과 또 기억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가 딱딱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에 의해 파악된 세상을 이전과 같이 변함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도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의문을 버려라

때로는 그러한 진실을 직면하지 못하여 편하게 넘기는 방법이 의문이다. 나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문을 통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생각을 낳고 우리의 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어느 순간 우리들은 스스로 완전한 우주를 눈앞에 두고서도 문제투성이의 복잡한 우주를 창조해버리게 된다. 머리로서 진실을 알겠다는 욕심없이 주어진대로 가슴을 열고서 받아들이면 된다. 나에게서 그것은 어떤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안다든지 모른다든지에 대한 일체의 생각을 버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말리도마가 입문식을 통해서 겪었던 마법적이고도 환상적인 사실들이 바로 그의 마음이 빚어낸 형상들이 아닐까?

과거는 미래다

그는 결국 다시 서양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부족의 명령을 받는다. 두 세계에 대한 이해와 체험 속에서 그에게는 세상을 점점 물들여가는 서구 세계로 다시 나가서 부족민들의 삶과 정신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부족을 지키는 것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는다. 물질적인 삶의 맹목적인 속도에 잃어버리게 된 과거의 정신적 유산은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해 인간이 다시 참된 삶의 의미를 묻게 될때 비로소 다시 되돌려야 할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힘들게 그리고 더디게 하나 하나 복원해내어야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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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압도적인 서구문물의 유입에 대해 아프리카인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낸다는 것이
현대 아프리카인들에게 숙제일 것입니다.

파란여우 2006-11-1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를 넘어 21세기 지구의 이야기군요.
경계를 구분짓는 건 서양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피자와 콜라와 컴퓨터를 외면하고 달팽이님과 제가 만날 수 있을까요?
모순의 소리 한 마디 더,
국악방송(라디오)를 즐겨 듣습니다. 오늘 거문고 소리를 듣는데 아, 미칠뻔했어요
전, 왜 이리 거문고라면 껌벅 죽어 넘어갈까요? 전생에 악사출신인게야...푸하하하
보내주신 책은 이불 속에 드러누워 한 장씩 읽습니다.
안녕, 달팽이님. 오늘 밤 별이 총총해요
그럼 나도 총총

달팽이 2006-11-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sa님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그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또한 그들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세기의 교훈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것도 타자를 어떻게 우리가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더욱 성숙함을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가라 문명이 잃어가는 그 영적인 것에 더욱 관심이 있군요.
여우님, 피자와 콜라와 컴퓨터를 외면하고서도 가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이 여우님이 올려다보는 그 하늘이라고 생각하지요.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며 또한 그 별이 여우님의 올려다면서 마음의 총총함을 새기는 그 별이라 생각하지요.
은하수의 아스라히 빛나는 별 몇개 이불 속에 넣어서 주무시기를...
 
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 - 5백년,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
이수광 지음 / 일송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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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릇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했다. 난세에는 명문도 나온다. 난세에 세상 민심을 대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한다면 세상 민심의 가려운 마음을 긁어주는 글을 명문이라고 하지 않을까?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자신의 일신을 돌보지 않고 세상의 부름에 나아갔던 많은 이들, 자신의 한 생명을 초개와도 같이 버림으로써 민족적 대의와 세계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 그들은 자신의 몸의 영욕과 부귀를 버렸지만 영혼의 안식과 성장을 꿈꾸었기에 세상의 마음을 얻었고, 후세의 가슴 속에 사라지지 않을 이름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피비린내나는 사화의 한가운데에서도 그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돌아올 것임을 알고서도 조정의 혁신과 왕을 향한 직언을 통해 사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사림들의 꼿꼿한 정신이 있었다.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부풀리려는 간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주변 강대국들이 죄어오는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종묘사직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왕이 있었다. 왕조의 말기 피폐해진 서민의 살림과 관리들의 혹독한 횡포 아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이유로 가혹한 학살로 내몰렸던 불운의 천주교도들의 삶도 있었다. 끝없는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도 가혹한 착취와 민권의 유린을 견뎌내면서도 외세에 흔들리는 국가의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바꾸어보고자 그리고 새 세상, 인간평등과 자주독립의 꿈을 드높이 세웠던 동학농민군의 눈물이 있었다. 국권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여 약한 국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힘없고 나약한 시대의 국민으로 태어나 비참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버린 안타까움도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국모를 일본의 무사들에게 도륙당하는 것을 눈을 뜨고 보면서 조국의 주권을 빼앗기는 것을 울분과 한숨으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왕의 깊은 좌절과 고통도 있었다.

  2030년경에 한반도를 강타할 특급 태풍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지구의 기상이변으로 해일과 특급태풍은 전례없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쓸어가는 그 태풍의 한가운데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하고도 쾌청한 하늘을 만들어내는 '태풍의 눈'이 있다고 한다.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자신을 바쳤던 이들의 마음 속에 바로 이러한 태풍의 눈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농민들의 인간다운 삶과 만인 평등의 세상과 남을 위해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해월 선생의 마음에서도, 거대한 구제도와 기득권의 횡포에 맞서 젊은 나이에 국가의 제도를 혁신하고 이상적인 유교사회의 꿈을 꾸었던 조광조와 많은 사림들의 마음에서도 나는 이를 본 듯 하였다.

  조선 후기 사대부 이응태의 부인 이씨의 <망부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언제나 나에게 이르기를, 둘이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워 있을 때면 매양 당신이 나에게 이르기를,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 어찌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시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어서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나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으니 슬픈 생각은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내 뱃속의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생전에 펼치지 못하고 뜻을 접은 그들이 과연 후세에 무엇을 남겼을까? 하고 묻게 되자 나에게는 이씨 부인의 편지글에서 뜻밖의 답을 찾았다. "내 뱃속의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 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요?"가 바로 그 답이다. 그들의 마음이 후세에 그들의 글과 행적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격과 성품을 형성하여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마음과 행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의 정신적 아버지를 누구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과연 나의 정신적 아버지를 누구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격랑의 세월 속에 그 격랑의 시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었던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마도 그 격랑의 시대와 세월이 고스란히 담기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그 격랑에 마음이 휩쓸리는 것으로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다하랴! 그들의 마음 속에 보다 넓은 세상과 우주를 품었다면 아마 그들의 행적과 삶이 조금은 가벼웠을런지도 모른다. 무섭고도 맹렬한 태풍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마음은 태풍의 눈에 머물고 있었던 삶의 스승들이 좀 더 아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런 고로 "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는 말에 담긴 뜻이 더욱 나의 마음을 울리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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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폄하'하는 조선조의 사상과 당시 인민들의 삶에
좀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망부가는 또 읽어보아도 애닯습니다..


달팽이 2006-11-20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조의 사상에는 좀 더 관심이 가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우선 퇴계 선생님과 율곡 선생님 남명 선생님과 조선후기의 연암과 그의 친구들까지....
망부가도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