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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평점 :
독고 준 참으로 독특한 이름이다.한국에서 쓰이는 복성은 대게 중국에서 건너온 성인데 혹자는 아마도 이 이름을 듣고 이상무 화백의 만화 주인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이상무 화백 만화의 주인공이 바로 독고 탁과 김 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이 이름을 듣고 최인훈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은 상당히 한국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임에 거의 틀림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북한에서 출생하여 학교를 다니다가 월남하여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는 인물로 북한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누이 등 여러 가족은 생사를 알지 못하고, 함께 월남한 아버지는 남한에서 죽은 정말 남한에 피붙이 하나없는 고독한 상태의 인물인 주인공이 잃어버린 혹은 정립된 적이 없었던 ‘자기 자신’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의 주인공이 바로 독고준이기 때문이다.
회색인은 작가 특유의 관념적 경향이 엿보이는 에세이 스타일의 독백이 주를 이루며 그간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실험적 소설로 4•19혁명 직전을 배경으로 역사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독고 준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분단현실과 민족주의 등 한국사회의 집단적 모순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대학 시절 나름 문학도를 자처했다면 한번쯤은 읽어 봤을 책이다.이후 최인훈은 회색인의 마지막 장면인 독고준이 이유정이 들어가는 장면을 이용하여 독고준이 다시 이유정이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찰나에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는 환상적인 일을 통해 등 오승훈의 서유기를 방불케하는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최인훈은 실천이성 바깥의 관념에 몰두하는 인간을 ‘회색인’이라 부르고, 그 회색인의 관념 여행을 ‘서유기’라 불렀는데 그가 창조한 독고준이란 인물은 좌와 우의 틈바구니에서 지식인의 고뇌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인물로 이후 수 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과 자아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인훈의 소설속 주인공인 독고준과 같은 동명의 소설이 나왔다.최인훈 작가가 쓴 작품인가 싶어 저자를 받더니 고종석이다.흠 동명의 다른 작품이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웬걸 작가 최인훈이 미처 끝내지 못한 '독고준 3부작'의 완결판으로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이면서 또한 독고준과 그의 딸 독고원의 관념과 생활을 그린 독립적 작품이라고 한다.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소설을 연작해서 쓰는 경우는 대게 몇가지 경우가 있는데 홍루몽의 경우처럼 원작자가 초고를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타계할 경우 후대의 작가가 그 원고를 찾아 완성하는 경우,작가 타계후 작가의 원고 초안을 가족이 타 작가에게 완성을 하도록 하는 경우,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유능한 후배작가에게 쓰게해 후배작가의 성장을 돕는 경우등으로 나눌수 있다.
그런데 고종석은 고씨는 두 연작 장편 이후 3부작을 완성하지 못한 채 병상에 있는 최씨를 대신해 ‘독고준’ 3부작을 완성키로 하고 ‘서유기’ 이후 독고준의 삶을 상상하며 썼다고 한다.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텨뷰에서 "최인훈 선생님은 당초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한 3부작 소설을 계획했었다"며 "이번 소설이 <회색인> <서유기>를 이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보다 사색이 승하다는 점, 주변적인 것을 옹호한다는 점에선 앞선 두 작품과 닮은 꼴"이라고 말했는데 작가가 원작자의 병상에 있다는 이유로 허락없이 이처럼 마음대로 글을 써서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병상에 있지만 최인훈이 이미 독고준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고,최인훈이 고종석에게 마지막을 부탁했다는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소설 독고준은 주류 문단과는 별개로 ‘관념소설’을 쓰며 ‘회색인’이라 불리면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독고준이 투신 자살을 하고 그의 일기를 화자인 그의 딸 독고원의 발견하고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면서 일기에 그의 의견 혹은 단상들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독고준은 참 독특한데 전통적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문 교양서 같은 느낌을 준다.왜냐하면 이 소설은 독고준의 일기를 월별-혹은 주제별-로 나누고 한국 정치상황,가족,서양의 정치인, 지식인,감명 깊게 읽었던 책에 대한 생각등 독고 준의 생각을 일기 형식으로 적는데 그것을 본 딸이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덫 붙이는 형식이다.
독고준이 소설이 아닌 교양서처럼 느껴지는 또다른 이유는 1950년대~2000년대의 세계사 사건과 인물에 대한 논평-예를 드골, 사르트르, 케네디, 닉슨, 김대중 및 한국 문단의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어 작가가 그동안 써온 신문 컬럼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고준은 20세기 후반의 전 세계의 정치와 문화와 예술의 분야에 대한 반세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상당한 지적 소양을 한번에 높일수 있겠지만 과연 독고준이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잇는 3부작의 대미를 잇는 작품일까 하는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왜냐하면 현대문학을 그것도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는 작가에 대해서 거의 빠지지 않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것은 언어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물론 읽으면서 잘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을 소설로서가 아니라 인문 교양서적의 느낌이 보다 더 든다.
병상에 있는 최인훈이 이 책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칭찬할지 아니면 얼른 병세를 툴툴 털어버리고 다시금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쓰기 위해 펜을 들지 궁금해 진다.
by ca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