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서재를 만들면서 마음 먹기를, 책에 관해서는 좋은 얘기만 하자는 것이었다. 남이 열심히 쓰고 만든 책에 대해 나쁘게 말할 깜냥도 안 된다. 어떻게 만든 책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말로 작가와 편집자를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분들은 많이 있으니까. 나는 적어도 책에 관한 한 즐거운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 해야겠다. '어린이 자기계발서' 카테고리에서 이런 책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표지를 내 서재에 올려놓기도 싫다)

제목

서울대를 꿈꾸는 소년 소녀가 알아야 할- 초등학생 때 공부해야 하는 17가지 이유 & 과목별 공부 이유와 공부 방법

목차

제 1 장 초등학생 때 공부해야 하는 이유
1. 중.고등학교 공부쯤은 문제없게 돼
2. 외모보다 더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3. 아이스크림 고르듯 대학을 골라갈 수 있어
4.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할 수 있어.
5.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잡을 수 있어.
6. 아는 게 많으면 정말 먹고 싶은 것도 많아져
7. 많은 사람들이 너를 기억할 수 있게 돼
8.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어
9.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어
10. 남보다 좋은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어
11. 좋은 성적표 말고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12. 실패할 확률이 적어져
13.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아져
14.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
15. 가만히 앉아서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어
16. 쓰면 쓸수록 더 좋아지는 머리
17. 내가 나라의 힘을 키울 수 있어

제 2 장 과목별 공부 이유와 공부 방법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외모보다 괜찮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더 빨리 부자가 되기 위해서, 외국에 나갈 기회를 얻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다. 공부를 잘 하면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거다. 공부를 못하면 당연히 그 반대겠지. 평가가 나빠지고 사람들에게 잊히고 가난해지고 외국에 못 나가고 가족이 불행해진다는 것이겠지. 공부를 잘하면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단다. 반대로 공부를 못하는 어린이는 당당할 수도, 자신만만할 수도 없다는 거 아냐. 이걸 말이라고 한다. 이걸 책이라고 냈다. 심지어 거의 똑같은 제목과 표지의 책이 2006년에도 나온바 있다. 잘하는 일이라고 새로 내기까지 한 것이다. 쓰고 만드는 노고와 별개의 문제로, 세상에는 만들어선 안 되는 책도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어린이책은.

 

표지를 보니, 이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명의 어린이라도 이 책을 볼 것이 두렵다. 아니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이 책을 볼 것이 두렵다. 아니 이 목록을 작성하고 앉아있었을 어른들이 무섭다. 이런 책이 나오고 있는 세상이 무섭다. 얄팍한 기획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런 책이 나오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읽지도 않은 (그럴 리도 없는) 이 책에 대해 굳이 이렇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은, 제발 "어린이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의 책을 고르는 어른들이, 정말이지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나는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서 놀기만 하고 공부는 안하는 자녀를 둔 갑갑한 심정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혀가면서 공부를 시키고 싶은 부모도 있는 것일까? 샤방샤방한 만화 주인공을 표지에 그려놓고 가벼운 읽을거리로 꾸며서 이걸, 애들한테 주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어른들 사라고 이런 책을 내는 걸까? 이게 정말 '자기계발'일까? 늘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해던 말을 오늘은 해야겠다. 모든 '어린이 자기계발서'가 이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기계발서'가 어린이에게 정말 필요할까? 어린이에게 유익하고도 유일한 자기계발은 이따위 책이 아니라 어른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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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12-1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분노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근데 말이죠..공급도 공급이지만 수요도 참 문제 많습니다.
저 책 사서 읽는다고 책대로 될까요..??

네꼬 2008-12-10 21:37   좋아요 0 | URL
네. 너무 화가 나서 저 목록을 복사해 오면서도 심장이 다 두근거렸어요. 팔린다고 판단되니까 저런 책을 쓰고 만들겠지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_-

조선인 2008-12-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포님 말에 안타깝게 동조합니다. 수요가 많아요. 너무 많아요. 반갑게 인사나누던 이웃이어느날 보면 자식교육에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 때마다 슬퍼져요. 아주 슬퍼져요.

네꼬 2008-12-10 21:38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오래간만에 뵈어요. (그런데 이런 글로. ㅠㅠ) 자식교육에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이 페이퍼를 쓰면서 자꾸만 슬퍼졌어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12-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랍군요.. 정말 이런 책이 있단 말입니까 -.-

네꼬 2008-12-10 21:42   좋아요 0 | URL
정말 놀랍지요. 저는 이런 종류의 책을 들추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거예요.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더 믿어지지 않아요.

2008-12-10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12-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천박한 정서가 두려움을 넘어서 슬퍼집니다. 미친 교육이에요.

네꼬 2008-12-10 21:47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제가 느낀 감정의 순서가 그랬어요. 화가 나다가 무섭다가 슬퍼지더라고요. 말 그대로 미친 교육이에요. 저 목차를 보고 있노라면 무서워요. 무섭고 슬퍼요.

마늘빵 2008-12-1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거 저자 누굽니까. 아주 올해는 분노할 것들 천지여서 감정이 남아나질 않아요.

네꼬 2008-12-10 22:2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상품 넣기'로 이미지를 넣었다가 차마 봐줄 수가 없어서 그냥 제목만 적었어요. 정말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쓰고 만든 거라고 믿고 싶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올해에는 분노할 일이 너무 많아요. ㅠㅠ

웽스북스 2008-12-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만든 거라고...라니...
아, 네꼬님은 천사에요 정말.

저 책을 읽고 자란 아이가 키우는 나라의 힘은 어떨까요..
갑자기 소름이 돋아요

네꼬 2008-12-16 09:51   좋아요 0 | URL
만에 하나 정말 사정이 있어서 만든 책이라면 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거잖아요. (소심하다 못해 이건 뭐...) 저는 이런 애들이 힘 세게 키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 죽겠어요.

순오기 2008-12-11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말고사 시즌이거든요~ 초등1학년부터 올백 맞으면
닌텐도 사준다, 핸폰 해준다, 외식 한다...
애들이 와서 다 이런 얘기만 해요~ 정말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더라고요.
부모들이 나빠요, 거기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게 더 한심하고요.ㅜㅜ
적어도 공부 잘하면 뭘 해주겠다~ 이러지는 않았지만...

네꼬 2008-12-16 09:53   좋아요 0 | URL
공부를 왜 하는지, 물론 저도 잘 모르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이건 정말 아니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공부=물질" 이런 공식을 몸에 익힌 아이들이니, 어른이 되어서 지식을 악용하고 학력을 남을 무시하는 도구로 삼는 저열한 인간이 되겠지요. 아아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가 나빠요. ㅠㅠ

mong 2008-12-1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닥파닥 $%#@*&#

네꼬 2008-12-16 09:53   좋아요 0 | URL
으르렁 컹컹. 꽥꽥. 글썽글썽.

nada 2008-12-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요. 저런 사람들은 자기네들 나라 만들어서 명박이 대통령이랑 같이 살라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다른 나라에서 살면 안 될까요. 저 책 기획한 사람 얼굴 좀 보고 싶네. 사회가 괴물들을 길러내고 있어요.

네꼬 2008-12-16 09:55   좋아요 0 | URL
이 댓글에 추천 한 표요. ㅠㅠ 저도 그냥 헤어졌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하 저 분류의 인간들과 정말 헤어지고 싶어요. 아니 저 괴물들과 헤어지고 싶어. 엉엉.

BRINY 2008-12-1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어릴 때부터 저런 걸 알아야 편하게 사는 게 맞나?하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요즘 직장인 처세술 보면, 치사한 거 투성이더라구요. 그게 현명하다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저도 꽃양배추님처럼 저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잘 살라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돈, 돈'거리지 말고 따로 살았음 좋겠어요.

네꼬 2008-12-16 09: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치사한 게 곧 현명한 것인양 포장되고 있어요. 이러고 살아야 되나 싶어서 이따금은 그런 마음들이 짠하게 느껴지는데, 이젠 그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우리끼리 살아요, 우리끼리. ㅠㅠ

무스탕 2008-12-1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자라는 작자는 자기 초딩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자기가 한 대로 너그들도 살아라 그러는건지 자기는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너그들은 다르게 살아라 하는건지..
이런 종류의 책들을 만들때 겨냥층이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부모라고 생각하세요?
한 명의 정신나간 사람(한명인지 여러명인지 모르겠지만..)이 뭐가 씌워서 저런 웃지기도 않는 책나부랭이를 만들었어도 소비자 층에서 웃겨~ 증말!! 하고 외면해야 할텐데 기다렸다는듯이 낚아채는 부모들이 있어서 문제가 더 큰거에요.
파란 아이들이 시들어가고 있어요.. ㅠ_ㅠ

네꼬 2008-12-16 09:59   좋아요 0 | URL
책 표지를 보면 그 조악함에 경악하게 돼요. 학교 앞 문방구나 마트 가판대에서 볼 수 있는 얄팍한 종류의 책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죠. 아이들이 "재미있는 책"인 줄 알고 별 뜻없이 읽기 시작할 거고, 이런 모양새의 책은 아이들에게 저항이 적으니 쉽게 받아들여질 거고, 게다가 부모가 아이에게 주기도 딱 좋고. 이런 무시무시한 악순환을 생각하면 "웃겨 증말" 하고 넘어가려다가도 마음이 서늘해져요. 아아. 어떡하죠.

노이에자이트 2008-12-1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사독재보다 더 무서운 부모독재...밤늦게까지 학교에 붙잡아 두고 강제학습 시키는 것도 심각한 인권유린인데요...

네꼬 2008-12-16 10: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군사독재보다 무서운 부모독재. 저는 모 학습지 광고에서 "공부가 그렇게 좋으면 공부랑 살지 왜 우리랑 사니?" 하는 카피에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말을 하는 형은 골칫덩어리 푼수로 나오는데, 저는 그애의 의견에 한 표거든요. 애들이 놀아야지. 동생을 꼬드겨 놀자고 하는 형울 무시하고 문을 닫아버리는 엄마를, 웃어넘겨야 될까요?

몽당연필 2008-12-13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큰아이가 2학년인데요.
어떤 반 선생님은 아이 성적이 나쁘면 엄마한테 아이 학원 좀 보내라는 얘길 하신다더군요.
그 얘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학교가 뭐하는 곳인데!! ㅠㅠ

네꼬 2008-12-16 10:02   좋아요 0 | URL
이제 학교는 스스로 자기 역할을 포기하는 모양입니다. 학교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란 말입니까. ㅠㅠ 이건 정말 "미친 교육"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2학년인데 이미 이러면 어떡해요. 애들 불쌍해서 어떡해요. ㅠㅠ)

치니 2008-12-1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순간 저도 심장이 두근, 눈물이 왈칵 나려고 하네요. 네꼬님의 분노가 그대로 옮아옵니다.
그런데 14년간 애 키워 온 저는 '어린이 자기 계발서'라는 종목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렇다고 이런 책 사 볼 부모가 적다고 생각해도 되는지, 그건 의심스럽지만요.
저거 저거, 불매운동이라도 하면 안되나. 휴휴.

네꼬 2008-12-16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아예 맘 먹고 이 "어린이 자기계발서" 카테고리의 책들을 살펴보니 가관이더라고요. 사실 저는 "어휴, 무슨, 어린이들한테 가치관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냐?" 하는 우려를 갖고 있었는데, 맘 먹고 들여다보니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슬퍼지기까지 했어요. (이런 책 사 보는 부모가 결코 적지 않다고 봐요, 전.)

2008-12-21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3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쟈니 2008-12-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목차 첫줄부터 가슴을 막막하게 만드는군요. 한국에서 교육은 곧 돈과 출세의 과정이라고 거침없이 말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까지 저렇게 말하고 이런 책을 만드는 건 너무 창피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아침이네요..

네꼬 2008-12-27 17:22   좋아요 0 | URL
쟈니님, 안녕하세요.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 무섭고 슬픈 마음. 그런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잘 지켜내보아요.

2008-12-24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7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6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1941)



눈 쌓인 산속, 급히 제 집을 찾아 뛰어가던 토끼가 푹푹 눈구덩이에 빠지기도 하는 한겨울, '마을에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온다. 마을은 구수한 즐거움에 들떠 흥성흥성 하다. 뽀오얀 흰 김이 온마을에 가득하다.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나 한 마을에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이것이 온다. 아버지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이것이 담겨 있다. 아마도 옛이야기의 옛이야기 속에서부터 온 듯, '곰의 잔등에 업혀서' 자란 큰 어머니와 재채기를 한번 하면 산너머 마을까지 들렸다는 호방한 큰 아버지가 여기에 함께 온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과 어울리는 이것. 산짐승과 전설과 대대로 함께 사는 이 억세고 동시에 순연한 마을 사람들과,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 마을을 온통 잔치 분위기로 만들어버리는 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 함박눈과 똑같은 색깔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

 

KBS에서 해주는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볼 기대에, 주말에 잔치국수를 해보았다. 재료를 듬뿍 넣은 덕에 국물은 썩 괜찮았는데 도무지 양념장이 맘에 들지 않았다. 엄마가 해준 국수는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일요일 오후에는 필요한 책이 있어서 도서관에 갔다가 (예상했던 대로) 찾으려던 책은 까맣게 잊고 엉뚱한 서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창 밖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당연한 순서로 이 시가 생각났다. 그제야 나는 내 국수가 실패한 것은 어쩌면 흥성흥성 들뜬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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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훈훈한 풍경. 마치 임시 멈춤을 눌러놓고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고 싶어지는 풍경이에요. 책을 펼쳐보다가 문득 창 밖을 바라보는 네꼬님, 그리고 쏟아지는 함박눈. 빙그레 퍼지는 그 미소까지. 너무 근사한걸요!

네꼬 2008-12-08 23:07   좋아요 0 | URL
모든 게 다 국수 덕분이에요. 이 훈훈한 풍경. (그러고 보니 나는 또 먹는 얘길 썼구나.-_-) 그날 도서관에 있는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마노아님, 우리 다음에 만나면 국수 먹으러 가요. 후훗. 난 멸치다시마 국물이 너무 좋아.

:)

Mephistopheles 2008-12-0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국수....삼실 주변에 불고기집이 하나 있어요..그 집 냉면이 요즘 냉면값마냥 7천원이나 받아먹는데...얌체같이 주다 만것같은 면발이 아니라 아주 푸짐하게 줍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인가 아 갈등이....^^(사실 그집 만두국도 죽여준다는..)

네꼬 2008-12-10 12:02   좋아요 0 | URL
냉면요? 고기 먹고 냉면요? 제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고기 먹고 냉면요? ^^ 냉면도 좋지요. 어른들은 냉면을 겨울에도 먹는다던데 올겨울엔 좀 시도해볼까봐요. (앗 입에 침이..)

Mephistopheles 2008-12-10 12:28   좋아요 0 | URL
냉면은...겨울에 먹어야..제 맛~~~

네꼬 2008-12-10 13:17   좋아요 0 | URL
겨울 냉면, 먹어 본 다음에 보고하겠습니다!

순오기 2008-12-0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첫머리 읽으며 '백석이다!' 외쳤어요~
저도 이 시 분위기 너무 좋아요~~~ 흠흠^^
저는 예전에 누가 송정리 시장통에서 사골국물 같은 것에 만 국수를 사줘서 먹었거든요.
어제부터 사골 국물 먹으며 우리애들한테 그 얘기했더니 자기들도 먹고 싶대요.ㅋㅋ
아마도 수일내 달걀 황백지단 살살 얹은 곰탕국수(?) 처녀작이 나올 듯해요.^^

네꼬 2008-12-10 12: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백석 좋아하시는군요. 첫머리를 보고 알아보실 만큼요.
저기 먼 데서 출발해 마을을 들뜨게 하고 부엌까지 성큼 차지하는 '국수' 이미지 참 좋지요. 그래서 그런가, 순오기님의 곰탕국수 처녀작도 벌써 모니터 밖으로 나와버렸어요. 하하.

웽스북스 2008-12-0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파배고파배고파요 네꼬님 미워요 ㅜㅜ

네꼬 2008-12-10 12:03   좋아요 0 | URL
나는 웬디양님 예쁜데 :)

무해한모리군 2008-12-0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음식보다 잔치국수는 엄마가 해주는 그 맛이 잘안나요.
배가 터지려고 할때까지 한솥은 먹을 수 있는데.
제가 한 건 뭔가 심심한 맛이 나요. ^^
네꼬님의 먹는 얘기 릴레이~

네꼬 2008-12-10 12: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잔치국수를 만드는 엄마들만의 비법이 있나봐요. 내가 보기엔 그냥 멸치랑 다시마만 넣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가봐요.

먹는 얘기 릴레이를 하려고 그런 건 아닌데, 왜 저는 자꾸만 그렇게 될까요?

도넛공주 2008-12-0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맨 먹는 얘기구만요! 다이어트중이신가요?

네꼬 2008-12-10 12:05   좋아요 0 | URL
하하. 다이어트의 보상심리로 먹는 얘기를? 에이, 보셔서 아시잖아요. 저는 다이어트를 해내지 못하는 강단 없는 고양이라는 걸. ㅋㅋ

노이에자이트 2008-12-0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군요.정지용만큼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네꼬 2008-12-10 13:09   좋아요 0 | URL
모르는 말이 많이 나와서 한번에 읽기는 어렵지만 자꾸 읽다보면 어쩐지 알 것도 같고(이것이 바로 독서백편의자현?) 좋아요. 알라딘에도 백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10 13:37   좋아요 0 | URL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독서는 의자에 앉아서 백번 읽으라는 뜻이라던데요.

네꼬 2008-12-10 14:01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이 이런 농담을 하시다니... 확 인간적이세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1 14:30   좋아요 0 | URL
이런 농담 잘합니다.그래서 인기가 많지요.

네꼬 2008-12-23 00:21   좋아요 0 | URL
하하 노자님, 이 재미난 댓글에 답을 달 때를 놓쳤어요. 노자님의 저 머리 긁적 퍼스나콘과 함께 읽으니 더욱 실감(?)나는 댓글. ㅋㅋ 앞으로도 이런 유머 기대하겠어요!

치니 2008-12-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몇 줄 읽으면서, 아 백석이구나 싶었는데 정말 백석이라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어요.
도서관 가면 저도 항상 그래요, 찾으려 했던 책을 잊고 다른 책들을 한없이 기웃거리고 있죠. 하지만 그게 싫지도 않고. 그래서 도서관에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거 같아요.
또 그제처럼 눈이 펑펑 왔음 좋겠네요 ~

네꼬 2008-12-10 13:10   좋아요 0 | URL
딱 보고 백석 시인줄 알아버리다니 치니님 내공이.. @.@ 도서관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를 늘 헤매게 할까요. 맞아요, 치니님 말씀대로 그래서 도서관에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헤매기 위해서요. ^^

nada 2008-12-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아니었으면 근사한 다큐멘터리 놓칠 뻔했네요. 꼭 챙겨봐야지. 함박눈이 내리던 날. 저도 그 시간에 도서관에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 밖으로 눈구경하면서 행복했어요. 네꼬님이 읽어주는 시, 참 맛있어요. 히.

네꼬 2008-12-10 13:12   좋아요 0 | URL
도서관 창문으로 보는 함박눈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뭔가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 (이 무슨 소리?) '누들로드'는 8부작이래요. 지난 일요일에 본 게 첫회였는데, 인트로라 그런지 아직은 가닥이 잘 안 잡혔어요. (CG가 살짝 과하단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당분간 주말을 국수와 함께 여행다닐 생각을 하니 기분 좋아요. 다음엔 다른 맛 시를 읽어드리지. 싱긋.

무스탕 2008-12-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들로드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놓쳤어요.. ㅠ_ㅠ
울 엄니가 가끔 멸치국물내서 국수 삶아서 양념장만 끼얹어 먹는 초간단 국수를 해주시는데 참 입맛 깔끔하니 좋아요.

네꼬 2008-12-10 13:13   좋아요 0 | URL
울지 마시고 다시보기를... ㅋㅋ 위에도 썼지만 첫회는 그냥 머 그랬어요. 다음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될 듯하니 울지 말고 그걸 보시어요. 무스탕님네 어머니도 역시 국수의 달인이셨던 것? 엄마들은 다 그런가? 킁.

mong 2008-12-0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들로드 음악을 윤상이 하고 있다지요
그래서 더 관심이 쏠랑-
(그래요그래요 저 국수 좋아해요~~)
겨울엔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서 책장이나 훌렁훌렁 넘기다가
시원한 국물 후룩 마시는게 최고인데 말이에요...
(집에 가고 싶다 ㅜ.ㅡ)

네꼬 2008-12-10 13: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음악감독이 윤상이더라고요. 프로그램 이름에 맞게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더이다. (그게 전통음악인지 아닌지 사실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방 안에서 뒹굴면서 나쁜 자세로 책을 읽다가 기지개 쫘아아악 펴고 한 그릇 뚝딱 말아 마시는 국수. 츱. (나도 집에 가고 싶다)

2008-12-09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달 동안 나는 아주 많이 바빴다. 주로 남의 말을 듣거나 남의 글을 읽거나 남의 얘기를 남에게 전해주는 일이었다. 일을 정리하고 나면 늘 그렇듯이, 내가 아는 단어는 다 써버린 것 같다.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볼품없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돌돌돌 소리를 내며 굴러다닌다. 설상가상으로 이 단어들을 어떤 순서로 연결해야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노트북의 먼지를 털고 서재에 들어와 오래간만에 여기저기 참견하기로 작정했는데, 이 집 저 집 기웃거려보니 다들 참 안녕하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다들, 어휘는 산술급수로 늘고 그 조합으로 인한 아름다운 문장은 기하급수로 느셨다. 입이 딱 벌어지게 똑똑하거나, 눈부시게 아름답거나, 진저리 치게 찐득거리거나, 못 견디게 귀엽거나, 다들.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진 나는 정말이지 부럽고 서러워서 콱 울어버릴까 생각했다.

*

아침에 동거녀가 끓여 놓은 (네꼬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무국을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출근을 하기가 싫었다. 메신저로 "언니, 나 출근 안 하고 두 시간 있다가 한번 더 먹고 싶었어. 사람들이 저마다 보온병에 소고기무국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는 문화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입은 아직도 그 맛을 그리워해"라고 했더니 동거녀는 "그것 참 절절한 표현이다"라고 답을 보내왔다. 그럴 거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진심이니까. 진심은 그렇게 눈에 보이게 마련이니까. 그러다가 며칠 전에 읽은 아주 좋은 소설이 생각났다.

나는 아주 좋은 소설을 읽었다.

 

 

 

 

 

 

 

 

자극적인 소재, 신묘한 기법, 시끄러운 대화, 야단스러운 여행, 과도한 자의식.... 이 난무하는 '요즘' 소설에 물렸다면, 또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소설의 미래라고 믿고 있다면 꼭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 어떤 것이 소설이 되는가, 혹은 어떤 사람이 소설을 쓰는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읽는 동안도 그렇지만 책을 덮은 뒤 지금까지도 내내 이 소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다. 잔잔하고 따뜻한 물결이 가만가만 내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특히「달빛 고양이」(응? 그러고 보니 고양이가 있었네)가 나는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작가 스스로가 따뜻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가 착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작가 스스로가 능청맞지 않고서야, 작가 스스로가 독자에게 손을 뻗어 아픈 배를 문질러주려하지 않고서야. 계획과 틈새를 노린 취재와 야심만으로는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낫다. 내 비록 단어는 많이 잊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고양이라오.

*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떠들썩한 모임을 갖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갔는데, 올해에는 아무 준비를 못 했다.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말해준다는 '어바웃 어 보이' 영화 속의 대사를 안 들었어야 하는 건데.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꺼내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건 꽤 두꺼운 책이고,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데다가, 또 나는 워낙 책을 읽는 데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이 책만 읽을 게 아니고 이 책 저 책 기웃대며 해찰을 부릴 거니까, 어렵지 않게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이 책을 붙잡고 있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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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8-12-0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은 엄마가 감자와 무를 넣고 고등어 조림을 해주신댔어요. 우리는 다리 건너 마트에 가서 등이 퍼렇고 눈알이 땡땡한 고등어를 세마리나 끊어 왔어요. 저는 캔맥주 여섯깡을 몰래 카트에 넣었다가 등짝을 맞았구요. 이제 맥주는 다섯깡밖에 안 남았죠. 밤이 깊어가는데 저는 잠이 안 와요. 달디단 무와 파삭한 감자 위에 고등어살을 얹어 밥을 한숟갈 크게 떠먹는 모습을 상상하느라구요. 어쩐지 이번 겨울을 씩씩하게 날 수 있을 것만 같애요.


저한텐 감각이 출중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저는 늘 말하길 그 녀석이 "이봐, 네게 어울릴 옷과 가방을 봤는데 사다 줄까"하면 색깔도 묻지 않고 오케이 하겠다구요. 네꼬님이 "아, 이건 좋은 책입니다" 했던 책은 한번도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 이 책을 살 거에요. 최근에 제가 도서관을 다니면서 책 사는 일에 인색해졌는데, 네꼬님은 확실히 지름신이 보낸 스파이 요정인게 분명해요, 흠흠.


그나저나 전 왜 페이퍼 내용보다 더 긴 댓글을 달고 있는 걸까요? 제가 네꼬님한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디-게 많았는가 봐요. 네꼬님 글을 읽으면 제 마음은 보온병 속에 담긴 소고기무국 같아져요(네꼬님이 귀엽다는 짓은 꼭 두번씩 하는 오즈마) 자, 제 마음, 사양말고 어서 후루룩 들이키세요. 네꼬님을 좋아라하는 제 마음은 퍼내도 퍼내도 솟구치는 소고기무국의 화수분 같은 거거든요(아, 이런 짭짤한 고백이라니!)



다락방 2008-12-03 08:47   좋아요 0 | URL
오즈마님 댓글보다 제 댓글이 길지롱요~~ ㅎㅎ

네꼬 2008-12-03 08:48   좋아요 0 | URL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에겐 고등어 알레르기가 있어요. (젠장) 그것만 아니라면 온세상 생선을 섭렵하는 건데! 어렸을 때 먹어본 고등어 맛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질 않아요. 삼치와 비슷할까? 이렇게 말하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군요. "무와 파삭한 감자 위" 고등어살이라니. 나는 그 맛도 모르는 주제에 그만 입이 딱 벌어졌어요. T.T (<-눈은 이렇게.)

오즈마님의 친구분은 감각이 출중하기도 하겠지만 오즈마님의 취향을, 아니 "오즈마"님을 아주 잘 아시는 분이겠군요. 그건 자기만 감각이 좋아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오즈마님과 제가 책으로 통하는 것은 아마 우리가 비슷하기 때문일 거예요. (저의 감각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말이 돼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것일 테니까. (호홋. 또 느끼한 네꼬씨.)

고등어조림 상상에 빠져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자, 여기 제가 소고기무국을 한 잔 대접합니다. 후추 넣으세요? ("시럽 넣으세요?" 어조로.)

네꼬 2008-12-03 08:49   좋아요 0 | URL
다락님 하핫 웃기고 좋아요 (와락!)

Mephistopheles 2008-12-03 10:11   좋아요 0 | URL
제주도 가면 밥 먹을때마다 올라오는게 "고등어"인데...그건도 간고등어가 아닌 "생물"로 말입니다..=3=3=3=3=3

네꼬 2008-12-03 22:05   좋아요 0 | URL
메피님. 또오 또오 또 이러신다. (아휴 다리야.) 거기 서요! =3=3=3

antitheme 2008-12-0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무국을 좋아하는데요..

네꼬 2008-12-03 08:51   좋아요 0 | URL
아, 얼큰한 소고기무국이 경상도식이었군요. 이 겨울엔 그 맛도 참 좋지요. (막 상상하고 있음.) 제가 그냥 소고기무국을 실컷 먹었다 싶으면 집에서도 한번 도전해볼게요. 그나저나 antitheme님 오래간만이어요!

마늘빵 2008-12-0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3주째 여관행이라는... -_ㅜ 나도 페이퍼질하고 싶어요.

네꼬 2008-12-03 08:52   좋아요 0 | URL
아유 아프님 누가 들으면 "엥? 이게 무슨 소리?" 할 소리. ㅋㅋ 일부터 하시고! (채찍 채찍)

마늘빵 2008-12-05 18:01   좋아요 0 | URL
응응? 이게 다르게 읽힐 수가 있구나. 아핫아핫. 여관행 이제 끝냈어요. 좀 쉬어야지.

네꼬 2008-12-08 08:43   좋아요 0 | URL
다르게? 다르게 어떻게? 응? 응? 하하. 농담이에요.

Mephistopheles 2008-12-0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퍼마시고 쓰린 속을 달래려고 아침에 먹는 해장국...
위장벽을 타고 내려가는 그 뜨거운 국물느낌이...참 가학적이면서도 오묘하다죠.^^

네꼬 2008-12-03 08:53   좋아요 0 | URL
ㅋㅋ 메피님, 뜨거운 국물의 느낌이 가학적이라니 소리 내어 웃었어요. 메피님은 해장국으로 무얼 드시나요? 소고기무국을 드신다는 거? 저는 무엇이든 단백질이 가득한(!) 국으로 해장하는 게 좋아요. :)

Mephistopheles 2008-12-03 10:12   좋아요 0 | URL
제주도에서 먹은 쇠고기 해장국 맛은 정말 잊을 수 없고..집 앞에 있는 콩나물 해장국도 좋죠..^^

네꼬 2008-12-03 22:07   좋아요 0 | URL
소고기 해장국! 끄핫. 좋지요. 저는 콩나물 해장국은 썩 좋아하지 않아요. 전 이상하게 콩나물이 별로예요. (그래 봐야 남들 두 배로 먹지만.) 차라리 황태 해장국이 좋음. 음.....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내일 해장국 먹게 저 인제 술 마실래요.

웽스북스 2008-12-03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소고기국에 더 마음을 줘야할지, 아니면 네꼬님이 추천한 책에 더 마음을 줘야할지, 혼자 '우열'을 못가리고 있어요. 그냥 둘다 '우우' 해야겠다. (우우우우 야유소리가 들려오나? ㅋㅋ)

네꼬님. 격하게 반가워요. 서재 글 보니 또 더반갑네. 흐흣.

네꼬 2008-12-03 08:55   좋아요 0 | URL
소고기무국이랑 경쟁한다면 솔직히 어떤 책도 배겨내질 못하죠. 먼저 소고기국을 좋아하시고 그 다음에 책을 보시면 어떨까요. 둘 다 '우우'라니 이런 웬디양님같으니라고. =^^= '문득'이라곤 하지만 그게 몇 번째 '문득'이었나 몰라요. 알죠 알죠?

turnleft 2008-12-03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쓰는 밤>은 보관함에 담았어요. 땡큐~
<스밀라...>는.. 음.. 번역이 안 좋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으시길..;;

네꼬 2008-12-03 08:58   좋아요 0 | URL
<소설 쓰는 밤>은 언제 느긋한 마음으로 보시길 권해요. 아주 착하도 따뜻하면서도 통찰력이 있는 소설이었어요, 저에게는.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스밀라...>는 전에 읽었는데 잘 생각이 안 나요. 문장을 더듬더듬 읽게 되는 게 특유의 서정성이나 낯선 문법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번역이 안 좋은 건가요? (당최 알 수가...) 그래도 스밀라가 좋으니까 어떻게 잘 해볼게요.

L.SHIN 2008-12-03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추천 감사해요. (쓱쓱- 잘했다고 네팡 고양이 머리 쓰다듬어 주기 ^^)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책을 낸다면 네팡이 리뷰를 써주면 참 좋겠다고.
아무리 형편없어도 네팡은 다정하게 써주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지만 역시 나는 밝히지 않는 쪽의 확률이 더 많을겁니다.
역시, 작정하고 쓴 글은 아는 사람이 읽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쑥쓰럽거든요.(웃음)

그러나, 덕분에, 동시에,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 라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네꼬 2008-12-03 09:29   좋아요 0 | URL
호홋. 으쓱으쓱.

쿠션님이 책을 내시면 제가 리뷰를 온 동네에 쓰고 다닐 테니 맡겨만 주세요. 다정한 버전과 웃긴 버전을 번갈아... ㅋㅋ 얼른 써보세요. 여름과 겨울의 이야기처럼 찡한 걸로.

다락방 2008-12-0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아주 오래전에, 정말이지 오래전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영화로 봤어요. 영화제목은 [센스 오브 스노우]였어요. '할리 조엘 오스먼트'와 '줄리아 오몬드'가 출연하는 영화였죠. 그 영화가 아주 영, 못마땅했어요, 저는. 그런데 친구가 이 책이 너무 좋다며 선물해 주었거든요. 한 세장쯤 읽다가 아, 이건 예전에 본 영화랑 분위기가 비슷한데? 하며 책 표지를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 영화더군요.

친구가 선물해 준 책을 출근하는 지하철안에서 읽다가 강남역에 도착해서 내리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이 책의 모서리가 계단을 내려오던 어떤 아저씨를 치고 말았어요. 아저씨는 제게 화를 버럭 내시며 "책 똑바로 들고다녀!"하셨어요. 저는 그 아저씨가 아, 라고 소리를 낸 순간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질 못했어요. 바보 같은 눈으로 그 아저씨를 보기만 했어요. 아, 다시 생각해도 싫다, 정말.

그때부터 저 책이 싫어졌어요. 스밀라고 뭐고, 눈에 대한 감각이 있건 없건 암튼 싫었어요. 영화도 개떡같고 책도 개떡같아,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주변에 들리는 거라곤 온통 스밀라에 대한 예찬뿐이예요. 아, 어떡해요, 정말?

그래서,
다시 읽기로 결심했어요. 다시 읽자, 다시 읽어보자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읽어보자고.

저는 사람들이 극찬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도 그게 무언지 알고 싶어요. 그런데, 뭐가 좋다는 걸까, 하고 요시모토 바나나를 여섯권 읽었는데 저는 안 좋았어요. 뭐가 좋다는 걸까, 하고 알랭 드 보통을 다섯권 읽었는데 도무지 좋아지질 않아요.

스밀라는 좋아질까요?


(앗. 쓰고 나니 이 댓글은 그대로 하나의 사연이 되어버렸네 -.-)

마노아 2008-12-03 08:56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요시모토 바나나 별로예요. 제일 무난하다는 키친이 너무 별로여서 다른 책은 쳐다도 보질 않아요. 보통도 그렇다는 건 알고 있죠? ^^;;

2008-12-03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12-03 21:27   좋아요 0 | URL
다락님.
잘 아시겠지만 저는 취향이 그렇게 독특한 편이 아닌데도 이따금 다들 열광하는 것에 혼자 시큰둥해서 스스로도 의아할 때가 있어요. 다만 책을 별로 안 읽다 보니 이렇다 하고 예를 들 게 없... 다고 말하려고 그랬거든요. 근데근데 나도나도. 나도 이상하게 요시모토 바나나를 읽으면 킁킁 소리가 절로 나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서 몇 권 더 읽어봤는데 여전히 그래요. 나만 그런 줄 알고 잠자코 있었는데. 우린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 (뭔 소리냐!)
그나저나 그 아저씨 참 이상하네. 기왕에 그런 소릴 들었는데 그냥 책으로 한대 치지 그러셨어요? 라고 말하는 한 편, 이 책의 (그것도) 모서리에 맞은 처지를 생각하니 (지금 잠시 책을 만지작거렸음) 아프긴 아팠겠다. 뭐, 아쉬운 대로 그걸로 됐어요. 매너꽝인 아저씨는 눈물이 쏙 나게 아팠을 거예요. 우리 함께 잊어요. 이 책은 저도 반쯤은 졸면서 읽었던 터라 잘 생각이 안 나요. 긁적긁적. 그저 눈과 석양에 대한 묘사가 하도 선명해서 내가 읽었으려니 하고 있는 거예요. 다락님이 스밀라를 좋아하게 될까? 내가 먼저 다시 만나보고 얘기해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마노아님.
(앗, 다락님, 여기 마노아님도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별로 친목계'원. ㅎㅎ) 전 마노아님이 이런 얘길 해주시면 어쩐지 안심이 되어요. 내 취향을 허락받은 기분? ㅎㅎ (좋댄다.)

다락방 2008-12-04 08:40   좋아요 0 | URL
알아요, 알아, 마노아님. ㅎㅎ

우리 연애하자니깐요. (응?)

네꼬 2008-12-04 09:09   좋아요 0 | URL
좋은데 왜 응?이에요. ㅎㅎ

마노아 2008-12-0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차가운 아침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따뜻한 네꼬님! 아, 쇠고기 무국 매니아가 될 것 같아요.
윤영수 작가의 착한 사람 문성현을 인상 깊게 보았어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는 작가구나... 라고 나는 감탄했더랬죠. 저 책도 챙겨볼게요. 스밀라-도 궁금하건만 번역이 별로라는 좌회전님 말씀에 잠시 움찔. 하지만 제가 원서 볼 재간이 있어야 말이지요. 스밀라- 리뷰가 올라오면 또 다시 나는 화르르 타오르고 말 거예요. ^^

네꼬 2008-12-03 21:32   좋아요 0 | URL
그건 다 소고기무국 덕분이에요. 우리가 모두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소고기무국의 맛을 연상하는 덕에 훈훈해졌어요. 하하핫.
저는 어떤 자리에서 윤영수 선생님을 멀리멀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완전 '착한 사람 윤영수'잖아" 했어요. 정말로 왕 착하게 생기셨음. 저런 인상을 가진 분이 어떻게 소설을 쓰나 싶었는데 소설은 인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었어요. -.- 이번에 이 책으로 만해문학상을 받으셨지요. 책을 읽고 나니 상을 괜히 받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오. (우리 스밀라는 번역 의심 말고 받아들이기로 해요. 얌전히. ㅋㅋ)

무스탕 2008-12-0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롱고롱고롱~~~

쇠고기무국을 몰고오신 네꼬님.
비록 네꼬님께서 쇠고기무국을 몰고오지 않으셨어도 반가워요.
쇠고기무국만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게 아니거든요.
네꼬님의 글에 베어있는 쇠고기무국 못지않은 그윽한 향기와 맛이 그 갑절은 좋아요.

네꼬 2008-12-03 21:35   좋아요 0 | URL
하하. 가릉가릉도 아니고 고롱고롱이에요? 어쩐지 무스탕님다운 인사예요. 저 '소고기무국을 물고 오신'으로 읽고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막 좋아했어요.

사실은 소고기보단 '쇠고기'라고 쓰는 게 좋죠. 둘 다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근데 전 어쩐지 '쇠고기'라고 하면 느낌이 덜 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소고기무국'이라고 하면 더 고소한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막 우긴다.) 아아 제 글에서 조금이라도 고깃국 냄새가 난다면 영광 영광! 왈왈.

보석 2008-12-0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엄마가 끓여주는 얼큰한 소고기무국이 막 먹고 싶습니다. 하...이번 주말에 한번 도전해볼까나...근데 만약에 내가 만든 음식에 누가 네꼬님처럼 진심 가득한 칭찬을 해주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다락방님/[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저도 다 못 읽었어요. 이상하게 자꾸 읽다 맥이 끊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웠습니다. 보통 책을 5권이나 읽으셨다니 전 감탄만 할 뿐;; 그 재미없는 걸;;;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전 모르겠더라고요. 그냥...내 취향에 맞는 책만 읽을래요.

네꼬 2008-12-03 21:39   좋아요 0 | URL
엄마가 끓여주는 국은 사실 일단 막강 파워죠. 물론 동거녀의 소고기무국이 맛있었던 것은 10000% 진심이지만, 엄마의 소고기무국은 또 스따일이 다르니까요. 왜 그럴까요? 엄마가 끓이는 건 대체로 많이 끓이기 때문에 더 깊은 맛이 나는 거라고들 하는데 그것 말고 분명히 뭔가 있어요. (혹시... 미원을 넣으시는 걸까?... 엄마 미안.) 보석님이 끓이는 소고기무국도 맛있을 거예요. 혹혹시 꼭 칭찬이 필요하시면 저한테 맛을 묘사해주세요. : )

다락님, 들으셨죠? 하하. "내 취향에 맞는 책만 읽을래요"래. 꼭 우리 같아요.

다락방 2008-12-04 08:39   좋아요 0 | URL
아, 보석님에 대한 애정이 막 급상승해요. ㅋㅋ

네꼬 2008-12-04 09:09   좋아요 0 | URL
나도 나도 나도

보석 2008-12-04 13:21   좋아요 0 | URL
두 분은 애정은 잘 갈무리해놓겠습니다. 나중에 몰래 꺼내 보면서 혼자 좋아해야지. 히히.

네꼬 2008-12-08 08:43   좋아요 0 | URL
자자, 우리 서로 하트를 남발하기로 해요.

순오기 2008-12-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네꼬님 떳다 하면 댓글이 주루룩~~ 소고기무국 예찬론이 활기차군요.^^
우리땐 특별한 날에만 먹던 소고기무국~~ 난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우리 애들에겐 잘 안 해주는 음식이고요.ㅜㅜ 어제는 호박에 삼치 큰놈 하나 넣고 조렸어요~ 고등어주림보다 삼치조림이 더 맛나지요. 내일은 감자 넣고 고등어조림 할거에요.^^
소설 쓰는 밤은 호감, 스밀라는 내가 읽긴 어려울 것 같아서 꽁무니 뺄래요.ㅋㅋ

네꼬 2008-12-03 21:43   좋아요 0 | URL
제가 아니라 소고기무국이 떠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페이퍼에 다른 얘기도 많은데. 예를 들어서 크리스마스이브 잘 준비하세요, 어머 데이트 상대가 줄을 섰을 것 같은데 왜 혼자 보내세요?. 선물로는 뭘 원하시나요 말만 해요 다 해줄게 이런 말씀은 전혀 없고 (퍽! 이러니까 없는 거다!) 모두들 각자가 아는 소고기무국 생각에 푹 빠지신 것 같아요.... 보람 차요. 하하. 순오기님 댓글에서 제일 좋은 말은 "삼치 큰놈". 아... 침이 고인다.

무해한모리군 2008-12-0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글은 참 맛깔나네요.
스밀라~는 언제 앞에 좀 보다가 '머리아픈데'하고 박아뒀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소설쓰는밤은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왠지 이 쪽글에 먹는 자랑 써야할거 같은데요 ㅎㅎ
전 어제 멸치젓갈로 버무린 굴이랑 고추장소스로 마파두부덮밥 만들어 먹었답니다.
혼자 살다보니 더 집밥에 집착하게 되는거 같아요.

네꼬 2008-12-03 21:46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안녕하세요? 제 글이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떠올리는 소고기무국 덕분에 서재에서 음식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좋아요.) 이상하게 저는 페이퍼를 쓰다 보면 자꾸 먹는 얘기가 나와요. 아닌척하고 딴 얘길 덧씌워도 다들 잘도 알아보시고 먹는 얘기를 뭉게뭉게... (또 좋아요.) "집밥에 집착"이라는 구절은 볼드로 처리하고 밑줄을 긋고 싶어요. 저 마파두부밥 되게 좋아하는데. 정말 되게 좋아하는데. 되게 많이 먹는데. 씁!!

2008-12-03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3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ng 2008-12-0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댓글 읽는데도 한참 걸렸어요
인기 많은 고양이 네꼬님,
김창완밴드의 Folklift 들어봤어요?
(소고기무국 먹고 싶은 생각에 딴 소리만 늘어 놓고 있다는)

네꼬 2008-12-03 21:50   좋아요 0 | URL
이게 다 소고기무국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한 솥씩 끓고 있는 덕분.
으아. 나 진짜로 지금 상상했는데요, 모두가 생각 풍선 속에서 고깃국 떠올리는 거요. 와. 약간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몽님께는 제 국을 좀 나누어드릴게요. 새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어요. ㅎㅎ
김창완밴드의 Folklift 는 못 들어봤어요. 우리, 소고기무국하고 딜? ㅎㅎ

2008-12-03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3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넛공주 2008-12-0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소리지 이건...전 정말로 보온병에 국 넣어가지고 다니는데요.

네꼬 2008-12-03 22:05   좋아요 0 | URL
오, 예~! 이러니까 제가 공주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 공주님, 그럼 도넛하고 국하고 드시는 거예요? 조합 짱! 키득키득.
 

이러다 닉네임을 '베짱이'로 바꾸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베짱이 편을 드는 네꼬 씨이지만, 이렇다 할 장기도 하나 없는 처지에 오로지 게으르기 때문에 베짱이가 된다는 건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나름대로는 리뷰를 써보려고 연필 몇 자루 꼭지를 씹었는데, 맘 먹고 쓰려고 하면 석 줄 이상 써지질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려던 얘기를 꺼내기까지, 대문에서 현관까지 진입로가 너무 길다. 봐, 지금도 그렇잖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가즈키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의젓해졌다. 의젓한 게 나쁠 건 없는데 '너무' 의젓해진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렇게 하면 뒷 이야기랑 연결되겠지. 이렇게 하면 다양한 시점을 보여줄 수 있겠지. 이렇게 하면 따뜻한 마무리가 되겠지. 가즈키는 이런 걸 다 생각해서 수첩에 적어 본 다음,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즈키가 '감질맛'을 낼 줄 안다니 놀랍고 한편 반가운 일이지만 (어느정도 짐작을 하면서도 마지막 이야기 <로마의 휴일>에선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어쩐지 나는 <<Go>> 시절의, <<레볼루션 넘버 3>> 시절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 시절의 그가 그립다. 플라이 대디 시절의 그도 나름 의젓했는데. "상상을 하면서 움직여. 우린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야." 이런 명대사를 나처럼 암기력 떨어지는 고양이가 외우게 할 만큼.

 

 

"아내가 종이 위에 적어준 장거리들처럼 / 인생의 세목들이 평화롭고 단순했으면 좋겠다" (<장보러 가는 길>)

"가장 뚜렷한 손금인 줄 알았는데 / 깊이 파인 흉터이듯이 / 무엇을 쥐었다 베었던가 / 생각은 안 나지만 / 손이 아주 아팠던 기억은 있듯이 / 그렇게 남자는 여자와의 사랑을 되돌아볼 것이다" (<평범해지는 손>)

"인용과 각주 / 어제의 통화 내용 / 부르주아 대가족 / 불어의 R 발음 / 모교의 정문 / 옛 애인들 (가나다 순) / 컨설턴트의 고객 개념 / 칸트의 물(物) 자체 / 물 자체라는 말 자체 / 라벤더 향기 / 아래쪽 / 토성" (<나를 환멸로 이끄는 것들>)

시인이란, 우주 속에 지구 위에 이 땅에 혼자 굴을 파고 쪼그리고 앉아서 그가 떠나온 저 먼 별을 자꾸만 바라보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한숨을 폭폭 쉬는 족속들이구나. 잘해주고 싶다, 시인들에게. 이 시집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치과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해준다는 것보다 더 큰 장점이 있다. 바로 (그 흔한) 여행 사진이 한 장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빌 브라이슨이 걸어다니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가 파리의 건널목에서 파란 불에 건넌다는 이유만으로 차들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 나도 "깜짝이야!" 소리를 내면서 사방을 살펴야 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술 값이 얼마나 비싼지 은행 대출을 받지 않으면 술 한병 살 수 없다는 진술에 "이 허풍쟁이" 하면서도 그쪽 여행은 일단 뒤로 미루는 게 좋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가 길고 지루한 기차 여행과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하는 끝없는 계단을 극복한 끝에 "세상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광장"을 내려다 보며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라고 할 때 나 역시 카프리에 도착한 벅찬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왜 사진이 멋진 여행서에 침을 흘렸던 거지? 의아할 정도. 이따금 등장하는 카츠 씨, 반갑다. (소설가 김영하 표현 대로라면, '옆에서 고소영이 정우성 어깨에 올라 타 상모를 돌린다고 해도 눈길을 줄 수 없을 만큼 재밌는' <<나를 부르는 숲>>의 그 친구다.)

 

어쩌면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아주 아주 재미있고 웃기면서 또 참을 수 없이 안타까워서 중간에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다. 몇 통의 편지가 사람 마음을 활짝 열어버릴 수가 있다. 어디까지가 친밀함이고 어디까지가 우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내가 제일 안타까웠던 건 (사실은) 에미의 남편의 편지였다. ㅠㅠ

좀 다른 얘긴데, 여기 나오는 에미의 말투는 독일의 그녀, 그러니까 하이디 씨와 말투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난 자꾸 하이디 씨의 편지를 엿보는 것 같은 미안함과 즐거움에 빠지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책 독일책이구나. 하이디 씨 소개해줘야지.

--새벽 세시.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세벽 세시의 전화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고양이다.

 

치과에 갈 일이 생겼다. 그것도 갑자기. 이 충격과 슬픔과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 쩔쩔 매다가 진정을 위해 책을 두 권 주문했다.

 

 

 

 

 

 

고미 타로의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은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그림책 베스트 5에 들 책이다. 그래 치과의사도 무서울 거야. 남의 입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일이 자기라고 좋겠어? 끼이이 소름끼치는 기계 소리가 자기라고 좋겠어? 윌리엄 스타이그의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제발 도와주세요. 이가 너무 아파요"라고 울먹이는 여우의 표정이 가슴 미어진다. 한편 치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치료를 다 받은 다음 (생쥐) 치과 의사를 잡아먹으면 "나쁜 일일까 아닐까" 라고('나쁜일일까'가 아니라, '나쁜일일까 아닐까'라는 게 중요하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우의 표정은 폭소를 자아낸다.

치과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내가 그리 아플 것은 아니지만 의사로서는 무척 까다롭고 귀찮은, 한마디로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요" 하는 (그 의사가 정말 그렇게 털어놨어요) 치료를 받아야 된단다. 그 난감함을 나에게 표현하는 의사에게 내심 서운했지만, 혹시 그래서 나에게 앙심을 품고 아프게 치료할까봐 두번째 치료 때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을 선물했다. 의사는 정말 깜짝 놀라서 마치 손을 대면 안 되는 물건을 받는 듯한 태도로 그림책을 받아 들었다. 세번 째 치료를 시작하기 전, 의사는 여섯살 난 아이가 그 책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앗싸, 다행이다.) 아니나 다를까, 치료를 마쳤는데 의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나를 굳이 붙잡고 앞으로의 치료 과정을 아주많이 친절하게 따뜻하게 설명해줬다. 책은 참 쓸모가 많다는 (오늘도 역시) 엉뚱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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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0-2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예고는 태그인가요? 올해는 아직 두달도 더 남았다구요 ㅡㅜ (올해가 가는게 못내 아쉬운 1人)

빌 브라이슨은 트래블에세이는 이런것이다.를 보여주는 작가죠. 전 지금 아프리카 다이어리 보고 있어요. ^^

네꼬 2008-10-21 00:59   좋아요 0 | URL
앗 하이드님 안 주무셨네. 안 그래도 하이드님 글 읽다가 하마터면 이 책 원서로 살 뻔했어요. (^^) -- 다행히 안 샀다능. -_-

아프리카 다이어리도 재미있....겠지. 오죽할까. 그 책 컨셉만 보고도 좋아진 1人. (두달이 남았지만 전 벌써 올해의 책을 정해버렸거든요!)

turnleft 2008-10-21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잔뜩 들어간 여행기를 쓰다가 네꼬님 글을 보고 움찔.. -_-;;

네꼬 2008-10-21 09:11   좋아요 0 | URL
걱정마세요 레프트님. 저는 저 아래에 사진으로 도배한 여행 포스트를 몇개씩이나 달았는걸요. 하핫. 하지만 이렇게 한번씩 글자만으로 안내되는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듯해요.

다락방 2008-10-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꼬님.
저 빌 브라이슨의 저 책을 살까말까살까말까살까말까 막 이러고 있었거든요. [나를 부르는 숲]을 보고 몇번이나 쿡쿡 거렸기 때문에 살까말까살까말까살까말까 막 이랬는데 음 역시 사야겠어요. 불끈!

네꼬님 페이퍼 읽으니깐 또 막 좋다.

네꼬 2008-10-21 09:13   좋아요 0 | URL
재미난 책이에요. 치과에서 정말 웃어 버렸다니까요. (다행히 치료를 시작하긴 전이었어요.) 읽어보세요, 불끈!

"또 막" 좋다니 으휴 >.<

다락방 2008-10-2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네꼬님의 치과의사 참 좋으네요 ㅎㅎ

네꼬 2008-10-21 09:15   좋아요 0 | URL
음. 처음엔 친절한 건지 아닌지 좀 헷갈리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원래 의사들에게 썩 친절한 환자가 아닌데(이게 무슨 소리) 치과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진다능. 뇌물 좀 썼죠! 하핫.

웽스북스 2008-10-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올해의 책 궁금해요. ㅎㅎ
남은 두달동안,
아 이 책이 올해의 책보다 더 재밌으면 어쩌지... 하면서 보는거 아냐? ㅋㅋㅋ

근데 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미보다 베짱이를 지향한데요?
나는 개미를 지향해요. 정확히는 개미...허리! ㅋㅋ
내 몸은 점점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ㅜㅜ

다락방 2008-10-21 16:05   좋아요 0 | URL
저는 개미를 지향하기는 하는데
사는건 베짱이라는 ㅋㅋ

네꼬 2008-10-22 18:56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아, 나 그 생각은 못했어요. 그러고 보니 그럼 두 달 동안 은근 걱정하면 살아야 되잖아. 어떡하지...?=_= 그때 만난 바로는 개미 허리 이미 이루신 것 같은데! 나는 날이 갈수록 "뜻밖의 몸매"가 되어가는 것 같아 서러워요. 그런 마음 뭔지 알아요? ㅠ_ㅠ (눈물바다)

다락방님.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게으른' 개미인 것 같아요. 맘편히 놀지도 못하면서 일도 안 해. ㅠㅠ (눈물바다2)

홍수맘 2008-10-2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항상 귀여워요~ --- 옆에 있으면 앙~ 깨물어주고 싶어요 ㅎㅎㅎ.
너무 오랜만이죠? 잠깐 짬이나 들어왔어요.
저도 왕 베짱이가 됬는지 요즘은 자판 두드리는 것도 귀찮아 거의 눈팅과 패쓰만 하고 있다는...
님이 올리신 책들요~~ 요즘 지를까 말까 고민하는 책들이랍니다. ^^.

네꼬 2008-10-22 18:58   좋아요 0 | URL
홍수맘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그리 바쁘신 것을 보니 하시는 일이 잘 되어가시는 거죠? ^^ 곁에 있었다간 깨물릴 뻔했으니 이마아안큼 떨어져 있는 게 (오늘은) 다행이네요. ((그런데 귀엽다뇨. 저 왜 죄 짓는 기분이 들죠....?-_-;;) 베짱이 클럽에 여기 회원 한분 추가네. 하핫.

2008-10-21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2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8-10-2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이런 뇌물이라면 무조건 받고 잘해주고픈, 그런 환자네요. 한 수 배웠어요.
어쩌면 네꼬님은 제 상상보다 훨씬 사회생활 잘 하실지도 ... ㅋㅋ
보관함에 하이디 말투 책을 담습니다. 빌브라이슨도 예전에 담아뒀는데 당분간은 여행 관련 책을 자제하려구요, 흑.

네꼬 2008-10-22 19:01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제 뇌물은 정말 잘 통한 거겠죠? (야아 싸다 싸.) 근데 상상을 어떻게 하고 계셨기에... 아무려나 사회생활은 저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잘하고 있죠. (뭐래니?) '새벽 세시..'의 에미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하이디이면서 저를 먹여주고 재워준 독일의 그녀 하이디이기도 해요.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만나보시길. 여행관련 책은 왜 자제하세요? 놀러 가고 싶어질까 봐? (질러요 질러)

Koni 2008-10-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음 포스트가 완전 기다려집니다.^-^

네꼬 2008-11-30 13:03   좋아요 0 | URL
냐오님이 댓글을 주시고도 한 달이 더 넘었네요. (.. ) ( ..) 게으른 네꼬 씨를 용서해주세요;

2008-10-26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20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라니 2008-11-22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슬픔이없는십오초.. 주문하고 싶군요.ㅠ
전, 제가 아는 시인은 정호승 뿐인걸요.
제 사랑이 흔들리면 어쩌죠... 두렵.




네꼬 2008-11-30 13:05   좋아요 0 | URL
고라니님 안녕하세요? (주문하세요, 주문하세요. 부채질 훨훨) 그 정도에서 흔들릴 사랑이라면 진작 흔들리는 게 좋아요. 어서 읽어보세요. (응? 무슨 소리?)

2008-11-29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30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1-3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모있는 책인데~ 아무도 추천은 안 했군요.^^ 뒷북이라도 꾸욱~~
올해의 책 페이퍼로 하나 올려봤어요. 책 받은 날에~~~

네꼬 2008-11-30 13:1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어엇 그런데 올해의 책 페이퍼라, 오옷 보러 가야겠군요.

순오기 2008-11-30 15:35   좋아요 0 | URL
창비어린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요~ ^^
 

오늘 오전에 나는 인사동으로 외근을 나가야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제 오후부터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행도 없이 인사동을 가면, 거기서 데이트를 했던 남자가 떠오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도 이 울적함을 해결하지 못한 채, 최대한 밝은 음악을 고르는 정도의 조치를 취하고 자유로에 올라 서울을 향했다. 그렇게 계속 우울할 예정이었는데 뜻밖에도 금세 그 기분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자유로에서 강변북로를 잠깐 거쳐 마포구청 쪽으로 빠져서 인사동까지 오로지 직진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코스였고, 내 짧은 운전경력으로도 열다섯 번은 족히 다녀온 길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가는 길 내내 바닥에 하얀 스프레이로 표시된 접촉사고의 흔적들이 20미터에 한 군데씩 나타나더니 연대 앞에서 이대 후문에 걸쳐서는 아주 오작교 까치와 까마귀처럼 오밀조밀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흔적들을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는 운전자들은 지난 사고들에 오마주를 바치려고 일부러 그러는 듯 '아 저러면 사고가 나는구나' 하는 거친 운전을 과시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고 오마주 촬영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앞 차에 코를 너무 바짝 들이대지 않겠다거나, 깜박이를 켜겠다거나, 신호를 지키겠다거나 하는 낡아빠진 정신으로는 시대가 원하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네꼬 씨에게 주기 위해 모든 차들이 일사불란한게 움직였다. 나는 아직 협상조건도 알려주지 않은 채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흉악범들에게 제발 이유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울부짖는 처절한 심정이 되어 차를 몰았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원하는 게 뭐죠? 인사동 주차장 입구, 관리인 아저씨의 얼굴을 보자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차를 댄 다음 잠깐 정신을 수습했다. 남자 생각따위는 할 겨를이 없었다.

햇볕과 바람이 적당한 인사동 거리는 평일인데도 관광객들로 꽤 붐볐다. 일을 마치고,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잠시 길가에서 땀을 식혔다. 인사동이 전 같지 않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인사동은 과거 위에 현재가 입혀지고 상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버무려지고,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어서 아름다운 곳이다. 내 눈엔 좀 허술해 보이는 열쇠고리들을 흥미로운 얼굴로 한참 들여다보는 서양인 아저씨들과, 목에 명찰을 건 채 밥 먹을 곳을 찾는 어여쁜 언니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다가 문득, 내가 여기서 데이트를 한 남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기분이 한결 더 상쾌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모르고 좌회전 차선에 들어선 나는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켰다가 모든 것을 범인들의 뜻에 맡기는 심정으로 그냥 그 차선에서 얌전히 신호를 기다렸다. 뭐, 돌아서 가지. 룸미러로 보니 내 뒤엔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적어도 뒤에서는 지켜주겠지. 그때 저 앞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경쾌하게 신호를 무시하며 차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얼른 룸미러를 살피니, 경찰 아저씨가 놀라운 곡예를 본 관람객의 표정으로 "이야~"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 게 보인다. 내가 이런 나라에 사는구나. 아무튼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해 땀이 쪽 빠졌으니, 땡스 투 폭력운전자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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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10-07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촌스러운 거겠지만 저 인사동이라는 곳엘 한 번 가봤어요. 그것도 올해 여름에요..
첫 느낌은 '고풍' '고전' 그런건 아니었고 '복잡' '다름' 이었어요.
또 가고 싶은 맘은 당연히 들었구요 :)

난 데이트 할때 인사동에도 안가고 어디서 뭐 했지..? --a

네꼬 2008-10-08 09:12   좋아요 0 | URL
저도 뭔가 복잡하고 어수선한 듯하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인사동이 좋아요. 고급이든 싸구려든 기념품 가게들도 재미있고요. 이따금 좋은 전시를 보는 것도 즐겁고요. (그리고 골목골목 맛있는 음식점들도!)

어디서 무얼 하신 거예요, 응? 응? ㅋㅋ

도넛공주 2008-10-07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물에는 존재의 가치가 있다더니...........중얼중얼...........(그래도 확 엎어져버려라!확!그냥!확!)

네꼬 2008-10-08 09:14   좋아요 0 | URL
괄호 안의 말씀은 폭력운전자님들께 하시는 말씀이죠? (잠깐 후덜덜 했다는.) 적어도 어제는 그런 역할을 해주셨어요. 어휴. 근데 전 어제따라 왜 그리 벌벌 떨었을까요? 한번 당황하니까 점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_-a

mong 2008-10-0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자라도 날리셨음 차라도 한잔 하는건데...ㅎㅎ
그러면 두남자+조류 와의 데이트 기억으로 확대되어 어쩌구저쩌구
중얼중얼
근데 폭력 운전 나빠요 =3=3=3

네꼬 2008-10-08 20:15   좋아요 0 | URL
^^ 그러게. 몽님한테 문자라도 날려볼 걸 그랬네요. 바쁘실까봐.호홋. 근데 왜 두 남자?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꼭 두 사람이라는 편견은... ㅋㅋ

폭력운전 나빠요. 근데 스스로들은 그게 운전을 잘 하는 거라고 믿는 걸까요? 저 정말 너무 쫄았지 뭐예요. 흙.

mong 2008-10-09 13:51   좋아요 0 | URL
잘못했어요 ㅠ.ㅜ
(편견쟁이 몽 ioi)

네꼬 2008-10-09 18:18   좋아요 0 | URL
용서해드릴게요.

(하하하. 농담농담)

전호인 2008-10-0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안전운전을 하셨군요.
사고는 순간인 것 같아요,
사고 난 후 생각해보면 방심하는 찰나인 것이 많으니까요.
항상 안전운전하세염

네꼬 2008-10-08 20:16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맞아요 항상 잠깐 방심한 사이에 일이 나죠. 조심 또 조심해야 돼요. 근데 그걸 다른 사람들도 좀 알아줘야 할 텐데. ㅜㅜ 우리모두 안전운전, 안전승차, 안전보행, 안전안전.

2008-10-08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8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8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9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9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0-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에 불평 불만이 없겠죠~~~이쁜 네꼬님!
인사동은 한번도 가본 기억이 없으니 못 가본게 확실해요~ ㅜㅜ

네꼬 2008-10-21 00:55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이 가보세요, 순오기님.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드릴게요! (전 남자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