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 - 5백년,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
이수광 지음 / 일송북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무릇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했다. 난세에는 명문도 나온다. 난세에 세상 민심을 대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한다면 세상 민심의 가려운 마음을 긁어주는 글을 명문이라고 하지 않을까?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자신의 일신을 돌보지 않고 세상의 부름에 나아갔던 많은 이들, 자신의 한 생명을 초개와도 같이 버림으로써 민족적 대의와 세계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 그들은 자신의 몸의 영욕과 부귀를 버렸지만 영혼의 안식과 성장을 꿈꾸었기에 세상의 마음을 얻었고, 후세의 가슴 속에 사라지지 않을 이름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피비린내나는 사화의 한가운데에서도 그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돌아올 것임을 알고서도 조정의 혁신과 왕을 향한 직언을 통해 사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사림들의 꼿꼿한 정신이 있었다.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부풀리려는 간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주변 강대국들이 죄어오는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종묘사직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왕이 있었다. 왕조의 말기 피폐해진 서민의 살림과 관리들의 혹독한 횡포 아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이유로 가혹한 학살로 내몰렸던 불운의 천주교도들의 삶도 있었다. 끝없는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도 가혹한 착취와 민권의 유린을 견뎌내면서도 외세에 흔들리는 국가의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바꾸어보고자 그리고 새 세상, 인간평등과 자주독립의 꿈을 드높이 세웠던 동학농민군의 눈물이 있었다. 국권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여 약한 국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힘없고 나약한 시대의 국민으로 태어나 비참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버린 안타까움도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국모를 일본의 무사들에게 도륙당하는 것을 눈을 뜨고 보면서 조국의 주권을 빼앗기는 것을 울분과 한숨으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왕의 깊은 좌절과 고통도 있었다.

  2030년경에 한반도를 강타할 특급 태풍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지구의 기상이변으로 해일과 특급태풍은 전례없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쓸어가는 그 태풍의 한가운데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하고도 쾌청한 하늘을 만들어내는 '태풍의 눈'이 있다고 한다. 역사의 파란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자신을 바쳤던 이들의 마음 속에 바로 이러한 태풍의 눈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농민들의 인간다운 삶과 만인 평등의 세상과 남을 위해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해월 선생의 마음에서도, 거대한 구제도와 기득권의 횡포에 맞서 젊은 나이에 국가의 제도를 혁신하고 이상적인 유교사회의 꿈을 꾸었던 조광조와 많은 사림들의 마음에서도 나는 이를 본 듯 하였다.

  조선 후기 사대부 이응태의 부인 이씨의 <망부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언제나 나에게 이르기를, 둘이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워 있을 때면 매양 당신이 나에게 이르기를,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 어찌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시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어서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나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으니 슬픈 생각은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내 뱃속의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생전에 펼치지 못하고 뜻을 접은 그들이 과연 후세에 무엇을 남겼을까? 하고 묻게 되자 나에게는 이씨 부인의 편지글에서 뜻밖의 답을 찾았다. "내 뱃속의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 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요?"가 바로 그 답이다. 그들의 마음이 후세에 그들의 글과 행적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격과 성품을 형성하여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마음과 행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의 정신적 아버지를 누구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과연 나의 정신적 아버지를 누구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격랑의 세월 속에 그 격랑의 시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었던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마도 그 격랑의 시대와 세월이 고스란히 담기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그 격랑에 마음이 휩쓸리는 것으로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다하랴! 그들의 마음 속에 보다 넓은 세상과 우주를 품었다면 아마 그들의 행적과 삶이 조금은 가벼웠을런지도 모른다. 무섭고도 맹렬한 태풍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마음은 태풍의 눈에 머물고 있었던 삶의 스승들이 좀 더 아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런 고로 "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는 말에 담긴 뜻이 더욱 나의 마음을 울리고 있음을 느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1-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폄하'하는 조선조의 사상과 당시 인민들의 삶에
좀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망부가는 또 읽어보아도 애닯습니다..


달팽이 2006-11-20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조의 사상에는 좀 더 관심이 가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우선 퇴계 선생님과 율곡 선생님 남명 선생님과 조선후기의 연암과 그의 친구들까지....
망부가도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