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이 그닥 환영받지 못하던 국내 문학계의 풍토상 서구의 셜록 홈즈나 포와로,미스 마플 같은 명탐정이나 일본의 긴다이치 고오스케 같은 명탕정을 국내에서 바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됩니다.

국내에서 이른바 셜록 홈즈에 같은 탐정(탐정으로서의 인지도 높은 명성을 말하느것이 아니라 시리즈물로서 이지요)이라면,언뜻 생각나는 것이 이상우 작가님의 추경감이나 김성종 작가님의 형사 오병호를 들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 탐정들의 인지도는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추리 소설을 접했다는 독자들 중에서도 모르는 분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독자들이 추리 소설을 잘 안읽는데다 추리 소설 애독자분들도 국내 추리 소설은 재미없다고 안 읽기 때문이겠지요.게다가 오병호형사나 추경감 모두 경찰로(국내 사정상 탐정이란 직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극히 사실주의적인 인물로 그려지다보니 홈즈나 기타 명탐정에서 느낄수 있는 초인적 능력이나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를 볼 수 없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속 국내출신의 명탐정하면 솔직히 50대이전 독자들은 과연 그런 인물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50대이상이라면 아마도 김내성의 유불란 탐정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유불란 탐정은 김내성 작가의 1939년 작 마인에 등장하는 명탐정으로 출간 5년만에 18판, 광복 후 30판을 찍은 당대 최고의 화제작으로 경성을 종횡무진하는 활약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저기 자료를 보면 유불란의 이름은 아르센 뤼팽의 저자인 프랑스 작가 모르스 르블랑을 일본식으로 음차하여 따왔다고 하더군요.
판타스틱 2009년 봄호를 보면 일제 치하의 조선에 탐정이 부재했던 당시 현실(당시 경성에는 일본인 코바야시가 운영하는 탐정사 한곳이 있었으나 이거 역시 일본 총독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탐정 사무소였다고 한다)에서 김내성에게 유불란이라는 탐정 캐릭터 창조를 위해 영미 소설에 등장하는 초월적 탐정 모델을 일차적으로 고려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근거로 가장 현실적인 경찰이 아닌(당시 경찰은 일제 치하의 조선 민중들에게는 일제의 앞잡이란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지요) 탐정이란 조선에 없던 직업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일본 유학 시절부터 좋아했던 캐릭터였던 만큼 유불란 역시 변장 취미를 갖고 연애를 즐기는 르블랑의 루팡과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어서 유불란은 괴도+명탐정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유불란이란 명탐정의 캐릭터 성격이 상당히 많이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홈즈나 포와로 같은 명탐정들은 최초에 나왔을때부터 초인 같은 추리 능력을 보여주고 그것이 시리즈가 끝날때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만 유불란은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 유불란 탐정은 마인 한 작품에서만 나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해방이후 유불란이 나오는 탐정 소설이 대체적으로 마인 한 작품만이 재간되어서 였을 겁니다.유불란이 나오는 탐정소설은 대락 다음과 같지요.
-탐정 소설가의 살인(이후 가상 범인으로 제목변경.1935)
-백가면(1938.아동소설)

-마인(1939)
-태풍(1942연재.1944 출간)
-매국노(1942)

탐정 소설가의 살인에서 유불란이란 인물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 유불란은 탐정이 아닌 탐정소설가로 나옵니다.유불란은 사랑하는 여인이 쓴 누명을 벗기기 위해 그 사건을 다룬 연극 대본을 쓰고 (자신이 추리한) 진짜 범인에게 그 연극에서 연기를 할 것을 요구하고 결국은 그녀의 누명을 벗겨내지만 이후 진범의 수작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게 되고 그 진실은 검사가 밝혀내게 됩니다.결론적으로 유불란은 추리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등장하지만 결국 사건의 진실은 H검사가 밝혀내게 되지요.
진정한 의미에서 탐정 유불란이 나오는 첫 작품은 아동 소설인 백가면입니다.흰 가면에 흰 망또를 입은 작가가 사랑했던 아르센 뤼팽을 닮은 의적 백가면이 출현하여 미리 무엇을 훔쳐간다고 예고를 한 뒤에 아무리 지켜도 반드시 훔쳐가는 귀신같은 재주를 부리는 이야기로 상대역으로 경성(京城) 경시청 임(任)경부와 유불란탐정이 나옵니다만 여기서는 뤼팽의 적수 가니마르 경감 같은 성격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명탐정 유불란은 마인에 등장합니다.하지만 셜록 홈즈등과 같은 명탐정이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사건을 해결할 때 그는 사건의 중심인물인 공작 부인과 사랑에 빠져 사건과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마치 트렌트 마지막 사건의 트렌트를 연상시키더군요) ,뛰어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는 하지만 발생한 7건의 살인 중 단 한건도 막지 못하는(이것 긴다이치 고오스케를 생각케 하는데 마치 긴다이치의 선배를 보는 것 같습니다)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1942년 장편 ‘태풍’은 명탐정 ‘유불란’을 내세운 작품으로 ‘마인’의 후일담 형식으로 전개되는 첩보소설입니다.
이후 1942년 7월 김내성은 잡지 『신시대』에 ‘방첩소설’ 〈매국노〉를 발표하는데 ‘대동아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위한 ‘방첩소설’로서 발표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김내성의 작품연보 작성에서 항상 빠지는 작품입니다.매국노는 일본 제국의 군사기밀을 빼앗으려는 적성국 스파이와 조선의 탐정 유불란 간의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여기서 조선의 명탐정 유불란은 제국의 정보부원으로 변모된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이처럼 김내성의 창조한 명 탐정 유불란은 일제치하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조선의 특수한 상황속에서 살인을 저지른 탐정 작가에서 명탐정 그리고 나중에는 일제의 정보원으로 변신하게 됩니다.솔직히 한 탐정이 이처럼 다양한 변신을 한 것은 다른 작품에서는 그 예를 찾찾아보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처럼 일제치하에서 명성을 올리던 유불란은 마지막에 일제의 정보원이 되었다는 것 때문인지 해방이후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아마도 작가 역시 그런 사실에 마음이 쓰였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1930년대이후 활약하더 조선의 명탐정 유불란은 작가 김내성의 사후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습니다.만약 작가가 계속적으로 유불란 탐정이 활약하는 소설을 썼더라면 우리나라도 나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탐정 캐릭터가 생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머리나 벅벅긁는 긴다이치보다는 유불란 탐정에 더 애착이 가는군요.

다행히도 김내성 작가 탄생 백주기를 맞이하여 마인이 재간되고 유불란이 처음 등장하는 가상 범인이 출간되었습니다.
 
판매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백가면,태풍,매국노등 유불란 탐정이 나온 나머지 소설들도 재간되길 기대해 봅니다.

by caspi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0-10-23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되세요.^^

카스피 2010-10-24 10:43   좋아요 0 | URL
넵 후애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트렌트의 마지막 사건>과 기법이 비슷하다면 한번 비교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네요.

카스피 2010-10-24 10:43   좋아요 0 | URL
트렌트 마지막 사건은 이전의 홈즈류에 보이는 냉철한 추리 기계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탐정의 인간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기점으로 현대 추리 소설로 넘어간다고 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4 14:48   좋아요 0 | URL
김래성도 친일계열 작품이 있다니 관심이 가는군요.안수길이나 박영준의 친일작품도 발굴되고 그랬지요.

카스피 2010-10-25 17: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대중 작가다 보니 문예지등에서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