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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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지내는 선배중에 결혼하지 꽤 되는 분이 계시는데 나이에 비해 대학 재학 시절 결혼을 했기에 나이에 비해 결혼 년차가 상당히 오래된 편이다.가끔 만나서 술을 얻어 먹곤 하는데 밤 늦게까지 술을 먹을 때가 있어서 집에서 걱정하지 않냐고 물으면 대답이 싱가폴 가있어 하는 것이다.부인되시는 분이 크르즈 여행사에 다니셔서 한달에 한번이상은 해외 출장을 가신다.
이상하게 부부 사이에 아무 문제도 없는데 전혀 아이 소식이 없어 인공 수정도 해 보았냐고 물어보니 몇번을 해도 그게 잘 안된단다.그리고 인공 수정을 할때마다 와이프가 심들어 해서 서로 입밖으로 포기했다는 말은 하질 않지만 그냥 관둔 상태라고 한다.
아이가 없으니 항상 신혼같으시게겠네요하고 물으면 항상 심드렁하게 사는게 뭐 다 그렇지란 말로 대답을 회피하곤 한다.

우연히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빨강 장화속 내용이 우연찮게도 이 선배네와 비슷해서 읽으면서 자주 오버레핑되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 빨강 장화에서 남편 쇼조와 아내 히와코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이가 없는 부부로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부부에게 특별히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평범한 두 사람의 일상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질 뿐이다.너무나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서 마치 물을 잔뜩 탄 커피마냥 밍승 밍승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 10년차 부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사실 우리 현실의 어느 가정속에서도 일어날수 있는 이야기 들이다. 10년차 부부에겐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같은데 이쯤 되면 신혼의 단꿈도 사라사라 권태기란 것도 지나서 연애 시절의 달콤한 애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소설속 히와코도 연예 결혼을 했지만 그 연애 시절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아무런 기억이 날질 않는다-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져버릴데로 익숙해져 무관심 일변도가 돼버린다.
가끔은 뭔가 다른 것들을 시도해보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미묘하게 엇갈려서 열심히 무언가 노력해도 메아리쳐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이라 이내 정신적으로 피곤해져버릴 뿐인 모습을 정말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빨간장화속에는 사랑의 열병도, 격렬한 부부싸움도, 부부 어느 쪽의 불륜도 그 어느 것 하나 등장하지 않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주변 이야기뿐이라 요즘처럼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읽다보면 지루해서 하품까지 나오게 한다. 쇼조와 히와코는 세상의 많은 부부들처럼 뜨뜨미지근한 관계를 용케도 지속해 가고 있다.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그럼에도 그 외로움이 익숙해지면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이 아리러니 한 상황이 결국 부부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오래된 부부들의 문제점은 오래 살았기에 서로 다 알거라는, 내 행동 하나하나를 상대방이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막 결혼을 마음먹은 연인들이 읽으면 안되는 책이다.10년의 저럼 무미 건조한 결혼 생황리 앞으로 자신들의 미래라면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하지만 독신을 고집하거나 아니면 결혼 10년차에 내 결혼은 왜 이리 불행할까 하는 부부라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것이다.세상의 결혼이 다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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