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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이 책에 나오는 꼬마 ‘제제’에게 공감을 느끼고 또한, 감동을 많이 받아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던 것이 기억난다.그건 아마도 제제의 어려움에 너무 감정이 이입되어서 내가 마치 제제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아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를 먹고 중 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나오면서 이 책을 서서히 잊혀져 갔다.아마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듯 책방에서 이희재 화백이 그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보고 다시 읽게 되었다.
1968년 처음 출간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주인공인 다섯 살 난 꼬마 제제가 만나는 새로운 친구와 그 친구를 통해 한 걸음 더 철이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동화라고 할수 있는데 어른과 어린이 모두의 마음을 흔들 만한 많은 공감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책 내용은 실직한 아빠와 방직 공장을 다니며 생계를 책임지는 인디언 엄마,서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너무 많은 가족들, 그리고 당장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야 하는 가혹한 집안 환경…. 하지만 그런 환경속에서 장난꾸러기 악동으로 집과 동네에서 평가를 받는 5살짜리 주인공 제제는 악동이지만 학교의 선생님과 뽀루뚜가 아저씨에게만은 착하고 너무나 맑은 영혼을 지닌 아이다.
아빠가 실직한후 엄마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방직공장에서 일하고,현과 누나는 집안일을 나누어서하고,제제는 어린 동생 제임스를 돌본다.어찌보면 한창 부모한테 사랑을 받아야될 제제의 입장에선 정말 슬프고 가혹한 현실인데 그럼에도 제제는 맑고 씩씩하다.
작가인 바스콘셀로스가 ‘자전적’임을 이야기한 바 있는 이 소설은 정말 브라질 어느 시골 마을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두드러져 현실감이 남다른 편이다.게다가 성탄절 날 자신이 선물 하나 못 받는 것이 슬프고 화가나 그만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데 그런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에 제일 비싼 담배를 아버지께 선물해주기위해 다섯 살 배기 제제가 구두통을 메고 거리로 나가는 장면은 이 책이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서 있는 리얼리즘 작품이어서 과연 어린애들에게 읽혀도 될까하는 생각을 들게 해준다.이 책의 내용은 마치 우리 50~60년대 부모님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기에,또한 IMF와 이후 발생한 경기 불황으로 현재 많은 아버지들이 실직한 현재 우리 가정의 이야기이도 해서 이야기속 내용이 더 한층 마음속에 와닿게 된다.
제제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고 부르는 밍기뉴의 벌목과 친한 아저씨인 뽀루뚜가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서 아이었던 제제는 어른의 세계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사랑했던 두 친구와의 이별(현실에서는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할머니등),무언가 두려운 느낌의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예를 들면 유치원 입학등과 같은 단체 및 사회 활동의 시작)등 단순하게 부모의 사랑속에서만 자란 어린이들이 모두 겪어야 하는 유년기 탈출과정을 그리고 있기에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공감대를 느끼게 해준 것 같다.
이 책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사회의 아픈 면을 그려주고 있다.이 책의 내용은 1968년의 브라질 한 마을의 이야길수도 있지만 2009년 실직 가장을 둔 대한민국의 어느 한 가정의 이야길수도 있다.만약 남미 계열의 소설들에 흔히 붙이는 통념 중 하나는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즉 제제와 라임나무 밍기뉴과 대화할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면 아마 국내에선 사회 최하층 계급의 힘들고 고달픈 삶은 그린 불온한 좌파소설이라고 배척당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그리고 라임나무 밍기뉴와의 대화라는 환상적 개념이 없었다면 아마도 부모님들이 쉽게 읽게 해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희재의 펜은 언제나 거칠고 생경해 보인다.그래선지 그의 작품은 언제나 어둡과 힘든 현실 사회를 그려선지 아동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그의 거친 펜터치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아동이 읽기 힘든 측면이 크다.
하지만 그의 거친 펜은 남미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을 마치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일어났던 일처럼 변모시키고 그의 펜 끝을 통해 제제는 우리 동네 한 구석에서 뛰어다니고 있을 법한 모습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이희재판 나의 라임 라임 오렌지 나무는 그의 거친 펜 터치때문인지 환상과 리얼리즘의 가운데에 아슬 아슬하게 있는 원작보다는 좀더 힘들고 고단한 삶이 묻어나는 리얼리즘쪽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다.그래선지 아이들보다는 어른이 읽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작품이 되었지만 요즘같이 물질적 풍요가 넘쳐나고 외동아들,외동딸이 대세인 현 시대의 아이들에게 MP3는 꿈도 못 꾸던 시절, 심지어 카세트테이프나 LP레코드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의 부모님혹은 할아버지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른 작가의 좀더 부드러운 터치에 의한 제제와 라임나무 밍기뉴와의 환상적인 만남이 기대되기도 한다.
by caspi