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도마 - 아프리카에서 온 메신저
말리도마 파트리스 소메 지음, 박윤정 옮김 / 정신세계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문명

서구의 물질문명은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문명을 파괴시켜버린다. 이렇게 한 번 파괴된 문명은 다시 복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욱 가슴아픈 사실은 그 문명의 파괴가 물질문명과 보이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될 때 인류로서 살아가도록 운명지워진 창조주의 메세지를 지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는 편리해지고 안락해지고 풍요로워져가는 세상이 내면으로는 다시 돌이키기위해서 많은 시행착오와 무수한 시련을 거쳐서 개척해야 할 황무지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아메리카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졌으며, 호주의 원주민도 아시아의 원주민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져갔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또 하나의 역사인 아프리카의 다가라 문명도 서구문명의 침투 속에 그 자취를 잃어갔던 우리들의 잃어버린 미래가 되었다.

말리도마, 두 세계의 소통

아프리카 다가라 족의 한 원주민인 말리도마의 이야기는 그가 할아버지의 환생이라는 사실과 그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의 길이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박케 할아버지 아래서 조상의 전통과 자신의 미래 삶의 메세지를 받으면서 자라다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서양적인 삶으로 내던져진다. 거기서부터 15년동안 외부로부터 강요된 서구적 사고방식과 삶을 익히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한다. 15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그 곳을 탈출하게 될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의 일원으로서 입문식을 거치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과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두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고 자신의 안에서 두 세계가 소통되는 공간을 가지게 된다. 두 세계의 소통은 부족의 세계와 서양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내면적 진리의 세계와 인생이라는 꿈으로 드러난 현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두 세계의 소통은 체험되어져야 하는 마음을 직접 마음으로써 소통하는 세계와 그것을 드러난 글과 언어로서 소통하는 세계와의 소통이다. 사람의 마음이 글로써 모두 표현되고 드러난다는 서구문명의 발상에서 이젠 마음은 사라져버리고 표현하기 위한 포장인 글과 언어의 화려함과 치장만이 남은 세계가 바로 우리들의 문명 세계다. 그렇다고 글과 언어를 버릴 수도 없다. 세상의 변화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에서 드러나 인간의 몸을 받고 생겨난 이 세상과 세상이 나고 들어가는 그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듯 마음의 세계와 표현된 언어의 세계를 소통시키는 것이 현대의 과제다. 그 두 세계에 대한 소통이 그 스스로의 삶의 과제이자 부족의 과제로서 그에게 부여된 과제가 된다.

병든 기억

서구적인 삶은 물질적인 삶에 중심이 있는 삶이다. 외부적으로 마음을 투사시키는 세계이며 자신의 내부와는 단절된 세계이다. 세상 물질의 법칙과 그 지배에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너머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바로 응시하는 데에 두려움과 공포를 갖는 세계다. 우리들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몸에 강하게 밀착되어 있는 병든 기억들을 떨쳐내지 못한다. 외부로는 끊없는 욕망을 투사시키지만 안으로는 텅 비어 있는 유령들이다. 그 외부로 투사시키는 욕망은 또 욕망을 따르고 그 욕망은 또 더 깊은 욕망을 따르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 따라간 우리들은 자아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다. 그 최초의 자아에 대한 인식은 또 그것을 고형화시키는 기억과 또 기억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가 딱딱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에 의해 파악된 세상을 이전과 같이 변함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도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의문을 버려라

때로는 그러한 진실을 직면하지 못하여 편하게 넘기는 방법이 의문이다. 나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문을 통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생각을 낳고 우리의 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어느 순간 우리들은 스스로 완전한 우주를 눈앞에 두고서도 문제투성이의 복잡한 우주를 창조해버리게 된다. 머리로서 진실을 알겠다는 욕심없이 주어진대로 가슴을 열고서 받아들이면 된다. 나에게서 그것은 어떤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안다든지 모른다든지에 대한 일체의 생각을 버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말리도마가 입문식을 통해서 겪었던 마법적이고도 환상적인 사실들이 바로 그의 마음이 빚어낸 형상들이 아닐까?

과거는 미래다

그는 결국 다시 서양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부족의 명령을 받는다. 두 세계에 대한 이해와 체험 속에서 그에게는 세상을 점점 물들여가는 서구 세계로 다시 나가서 부족민들의 삶과 정신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부족을 지키는 것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는다. 물질적인 삶의 맹목적인 속도에 잃어버리게 된 과거의 정신적 유산은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해 인간이 다시 참된 삶의 의미를 묻게 될때 비로소 다시 되돌려야 할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힘들게 그리고 더디게 하나 하나 복원해내어야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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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압도적인 서구문물의 유입에 대해 아프리카인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낸다는 것이
현대 아프리카인들에게 숙제일 것입니다.

파란여우 2006-11-1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를 넘어 21세기 지구의 이야기군요.
경계를 구분짓는 건 서양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피자와 콜라와 컴퓨터를 외면하고 달팽이님과 제가 만날 수 있을까요?
모순의 소리 한 마디 더,
국악방송(라디오)를 즐겨 듣습니다. 오늘 거문고 소리를 듣는데 아, 미칠뻔했어요
전, 왜 이리 거문고라면 껌벅 죽어 넘어갈까요? 전생에 악사출신인게야...푸하하하
보내주신 책은 이불 속에 드러누워 한 장씩 읽습니다.
안녕, 달팽이님. 오늘 밤 별이 총총해요
그럼 나도 총총

달팽이 2006-11-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sa님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그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또한 그들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세기의 교훈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것도 타자를 어떻게 우리가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더욱 성숙함을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가라 문명이 잃어가는 그 영적인 것에 더욱 관심이 있군요.
여우님, 피자와 콜라와 컴퓨터를 외면하고서도 가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이 여우님이 올려다보는 그 하늘이라고 생각하지요.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며 또한 그 별이 여우님의 올려다면서 마음의 총총함을 새기는 그 별이라 생각하지요.
은하수의 아스라히 빛나는 별 몇개 이불 속에 넣어서 주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