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 - 어린이 교육학 시리즈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참교육가이드 옮김 / 산수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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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먹구름이 몰려오고 어둡고 두껍게 깔린 구름 사이로 괴성이 터져나오면서 빗줄기는 떨어진다. 큰 바람과 함께 대지를 뒤덮는 비바람이 지나간 후 우리는 뿌리뽑힌 나무도 보고 물에 잠긴 마을도 본다. 산사태로 파묻힌 집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과, 강물에 떠내려가는 가축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모든 생명들을 보며 그것을 우리는 '자연 재해'라고 이름붙인다. 하지만 그 자연 재해 뒤의 맑은 공기와 명징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 그 자리에 놓여 있다. 물감보다도 파란 하늘 위로 햇살이 밝게 비추면 세상은 다시 생명의 활기로 가득찬다.

  그것은 먹구름이 대지위에 수많은 비와 바람을 뿌린 뒤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좌절과 슬픔도 때로는 살아가는 힘이 됨을 안다. 하지만 그 좌절과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린 싹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비바람이 생명의 뿌리를 잘라내게 될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딥스는 총명하고 높은 지능을 가진 아이지만 출생을 바라지 않았던 부모로부터 받은 무관심과 질시 냉정과 분노로 인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갖고 자신을 마음 속의 어두운 방안에 가두어 둔 아이이다.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면서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반응들로만 가득찬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놀이치료방이었다. 한 세심하고 배려깊은 심리학자와 아이의 만남은 이 놀이방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아이가 최대한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이를 통해 자신을 치료해나가도록 도와준다. 이 때 그녀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게끔 그래서 스스로 독립심을 가지게끔 과도한 관심과 표현을 삼간다.

  사실 심리적으로 상처받은 아이를 치료할 때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부모와 치료를 병행하면 더욱 좋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여도 관계에 있어서 개선이 나타나지 않을 때면 심리치료가 별로 효과를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지기까지 부모의 역할과 주변 관계인물의 행동과 반응이 중요한 것이 아동의 심리치료이다.

  놀이와 치료를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그것이 치료라는 형식과 마음의 부담을 걷어주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럽게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그런 면에서는 어른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서발달과 지능발달의 불균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치유되지 못한 부정적인 면들과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런 치유를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의 개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거센 비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리에 생명의 숨결이 뿌리채 뽑힌 여린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외부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조그만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서와 전인적 성장이 형성되고 있는 아동들에게 있어 그 안전지대는 우선 그들의 부모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속의 딥스를 보게도 해주지만 지금 우리 손에 의해 길러지고 있는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방 역할을 바로 부모가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를 안고 자라는 아이들이 가장 우선 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걷어내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이미 그의 정신적인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책을 보고 나는 우리가 우선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도 그렇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은행나무길을 걸으며 아들녀석이 은행나무 하나 하나에게 말을 걸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너무 빨리 아이들의 세상인식을 한정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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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1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7년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나요. 단골서점에 가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책을 구경하던 것이 제 유일한 취미였는데 이 책도 그러다 만난 보물 같은 책이었죠. 근데 읽고 난 후 가슴이 좀 아팠어요.
님의 좋은 글 읽으며 그 때 생각해 봅니다. 좀 얻어 갑니다. *^^*

달팽이 2006-07-2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책이 발간된지 그렇게나 오래 된지는 몰랐군요.
고마워요..
 
'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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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청소년기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의 경험들을 이야기한 에세이인 이 글은 아주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가 가진 마음의 눈은 아직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보다 자유롭고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전혀 새로운 현실로 들여다보여지게 된다. 그가 가진 가슴은 어린 아이의 동심의 세계이되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유창함은 자신의 전 인생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으니 이 책은 마음이 맑은 구도자가 써내려간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해서 이어주는 상징적인 것이 '나의 나무'이다. 높은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의 혼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으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인간의 몸을 빌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고 죽어서는 혼이 다시 빠져나와 그 나무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그 나무를 찾게 되면 거기에서 자신의 먼 훗날의 모습이나 오래 전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화되고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유년 시절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이어주는 공통된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옛날에 바라던 꿈이다. 그 꿈이 현실화과정을 거치면서 누구에게는 꿈대로 누구에게는 좌절되면서 변화된 채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모습인 것이다.

  적어도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그의 나무가 어릴 때의 공통점을 그대로 가진 지금의 그를 낳게 만들었고, 또한 그 나무 아래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유를 가지게 되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었던 연결고리가 있어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아들을 가지고도 그 아이가 자신에게 재능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질시와 차별을 견뎌낼 수 있게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부모로써 가지는 깊은 불안과 걱정들을 긍정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던 이유에는 오에가 가진 유년기의 성장과정에서의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자신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미 70대가 되어 노년기로 접어든 그가 이제 많지 않은 여생을 남겨두고도 자신의 길에 대한 성실함과 의욕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배울만한 점이다. 자신의 삶 전체를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일로써 채워갈 수 있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나의 나무로 돌아와야겠다. 나는 나의 나무 아래서 먼 훗날 나의 어떤 모습과 맞닥뜨리게 될까?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의 행복을 찾을 것이고,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의 책을 따라 읽다가 문득 나의 나무 아래서 유년 시절의 나와 노년 시절의 나가 지금의 나와 만나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있다. 그러나 한 순간 그 셋은 그 자리서 지금의 나 속으로 스며들고 나는 이제 아무런 불안과 두려움도 없는 온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꿈이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타고난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것, 내 타고난 본성을 스스로 아는 마음의 눈을 기르는 것이 나의 나무 아래서 그 나무의 온 역사를 그냥 알게 되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나를 느끼는 순간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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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8-2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았어요..학교도서관서 빌려 봤는데, 언제 다시 사서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달팽이 2005-08-2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 간디학교 교장 양희규의 '행복한 작은 학교' 이야기
양희규 지음 / 가야넷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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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대안학교인 '간디학교'가 어떤 배경에서 누구에 의해 계획되고 설립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떤 교육이념과 철학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이 땅에서 교육자로서 살아가는 내게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만나고 제도교육 속에서의 그들의 드러나지 않은 고통과 상처를 보고 있는 자로서 과연 행복한 배움의 터가 있을까? 라고 하는 의문 속에 이 책을 신청하였고, 이 책이 도착한 오늘 바로 읽어갔다.

  양희규 교장선생님의 어린 시절 제도교육에 대한 불신과 상처들은 참다운 교육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때로는 순응해버리고 그럼으로써 포기해버린 내 어릴 적 꿈이었고, 내 청춘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묻혀진 시간들이었다고 한다면 저자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다음 생을 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나와는 다른 점이었다. 꿈과 상상력을 말살시키는 교육현장에서 그가 느낀 배신감과 좌절은 단지 배신감과 좌절에 머무르지만 않았고, 참된 꿈과 상상력이 살아있는 배움터에 대한 구상으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실현으로서의 간디학교가 현재의 대안 교육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학창시절의 제도교육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교육실천가의 마음 속에 담겨지고 다시 세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떤 선이 있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져야 한다는 시비의 판단이 생기는 순간부터가 어쩌면 교육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교육은 자연처럼 스스로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잘못된 사회구조속에서 상처받고 비뚤어진 아이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자연 속에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이다. 벤포스타, 어린이공화국에서 보았듯이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며 정신적으로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과 신뢰감 그리고 사랑이 그들을 가장 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열쇠임을 알게 된다.

  간디의 정신을 이어받아 비폭력주의, 자치주의, 노작교육, 정신적 성숙, 전인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간디학교의 교육이념도 부럽지만 늘 3-5킬로의 자연속을 걸어다니면서 노동하고 자발적인 욕구에 의해 무엇인가를 배워가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러하기에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어른들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어쩌면 그들로부터 배우게 되면 이 사회가 더욱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묻게 한다. 나는 과연 정말 행복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교육자로서 과연 행복한가? 하고 말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나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한 번도 나 자신의 본래모습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이가 어찌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나는 아이들에게 행복함을 나누는 교사인가? 불행을 얹어주는 교사인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가 생각난다. 우리가 문제아라고 낙인찍었던 바로 그 아이들, 그들이 자신의 진정한 내적 욕구를 발견한 뒤에 그토록 무섭게 노력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 과연 우리들은 외부의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천재들을 얼마나 많은 소중한 생명을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사실 따지고 보면 교육자인 우리들이 바로 제도적인 교육을 받고 영혼이 굳어버린 문제아들이다. 우리가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삶으로써 가르쳐줄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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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 푸른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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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로부터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거리에서 사이버공간에서 학교에서도....입시위주의 대학교육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우리의 아이들이 옛날에는 화장실로 몰려서 자기들만의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했다면 지금은 교실로 사이버공간으로 자신의 몸으로 그것이 옮겨왔다고 한다. 자기 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머리를 물들이고 코와 혀 배꼽에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새겨넣는 행위 등)에서 부터 시작된 미래세대들의 반란은 어른들이 침범할 수 없는 가상공간에 그들의 성채를 높이 쌓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세대간 의사소통구조를 더욱 단절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교사의 권위에 짓눌려 있던 교실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학교의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아이들이 교실을 장악해가고 있고, 이젠 교사의 입김이 교실 전체를 커버하기엔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너무도 넓어져버렸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버렸다. 뭔가에 집착하고 안주하고 있을 때에는 그 무엇인가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이미 세상에서는 사라져버린다. 이런 세상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의식 역시 유연해졌다. 기성세대의 권위적인 삶의 질서와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몰아가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이미 어린이가 아니다. 이 세상을 읽어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생계획이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조차 과거의 기준으로 학교와 우리의 교육이 학교 밖으로 내몰고 그들 앞에 선을 그어 내버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는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는 큰 틀의 변화없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겉옷만 갈아입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개혁이라는 명분 속에는 기존의 중산층과 현 정부들어서 등장하고 있는 중간층 상층부와의 권력다툼구조가 그대로 잠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와 부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기득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기들간의 자리다툼을 위한 패싸움이 현실변화를 고려한 근본적인 교육제도의 개선없이 임시방편적인 정책만을 양산하게 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국가의 발전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더불어 교육개혁이 전세계적으로 있어왔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의 교육대개혁은 하나같이 교육관료의 관료주의적 관행을 일소하고 교사들의 자율성과 창발성을 강조하여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폭넓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폭넓고 깊은 독서교육을 통한 준비와 지식과 기능의 학습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오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세 나라만은 관료주의가 중심이 되어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으로 해서 관료주의적 폐해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의 교육현실을 조망하고 개혁하고자 바라보는 카메라의 렌즈는 처음 아이들의 의식으로부터 화장실에서 학교로 교육현실과 사회현실로 정부의 관료주의적 행태와 국가현실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그 렌즈의 촛점을 다시 우리 스스로의 마음 속으로 돌려야 할 때다. 내 삶이 보다 의미있어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 내 아이의 삶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반성해보고 작은 실천을 해야 할 때이다. 국가의 정책과 관료주의적 행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바른 생각, 삶을 바라보는 보다 성숙한 태도와 가치관이 아닐까? 

  우리들에게 교육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아이들에겐 삶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반란의 메세지가 "엄마, 아빠,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해요"하고 간절하게 외치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보내오는 간절한 도움의 손길을 우리는 왜 듣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학교라는 우리가 이미 우리 아이들이 자라기엔 너무나도 좁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지 못할까? 사회현실이 어쩌니, 교육현실이 어쩌니 하고 늘 우리는 불평은 하면서도 그 사회구조 속에 묻혀 안주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남탓, 제도탓, 세상탓 하기 전에 우리들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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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4-0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권의 교육보다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 주는 것, 그들이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 멀고 아득합니다. 우리가 딛는 작은 한 발자국이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나비의 날개짓처럼 퍼져나가길 바랄뿐입니다.

달팽이 2005-04-0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공감합니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김상복 지음, 장차현실 그림 / 21세기북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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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때로는 가정 내의 불화와 무관심이 아이들의 얼굴에 그림자로 드리워지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럴 때 담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안타까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러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하여 19여 년 동안을 교직에 몸담아 온 현직교사가 시도한 도덕 수행평가의 내용을 간추려 묶은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들의 행동을 관심을 가지고 잘 지켜보면서 부모들의 좋은 행동에 대해 칭찬하기의 내용이다. 이 칭찬을 통해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라는 인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한 가족이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되는가? 더구나 형식적인 대화말고 정말 인간적이고 가족으로서의 정을 주고받는 대화는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식사시간에도 말을 하면 음식물이 튀니 조용히 식사나 해라는 태도를 취하며, 텔레비젼을 시청할 때에도 역시 대화는 되지 않는다. 더구나 올림픽이라든지 스포츠시즌이나 좋아하는 드라마에 빠져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가족간의 허물없는 대화의 시간은 찾아보기 힘이 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대화의 부족 속에, 가족간의 인간적인 신뢰감의 상실과 감정의 메마름 속에 고통받고 상처받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난과 갈수록 힘들어지는 직장생활의 노곤함 속에서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작은 칭찬의 말 한마디가 부모들의 두 어깨 위에 지고 있는 천근만근의 짐을 가볍게 하며, 삶의 고통을 극복해나갈 마음의 의지처가 된다.  더구나 이러한 칭찬을 통해 말로는 표현되지 않았던 가족들간의 신뢰감과 사랑이 확인될 때에는 기쁨으로 가슴을 적시게 한다. 

칭찬을 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출발하여 그 행위의 이면에 놓여진 마음을 이해하여야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족간의 배려심과 공감을 키워가게 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알게 모르게 쌓였던 오해와 감정의 골이 해소되는 등 정서적인 면에서의 순화작용도 크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소외와 무관심의 벽이 작은 웃음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한마디의 말로서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야말로 사소한 칭찬의 말 한다디가 얼어붙은 감정의 골짜기를 녹여서 봄의 시냇물처럼 경쾌한 마음의 여울물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런 노력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작은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로 세계로 마음을 열어 놓게 된다면 우리 사회와 세상을 밝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인간답게 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만화를 통해 보여진 아이들의 실험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들을 보며 배를 잡고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감당할 수 없는 웃음 이면에 잔잔히 가슴을 울려오는 감동을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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