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이청준의 문학상 수상작
이청준 지음 / 푸르메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이청준 님의 작품을 대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에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대하고 두번째다. 작가생활 45년의 이력을 가진 그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조금 가진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나의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알라딘에서 파는 할인도서에서 인연이 닿아 고른 이 책은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으면서 멈추고 또 읽어나가기를 반복하며 틈새의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소설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탐색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모험가요 탐험가이다. 그러기 위해선 낯선 환경 속으로 또 소설의 주제를 찾아서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매잡이]라는 작품은 작가의 선배가 평생동안 현장답사만 해온 자료를 접하면서 쓰게 된 작품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치열하고도 끝없는 노력없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존재하는 세상만큼이나 넓은 인간 인식의 영역과 내면의 우주를 탐색하여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적인 정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그 소설은 현실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 역사적 사건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와 내면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보여준다. [퇴원]과 [병신과 머저리]는 개인의 정신적 상처가 그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개인에게 있었던 군대생활과 자신의 성장과정이 눈모양으로 고스란히 담겨 삶의 한 가운데를 차지해 버리는 이야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형이 자신의 동료인 오관모 병에게 총을 쏜 경험이 자신의 의사생활 인생에서도 마음의 큰 상처로 남아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녹여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에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난 삶을 살 수도 있다. [매잡이]와 [이어도]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상상적인 삶이 자신의 현실의 삶을 지배하는 경우이다. 매잡이에서는 자신의 삶을 매와 같이 이상화시킨 극단적인 삶이 매잡이 곽서방의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 이어도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이 빠져있는 집단무의식과 자아망실감이 환상의 섬 이어도에 대한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중적인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하고 결국엔 그 섬 때문에 천기자는 자살한 내용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흑백이데올로기와 개발독재라는 집단무의식 속에서 서민들은 어떤 꿈을 꾸고 살았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 뭔가 마음 속에서 이런 연결고리같은 것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는 늪]에서는 농촌에서 도시의 삶이 베어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가 어머니를 찾아보고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농촌의 삶이 싫어 도시로 떠난 아들은 낮이 되면 이곳에서의 아프고 힘들었던 유년시절이 더욱 선명해질까봐 날이 새기 전 새벽차로 서울로 올라가려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차는 문제를 일으키고 정차하게 되고 그 속에서 농촌에서 자라고 평생을 살아온 촌사람과의 갈등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삶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 이중적인 갈등을 삶 속에서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젊은이가 겪게 되는 아픔을 늪으로 표현했다. 오히려 그 어렵고 힘든 6,70년대의 삶을 버텨온 것은 도시인의 세련되고 합리적인 자기주장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 불편을 웃음으로 넘기는 말못하는 민중들의 따뜻한 가슴이 아니었던가 하고 말이다. 인정하기 싫은 젊은이의 의식과 엄연히 존재하는 민중의 현실과 진리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갈등과 고뇌로서 잘 나타난다. 

  [날개의 집]은 자신의 꿈을 늘 바꾸던 시골의 한 소년이 드디어 화가의 꿈을 꾸면서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그림소설이다. 당숙인 유당선생님의 지도하에 참다운 그림의 모습을 배워나가며 현실의 삶 속 그 깊은 사람과 생명의 아픔을 자신이 느끼면서 마음 속에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형상을 화지 위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다름아닌 그림인것을 배우기까지 한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노력과 고통과 좌절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그림에 새롭게 눈뜨게되는 것은 그림그리기의 벽을 통해 매 순간 처절한 고통과 맞닥뜨리게 될 때였다. 그 좌절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 걸음을 딛고 나설 때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만의 생명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림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무엇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작가의 소설에서도 똑같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을까? 일종의 삶의 깨달음처럼 온갖 삶의 굴곡속에 한국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경제성장의 시대를 살아오며 그 아픈 상처들을 모두 어루만지며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면서 써낸 작품들이었기에 더욱 그만의 세계에 가닿았을 것이리라.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 깨끗한 여백에는 이 말이 적혀 있다. "아픔을 배우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 아픔을 앓는 것, 그 아픔을 숙명의 삶 속에서 앓아가는 것이 사랑이었다. 자신의 온 몸뚱이로 그 아픔을 참고 앓아나감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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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온 몸뚱이로 그 아픔을 참고 앓아나감이 사랑이었다."
꽤나 고전적인 표현입니다.
요즈음 작가들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달팽이 2010-02-2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몸으로 체험하는 공부는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음공부도 몸으로 체험되어지는 바가 없으면 공허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