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르치기 -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핀켈 교수의 새로운 교육법
도널드 L. 핀켈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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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가에서는 화두라는 것이 있다. 말의 낙처가 떨어지는 곳을 바라보아야만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말이다. 가르쳐주지 않음으로써 가리켜주는 것...그러면 결국 의문을 가진 자가 스스로의 의문을 녹여서 풀어야 할 일이다. 침묵으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가르치는 자와 배움을 받는 자가 마음으로 만나는 공간의 일인 것이다. 그 두 마음이 만나 한 마음이 되는 일들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지 않는 한 그 비밀은 여전히 세월의 지층 속 어딘가로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와 세상이 분리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교육목표를 세우고 수업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의도하는 대로 또 교사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학생들에게 인식의 틀과 내용을 주입시키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일체의 노력들을 중단할 것을 주장한다. 교사가 의도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아이들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탐색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고 먼저 물어야 한다. 고기를 줄 것인가? 낛싯대를 줄 것인가? 아니면 낛시하는 방법을 가르킬 것인가? 아니 더 나아가 왜 사는가? 하고 물어야 할 일은 아닌가?  

  이상적인 모습일런지는 모르지만 선가의 깨달음이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교육자가 아니다. 배우고 성장하려는 학생이다. 아니 교사와 학생의 구분없이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만 오롯하게 진행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비가 내려 나무와 풀이 자라듯 빛이 비춰져서 꽃이 피고 잎이 돋는 것처럼 말이다. 꽃 한송이를 들고 말없이 서 있는 가운데 말없이 주고받는 미소라면....어쩌면 가장 배움에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다시 땅 위로 내려와보자...교실에서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주로 지시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단정적인 말과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언어 사용은 아이들의 진정한 학습과 열린 사고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 쉽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교육이 아니다. 침묵으로 가르친다는 표현은 침묵이 어떤 배움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수업을 계획하고 방향짓고 일정한 교육적 효과를 의도한 준비와 상황을 제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학생의 학습의 과정에서 주어진 길을 안내하지 않으며 또한 해결방법에 대한 제한된 틀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학생들의 수동적인 학습습관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서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딛을 수 있도록 보다 큰 사랑으로 침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다. 침묵한다는 것이 교육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일정한 교육적 환경을 필요로 한다. 어떤 배움의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뭔가 학습자의 마음 속에 어떤 배움과 성장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과제처럼...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과 알고 싶다는 의지...욕구.... 그런 것 말이다. 과연 어떻게 그들의 가슴 속에 씨앗처럼 그것을 심어주는가가 문제란 말이다. 그것만 갖추어진다면 침묵으로 가르치든 말로써 가르치든 이미 교육적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나 교육의 효과니 학습력 향상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요즈음...정말 학생들로 하여금 배움을 통해 성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학교교육이 그 성장의 모든 몫을 하려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 욕심같은 마음을 놓아버린다면 어쩌면 새롭게 다시 교실과 학교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그들이 살아나가야 하는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 그 자체가 성장이요 교육이 아닐까?  

  깊어져가는 봄 속 햇살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에는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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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간히 달팽이님께서 의미심장한 글을 써주시는군요.

아이들 네명을 키우며 느낀 바로는
아이들이 각기 타고난 자질이 있더군요.
그런 자질을 벋어나가게하는 환경도 필요하고요.
자질이 한 80%, 자라는 환경이 한 20%쯤..

한국의 학교교육은 참 바보같지요.
아이들의 자질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억눌려 죽입니다.
저는 학교의 바보교육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 노력했지요.

사실 바른 길을 제시해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공부하고 저절로 성장합니다.
억지로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 공부해야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면 똑똑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합니다.


달팽이 2010-06-0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말씀이 고맙습니다.
힘이 됩니다. ㅎㅎ
저절로 공부하고 저절로 성장한다는 말...
다시 생각해봅니다.
 
삶을 살아낸다는 건 한국대표시인 시선 1
황동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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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은 살아낸다는 것은 이른 아침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일까? 신록의 잎새사이로 허공을 타고 귓청을 때리는 산새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비밀에 대한 의문의 불꽃 하나 터트리는 것일까? 80인생을 살아오며 그는 젊음의 열정과 사랑의 시절을 지나고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며 사회현실과 민주주의에 대해 노래하고 중년의 시기를 지나면서 좀 더 다채로워진 사물과 자연에 대한 관심의 시기를 거쳐서 불교와 기독교적 진리가 만나는 삶의 통찰 속에 서 있기도 한다.  

  말의 아름다움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 속에 생겨나는 무늬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의 마음을 거쳐 나오는 글들은 하나하나 마음 속에서 살아 가슴속의 꽃을 피워내는 것일까? 시인이란 이런 사람들일까? 즐거운 편지를 지나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삶이라는 터널은 사람들을 이렇게 바꾸는 것일까? 인생의 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봐지는 삶의 언덕 위에선 꽃이 피고 꽃씨가 날린다. 바람을 타고 제 인연의 길을 따라 날리다 문득 어느 둥지에 보금자리를 펴면 새로운 인생의 문은 열리고 또 새로운 꽃이 핀다. 삶을 산다는 것은 꽃을 피워내는 일일까? 일상의 시간들이 지층처럼 쌓여서 어느 순간 세월이라는 앨범 속에 구분되어지면 인생의 흔적들이 한 권 두 권 쌓여서 책장이 되는 것일까?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시인에게 어떤 것일까? 언어의 길을 거쳐서 그의 변해가는 마음 속의 일들이 다시 언어라는 집을 지으면 우리는 그 언어를 쫓아 그의 인생을 가늠한다. 독자 하나하나의 삶과 관이 덧붙여져 그만의 독특한 빛깔과 무늬로 시인의 독자 하나하나의 가슴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것일까? 인생이란 자신의 가슴에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연들이 더욱 깊어지고 그렇게 우주를 닮아가는 것일까? 문득 석양에 지는 노을빛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견디기 힘들었던 실연의 상처들이 점차 추억이란 이름으로 변색되어 아름다워지는 듯한 것.....기나긴 여행 뒤에 방안에서 몸을 뉘이며 마음의 평안함과 행복을 누리는 것...그것이 다시 언어로 정리된다면 이 또한 인생의 길이 되는 것인가? 바람따라 흐르다가 한 점 흔적없이 흩어지더라도 무엇하나 붙잡을 것 없는 삶 앞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나이들어갈 것인가?  

  물음은 길이되고 또 물음으로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진 물음으로 삶은 구성되고 어느덧 묻던 그 물음이 알수없는 사이에 문득 희미해져가는 것...마음 속에 알고 모르고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언제나 걷던 이 거리가 문득 새로워지고 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무엇이 전혀 몰라지게 되는 것...모르지만 모르지 않는 것...나이지만 나같지 않은 것...나와 너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어지는 것...그 마음의 빛깔 속에 세상이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스며들고 그렇게 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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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인의 시을 읽으며 삶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합니다.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격려도 많이 받습니다. 달팽이님


달팽이 2010-05-16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짧은 글이 마음에 더욱 깊이 스며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사님의 코멘트도 그러합니다. 속으로 소화시켜야 할 일들이 숙제처럼 남는...

라로 2010-06-03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멋진 책 소개 감사드려요~.

달팽이 2010-06-04 13: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비님. 맞나요?ㅎㅎ
 
인생 - 어진 현자 지셴린이 들려주는 단비 같은 인생의 진리
지셴린 지음, 이선아 옮김 / 멜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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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속의 얼굴이 마치 우리들의 할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소탈하다. 중국의 '지성'이라고 불리울 정도의 큰 스승이자 지도자이지만 마치 집안의 할아버지처럼 곱게 늙어서 일상의 소박하고도 솔직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손자손녀에게 들려주듯이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사실 이 글이 그 동안에 언론을 통해 발표한 것을 묶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망설였지만...목차를 보고서 마음에 들어 결국은 읽게 되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만물이 내 벗이라네", "남은 연꽃이 빗소리를 들으니" 등의 제목이 마음을 건드렸다. 인생의 큰 바다를 지나서 어느덧 노년의 끝에서서 바라본 인생의 글들은 비록 깨우침이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삶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본 관조적 성격과 더불어 삶의 깊은 지혜를 배우게 한다.  

  비가 내린다. 봄의 잎사귀를 성장시키는 봄 비 속에 어느덧 봄은 자라고 있다. 이미 겨울이 왔으니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표현처럼 조급하게 삶과 생활을 마주하지 않고서 느긋하고 수용하는 마음의 큰 그릇으로 그것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그것이 나이듦의 기쁨이라면 기쁨이다. 나이들어서 몸이 불편해지고 외로워지고 사람들로부터 무력한 사람이라는 눈빛을 느끼는 것...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나이와는 상관없이 삶의 어떤 목표를 향해 열정을 갖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지센린 선생님께 배운다. 촉촉히 젖은 산비탈에 천연의 노랑으로 피어난 개나리꽃을 보고서 기쁜 마음이 드는 것, 봄을 알리는 순결한 목련의 하얀 잎이 마치 허공에 핀 빛의 꽃처럼 신비스러워 보이는 것, 나이가 들수록 세상의 희노애락과 자연의 숨결이 더욱 마음 속으로 깊이 스며드는 것...그러니 나이든다는 것은 무디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섬세해지고 더욱 깊어지는 것이리라... 

   그런 마음을 공유하며 읽어가는 한 문장 한 문장은 가슴에 와 닿는다. 비에 젖지 않는 바다처럼 섬세하게 모든 것을 느끼면서도 그 삶의 굴곡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거대한 바다...인생의 경험과 경험이 쌓여 그렇게 될 수 도 있고 또 삶의 깨달음으로 그렇게 될 수 도 있을 것이지만 마음을 열고 바라본 세상이 문득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그런 마음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여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그렇게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공존하며 도와가며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의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깊어지는 봄 속 자연의 생동감이 움틀대고 있다. 그 기운을 받아 내 마음도 알지 못할 활기가 흘러다닌다. 매년 거쳐가는 인생의 길목이지만 문득 서서 마음을 멈추고 바라보면 그 풍경 속의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그를 보면서 내 인생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들의 저마다의 인생길은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니 이 길은 나만이 걷는 길이기도 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가 걷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 비 내리는 소리 속 어딘가에서 나의 상념이 뿌리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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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3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에 매달려있었으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적었답니다..

내 아이들이 자라며, 호기심이 줄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몰라도
크게 마음 쓰이지 않는 나이가 되며
푸른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과 이쁜 꽃들에 더 많은 눈길을 주게 되었답니다.
하하


달팽이 2010-04-0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과 이쁜 꽃들에 더 많은 눈길을 주게 되었다."는 표현 속에 담긴 한사님의 마음을 배웁니다.어떤 형식도 절차도 필요없이 그저 주어지는 일상과 자연에서 느끼는 마음...분노할 땐 분노하고 슬퍼할 땐 슬프고...기뻐할 땐 기쁘고..
 
무비스님의 천수경 경전시리즈 3
무비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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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심정례공양  

 

메아리 응답하듯 

부르는 소리 낱낱이 찾아 

고통 구해 주시고 

천강에 밝은 달 비치듯 

소원 발하는 이마다 

큰 안락주시는 이여 

 

가없는 중생의 아픔 

끝없는 중생의 소원 

얼마나 애달팠으면 

천의 손이 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한 중생에 팔만의 병고요 

한 중생에 팔만의 번뇌인데 

항하사 중생의 고통 

 

모두 씻어 주시는  

관세음 관세음 

원하옵나니 자비시여 

이 도량에도 밝아오사 

저희들의 작은 공양을 받아 주소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잘 드러내 주는 진언문이다. 공부하려는 사람은 이러한 마음의 동기를 잘 일으켜야 그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천수경은 지금 읽는 이 책이 전부이다. 예전 숭산스님의 이야기를 읽다가 젊은 수행자시절에 신묘장구대다라니경을 밤낮으로 외웠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한국 불교에서 밀교적인 요소를 보여주는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다. 진언으로 나타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어떤 효과를 가질런지 궁금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니 그 뜻이 어떤지 따지기보다 신비적인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관세음보살의 마음에 대한 외경심으로 외운다면 반드시 그 영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일의 결과를 바라기보다는 공부를 하는데 영험이 있겠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개경게가 여기에도 나온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신, 구, 의로 짓는 업장을 해소하고 배움의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원력을 가지도록 호소하는 천수경은 경을 읽기 전의 마음가짐을 경건하고 의미있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인연을 귀하게 하기 위해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와같은 마음으로 씻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천수경의 처음이 바로 입으로 짓는 업장을 해소하기 위해 부르는 정구업진언인 것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입으로 짓는 업이 얼마나 많은지를 잘 보여준다. 부부생활, 아이들 대하는 것,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말만 잘 써도 왠만한 갈등의 대부분은 아예 만들지도 않는다. 

몸에 붙여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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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3-2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지 않고 지내면 좋은데,
심심합니다. 하하


달팽이 2010-03-26 13:0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한사님..그래서 평범한 저는 하루의 마무리에서 반성이나 하고 지내려하고 있습니다. 날은 차가워도 봄햇살을 속이진 못합니다.
 
퇴원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이청준의 문학상 수상작
이청준 지음 / 푸르메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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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 님의 작품을 대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에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대하고 두번째다. 작가생활 45년의 이력을 가진 그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조금 가진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나의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알라딘에서 파는 할인도서에서 인연이 닿아 고른 이 책은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으면서 멈추고 또 읽어나가기를 반복하며 틈새의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소설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탐색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모험가요 탐험가이다. 그러기 위해선 낯선 환경 속으로 또 소설의 주제를 찾아서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매잡이]라는 작품은 작가의 선배가 평생동안 현장답사만 해온 자료를 접하면서 쓰게 된 작품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치열하고도 끝없는 노력없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존재하는 세상만큼이나 넓은 인간 인식의 영역과 내면의 우주를 탐색하여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적인 정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그 소설은 현실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 역사적 사건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와 내면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보여준다. [퇴원]과 [병신과 머저리]는 개인의 정신적 상처가 그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개인에게 있었던 군대생활과 자신의 성장과정이 눈모양으로 고스란히 담겨 삶의 한 가운데를 차지해 버리는 이야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형이 자신의 동료인 오관모 병에게 총을 쏜 경험이 자신의 의사생활 인생에서도 마음의 큰 상처로 남아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녹여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에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난 삶을 살 수도 있다. [매잡이]와 [이어도]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상상적인 삶이 자신의 현실의 삶을 지배하는 경우이다. 매잡이에서는 자신의 삶을 매와 같이 이상화시킨 극단적인 삶이 매잡이 곽서방의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 이어도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이 빠져있는 집단무의식과 자아망실감이 환상의 섬 이어도에 대한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중적인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하고 결국엔 그 섬 때문에 천기자는 자살한 내용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흑백이데올로기와 개발독재라는 집단무의식 속에서 서민들은 어떤 꿈을 꾸고 살았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 뭔가 마음 속에서 이런 연결고리같은 것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는 늪]에서는 농촌에서 도시의 삶이 베어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가 어머니를 찾아보고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농촌의 삶이 싫어 도시로 떠난 아들은 낮이 되면 이곳에서의 아프고 힘들었던 유년시절이 더욱 선명해질까봐 날이 새기 전 새벽차로 서울로 올라가려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차는 문제를 일으키고 정차하게 되고 그 속에서 농촌에서 자라고 평생을 살아온 촌사람과의 갈등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삶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 이중적인 갈등을 삶 속에서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젊은이가 겪게 되는 아픔을 늪으로 표현했다. 오히려 그 어렵고 힘든 6,70년대의 삶을 버텨온 것은 도시인의 세련되고 합리적인 자기주장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 불편을 웃음으로 넘기는 말못하는 민중들의 따뜻한 가슴이 아니었던가 하고 말이다. 인정하기 싫은 젊은이의 의식과 엄연히 존재하는 민중의 현실과 진리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갈등과 고뇌로서 잘 나타난다. 

  [날개의 집]은 자신의 꿈을 늘 바꾸던 시골의 한 소년이 드디어 화가의 꿈을 꾸면서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그림소설이다. 당숙인 유당선생님의 지도하에 참다운 그림의 모습을 배워나가며 현실의 삶 속 그 깊은 사람과 생명의 아픔을 자신이 느끼면서 마음 속에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형상을 화지 위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다름아닌 그림인것을 배우기까지 한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노력과 고통과 좌절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그림에 새롭게 눈뜨게되는 것은 그림그리기의 벽을 통해 매 순간 처절한 고통과 맞닥뜨리게 될 때였다. 그 좌절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 걸음을 딛고 나설 때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만의 생명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림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무엇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작가의 소설에서도 똑같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을까? 일종의 삶의 깨달음처럼 온갖 삶의 굴곡속에 한국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경제성장의 시대를 살아오며 그 아픈 상처들을 모두 어루만지며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면서 써낸 작품들이었기에 더욱 그만의 세계에 가닿았을 것이리라.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 깨끗한 여백에는 이 말이 적혀 있다. "아픔을 배우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 아픔을 앓는 것, 그 아픔을 숙명의 삶 속에서 앓아가는 것이 사랑이었다. 자신의 온 몸뚱이로 그 아픔을 참고 앓아나감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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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온 몸뚱이로 그 아픔을 참고 앓아나감이 사랑이었다."
꽤나 고전적인 표현입니다.
요즈음 작가들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달팽이 2010-02-2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몸으로 체험하는 공부는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음공부도 몸으로 체험되어지는 바가 없으면 공허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